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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유세, 실거주자는 덜 내고 투자주택은 더 내게 바꿔야”
- [이데일리 이다원 기자] 현행 물건 중심의 주택 보유세 체계를 실거주 여부와 가구 특성 등을 반영하는 ‘사람 중심’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실거주자는 세 부담을 줄이고 비거주 투자 목적 주택에는 세 부담을 높이는 방향으로 보유세 체계를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도심의 모습. (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임상빈 한국지방세연구원 연구위원은 12일 한국주택학회에서 ‘주택 보유세 산정체계 개편 방안’ 발표를 통해 “주택 보유세를 물건 중심 과세에서 거주자 중심 과세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임 연구위원은 한국의 부동산 세제가 오랫동안 거래세 중심으로 운영돼 왔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해 취득세 부담은 높고 보유세 부담은 낮은 국가”라며 “현재 구조는 거래 단계에서 세수를 확보하는 대신 주택을 보유하는 데 따른 부담은 상대적으로 낮은 체계”라고 설명했다.실제로 지방세 가운데 재산세 규모는 18조 2000억원 수준이지만 이 중 주택 재산세는 약 5조 8000억원에 그친다. 서울과 경기의 주택 재산세가 전체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으며, 1세대 1주택 특례를 통해 매년 5000억원 이상이 경감되고 있다는 분석도 제시됐다.임 연구위원은 특히 현재 재산세 체계가 주택가격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그에 따르면 현행 주택 재산세 세율 구조는 2005년 개편 이후 사실상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전국 주택가격은 약 3배 상승했다. 세율 구간은 그대로인데 과세 대상 가격만 높아지면서 누진세 기능이 약화됐고 결과적으로 고가주택과 저가주택 간 세 부담 차별성도 줄어들었다는 설명이다.또 공정시장가액비율 60% 적용과 세부담 상한제, 과표상한제 등이 함께 운영되면서 공시가격 현실화가 실제 세 부담 증가로 이어지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임 연구위원은 현행 보유세 체계의 가장 큰 문제로 ‘인적 평가 기능의 부재’를 꼽았다. 현재 재산세는 주택 가격이라는 물적 요소만 반영할 뿐 실제 거주 여부나 소득 수준, 가구 구성, 연령, 보유 목적 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강남의 동일한 공시가격 10억원 아파트를 보유한 은퇴 고령자와 고소득 임대사업자가 같은 수준의 재산세를 부담하는 사례를 제시하며 담세력 차이가 세금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실제 거주하지 않는 외지인의 1주택 보유 역시 문제로 지목됐다. 현재는 주민등록상 거주 여부를 확인하지 않아 투자 목적으로 보유한 주택도 1세대 1주택 특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자녀 실거주 가구와 독신 투자자가 동일한 재산세를 부담하는 점 역시 형평성 문제로 언급됐다.이에 따라 임 연구위원은 거주 여부를 기준으로 재산세 체계를 개편하는 방안을 제안했다.우선 재산세 과세기준일인 6월 1일 현재 실제 거주 여부를 확인해 거주자와 비거주자를 구분하고, 거주자에게는 별도의 공제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미국의 ‘홈스테드(Homestead) 공제’처럼 실거주 주택에 세제 혜택을 부여하고 비거주 주택은 상대적으로 높은 세 부담을 적용하는 구조다.세율 자체를 거주자용과 비거주자용으로 이원화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임 연구위원은 지방세법을 개정해 실거주자는 공제 혜택을 주고 투자 목적 보유에는 추가 부담을 부과하는 방향을 검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가구원 수를 반영한 공제제도 도입도 제안했다. 발표 자료에 따르면 거주자 공제를 정액 방식으로 운영할 경우 1인당 20만~30만원 수준의 세액공제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가구원 5명이 거주하는 주택은 125만원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다자녀 가구일수록 혜택이 커지는 구조로 저출생 대응 정책과 연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임 연구위원은 “정률공제는 고가주택에 유리할 수 있어 정액공제 방식이 적절하다”며 “저가주택에 거주자가 많은 경우 재산세가 사실상 0원이 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다주택자 과세 강화 필요성도 제기됐다. 현재 재산세는 종합부동산세와 달리 주택을 전국 단위로 합산해 누진 과세하는 기능이 없다. 이에 따라 재산세 단계에서도 주택 수와 보유가액을 반영한 합산누진 과세 체계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가주택에 대한 세율 체계 개편도 언급됐다. 현행 과세구간인 6000만원, 1억 5000만원, 3억원 기준은 현재 주택가격 수준과 괴리가 큰 만큼 1억원, 3억원, 5억원, 10억원, 15억원, 20억원 이상 등으로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조정대상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 등에 차등세율을 적용하는 방안도 함께 제시됐다.임 연구위원은 “현재의 높은 거래세·낮은 보유세 구조는 다주택 보유와 ‘똘똘한 한 채’ 선호를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실거주 목적의 주택은 보호하고 투자 목적 보유는 보다 정교하게 과세하는 방향으로 주택 보유세 체계를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지선 민심 부응하라”...野정점식 원대, 李대통령 3대 국정기조 전환 촉구
