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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버섯' 조롱받던 소년, 황제를 뒤따르게 하다 [화폭역정 7]
- 아돌프 멘첼의 ‘무도회의 만찬’(1878). 프로이센 왕실이 의뢰한 역사화, 산업화 현장을 옮겨낸 기록화를 평생 그린 멘첼의 대표작이다. 프리드리히 대왕의 화려한 예복부터 공장 노동자의 해진 옷자락까지 ‘예술은 장식이 아니라 증언’이라 믿었던 철학대로 사실적인 묘사를 목숨처럼 여겼다. 작품에서 멘첼은 여인의 머리에 박힌 보석·꽃 장식까지 정교하게 그리고 있는데, 일반적인 만찬장의 풍경뿐만 아니라 일반적이지 않은 상류층의 행태 묘사에도 소홀함이 없다. 멘첼의 철저한 기록정신은 훗날 독일 미술이 사실주의·표현주의로 나아가는 바탕이 됐다. 캔버스에 유채, 71×90㎝. 알테국립미술관(독일 베를린) 소장.여기, 세상이 열광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누구나 찬사를 아끼지 않는 걸작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름다운 작품, 화려한 명성 뒤에 숨은 화가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지독하게 어긋난 운명, 고단하고 허무한 삶이었노라고 말입니다. 이데일리는 오랜 시간 ‘그림이 하는 말’을 들어온 이윤희 미술평론가와 함께 세계미술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천재화가들의 인생역정을 더듬습니다. 단순한 일대기를 넘어섭니다. 뜨거운 예술혼이 맞닥뜨린 차가운 현실, 그 쓸쓸한 생이 한사코 밀어냈을 결정적 장면을 엿봅니다. 삶이 묻고 그림이 답합니다. 캔버스에 굽이치던 화가의 인생길 ‘화폭역정’입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께 다가섭니다. <편집자> [이윤희 미술평론가] 키 137㎝. 사춘기 무렵 ‘쇼이어만 후만증’이라 불리는 척추 질환을 앓았다. 그로 인해 흉추 부위의 뼈가 쐐기 모양으로 찌그러지면서 등은 앞으로 구부러졌다. 머리는 어깨 위로 비정상적으로 솟아올랐고, 몸통은 눌린 듯 짧았으며, 팔은 몸에 비해 유난히 길었다. 성장이 멈췄을 때 키는 다른 성인의 어깨에도 미치지 못했다. 신체적 조건은 곧 운명이 됐다. 거리에서 아이들은 소년의 뒤를 따르며 킬킬거렸다. 또래들은 ‘작은 버섯’이라 불렀고, 소년이 화를 내며 맞서면 ‘독버섯’이라고 했다. 의자에 앉으면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았고, 악수를 하려면 상대가 허리를 깊이 숙여야 했다. 이 병은 겉모습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압축된 흉곽 때문에 호흡이 얕았으며 쉽게 지쳤다. 작은 거장 아돌프 멘첼(1815∼1905). 프로이센, 그러니까 지금의 독일 땅에서 태어나고 살았던 멘첼은 19세기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였다. 프로이센은 군사 중심 국가였는데, 그는 군 복무 신체검사에서 당연하게도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평생 결혼도 하지 않았다. ◇왜소한 어깨에 가족 부양 짐까지 짊어졌던 소년가장소년 멘첼은 자신의 생존은 물론 가족 부양의 무게까지 짊어져야 했다. 석판인쇄소를 운영하던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열다섯 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마흔다섯 살의 나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와 아홉 살 여동생, 여섯 살 남동생을 부양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아버지의 인쇄소를 이어받은 멘첼은 메뉴판, 초대장, 졸업장을 닥치는 대로 만들었다. 어린 인쇄소 주인으로 거래처를 상대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어린 동생들의 끼니를 걱정해야 했다. 베를린미술아카데미에 입학했으나 6개월 만에 그만뒀다. 당장 먹고살 일이 급해 석고상 앞에 앉아 있을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멘첼은 평생 가족과 함께 살았고 모든 가족의 생활비는 다 그의 몫이었다. 가족에게는 늘 다정하고 부드러웠지만 그런 얼굴을 세상에 내보이는 일은 거의 없었다. 동정을 구하지 않았고 어떤 경우에도 약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외투에는 여덟 개의 주머니를 달아 스케치북을 넣고 다녔고 하루도 빠짐없이 모든 것을 그렸다. 그러곤 어느새 무시할 수 없는 화가로 성장했다. 멘첼의 그림에는 반박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한 출판사로부터 프리드리히 대왕의 생애를 다룬 삽화 400점을 의뢰받고 출판해 독일 전역에서 화제가 됐고, 이어 대형 역사화들을 수주받으면서 멘첼은 프로이센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가 됐다. 그림을 인정받으면서 그의 몸에 대한 시선도 달라졌다.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작은 버섯’이라 부르지 않았다. 만년의 아돌프 멘첼. 사진을 찍은 이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생전 멘첼은 작은 키를 드러내는 촬영은 거의 하지 않았는데 이 사진은 길가 마차 옆에서 우연히 찍힌 것으로 보인다.말년에 멘첼은 프로이센이 예술가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공적인 영광을 누렸다. 1890년 일흔다섯 살에 베를린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고, 1898년에는 흑독수리 훈장을 받은 최초의 화가가 됐다. 이 훈장에 따라 귀족 칭호 ‘폰’(von)을 하사받았다. 베를린대 명예박사에 이어 파리아카데미와 런던왕립아카데미 회원, 브레슬라우(지금은 폴란드 브로츠와프)와 베를린의 명예시민까지. 아이들이 뒤에서 ‘독버섯’이라 놀리던 소년은, 모두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신사가 돼 있었다.1905년 2월 멘첼이 아흔 살로 생을 마쳤을 때 황제 빌헬름 2세가 장례를 주관하고 직접 관 뒤를 걸었다. 군주가 한 화가의 관 뒤를 따라 걷는다는 것은 프로이센 역사에서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멘첼은 평생 왕실이 의뢰하는 역사화와 기록화를 그렸다. 