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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상징’ 맥도날드 황금아치, 러시아서 완전히 사라진다
  • ‘세계화 상징’ 맥도날드 황금아치, 러시아서 완전히 사라진다
  •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러시아에서 더 이상 맥도날드의 상징인 ‘황금아치’를 볼 수 없게 됐다. 미국 대표 패스트푸드체인점인 맥도날드가 러시아 시장에서 완전 철수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사진= AFP)1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맥도날드는 이날 “30년 이상 영업한 러시아 현지 시장에서 철수할 것”이라면서 “러시아 사업 매각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번 매각으로 맥도날드는 회계상 손실 처리 비용이 12억~14억달러(1조 5400억~1조8000억원)에 달하고, 상당한 외화환산 손실을 입을 것으로 예상했다. 맥도날드는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한 이후 3월 초 러시아 850개 점포의 영업을 일시중단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당시 KFC, 피자헛, 타코벨 등을 보유한 미국 외식업체 얌 브랜즈와 스타벅스도 함께 러시아 내 영업중단을 발표했다. 맥도날드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예측 불가능성 증대로 러시아 내 사업의 유지가 바람직하지 않으며, 맥도날드의 가치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영업을 중단한 모스크바 맥도날드 매장 . (사진= AFP)맥도날드의 러시아 사업 철수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맥도날드는 옛 소련 붕괴 직전인 지난 1990년 모스크바 중심부에 상륙해 32년간 영업을 해왔다. 소련이 무너진 이후 맥도날드는 러시아의 개방과 시장 경제화의 상징이자, 미국 자본주의의 번영을 상징하는 곳으로 여겨져 왔다.1996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이 ‘황금 아치의 갈등 예방 이론’을 소개하기도 했다. 맥도날드 매장이 있는 나라 사이에선 절대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은 맥도날드가 진출한 국가들간의 전쟁으로, 20세기 들어 모두가 맹신하던 세계화의 허상을 보여줬다는 지적도 나온다. 크리스 켐프친스키 최고경영자(CEO)는 성명을 통해 “우리는 지구촌에 대한 헌신을 갖고 있으며 우리의 가치관을 확고히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러시아 내 맥도날드 점포는 현지 기업인에게 매각될 예정이다. 다만 인수자는 맥도날드의 이름과 로고, 브랜드, 메뉴 등을 사용할 수는 없다. 맥도날드는 러시아 전체 점포 중 84%를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었으며, 나머지는 가맹점이다. 맥도날드는 러시아에서 6만2000여명의 직원을 고용해 왔으며, 하청업체 근로자는 1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내 100여개의 맥도날드 매장도 문을 닫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매출은 지난해 맥도날드 매출에서 9%를 차지했다. 가맹점까지 포함한 매출에서는 두 개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2% 수준이었다. 한편, 맥도날드에 앞서 프랑스 기업인 르노(자동차 회사)와 소시에테제네럴(은행), 슈나이더일렉트릭(전기장비 제조업체) 등이 러시아 사업을 현지 기업이나 사업가에게 매각하거나 매각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영국 최대 석유회사 셸도 지난 12일 러시아내 주유소, 윤활유 사업 부문을 루크오일에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2022.05.17 I 장영은 기자
국수본부장, 행안부 경찰 통제안 추진에 ”최대한 입장 설명할 것“
  • 국수본부장, 행안부 경찰 통제안 추진에 ”최대한 입장 설명할 것“
  • [이데일리 정두리 기자]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은 16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 통과 후 행정안전부가 경찰 권한 통제 방안을 마련 중인 것과 관련해 “경찰 입장을 최대한 설명하고 협의하겠다”고 밝혔다.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 (사진=연합뉴스)남 본부장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사에서 진행된 정례간담회에서 “수사하는 입장에서 보자면 검수완박법 통과로 큰 변화는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도 “‘공룡 경찰’ 등 권한 남용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를 많이 하는 것으로 안다”며 이같이 말했다.