- [이데일리 노희준 안소현 기자] 새로 선출된 정점식(사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2일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에 부응해 3대 국정기조 전환에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후반기 원 구성 협상과 관련해서는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정무위원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토위원회 위원장은 반드시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점식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취임 직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경제정책 기조의 전면 수정이 필요하다”면서 “미국발 인공지능(AI) 바람에 의존한 코스피 주식 시장만 바로보는 천수답식 경제 정책에서 벗어나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을 강화하고 구조적으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분야로는 부동산 세금, 노동 정책을 들었다. 정 원내대표는 “부동산 정책은 민간 공급을 확대하고 주거 사다리를 신속하게 회복해야 한다. 세금 정책은 우리 경제의 우상향을 위해 성장과 분배를 교화시키는 균형적인 체제로 전면 쇄신해야 한다”면서 “노동 정책은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인해 이미 산업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보안 입법이 신속하게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사법 절차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정 원내대표는 “이미 현장에서 사법 파괴 3대 악법 시행의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다. 사법부를 무리하게 장악하기 위한 악법들을 다시 합리적으로 좁혀 나갈 것을 제안한다. 이재명 대통령과 측근들을 위한 셀프 공소 취소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면서 “국회 정상화도 필요하다. 후반기 국회 원 구성은 지방선거로 나타난 견제와 균형의 민심을 온전히 반영해야 한다. 2년 전 이재명 당 대표 시절 이뤄진 비정상적인 전반기 국회 원 구성에 따른 파행은 끝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후반기 원구성 협상에 임하는 원칙에 대해서는 “국회의 정상화, 견제와 균형의 복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무엇보다 법사위 정상화가 시급하다. 법사위는 야당 몫으로 돌려놓아야 한다”면서 “입법 독재를 종식시키고 견제와 균형의 국회를 되살리기 위한 필수 요소”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고환율, 고물가, 고금리 3중고와 부동산 시장 불안 등 이재명 정부의 경제 실정에 대한 심판 민심이 지방선거에서 확인됐다며 “경제 부동산 정책 기조 전환을 주도하기 위해 경제 관련 상임위, 재경위, 정무위, 산중위, 국토위는 야당이 맡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해서는 “작년 말 무안공항 여객기 참사 국정조사에 준해 위원장은 국민의힘, 위원은 더불어민주당 절반, 국민의힘 포함 야당 절반으로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면서 “국정조사와 특검은 투트랙으로 진행해야 한다. ‘국정조사 결과를 보고 특검을 하자’는 민주당의 주장은 진상규명을 방해하는 작태”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특위는 순환식으로 1,2당이 도맡아 왔다”면서 “이번 국조특위 (위원장은) 우리 차례”라고 주장했다. 또한 “선관위 개혁 및 선거제도 개선 TF를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한성숙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해서는 “슈퍼 다주택자”라며 “날카로운 검증을 준비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은 부동산 다주택자를 마귀에 빗대어 범죄자 취급을 했고, 지난 4월에는 종이를 복사하는 직원들조차도 다주택자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면서 ”말단 공무원에게까지 들이대겠다는 엄격한 잣대를 국무총리에게 적용하지 않는다면 공직 기강은 무너지고 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신뢰를 완전히 잃게 될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의 사과와 입장 변경을 요구한다”고 했다. 한 후보자가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요청안을 보면, 한 후보자는 본인 명의 주택으로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단독주택(15억원)과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에 있는 단독주택(6억3000만원) 등 두 채를 신고했다. 경기도 양주시 광사동 소재 단독주택 지분 10분의 1(697만원)도 갖고 있다. 또한 서울 강남구 역삼동 오피스텔(20억7463만원), 종로구 연건동 근린생활시설(14억원), 다른 근린생활시설(8억9000만원), 종로구 삼청동 사무실(5억원)을 갖고 있다고 신고했다. 이 중 오피스텔은 매물로 내놨다.한편, 정 원내대표는 이날 당 원내정책수석부대표에 부산 재선 김미애 의원을 내정했다. 원내대표 비서실장에는 윤용근 의원, 원내수석대변인에는 최수진·최은석·김태규 의원이 내정됐다. 윤용근·김태규 의원은 6·3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각각 충남 공주시부여군청양군과 울산 남구갑에서 당선됐다. 앞서 정 원내대표는 원내운영수석부대표에 대구 재선 김승수 의원을 전날 내정했다.