사실 그대로를 그려야 하지만 그에게는 자신이 포착하는 진실을 놓치려 하지 않는 집요함이 있었다. ‘무도회의 만찬’(1878)은 빌헬름 1세가 주최한 궁정 무도회에서 열린 만찬 장면을 의뢰받아 그린 그림이다. 군복 차림의 장교들, 어깨를 드러낸 드레스의 여인들, 샹들리에에서 쏟아지는 빛이 은식기 위에서 부서지고 있다. 얼핏 보면 화려한 궁정 기록화다. 왕실에서 의뢰한 그림이니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건 뭔가 싶은 요소가 가득하다. 화면 중앙에는 한 남자가 여인에게 샴페인잔 올린 접시를 두 손으로 바치고 있고, 그러거나 말거나 그 옆의 여인은 접시에 코가 박힐 정도로 음식에 몰두하고 있다. 이들의 사선 뒤편에는 부부처럼 보이는 커플에게 무릎을 굽히며 아부하는 듯한 여인이 보이고, 화면 왼쪽에는 음식에 빠진 신사들이 서 있다. 그중 한 남자는 체면도 잊고 다리 사이에 모자를 끼운 채다. 황제는 인파 가운데 아주 작게 그려져 있다. 아돌프 멘첼의 ‘무도회의 만찬’(1878) 디테일. 한 남자가 여인에게 샴페인잔 올린 접시를 두 손으로 바치고 있고, 그러거나 말거나 그 옆의 여인은 접시에 코가 박힐 정도로 음식에 몰두하고 있다. 여인들 드레스의 레이스, 머리의 보석·꽃 장식까지 정교하게 묘사했다.결국 멘첼이 그린 것은 권력의 위엄이 아니라 권력의 무대에서도 여전히 무례하고, 남의 험담을 하고, 게걸스레 먹는 일에 집중하는 상류층 사람들이었다. 멘첼은 거대한 기록화 속에서도 자신이 본 것을 속이고 굽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권력은 멘첼의 이러한 고집을 용인했고 그는 그런 대작들을 수없이 남겼다. 그러나 멘첼이 사망한 뒤 유품을 정리하던 막냇동생은 전혀 오빠의 그림 같지 않은 작품을 여럿 발견했다. 전시에 나온 적도 없고 가족조차 본 적 없는 것들이었다. 그중 ‘발코니가 있는 방’(1845)은 ‘무도회의 만찬’과 비교하면 거의 손바닥 위에 올려 놓을 만한 그림이다. 발코니로 통하는 이 중 문이 열려 있고 바깥에서 바람이 들어와 하얀 커튼을 부풀리고 있다. 오후의 햇살은 비스듬히 마룻바닥에 길게 누워 있고 방 안에는 아무도 없다. 의자 두 개가 서로 엇갈린 방향으로 놓였고, 벽의 거울이 문 너머의 빛을 다시 한 번 비춘다. 화면의 왼쪽 절반은 거의 텅 비어 있다. 벽과 바닥뿐이다. ◇인상주의 태동 20년 전…빛 담은 ‘발코니가 있는 방’대담할 정도로 비어 있는, 작은 공간 속에서 빛과 바람만이 살아 움직이는 그림. 이 작품이 그려진 1845년은 모네가 빛의 인상을 화폭에 담겠다고 나서기 20여 년 전이다. 인상주의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에 베를린의 작은 남자는 자기 방에 들어온 오후의 빛을 이미 포착하고 있었다. 대형 캔버스 앞에 발판을 놓고 올라가 팔을 뻗어야 했던 멘첼은 자기만의 시간에는 이렇게 작고 고요한 그림을 그렸다. 프리드리히 대왕의 위업도, 대관식의 장엄함도 아닌 자기 방에 들어온 바람을 그리고는 서랍에 넣어뒀다. 바로 이 그림이 지금은, 멘첼의 작품 수천 점 가운데 가장 사랑받는 작품이 됐다. 베를린의 국립미술관은 이 작품을 소장품 중 대표작으로 내세우며 베를린 관광 안내에서도 반드시 언급한다. 2012년 독일우정국이 발행한 ‘독일 회화’ 시리즈 우표에도 등장할 정도다. 또 미술사가들은 ‘인상주의 이전의 인상주의’라고 이 그림을 평가하고 있다. 아돌프 멘첼의 ‘발코니가 있는 방’(1845). 19세기에는 프리드리히 대왕의 일대기를 그린 삽화로 명성을 얻고 독일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독보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21세기는 프랑스 인상주의를 예고한 ‘빛과 바람의 그림’에 열광하고 있다. 생전 공개하지 않았던, 멘첼이 ‘숨겨둔 작품’ 중 하나다. 유려한 붓질로 빛의 효과를 다뤄내며 시대를 초월한 진보적인 감각을 내보이고 있다. ‘인상주의 이전의 인상주의’란 평가를 받는다. 캔버스에 유채. 58×47㎝. 알테국립미술관(독일 베를린) 소장.역시 삶은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다. 멘첼을 먹여 살린 것은 역사화였다. 프리드리히 대왕 연작과 궁정 기록화가 그에게 명성을, 귀족 칭호를, 황제의 장례를 안겨줬다. 오늘날에도 미술사의 중요한 연구대상이며 위대한 작품이라는 평가는 변하지 않았다.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은 그 역사화들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간다. 하지만 그들을 멈춰 세우는 것은 ‘발코니가 있는 방’이다. 거대한 역사화 앞에서의 감탄이 그 시대의 영광에 관한 것이라면, 이 작은 그림 앞에서의 감탄은 마음을 흔드는 종류의 것이다. ‘발코니가 있는 방’ 앞에서 사람들은 19세기 프로이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어느 오후를 떠올린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 아무도 없는 방의 고요, 그 고요 속에서 커튼이 바람에 한 번 부풀어 오르는 순간, 어디선가 봤던 자신의 순간을 말이다. 역사화가 특정한 시대와 사건에 묶여 있다면, 이 작은 그림은 시간에서 풀려나 있다. 바람과 빛과 고요는 1845년에도 불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불고 있으니까 말이다. 공적인 영광은 역사가 거둬 갔고 사적인 공기는 우리에게 남았다. 세상에 내보인 것들과 숨겨둔 것들 사이의 간극에서 우리는 비로소 137㎝의 몸 안에 방대한 역사를 뒤로한 인간 멘첼을 만난다. △이윤희 미술평론가는…1970년생. 대학을 다니던 20대 어느 겨울,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 인생에 미술을 들인 결정적 계기가 됐다. 어느 미술관에서 마주친 렘브란트의 ‘어머니 초상’이란 작품이 발을 붙들었다. 뭔가 꿈틀거리는 게 올라왔다. 세상을 감동시킨 수많은 작품이 품은 이야기를 가지고 싶다는 열망과 함께였다. 이화여대 독문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미술의 역사, 미술의 말을 공부했다. 이후 ‘공간’ 지 미술기자로 출발해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학예실장, 청주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 등을 거쳤고, 지금은 이화여대·추계예대 등에서 미술이론을 강의하며 오래전 렘브란트의 감동을 넓혀가고 있다. 번역서로 ‘그림자의 짧은 역사’(2006), ‘포토몽타주’(2003), ‘바디스케이프’(1999)가 있으며 저서로는 ‘불편한 시선: 여성의 눈으로 파헤치는 그림 속 불편한 진실’(2022), ‘꿈꾸는 방: 여성과 공간의 미술사’(2023) 등이 있다.
