현지 업무 마비로 중국 내 규모가 큰 자회사를 둔 모회사들은 국내 본사에 있는 정보만으로 작성한 반쪽짜리 별도재무제표를 제출하는 데 그칠 공산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은 연결재무제표를 주된 재무제표로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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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공회 관계자는 “이미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삼일·삼정·한영·안진 등 빅4 회계법인으로부터 한 차례 현황을 확인했고, 대상을 넓혀 등록 감사인 전체로부터 서면 실태조사를 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한 회계법인 대표는 “글로벌 네트워크 간 유기적인 전산시스템을 구비한 대형 회계법인과 달리 중견·중소형 회계법인에 `발등의 불`이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감사 전 재무제표를 내야 하는 상장회사들은 마음이 더 급하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도 자체적으로 회원사 동향을 살피고 있다. 실제로 중국 천진과 남경에 현지법인을 둔 한 코스닥 업체는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는 이를 첨부한 사업보고서를 직전 회계연도 경과 90일 이내에 제출할 의무를 진다. 올해의 경우 3월 30일이 마감일이 된다. 다만 사유를 밝히면 5일간 추가기간을 부여받을 수 있다. 신종 코로나 여파로 사실상 출입이 통제된 중국 현지여건을 고려할 때 5일은 턱없이 부족하다.
회계업계에 따르면 국내 회계법인들은 주로 해외 자회사를 감사할 때 현지 회계법인을 통해 업무 협조를 구한다. 필요한 경우 국내 회계법인 소속 담당 회계사가 현지로 가 네트워크를 맺고 있는 회계법인 담당자와 면담을 하거나 감사 현장에서 직접 실사를 참관한다. 현지 소식통은 코로나19 창궐로 이런 직간접인 감사를 할 여력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회계감사기준서는 감사 과정에 나타난 `유의적 사항`들을 파악한 후 이를 평가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코로나19라는 천재지변에 가까운 재난 사태에도 회계감사기준을 준용해야 하는 감사인들 처지에서는 감사범위 제한을 이유로 의견거절을 표명할 수밖에 없다.
상황이 급박히 돌아가자 한공회, 상장협, 코스닥협이 부랴부랴 파악에 나섰다. 이 중 한공회가 관련 자료를 취합해 법리검토를 거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공식 제안할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로서는 감사보고서 및 사업보고서 제출 시한 연기, `노 액션 레터`(No-action letter·제재를 하는 않는다는 비조치의견서) 발부 등 모든 선택지를 고려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일부 내용을 구두로 전달받은 바 있다”며 “정식으로 접수되면 유관부서 및 관계기관과 협의해 가능한 한 기업이 피해를 보지 않는 방향으로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해외 금융당국 대처는 국내보다 발 빠른 편이다. 회계업계에 따르면 아시아 금융 중심지인 싱가포르는 사업보고서 제출 시한을 두 달가량 연장하는 방안을 확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글로벌 회계 중심지인 미국과 영국에서도 금융당국이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