- [건강365 닥터인사이트]자금 흐름 증빙이 핵심…자금출처조사·세무조사 대응 전략
- 이데일리TV 건강 프로그램 '건강365 : 닥터인사이트' 방송 캡쳐.[이데일리TV] ‘건강365 : 닥터인사이트’는 이데일리TV를 통해 매일 새벽 2시에 방송 중이다. 이번 방송에서는 자금출처조사와 세무조사 대응 전략, 그리고 2026년 보험시장 변화와 생명보험의 새로운 역할을 주제로 다양한 정보를 전했다. 세금과 보험이 단순한 신고와 보장을 넘어 자산관리와 승계 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되는 만큼, 미리 준비하고 점검해야 할 사항들을 집중적으로 살펴봤다.이날 방송에는 세무법인 현답 서은원 대표세무사, 세무법인 화림 당산지점 남정현 대표세무사, KB라이프파트너스 진성지점 박상길 에이전씨 매니저가 출연했다. 서 세무사는 자금출처조사의 개념과 대응 방법을, 남 세무사는 사업자가 알아야 할 세무조사 대응 전략을 설명했다. 박 매니저는 변화하는 보험시장 흐름과 상속·증여 설계에서 생명보험의 역할을 소개했다.첫 번째 주제인 자금출처조사에서는 부동산이나 고가 자산 취득 시 국세청이 자금의 원천을 확인하는 절차와 조사 기준을 설명했다. 서은원 대표세무사는 자금출처조사의 핵심은 자산 규모가 아니라 자금 흐름을 입증할 수 있는지 여부라고 강조했다. 특히 가족 간 자금 거래나 차용금의 경우 차용증, 이자 지급 내역, 원금 상환 기록 등 객관적인 증빙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며, 조사 통지를 받더라도 자금 흐름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소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두 번째 주제에서는 사업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세무조사 대응법을 다뤘다. 남정현 대표세무사는 세무조사가 무작위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신고 내용과 업종 평균 비교, 탈루 혐의 분석 등을 통해 선정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세무조사 통지를 받았을 경우 제출 자료와 답변 내용이 중요한 만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평소 사업 자금과 개인 자금을 구분하고 적격증빙을 철저히 관리하는 것이 세무조사 예방의 기본이라고 덧붙였다.세 번째 주제인 2026 보험 트렌드에서는 건강보험 경쟁 확대와 단기납 종신보험, 톤틴 연금 등 새로운 상품 흐름이 소개됐다. 박상길 에이전씨 매니저는 최근 생명보험이 단순 사망보장을 넘어 노후 생활비와 상속 재원 마련 기능까지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사망보험금 유동화 제도와 역모기지 종신보험, 상속형 종신보험 등이 주목받고 있으며, 상속·증여 설계와 세대생략 승계 과정에서도 생명보험이 효과적인 재원 마련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세금과 보험 모두 문제가 발생한 뒤 대응하기보다 사전에 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금 흐름에 대한 증빙 관리, 성실한 세무 신고, 그리고 개인 상황에 맞는 보험 설계를 통해 위험을 줄이고 자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해당 방송 내용은 건강365 : 닥터인사이트 다시보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화가 흉내내던 사내, 피카소가 픽한 거장 [화폭역정 15]
- 앙리 루소의 ‘잠자는 보헤미안 여인’(1897). 수많은 루소의 걸작 중 가장 신비롭고 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사막, 만돌린, 잠든 여인, 사자, 달빛 등 이질적이고 이국적인 조합으로 무의식 혹은 꿈의 세계를 시각화했다. 특히 맹수인 사자가 잠든 사람을 덮치지 않고 지켜만 보는 설정은 지극히 비현실적인데, 산업화·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던 19세기 말 유럽에서 인간 문명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이상을 암시했다고도 읽힌다. 