- 커피 대신 엔비디아 0.1주 긁었다… 짠내 나는 소수점 주식[사(Buy)는 게 뭔지]
- [이데일리 신수정 기자] 사(Buy)는 게 뭔지:사는(Live) 게 팍팍할 때면, 우리는 무언가를 삽니다(Buy). 경제지 기자가 영수증 뒤에 숨겨진 우리의 마음을 읽어드립니다. 다이소 품절 대란부터 무신사 랭킹 1위까지. 도대체 남들은 뭘 사고, 왜 열광할까요? 물건의 스펙보다는 ‘그걸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장바구니를 보면 시대가 보이고, 결제 내역을 보면 내 마음이 보이니까요. 소비로 세상을 읽는 시간, <사(Buy)는 게 뭔지>입니다.[이데일리 김일환 기자]퇴근길 지옥철 안, 30대 직장인의 지친 눈동자를 반짝이게 하는 건 스마트폰 속 붉게 물든 주식 창뿐이다. 오늘 마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꾹 참고 그 돈으로 세계 최고 기업의 지분을 쪼개 사는 셈법은 2030 세대만의 영리한 생존 본능이다. 평생 월급을 모아도 서울에 내 집 한 칸 마련하기 어렵다는 무력감이 이들을 단돈 1000원으로 세계 시장을 주무르는 소액 자본가로 변모시켰다.부동산의 꿈에 좌절하며 현재를 즐기자던 욜로의 시대는 저물었다. 2030 세대는 탕진 대신 미국 주식 시장으로 시선을 돌려 푼돈으로 미래를 매수하고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증시 박스권을 떠나 해외 주식으로 향한 투자자는 지난해 8월 기준 710만명을 넘어섰다. 특히 목돈이 부족한 청년층에게 소수점 거래는 재테크의 핵심 동아줄이다. 토스증권의 실시간 해외 주식 소수점 거래 이용자는 출시 2년 만에 150만명을 돌파했다. 성장률만 475%에 달하며, 이 중 2030 세대의 비중은 압도적인 60~70%를 차지한다.이 거대한 자본 이동의 이면에는 철저히 계산된 기회비용과 우상향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다. 1주에 수십만원에 달하는 엔비디아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글로벌 빅테크 주식을 1000원 단위로 쪼개 거시 경제의 파도에 올라탄 것이다. 한국은행의 오랜 기준금리 동결 기조와 답답한 국내 증시에 지친 투자자들이 확실한 성장성을 담보하는 시장으로 대거 이탈한 결과다. 자본금이 부족한 30대 직장인들은 커피값을 아낀 몇만 원으로 매일 포트폴리오를 우상향 궤도에 올리며 자본가로서의 효능감을 얻고 있다.당장의 달콤한 낭비를 유보하는 고통은 내일의 벼락거지가 되지 않기 위한 안전 자산 확보다. 밤마다 요동치는 나스닥 지수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다가도, 빨갛게 달아오른 수익률을 마주할 때면 하루의 시름이 증발한다. 2030 직장인들이 매일 아침 카페인 수혈을 참고 증권 앱 창에 코를 박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현대인의 소수점 투자는 멀리서 보면 똑똑한 글로벌 자산 배분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무자비한 세상에서 도태되지 않으려는 눈물겨운 발버둥이다. 내일 아침 다시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고 월급을 채굴하려면, 오늘 밤 어떻게든 뉴욕 증시를 바라보며 불안을 잠재워야만 한다. 푼돈으로라도 우상향의 열차에 올라타지 않고서는 맨정신으로 버티기 어렵다면, 최후의 보루로 계좌에 엔비디아 0.1주라도 든든하게 담아두는 수밖에 없다. 오늘 밤도 환율 변동과 미국 경제 지표 사이에서 치열하게 매수 버튼을 누를 모든 직장인의 성공적인 수익 실현을 응원한다!
- "감히 모델 주제에 붓을 들어?" [화폭역정 6]
- 수잔 발라동의 ‘푸른 방’(1923). 침대에 비스듬하게 기댄 여인. 전통적으로 서양화에 자주 등장하는 여성 누드화의 포즈다. 하지만 그림 속 여인은 이제껏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줄무늬 파자마 바지에 분홍 캐미솔을 입고 담배까지 물었다. 발치에 던져둔 책도 눈길을 끈다. 담배나 책은 당시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화가에게 그림을 주문하고 그 그림을 즐겨온 남성의 시선을 빼버리는 것으로 발라동은 관습이 요구하는 여성성을 대놓고 거부했다. 후대 여성 예술가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친 작품이다. 캔버스에 유채, 90×116㎝. 퐁피두센터 국립현대미술관(프랑스 파리) 소장.여기, 세상이 열광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누구나 찬사를 아끼지 않는 걸작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름다운 작품, 화려한 명성 뒤에 숨은 화가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지독하게 어긋난 운명, 고단하고 허무한 삶이었노라고 말입니다. 이데일리는 오랜 시간 ‘그림이 하는 말’을 들어온 이윤희 미술평론가와 함께 세계미술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천재화가들의 인생역정을 더듬습니다. 단순한 일대기를 넘어섭니다. 뜨거운 예술혼이 맞닥뜨린 차가운 현실, 그 쓸쓸한 생이 한사코 밀어냈을 결정적 장면을 엿봅니다. 삶이 묻고 그림이 답합니다. 캔버스에 굽이치던 화가의 인생길 ‘화폭역정’입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께 다가섭니다. <편집자> [이윤희 미술평론가] 2025년 1월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수잔 발라동(1865∼1938)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다. 발라동이 세상을 떠난 이후 87년, 앞선 회고전으로부터 58년 만의 일이었다. 동시대 화가들이 사후에도 반복적으로 전시되고 세계에 알려지는 동안 발라동은 미술사에서 ‘기타 등등의 화가’에 머물러 있었다. 이 전시는 그 오랜 침묵을 깨뜨렸다. 화가 발라동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은 있을 것이다. 르누아르가 그린 ‘부지발의 무도회’(1883)에서의 모델, 파트너 어깨에 살짝 기대어 볼이 상기되고 입가에 미소가 번진 이 여성이 발라동이다. 화면 전체에 깃든 생의 환희 속에 발라동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그런데 같은 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발라동이 자신을 그린 ‘자화상’(1883)을 보면 같은 사람의 얼굴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전혀 다른 표정을 볼 수 있다. 이 작은 그림에는 르누아르 작품에서 보이던 즐거움이나 수줍음을 찾아볼 수 없다. 자화상 속 얼굴은 창백하고 시선은 날카로우며 입가에서는 미소가 사라졌다. 같은 해에 그려진 두 그림 사이에 발라동의 삐걱거리는 삶이 있었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부지발의 무도회’(1883). 뺨을 불그스름하게 물들이고 한 남성과 춤을 추고 있는 여인이 수잔 발라동이다. 발라동은 19세기 후반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 화가들의 그림에 가장 많이 등장한 모델로 꼽힌다. 특히 르누아르 작품에서 자주 등장했는데 그림 속 발라동은 늘 예쁜 드레스를 입고 수줍은 얼굴로 세상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캔버스에 유채, 181.9×98.1㎝. 보스턴미술관(미국 메사추세츠) 소장.발라동은 1865년 프랑스 시골마을 베신에서 미혼모 세탁부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사생아 출산의 치욕을 피해 다섯 살 난 딸을 데리고 파리로 상경했고, 뭘 해도 가난을 면할 수 없었다. 열한 살에 학교를 그만둔 발라동은 모자 공방, 장례용 화환 공장, 채소 행상, 웨이트리스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삶에 지지대가 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아야 하는 고된 삶만이 주어졌다. 열다섯 살에 서커스 곡예사가 됐지만 공중그네에서 추락하는 사고로 곡예사의 꿈은 좌절됐다. 남은 것은 부상당한 몸뿐이어서 화가들의 모델이 됐다. 르누아르를 비롯해 샤반, 툴루즈-로트레크 등을 거치며 당대 거장들이 발라동을 모델로 썼다. 