앞서 행안부는 최근 이상민 장관 지시에 따라 장관 산하 정책자문위원회 분과인 ‘경찰 제도 개선 자문위원회’를 꾸리고 지난 13일 첫 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서는 검수완박법 통과로 권한이 커진 경찰을 통제할 방안 마련에 착수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킥오프 회의를 한 자문위는 향후 격주로 열릴 예정이다.또한 남 본부장은 자문위에서 국가수사본부장을 외부 인사로 임명하는 방안, 국가경찰위원회와 자치경찰을 강화하는 방안 등이 논의될 수 있다는 전망에 대해 “상황을 판단해서 대응하겠다”고 말을 아꼈다.특히 새 정부에서 이뤄질 차기 본부장 인선은 ‘뜨거운 감자’다. 경찰 안팎에서는 검수완박의 후폭풍으로 남 본부장 후임에 검찰 출신 인사가 임명될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초대 국수본부장인 남 본부장의 임기는 내년 2월까지다.이와 관련 남 본부장은 “국가수사본부장은 이미 법상 ‘개방직’으로 규정돼 있다”면서 “인사권자 판단을 내가 미리 언급하는 건 적절치 않지만 외부 개방직으로 임명하더라도 경찰 조직에 대한 이해가 높은 분들을 하지 않을까 기대는 한다”고 말했다. 남 본부장은 중대범죄수사청 설치와 관련해서는 “이미 여러 개 법안이 발의돼 있는데, 세부 내용이 상이한 게 많다”면서 “설치된다면 소속을 어디에 둘 건지, 조직과 직무 범위는 어떻게 할지 다양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검경 협의체 구성과 관련해서는 “법무부 쪽에서 아마 구체적인 안을 갖고 조만간 제안해오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우리도 입장을 최대한 밝히고 반영되도록 적극적으로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2022.05.16 I 정두리 기자
74년간 청와대에 숨어 있던 국보급 문화재는?
  • 74년간 청와대에 숨어 있던 국보급 문화재는?
  • 청와대 춘추관의 청와대 안내문[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지난 10일 청와대가 74년 만에 문을 활짝 열었다. 청와대 관람 사전신청 인원만 230만명을 훌쩍 넘겼다. 오죽하면 무료인 관람권을 웃돈까지 주며 거래할 정도다. 개방과 동시에 청와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여행지가 된 것. 마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듯 우리 국민들의 관심도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단순히 ‘권력자의 삶’이 아닌, 대한민국의 상징이자 중심이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했기 때문일 터. 이제 관심은 청와대 관람 방법에 쏠려 있다. 청와대에는 대통령이 묶었던 관저와 함께 영빈관 등 여러 건물들과 문화재가 수두룩하다. 여기에 대통령의 산책로와 정원도 개방되면서 그동안 접근을 제한했던 청와대를 국민들이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됐다. 특히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문화재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들 문화재는 그동안 청와대 관람 코스에 포함되지 않아 일반 국민들이 볼 수 없었던 것들이다.청와대 경내 산책로에 있는 ‘침류각’청와대 소정원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시민들◇언제 지었는지 알려지지 않은 ‘침류각’문화재들은 청와대 관저 뒤편 산책로에 산재해 있다. 먼저 침류각은 소정원 또는 헬기장 옆 산책로를 따라 가면 만날 수 있다. 20세기 초반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989년 관저를 신축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왔다. 침류각은 그리 크지 않은 건물이다. 몸체는 정면 4간, 측면 2칸이다. 주춧돌과 기둥은 사각으로, 장대석으로 쌓은 3단 기단 위에 건물을 올렸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지붕마용마루는로 마감한 모습, 처마는 겹처마로 경포는 없다. 단청을 칠하지도, 현판이 달려있지도 않다. 다만 문살은 화려하다. 세살무세살무늬와무늬, ‘亞’자 형 무늬가 섞여 있다. 창에 창호지를 발랐지만, 일부분은 유리를 끼운 것도 있다.사실 침류각은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등록되어 있지만, 그 건축 연대는 정확하지는 않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대부분 자료에서는 침류각이 1900년대에 지어졌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당시 여기에 의문이 존재한다. 당시 고종은 경운궁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임금들은 한 궁에 머물지 않고 여러 궁을 필요에 따라 활용했다. 그래서 왕이 경운궁에 있더라도 경복궁에 건물을 지을 수 있다. 