훗날 초현실주의가 추구한 방식과 흡사하지만 그보다 30여년을 앞섰다. 이후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등 후대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캔버스에 유채, 129.5×200.7㎝. 뉴욕현대미술관(미국 뉴욕) 소장.여기, 세상이 열광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누구나 찬사를 아끼지 않는 걸작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름다운 작품, 화려한 명성 뒤에 숨은 화가는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지독하게 어긋난 운명, 고단하고 허무한 삶이었노라고 말입니다. 이데일리는 오랜 시간 ‘그림이 하는 말’을 들어온 이윤희 미술평론가와 함께 세계미술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천재작가들의 인생역정을 더듬습니다. 단순한 일대기를 넘어섭니다. 뜨거운 예술혼이 맞닥뜨린 차가운 현실, 그 쓸쓸한 생이 한사코 밀어냈을 결정적 장면을 엿봅니다. 삶이 묻고 그림이 답합니다. 캔버스에 굽이치던 화가의 인생길 ‘화폭역정’입니다.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께 다가섭니다. <편집자> [이윤희 미술평론가] 세상에는 너무 늦었다 싶을 때 비로소 자기 길을 찾아 떠나는 사람이 있다. 이 사내가 그랬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생계를 위해 한몸을 바친 뒤에야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 결심조차 누구에게도 인정이나 보증을 받지 못한 혼자만의 감행이었다. 어렵게 화가가 된 이후에 생긴 별명은 ‘르 두아니에’, 세관원이었다. 예술과는 아무 상관 없는 말단 행정직을 뜻하는 그 별명에는 은근한 조롱이 깃들어 있었다. 실상 세관원조차 되지 못했다. 그가 일한 곳은 파리시의 통행세 징수소였으니, 파리로 들어오는 포도주나 농산물에 대한 세금을 받던 자리였던 것이다. 정식 세관원은커녕 시의 통행료나 거두는 말단 창구직원이었고, 그 일을 하는 동안 한 번도 승진을 못한 채 자리를 지켜야 했다. 통행세 징수소에서 퇴직하던 마흔아홉 살까지 말이다. 그 화가 앙리 루소(1844~1910)는 프랑스 서부의 작은 도시 라발에서 가난한 판금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집안 형편은 늘 빠듯했고 아버지가 진 빚 때문에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가면서 중등학교도 마치지 못했다. 음악과 미술 분야에서 뛰어나 상을 받기도 했지만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집안의 맏아들에게는 사치스러운 재능일 뿐이었다. 열아홉 살 무렵 그는 군에 입대하는 길을 택했다. ◇그림 앞 박장대소…조롱 끊이지 않았던 ‘화단의 광대’ 훗날 루소가 멕시코에 종군했고 정글을 그린 그림들은 직접 본 것이란 이야기가 떠돌았는데, 그 자신이 적극적으로 거짓을 지어냈는지, 아니면 떠도는 소문을 굳이 바로잡지 않았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미술사가들이 거듭 확인한 바에 따르면 루소는 평생 프랑스 땅을 한 발짝도 벗어난 적이 없다. 루소 작업의 모티프는 멕시코 정글이 아니라 파리 식물원의 온실과 동물원의 우리, 박제 진열장과 값싼 삽화집, 그림엽서에서 상상으로 길어 올린 이국적 풍경이었다. 루소는 본 것을 그린 화가가 아니라 보지 못한 것을 지어낸 화가였다. 군을 제대하고 스물일곱 살이던 1871년 파리의 통행세 징수원으로 들어갔다. 이때부터 루소의 길고 단조로운 직장생활이 시작된다. 그는 미술학교의 문턱도 밟지 못했다. 여유라곤 ‘취미 미술’ 정도를 할 수 있는 퇴근 후 저녁시간과 휴일 한나절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대단한 무기가 하나 있었으니 어마어마한 낙천성이었다. 가령 이런 식이었다. 루소가 그림을 처음 출품한 것은 마흔두 살이던 1885년 ‘앙데팡당 전’이었다. 심사 없이 누구나 작품을 낼 수 있는 자리였다. 루소는 그곳에 해마다 출품했다. 그리고 해마다 조롱을 받았다. 