모델이란 대개 벌거벗은 채 화가가 원하는 포즈를 장시간 취해야 하는 직업이었고, 당시 사회적 위치는 매춘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모델로 나설 때 발라동은 다른 어떤 일을 할 때보다 눈이 반짝였다. 잠시 쉬는 시간에는 가운을 둘러쓰고 화가들이 붓질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지켜봤다. 색을 섞는 법, 선을 긋는 법, 빛을 표현하는 법을 눈에 담은 발라동은 이 마법과 같은 예술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발라동의 유일한 미술학교는, 자신이 모델을 서는 바로 그 현장이었다. 수잔 발라동의 ‘자화상’(1883). 열여덟 살의 발라동이 자신을 그렸다. 이 해에 발라동은 아들 모리스 위트릴로를 낳고 미혼모가 됐다. 원체 꾸미는 데 관심이 없던 발라동은 흔한 액세서리도 없이 푸석한 얼굴 그대로의 자신을 화면에 옮겨놨다. 당시 여성의 매력을 과장해 ‘아름다운 여인’만을 그린 남성 화가들의 붓질과는 다른 지향이다. 종이에 목탄과 파스텔, 43.3×30.5㎝. 퐁피두센터 국립현대미술관(프랑스 파리) 소장.◇발라동의 컬렉터 된 드가…마네·고갱 작품과 나란히 걸어르누아르는 어느 날 발라동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을 봤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모델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아무도 기대치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발라동이 에드가 드가(1843∼1917)에게 드로잉 포트폴리오를 들고 찾아갔을 때 드가는 창가에서 한 장 한 장 넘겨본 뒤 이렇게 말했다. “그렇네요, 사실이에요. 당신은 우리 중 하나입니다.” 발라동은 이 순간을 평생 잊지 못했다. 훗날 “그날 난 날개가 돋았다”고 회고했다. 은둔적이고 인간관계에 인색하며 특히 여성을 무시하기로 유명했던 드가가 한번도 정규교육을 받은 적 없는 모델의 그림을 보고 즉각 화가 동료로 인정한 것이다. 드가는 발라동을 만난 첫날 그의 드로잉을 구매했고, 자신의 식당 벽에 마네, 고갱, 들라크루아 작품이 걸린 그 옆에 걸어뒀다. 드가가 사망한 뒤 아파트에서 발견된 컬렉션에는 발라동의 드로잉 17점과 판화 3점이 포함돼 있었다. 1895년 부유한 은행가 폴 무시와의 결혼으로 발라동은 처음으로 경제적 안정을 얻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림 작업은 거의 하지 못했다. 드가는 이를 안타까워하며 신작 포트폴리오를 들고 오라고 발라동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 시기 발라동에게는 아들 모리스 위트릴로(1883∼1955)의 문제가 삶의 대부분을 잠식하고 있었다. 열여덟 살에 미혼모로 낳은 아들은 조현병과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며 입퇴원을 반복했다. 치료의 일환으로 발라동은 아들에게 붓을 쥐어주고 그림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그 노력이 헛되지 않아 이후 위트릴로는 뛰어난 풍경화가로 성장했다. 수잔 발라동과 아들 모리스 위트릴로. 1890년경이다. 사진을 찍은 이는 알 수 없다.하지만 결혼생활은 원만하게 이어지지 못했다. 1909년 이혼한 발라동은 얼마 뒤 아들의 친구이자 자신보다 스물한 살이나 어린 화가 앙드레 우터(1886∼1948)와 사랑에 빠진다. 이 나이 차이는 당시 파리 사람들에게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한 집에서 아들 위트릴로를 돌보면서 아들의 친구 우터와 동거하는 그 자체로 ‘저주받은 삼위일체’라 불렸다. 그럼에도 발라동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림을 팔아 생계를 꾸렸고, 구매자든 비평가든 그 누구 앞에서도 당당했다. 그런데 이 당당함이 되레 앞길을 좁히기도 했다. ◇전통적 누드화 전복…헐렁한 파자마 입은 ‘아름답지 않은’ 여인 발라동의 그림에는 당대 여성 예술가에게 기대되던 이른바 ‘여성다움’, 그러니까 부드러운 색채와 우아한 붓질, 혹은 가정적인 주제 등을 찾아볼 수 없었다. 만년의 대표작 ‘푸른 방’(1923)에는 당당한 체구의 여인이 침대에 비스듬히 기댄 채 누워 있다. 구도만 보면 서양 회화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된 여성 누드의 포즈지만 이 여인은 벌거벗지 않았다. 줄무늬 파자마 바지에 분홍 캐미솔을 입고, 입술에는 담배를 물었으며, 발치에는 읽다 만 책이 쌓여 있다. 전통적 누드화에서 여성의 몸은 보는 자, 대개 그림을 주문한 남성의 시선을 위해 존재했다. 그 자리에 발라동은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그다지 아름답지도 않은 여인을 대신 들인 것이다. 발라동의 그림은 전체적으로 ‘여성 답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정확히 그 ‘여성 답지 않음’이야말로 발라동이 미술사에 남긴 가장 본질적인 기여라고 할 수 있다. 관습이 요구하는 여성성을 거부한 자리에 여성화가가 여성을 바라보는 진실의 세계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1938년 4월, 72세의 발라동은 몽마르트르의 작업실에서 꽃을 그리다가 붓을 쥔 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이젤 앞에서의 죽음이었다. 장례식에는 피카소, 드랭, 브라크 등 당대 유명화가들이 참석했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이 점차 드높아간 것과 달리 발라동의 이름은 서서히 사라졌다. 발라동 스스로도 자신의 사후가 이렇게 될 것이라고 예감하고 있었다. 생을 마감하기 1년 전, 작가 프랑시스 카르코(1886∼1958)에게 발라동은 이렇게 말했다. “내 작업은 끝났어. 그것이 내게 주는 유일한 만족은 내가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는 것, 내가 믿었던 어떤 것도 배반하지 않았다는 거야. 언젠가 누군가 내게 정의를 베풀어 준다면 당신은 그걸(내 작품을) 보게 되겠지.”수잔 발라동의 ‘가족초상화’(1912). 발라동이 자신보다 스물한 살이나 어린 아들 친구와 함께 살기 시작한 이후 형성된, 결코 평범하지 않은 가족의 모습을 그렸다. 위부터 젊은 연인 앙드레 우터, 발라동 자신과 어머니 마들렌 발라동, 아들 모리스 위트릴로다. 그림을 그릴 당시로선 발라동의 삶을 형성한 네 개의 기둥과 같은 사람들이었다. 캔버스에 유채, 98×73.5㎝. 오르세미술관(프랑스 파리) 소장.그 ‘언젠가’가 왔다. 리모델링으로 2030년까지 문을 닫게 된 퐁피두센터의 2025년 마지막 대규모 전시로 발라동이 선택됐던 것이다. 르누아르의 그림 속에서 즐겁게 춤추던 그 여인이, 가운을 둘러쓰고 화가의 붓질을 어깨너머로 훔쳐보던 그 모델이 돌아왔다. 자신의 인생을 두고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고 말한 발라동의 작품 200여 점은 가족의 초상에서 누드로, 누드에서 풍경으로, 풍경에서 정물로, 어느 하나의 소재에 안주하지 않았고 한 가지 화풍으로 기울지도 않았다. 드가에게서 배운 선은 고갱의 색채를 만나 변형됐고, 후기로 갈수록 그만의 굵고 단호한 윤곽선이 화면을 지배했다. 어떤 유파에도 귀속되기를 거부한 이 끊임없는 변화는, 그림의 세계에서조차 안온함에 머무르지지 않았음을 말한다. 사망한 지 거의 한 세기 만에 발라동은 다시 우뚝 섰다. 세상은 발라동을 굴복시키지 못했다. △이윤희 미술평론가는…1970년생. 대학을 다니던 20대 어느 겨울,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 인생에 미술을 들인 결정적 계기가 됐다. 어느 미술관에서 마주친 렘브란트의 ‘어머니 초상’이란 작품이 발을 붙들었다. 뭔가 꿈틀거리는 게 올라왔다. 세상을 감동시킨 수많은 작품이 품은 이야기를 가지고 싶다는 열망과 함께였다. 이화여대 독문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미술의 역사, 미술의 말을 공부했다. 이후 ‘공간’ 지 미술기자로 출발해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학예실장, 청주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 등을 거쳤고, 지금은 이화여대·추계예대 등에서 미술이론을 강의하며 오래전 렘브란트의 감동을 넓혀가고 있다. 번역서로 ‘그림자의 짧은 역사’(2006), ‘포토몽타주’(2003), ‘바디스케이프’(1999)가 있으며 저서로는 ‘불편한 시선: 여성의 눈으로 파헤치는 그림 속 불편한 진실’(2022), ‘꿈꾸는 방: 여성과 공간의 미술사’(2023) 등이 있다.
- [서형민의 동거동락] 충주맨이 쏘아 올린 작은 공
- 유튜버 김선태의 여수 홍보 동영상의 일부[글=서형민 피아니스트] 공무원 출신으로 백만 유튜버가 된 유일무이한 케이스가 있다. 바로 ‘충주맨’으로 불리는 김선태 전 주무관인데, 그가 최근 올린 영상이 화제다. 바로 여수시를 홍보하는 영상인데 (영상 제목도 ‘여수 홍보’) 이를 본 네티즌들은 홍보 영상이 아니라 고발 영상이라는 농담반 진담반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과연 어떤 부분이 고발이란 것인가? 전남 여수시는 오는 9월 ‘2026 여수 세계 섬박람회’를 개최한다. 전 세계에서 방문이 예상되는 관객 수는 3백만 명 정도. 유튜버 김선태는 전남도청 관계자와 함께 행사장 예정지를 찾았다. 영상에 담긴 모습은 정비되지 않은 허허벌판 상태였을 뿐만 아니라, 섬 곳곳에 생활 쓰레기나 폐어구가 방치돼 있었다. 그 때문에 불과 6개월 남은 박람회에 대해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162만 유튜버(2026년 4월 9일 기준)의 위엄인가. JTBC는 김선태 씨의 영상이 올라온 당일 바로 여수 섬박람회의 준비 미흡에 대해 심도 있게 다뤘다. 자그마치 영상 섬네일은 “‘대체 어쩌려고’ 야수 발칵, 600억 줬는데 뭔가 쎄하다”, “2023년부터 준비한 박람회 600억 쓰고 ‘잼버리 될라’” 등 신랄한 비판 일색이다. 필자의 집 근처에 최근 구립경로당을 어린이집을 포함한 일종의 복합케어센터로 리모델링하는 공사가 시작됐다. 분명 저번 주에 5층짜리 건물의 내부를 다 뜯어내는 공사 중이었는데, 어제 보니 벌써 내부가 말끔히 정리돼있었다. 외국에서 일생의 반을 넘게 살아본 나로서는 이런 ‘빨리빨리’의 대한민국이 참 놀랍다. 하지만 여수시 전체에서 벌어지는 섬 박람회는 규모 자체가 다르다. 6개월 안에 김선태 씨가 그리고 뉴스매체들이 보여준 실상이 (심지어 보도된 부분은 극히 일부분이리라) ‘빨리빨리’ 개선되리라고는 안타깝게도 동의하기 힘들다. 과연 무엇이 문제이고 이유가 무엇일까. 문제나 이유야 많겠지만 필자는 이 칼럼에서 딱 한 가지 이유에 집중해보고 싶다. 그것은 바로 ‘경쟁의 부재’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는 지난주 출마 선언을 하며 대구가 30년간 발전이 없었다고 했다. 그 이유는 바로 한 정당이 대구에서 집권하며 일종의 ‘헤게모니’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잘하든 잘못하든 시민들의 반 이상은 본인들을 뽑아줄 것이라는 믿음에 정치인들과 관료는 필연적으로 나태해질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해 ‘험지’라고 불리는 곳들은 선거 때마다 주민들의 환심을 얻고자 극구 노력하며, 당선 후 공약을 지키지 않으면 주민들이 다음 선거 때 심판을 하기 때문에 당선된 이후에도 공직자들은 최소한의 일을 하고자 노력을 하는 편이다. 여수뿐만 아니라 전라도 쪽은 대대로 민주당의 텃밭이다. 민선 1기 이래 여수 시장은 모조리 다 민주당(혹은 민주당 출신 무소속) 계열이었으며, 국회의원 또한 단 한 번도 반대편 당에 자리를 준 적이 없다. 아니, 자리를 주기는커녕 선거 본선만 가면 민주당 계열 후보들의 득표율이 비정상적으로 높다. 최근에는 ‘빨간색’의 텃밭인 부ㆍ울ㆍ경 지역에서도 민주당 표가 예전보다는 확연히 많이 나오는 것과는 다르게 민주당 쪽 후보는 기본 70% 득표율을 기록한다. 즉, 그들에게 선거란 본선에서의 퍼포먼스가 아니라 당내 공천을 받느냐 마느냐가 된 지 오래다. 이런 상황을 흔히 ‘고였다’라고 지칭하는데, 이렇게 상호 간의 견제가 없다시피한 환경에서는 나태함이 발현되기 일쑤고 부패의 온상이 되기 쉽다. 지금 단 6개월 남았는데도 기본적인 준비조차 안 되어 있는 여수의 상황 또한 이런 경쟁 내지 견제의 부재가 한몫하지 않을까. JTBC 기자의 쓰레기더미 옆에서의 마무리 멘트가 심장에 날아와 꽂힌다. “여수시는 이번 박람회에서 세계 섬의 미래를 논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기보다 지금 우리 옆에 있는 섬들 먼저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여수 섬박람회 관계자들과 책임자들이 이것을 듣고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그들은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 부디 예전 ‘잼버리’의 재탕이 되지 않기를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간곡히 바란다. ◇ 서형민 피아니스트=베토벤 국제콩쿠르 우승자 출신으로 글로벌 활동을 하는 국내 손꼽히는 피아니스트트 중 한 명이다. 서형민 피아니스트트는 각국을 오가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 필요하다고 인식해 우리의 현재와 관련된 정치, 사회, 문화 등 다양한 글로 ‘동거동락’(同居同樂)이라는 미래를 함께 꿈꾸고 있다.