관람객들은 그의 작품 앞에서 비웃음을 멈추지 않았고 그를 화단의 광대쯤으로 여기는 시선은 오래 지속됐다. 그런데 실제로 그림 앞에서 피식거리거나 배꼽을 잡고 웃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루소는 자신의 그림을 좋아해서 웃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앙데팡당의 평을 쓰는 한 평론가가 ‘루소는 눈을 감은 채 발로 그림을 그린다’라고 한 비평문을 소중히 스크랩하며 자신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 대단한 화가가 됐다고 뿌듯해했다. 이후엔 이런 평을 듣기도 했다. ‘루소는 회화를 쇄신하려는 듯하다. 이른바 초상풍경은 그의 발명이니 뻔뻔한 자들이 모방하지 못하도록 특허를 내길 권한다.’ 이 글 역시 루소는 잘 오려 간직했다. 초상과 풍경을 구분조차 못한다는 조롱이었으나 자신을 초상풍경의 창시자라고 불러준 것에 자랑스러워했다. 세상의 비웃음을 한몸에 받은 그 초상풍경은 ‘나 자신, 초상-풍경’(1890)이란 루소의 자화상이었다. 검은 베레모를 쓰고 한 손에 팔레트를 들고 우뚝 선 사내. 베레모와 팔레트, 이것이야말로 세상이 알아주는 화가의 표상이 아니겠는가. 그는 스스로 화가의 의장을 갖추고 그림 한복판에 자신을 세웠다. 오늘의 말로 옮기자면 화가 코스프레였다. 앙리 루소의 ‘나 자신, 초상-풍경’(1890). 에펠탑·열기구 등이 등장한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의 근대 문명 중심에 루소가 스스로를 세운 기념비적인 자화상이다. 자신을 화가로 당당히 선언한 자부심이 묻어 있다. 어색한 원근, 깨진 비례 등이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루소만의 화풍을 오히려 도드라지게 했다. 전통적인 초상화나 풍경화에서 벗어나 풍경 속에 인물의 정체성까지 담은 ‘초상 풍경’을 개척한 점도 특별하다. 캔버스에 유채, 146×113㎝. 프라하국립미술관(체코 프라하) 소장.인물은 화면을 거의 가득 채우며 정면을 향해 섰는데 그 크기에 비해 뒤편의 도시풍경은 까마득히 작게 그려졌다. 그 배경은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의 기억이다. 센 강에 띄운 배에는 만국기가 달려 있고 아직 새것인 황갈색 에펠탑도 보인다. 이 모두는 근대 문명의 자랑스러운 표지였고, 루소는 자신을 그 중심에 세웠다. 근대 파리의 풍경은 자신이 마땅히 속해야 할 세계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그 속에 사는 화가로서의 자신이라는 순수한 낙천성을 구현한 것이다. 1893년 루소는 마침내 퇴직하고 연금에 기대어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연금은 쥐꼬리만 했으니 바이올린과 그림 레슨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야 했고 작품은 여전히 팔리지 않았다. 세상이 그 결정을 지지할 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루소의 일생에서 가장 빛나는 작품들은 모두 이 뒤늦은 출발 이후 탄생했다. 전업작가가 된 지 꼭 4년 만에 루소는 ‘잠자는 보헤미안 여인’(1897)을 완성했다. 가로로 길게 펼쳐진 큰 화폭에는 검푸르게 표현한 밤하늘, 성근 별빛과 환한 달빛이 내린 사막이 잔잔하게 펼쳐져 있다. 사막에는 알록달록한 줄무늬 옷을 입은 여인이 깊이 잠들어 있고 만돌린과 항아리가 놓여 있다. 그 잠든 여인의 곁으로 갈기를 드리운 사자 한 마리가 다가와 코를 들이대며 냄새를 맡고 있다. 이 장면이 자아내는 긴장은 묘하다. 화면 어디에도 공포는 없다. 사자는 기이할 정도로 온순하며 사려가 깊어 보이기까지 한다. 사막에는 물이 흐르고, 맹수는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떠도는 가난한 여인은 황량한 밤의 한복판에서 더없이 평온하게 잠든다. 현실에서는 결코 허락되지 않을 이 안식을 루소는 화면 위에 실현했다. 루소는 이 그림을 고향인 라발 시에 판매하기 위해 시장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제안은 단칼에 거절 당했다. 시 입장에서는 정규 국전인 살롱전에 입선하지도 못한 무명의 독학 화가가 어떤 보증도 없는 작품을 사달라는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후 한동안 잊혔던 이 그림은 1920년대 어느 미술상의 손에 발견됐는데, 너무 뛰어나 되레 위작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까지 했다. 결국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 지금은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모마) 501호 ‘19세기의 혁신가들’이란 전시실에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과 더불어 상설 전시되고 있으니 결과적으로 라발 시는 아까운 기회를 놓친 셈이다. 1907년 앙리 루소. 생을 마감하기 3년 전 프랑스 파리 페렐 거리 자신의 작업실에서다. ‘도르낙’이란 이름으로 19세기 말~20세기 초 저명한 정치·문화 인물들로 방대한 초상사진 시리즈를 남긴 프랑스 사진작가 폴 프랑수아 카르동이 촬영했다.◇평생 변두리에 있던 노화가, 젊은 예술가들 한복판에 무시와 조롱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던 루소의 확신은 생애 끝자락에 이르러 마침내 보답을 받는 것처럼 보였다. 그를 알아본 것은 기성 화단의 권위자들이 아니라 젊은 예술가들이었다. 1908년 젊은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파리 몽마르트르의 허름한 화실에서 루소의 예술을 위한 연회를 베풀었다. 반은 진지하고 반은 익살스러운 이 잔치에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 화가 후안 그리스와 마리 로랑생, 수집가 거트루드 스타인을 비롯해 당대의 전위적인 미술인사들이 모여들었다. 평생 미술의 변두리에 서 있던 노화가가 새 시대를 열어 갈 젊은이들의 한복판에 귀빈으로 앉은 저녁이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루소는 다리에 생긴 종기를 대수롭지 않게 방치했고 병원에 실려 갔을 때는 이미 괴저가 진행된 상태였다. 급히 수술을 했으나 패혈증에 시달리던 루소는 1910년 예순여섯의 나이에 눈을 감았다. 가난한 장례였지만 무덤가에는 젊은 벗들이 모였다. 아폴리네르가 비문을 썼고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가 그 글귀를 돌에 새겼다. “우리는 그대에게 인사하네, 온화한 루소여, 그대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리.” 베레모를 쓰고 팔레트를 든 채 화폭 한복판에 서 있던 그 무명의 사내를 다시 떠올린다. 세상의 온갖 맹수 같은 조롱과 멸시가 그의 곁을 어슬렁거렸으나 그는 끝내 깨어나지 않고 자기만의 꿈을 꿨다. 그 꿈이 너무도 간절했기에 어떤 맹수도 끝내 그를 삼키지 못했다. 시작은 늦었지만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은 루소의 그림은 지금도 우리의 발걸음을 붙든다. 이렇게 멀리까지 자신의 작품이 가닿는 꿈이었을까. △이윤희 미술평론가는…1970년생. 대학을 다니던 20대 어느 겨울,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 것이 인생에 미술을 들인 결정적 계기가 됐다. 어느 미술관에서 마주친 렘브란트의 ‘어머니 초상’이란 작품이 발을 붙들었다. 뭔가 꿈틀거리는 게 올라왔다. 세상을 감동시킨 수많은 작품이 품은 이야기를 가지고 싶다는 열망과 함께였다. 이화여대 독문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미술의 역사, 미술의 말을 공부했다. 이후 ‘공간’ 지 미술기자로 출발해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학예실장, 청주시립미술관 학예실장, 수원시립미술관 학예과장 등을 거쳤고, 지금은 이화여대·추계예대 등에서 미술이론을 강의하며 오래전 렘브란트의 감동을 넓혀가고 있다. 번역서로 ‘그림자의 짧은 역사’(2006), ‘포토몽타주’(2003), ‘바디스케이프’(1999)가 있으며 저서로는 ‘불편한 시선: 여성의 눈으로 파헤치는 그림 속 불편한 진실’(2022), ‘꿈꾸는 방: 여성과 공간의 미술사’(2023)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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