- '결혼지옥' 아내 "백수 남편, 도박·경마·억대 투자까지"…오은영도 경악
- [이데일리 스타in 최희재 기자]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이 2026년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사진=MBC)6일 방송된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결혼지옥)은 47년째 같은 자리에서 같은 침묵을 이어가고 있는 남편과 그런 남편에게 오랜 한이 쌓인 아내, ‘지정석 부부’의 이야기가 그려졌다.시청률 조사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결혼지옥’ 162회는 수도권 3.8%, 전국 3.6%를 기록하며 전 주 대비 상승했다. 채널 경쟁력 주요 지표인 2054 시청률은 1.8%로 동 시간대 전 채널 1위, 일일 전 채널 2위를 차지했다. 무엇보다 이날 방송이 2026년 방송된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 전체 시청률 중 1위에 등극했다.이날 방송된 ‘지정석 부부’는 극과 극 일상으로 눈길을 끌었다. 이른 새벽 집을 나서는 아내는 오전에는 요양보호사, 오후에는 활동지원사로 연중무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반면 아내가 퇴근할 때까지 남편의 유일한 일과는 TV 시청. 하루 종일 같은 자리에서 TV만 보던 남편은 아내가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자 황급히 TV를 껐다. 힘든 업무 중에도 미소를 잃지 않던 아내는 퇴근하자마자 남편에게 폭풍 같은 잔소리를 퍼부었다. 남편은 아내의 거친 표현이 결혼 생활 내내 상처가 됐고, 이에 결국 입을 다물게 됐다고 전했다.스스로를 독사라 표현한 아내는 자신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남편이라고 호소했다. 특히, 아내는 남편이 생계에 대한 책임감 없이 오직 남편 자신을 위해서만 돈을 써왔다고 밝혔다. 과거 도박과 경마까지 손을 댔고, 최근에는 복권에도 빠졌는 것.남편의 경제적 무관심에 가정의 생계를 홀로 책임져온 아내는 “죽을 때까지 한이 풀리지 않을 것 같다”라고 울분을 쏟아냈다. 또한 아내는 남편의 폭력성에 대해서도 폭로했다. 일은 하지 않고 낮잠만 자는 남편이 원망스러워 물을 뿌리자, 남편이 각목으로 때려 기절까지 했다는 것. 남편은 당시 술에 취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해 MC들을 탄식하게 만들었다.시청자들에게 가장 큰 충격을 안긴 대목을 남편의 외도였다. 아내는 “남편의 외도 상대는 남편의 죽은 친구의 부인이었다”라고 밝혀 스튜디오를 술렁이게 했다. 이에 대해 남편은 “친구 부인을 그 전부터 좋아하고 있었다. 친구가 죽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내가 미친X이다. 그 여자는 나한테 관심도 없다. 나만 좋아한 것뿐”이라고 해당 여성에게 고백한 일화를 털어놨다.오은영 박사는 “성적인 관계가 없으면 외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특별한 감정을 느끼는 것도 외도가 맞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그런가 하면 남편 또한 아내가 외도를 했다고 주장했다. 아내가 가게를 운영하던 시절 한 단골손님이 가게 앞에서 아내를 기다리는 걸 목격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아내가 자신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억대의 돈을 허허벌판 땅에 투자하는 실수를 저질렀다고도 밝혔다. 이에 아내는 “외도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하는 한편, 경제적 도움 없이 실패만 지적하는 남편에게 서운함을 드러냈다.결국 아내는 남편을 향한 오랜 원망과 노후에 대한 막막함에 눈물을 쏟아냈다. 남편 또한 아내와 자식들에게 다정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후회와 미안함, 가족들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괴롭다. 용기가 없어 죽지도 못한다”라며 눈시울을 붉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오은영 박사는 부부 모두 우울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평소 밝아 보이는 아내는 그 내면에 우울감이 포진돼 있고, 삶의 의욕을 잃은 것처럼 보이는 남편 역시 정서적으로 고독하고 우울한 상태라는 것. 이에 오은영 박사는 남편에게는 아내를 향해 진심 어린 사과할 것을, 아내에게는 과거를 제대로 매듭 짓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힐링 리포트를 전했다.지울 수 없는 상처와 후회로 가득했던 47년의 세월. ‘지정석 부부’는 방송 말미 서로를 향해 그동안 차마 하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을 전해 훈훈함을 자아냈다.‘결혼지옥’은 오는 13일 오후 10시 40분에 방송된다.
- 뮤지컬 '이게 정말 나일까?' 5월 성수아트홀서 초연… 전국 투어로 관객과 만난다
-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뮤지컬 ‘이게 정말 나일까?’가 오는 5월 15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성수아트홀에서 초연을 선보인다. 이번 공연은 18일과 19일, 26일을 제외한 모든 날에 진행되며, 평일에는 오전 11시와 오후 2시 두 차례, 주말 및 공휴일에는 오전 11시, 오후 2시, 오후 4시 30분 세 차례 공연으로 구성된다. 예매는 네이버, 티켓링크, 놀티켓에서 가능하다.‘이게 정말 나일까?’는 요시타케 신스케의 베스트셀러 동화책을 뮤지컬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관객과 함께 ‘나’라는 존재에 대해 탐구하는 새로운 컨셉을 담고 있다. 작품은 현재 공연 중인 수학 애니메이션 ‘넘버블록스’와 ‘100층짜리 집’ 뮤지컬의 대본 작가 박수경과 협력하여 제작되었다. 박수경 작가는 가족뮤지컬 ‘읽으면서 바로 써먹는 어린이 감정표현’, ‘개구쟁이 특공대: 마녀저택’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어린이와 가족 관객에게 친숙한 콘텐츠를 선보여 왔다. 원작자인 요시타케 신스케는 ‘이게 정말 사과일까?’, ‘이유가 있어요’, ‘이게 정말 천국일까?’, ‘심심해 심심해’ 등 일본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동화책 작가다.뮤지컬의 줄거리는 숙제, 심부름, 방 청소 등 하기 싫은 일들에 지친 주인공 지후가 모아둔 용돈을 털어 도우미 로봇을 사면서 시작된다. 집으로 가는 길에 로봇이 ‘나’에 대해 자세히 알려달라고 요청하자, 지후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흔적을 남기는 존재임을 설명한다. 아직 만들어지는 중인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며, 과연 지후가 로봇에게 ‘나’에 대해 잘 설명할 수 있을지, 로봇이 지후의 가짜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을지 관객의 궁금증을 자아낸다.공연은 서울을 시작으로 6월 13일부터 14일까지 인천, 6월 27일부터 28일까지 대구에서 이어지며, 대전과 과천 등 전국 투어가 하반기에 추가로 예정되어 있다. 이번 뮤지컬은 가족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와 따뜻한 메시지를 담아, 어린이뿐 아니라 모든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으로 기대를 모은다.공연 관계자는 “요시타케 신스케의 독창적인 상상력과 박수경 작가의 섬세한 대본이 만나 새로운 가족뮤지컬의 지평을 열 것”이라며 “전국 투어를 통해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예정”이라고 전했다.
- 정부, 5차 협동조합 기본계획 수립…금융·세제지원 확대한다
- [세종=이데일리 하상렬 기자] 정부가 협동조합 활성화를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협동조합의 내실 있는 성장을 위한 재정·금융·세제지원과 지역 서비스 공급 역할 등 강화가 골자다.정부세종청사 내 기획예산처 청사 현판.(사진=연합뉴스)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6일 국무회의에서 ‘제5차 협동조합 기본계획(2026~2028)’을 보고하고, 협동조합 활성화를 위한 전략을 본격 추진한다고 밝혔다.정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작년말 기준 협동조합은 3만개 이상 설립됐다. 다양한 분야·업종·지역에서 지역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이같은 성장에도 불구하고 운영·관리 측면에서 보완할 과제가 있다고 평가된다.이에 정부는 협동조합의 건실한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관계부처 의견수렴을 기초로 이번 계획을 수립했다.우선 기존 교육·판로 등 기능별로 지원하는 방식을 전환해 ‘진입-도약-고도화’ 등 성장 단계별로 맞춤형 종합컨설팅 지원을 확대한다. 자금조달을 위해 우선출자 총액한도를 자기자본 30%에서 50%로 확대하고, 신협이 타 법인에 출자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또한 사회적협동조합에 대해 취득세 등 지방세 감면 지원을 검토하고 지역사랑상품권 사용 관련 매출액 기준이 탄력 적용되도록 종합적 지원방향을 검토한다.협력·연대도 강화한다. 연합회 기능 강화를 위해 연합회 관계자가 사회적협동조합 총회 입회 시 공증 부담을 완화하고, 연합회에 조합 육성 및 교육 기능을 부여한다. 업종·지역별로 협동조합 거점실행조직을 선정하고, 지역 단위의 공공서비스 수행을 위해 중앙·지방정부 등과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한다.아울러 조합원·감사에 ‘총회소집요구권’, ‘총회의안제안권’을 부여하고 조합원에 사전 미통지된 안건 의결 제한 등 조합원 참여 기능을 강화한다. 협동조합 운영·관리 강화를 위해 정보보유 기관 간 데이터 연계를 호가대하고, 관리시스템 개편도 추진한다.지역사회 참여도 확대한다. 특화임대주택 운영·관리 주체를 사회적협동조합까지 확대해 고령자·청년·장애인 등 맞춤형 임대주택을 공급한다. 빈집정비사업, 농촌 빈집활용 민박사업 시행자에 사회적협동조합이 포함되도록 하고, 국립중앙의료원 인력 매칭플랫폼을 활용해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인력확보를 지원한다. 협동조합을 활용해 농촌에 주거·돌봄 등 서비스 공동체 육성·지원을 추진하고, 어촌·도서 지역 해안 환경관리, 정주여건 개선 등 서비스를 공급한다.정부는 제도개선 사항 등 바로 추진 가능한 정책과제는 빠르게 진행하고, 법 개정 사항은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통과를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 18세기 막장드라마…21세기 방구석 대반전 [화폭역정 5]
-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그네’(1767). 18세기 프랑스에서 유행한 로코코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는다. 극도로 화려하고 섬세하며 우아한 로코코 미술의 특징 위에 빠른 붓질과 극적인 구도를 만들어낸 프라고나르의 장기가 얹혔다. 귀족의 취향을 저격한 주문제작에 몰두하며 파리 사교계에 불려다니던 ‘전성기’ 시절 작품이다. 겉으로는 그저 아름다운 그림으로 보이지만 여인과 젊은 사내, 또 여인의 남편이 한 화면에 등장하는 속내용에서 당시 시대풍경이 엿보인다. 캔버스에 유채, 81×64.2㎝. 월리스컬렉션(영국 런던) 소장.여기, 세상이 열광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누구나 찬사를 아끼지 않는 걸작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름다운 작품, 화려한 명성 뒤에 숨은 화가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지독하게 어긋난 운명, 고단하고 허무한 삶이었노라고 말입니다. 이데일리는 오랜 시간 ‘그림이 하는 말’을 들어온 이윤희 미술평론가와 함께 세계미술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천재화가들의 인생역정을 더듬습니다. 단순한 일대기를 넘어섭니다. 뜨거운 예술혼이 맞닥뜨린 차가운 현실, 그 쓸쓸한 생이 한사코 밀어냈을 결정적 장면을 엿봅니다. 삶이 묻고 그림이 답합니다. 캔버스에 굽이치던 화가의 인생길 ‘화폭역정’입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께 다가섭니다. <편집자> [이윤희 미술평론가] 그네를 타는 장밋빛 드레스의 여인은 신발 한 짝을 벗어서 날리고 있다. 더 자세히 보면 신발을 날리는 척하면서 속옷을 살짝 보여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덤불에 몸을 숨긴 귀족 청년이 여인을 올려다보며 환호하고 있다. 이 즐거운 연인 뒤에는 그네를 밀고 있는 나이 든 남성이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네 뒤 이 남성은 여인의 남편이다. 로코코 양식이 절정을 이루던 프랑스 루이 15세 시절.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1732∼1806)는 이 그림 ‘그네’(1767)를 그렸다. 화려하고 평화로우나 부패하고 비도덕적이던 로코코 시대의 대놓고 관능적인 이 작품은 당시 상위 1%인 왕족과 귀족의 삶을 엿보게 한다. 더군다나 젊은 귀족의 구체적인 주문에 따라 충실하게 그려진 그림이니, 주문자의 인생관을 반영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화면에서 보이는 빠른 붓질과 화려한 색채, 극적인 구도는 프라고나르의 전매특허다. ‘그네’는 프랑스혁명 이전 구체제의 몰락을 예견한 가장 상징적인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그림 속 여인의 신발이 날아가는 이 순간, 정원 너머에서는 이 시대를 끝내려는 이글이글한 혁명의 기운이 샘솟고 있었다. 순간의 쾌락과 그 뒤에 숨겨진 비밀을 박제한 작품. 과연 이 그림을 주문한 귀족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이후에도 프라고나르는 무사할 수 있었을까. 프랑스 남부 그라스 태생인 프라고나르는, 아버지가 투기로 모든 재산을 잃고 빚더미에 앉아 가족들과 함께 도망치듯 파리로 향했을 때 겨우 여섯 살이었다. 파리에 와서도 아버지는 여러 직업을 전전했고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수준으로 삶을 이어 나갔다. 어린 열세 살 프라고나르는 공증인 사무실에 말단 서기로 들어가 문서를 정리하고 필사하는 일을 맡았다. 하지만 프라고나르는 일을 하면서도 서류의 이면이나 여백에 자꾸만 그림을 그렸고, 이를 눈여겨본 상사는 꾸짖는 대신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려보라고 권유했다. 프라고나르의 어머니에게 아이를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프랑수아 부셰(1703∼1770)에게 데려가 보라고 권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프라고나르의 첫 번째 행운이었다. ◇‘순간 쾌락’ 주문 행렬…프랑스 사교계가 열광한 화가 그렇게 부셰의 화실에서 청소를 하고 잡일을 하며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프라고나르는 단 5년 만에 프랑스 왕립 회화·조각 아카데미가 주최하는 최고 권위의 ‘로마상’을 거머쥐며 실력을 공인받았다. 로마상은 당시 가장 영예로운 장학제도로, 로마로 국비 유학을 보내주는 특전과 더불어 프랑스 화단에서 가장 높은 지위인 ‘역사화가’가 되는 초단기 엘리트 코스였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던 프라고나르에게는 집안을 일으키고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최고의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는 두 번째의 기막힌 행운을 얻었다. 로마의 프랑스 유학생으로 살았던 4년여는 거장들의 그림을 실제로 보고 실력을 쌓을 수 있는 기간이었다. 처음에는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의 그림을 실제로 보고 압도당해 슬럼프를 겪었으나 “거장의 그림만 보지 말고 로마의 빛나는 햇살과 풍경을 그려보라”는 로마 아카데미 원장의 조언이 프라고나르를 다시 일으켰다. 당시 프랑스의 정원이 자로 잰 듯한 기하학적인 형태였다면, 로마 근교의 정원은 이끼가 끼고 나무가 제멋대로 자라난 야생성을 간직하고 있었다. 파리로 돌아와 그린 ‘그네’에서 보이는 울창하고 무성한 숲은 이때 봤던 풍경을 옮긴 것이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그네’(1767) 디테일. 그네 타는 여인과 허공으로 날아간 신발 한 짝, 슬쩍 보이는 여인의 속옷에 신이 난 젊은 사내, 그네 끈을 붙들고 있는 여인의 남편이 한눈에 들어온다.보통 로마상을 받고 귀국한 프랑스 화가들은 역사화가가 되는 길을 택했다. 당시 프랑스 아카데미는 도덕적 교훈과 숭고한 가치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역사화를 그림의 서열상 가장 높은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프라고나르는 고귀한 예술적 이상에 목매는 몽상가가 아니었다. 국가의 주문을 받고도 수금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명예로운 역사화가의 길 대신 귀족들의 취향을 저격해 빠르게 현금을 챙길 수 있는 길을 선택했다. 루브르궁전의 한쪽 공간에 거주하는 권리를 받고도 그는 궁전을 오가는 귀족들의 주문을 받았다. 프라고나르에게 캔버스는 예술적 고뇌를 담는 그릇이기 이전에 변화하는 시장의 요구에 기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생계의 도구였던 것이다. 명예 대신 현실을 선택한 프라고나르는 루이 15세 시대 상류층의 연애와 유희를 가장 우아하고 관능적으로 그려내 파리 사교계가 가장 사랑하는 화가가 됐다. ‘그네’의 그 파격적인 설정조차 그에게는 도덕적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큰 손 고객의 주문을 완벽하게 처리해낸 성공적인 사업성과였던 셈이다. 하지만 명백히 구체제에 기대고 있던 프라고나르의 몰락은 필연적이었다. 그럼에도 프라고나르는 죽지 않았다. 잠깐 고향으로 도피해 있다가 다시 파리로 와선 놀랍게도 전혀 다른 직업을 찾았다. 자신이 머무르던 루브르궁전이 공공미술관으로 변모하는 격변기에 그는 국가가 압수한 미술품의 목록을 작성하고 배치를 결정하거나 다른 작가들의 그림을 수선하는 일을 맡은 것이다. 월급은 꼬박꼬박 들어왔으나 화가로서의 명성은 이미 땅에 떨어져 있었다. 한때 귀족의 거실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높은 몸값을 자랑하던 프라고나르의 그림들은 이제 철 지난 유행가 취급을 받았다. 그 비참한 가치 하락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그는 다시 서류가 쌓인 책상 앞에 앉은 것이다. 살아생전 자신의 작품이 쓰레기 취급을 받는 과정을 생생히 목도하면서도 바로 그 자리에서 서류작업을 할 수 있는 그는 생계형 인간이었다. ◇2021년 발견된 ‘책 읽는 철학자’ 경매서 103억원 낙찰 1806년 곤궁한 생활 끝에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프라고나르의 작품은 한순간의 덧없는 쾌락을 그린 그림으로 미술사의 뒤안길에 머물러 있었다. 경매장에서 헐값에 팔리고 방치됐던 그의 작품이 재평가를 받은 것은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그리고 사후 200여년이 지난 2021년 6월, 프랑스의 소도시 상파뉴의 경매장에 프라고나르의 새로운 그림 한 점이 나타나자 미술애호가들을 흥분시켰다. 1779년 경매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인 뒤 이후 행방이 묘연했던 ‘책 읽는 철학자’(1767∼1770)였다. 어느 아파트 방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우연히 발견된 작품은 바로 감정에 들어갔고 마침내 프라고나르가 연작으로 그리던 ‘공상의 인물’ 중 한 점으로 드러났다. 경매에서 그림은 768만유로(당시 약 103억원)에 낙찰됐다. 독일 함부르크미술관에 소장돼 있던, 같은 주제와 기법으로 그린 또 다른 ‘책 읽는 철학자’(1767∼1770)도 덩달아 주목을 받았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책 읽는 철학자’(1767∼1770·위). 1779년 이후 행방이 묘연했다가 242년이 지난 2021년 프랑스 어느 아파트 방구석에서 발견됐다. 감정 끝에 그해 경매에 올라 768만유로(당시 약 103억원)에 낙찰. 귀족들의 연애사건이나 그린 세속적인 화가려니 했던 프라고나르에 대한 평가가 이 ‘사건’으로 뒤집혔다. 아래는 같은 주제·기법으로 그린 또 다른 ‘책 읽는 철학자’(1767∼1770). 각각 캔버스에 유채, 45.8×57㎝(개인소장), 캔버스에 유채, 59×72㎝(독일 함부르크미술관 소장).두 그림에서 보이는 낡은 책, 주름진 이마와 깊은 눈매를 가진 노철학자의 모습은 영속적인 진리 그 자체가 주제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책 읽는 철학자’의 재발견은 귀족들의 연애사건이나 그리는 화가라는 세간의 평가를 뒤집어놓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미 프라고나르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인생은 덤불 속에서 튀어 오르는 연인의 구두처럼 경쾌하지만, 어떤 인생은 홀로 낡은 책장을 넘기며 진리를 찾는 고독한 여정임을 말이다. ‘그네’가 인생의 덧없는 찰나를 그린 것이라면 ‘책 읽는 철학자’는 유한한 인간이 열망하는 진실을 그린 것이다. ‘그네’가 세속적인 생계형 화가의 목소리라면 ‘책 읽는 철학자’는 그 화려함 뒤에 숨은 화가의 깊은 침묵이었다. △이윤희 미술평론가는…1970년생. 대학을 다니던 20대 어느 겨울,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 인생에 미술을 들인 결정적 계기가 됐다. 어느 미술관에서 마주친 렘브란트의 ‘어머니 초상’이란 작품이 발을 붙들었다. 뭔가 꿈틀거리는 게 올라왔다. 세상을 감동시킨 수많은 작품이 품은 이야기를 가지고 싶다는 열망과 함께였다. 이화여대 독문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미술의 역사, 미술의 말을 공부했다. 이후 ‘공간’ 지 미술기자로 출발해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학예실장, 청주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 등을 거쳤고, 지금은 이화여대·추계예대 등에서 미술이론을 강의하며 오래전 렘브란트의 감동을 넓혀가고 있다. 번역서로 ‘그림자의 짧은 역사’(2006), ‘포토몽타주’(2003), ‘바디스케이프’(1999)가 있으며 저서로는 ‘불편한 시선: 여성의 눈으로 파헤치는 그림 속 불편한 진실’(2022), ‘꿈꾸는 방: 여성과 공간의 미술사’(202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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