하지만 고종이 경복궁을 떠난 것은 명성황후시해사건(을미사변)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껴고 있을 때였다. 이때 아관파천을 단행하고 경운궁에 머물면서부터는 아예 경복궁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후에는 경복궁을 제대로 관리조차 하지 않았다. 이에 궐내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사람들이 지나가기도 힘들정도였다고. 그렇게 방치한 곳에, 그것도 후원 깊숙한 곳에 번듯한 건물을 굳이 새로 짓는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일각에서는 건물 양식 등을 증거로 1920년대에 지었다는 설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때는 일제강점기였고, 당시 일제는 경복궁 후원들을 철거하던 시기였다.그래서 일본식 건물도 아닌, 한옥 건물을 경복궁 후원에도 굳이 지을 개연성 역시 떨어진다. 청와대 경내 산책로에 있는 문화재인 ‘오운정’◇명성황후 비운 서린 오운정원래 이름은 ‘오운각’(五雲閣)이었다. 오운은 지역하면 다섯 구름이란 뜻. 오색구름이 드리운 풍광이 마치 신선이 노는 것과 같다는 의미다. 청와대 대통령 관저 부근이다. 방·대청·누마루 등으로 구성된 정면 5칸, 측면 2칸의 오운각과 정면·측면 각 1칸씩인 정자 옥련정(玉蓮亭), 부엌·방·창고 등으로 구성된 9칸 규모의 벽화실(碧華室) 그리고 샘물인 천하제일복지천이 오운각 권역을 이루고 있었다.이 오운각은 고종 2년에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고종이 후원을 산책하거나 군대 사열 등을 할 때 활용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가 경복궁 후원의 건물들을 헐면서 대부분 건물이 사라졌으나 오운각만은 살아남았다. 1930년대에 일제가 경복궁 후원 터에 조선 총독 관저를 지었고 광복 후에는 대한민국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현재 청와대)가 입주하면서 오운각 역시 경무대 권역에 속하게 되었다. 현재의 ‘오운정(五雲亭)’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분분하다. 오운각이 오운정으로 이름만 바뀌었다는 설도 있고, 경무대가 들어선 이후에 오운정 건물을 새로 지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 뒤로도 오운정은 별일 없이 남아있었다가, 1989년에 오운정 자리에 지금의 청와대 본관을 지으면서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청와대 경내 산책로에 있는 문화재인 보물 제1977호인 미남불(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경주 석굴암 본존불과 양식 비슷한 ‘미남불’조선 왕궁과는 어울리지 않는 경주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은 근현대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유물이다. 높이 108㎝, 어깨너비 54.5㎝, 무릎너비 86㎝의 통일 신라(9세기) 불상이다. 경주 석굴암 본존불과 양식이 유사하며 ‘미남불’로도 불린다. 1913년 경주금융조합 이사 오히라 료조가 경주에 있던 불상을 데라우치 마사타케 조선총독에게 바치면서 남산의 총독 관저로 옮겨진 것으로 전해진다. 1939년 총독관저가 현재 청와대 경무관으로 이전할 때 같이 옮겨 왔고, 1989년 대통령 관저를 신축하면서 현재의 위치에 자리했다.미남불의 전체적인 외형은 세월이 흐르며 약간 풍화된 것을 제외하면 큰 손상이 없이 거의 온전한 편이다. 고대 석불 가운데 파손 없이 이렇게 완전한 사례는 상당히 드물다. 특히 신라 불교조각의 정수인 경주 석굴암 본존불의 양식을 그대로 따랐다. 당당하고 균형 잡힌 신체비례와 풍부한 양감이 돋보이는 표현, 섬세한 부채꼴 옷주름 등에서 석굴암 본존상을 계승한 통일신라 불상조각의 높은 수준을 엿보게 하는 작품이다. 지난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관저 뒤편을 산책하다 불상의 가치를 재평가해 보라고 당부하면서 서울시 유형문화재에서 보물로 격상됐다.왕의 어머니들을 기리는 칠궁(사진=인수위사진기자단)◇왕을 낳아지만 왕비가 되지 못한 후궁을 모신 ‘칠궁’청와대 권역 서쪽에는 경종(1688 ~1724)을 낳은 희빈 장씨, 영조(1694 ~1776)를 낳은 숙빈 최씨, 순조(1790 ~1834)를 낳은 수빈 박씨 등 후궁 7명의 신위를 모신 칠궁이 있다.조선의 왕들을 낳은 친어머니지만. 왕비가 되지 못한 후궁 7명의 신위를 모신 장소다. 법적 어머니인 왕비에게 바치는 효와는 별개로, 생모에게 바치는 사적인 효를 위해 세운 곳이라는 의미다.원래는 이 후궁들의 신위는 서울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그러나 영조가 자신의 어머니 숙빈 최씨의 신주를 모신 사당 ‘육상궁’을 건립한 이후 융희 2년(1908) 연호궁, 저경궁, 대빈궁, 선희궁, 경우궁이 옮겨왔고 1929년 덕안궁이 들어온다. 그 결과 모두 7개의 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서 칠궁(七宮)이라고 이름 지어졌다. 유명한 장희빈의 위패도 여기에 있다. 지난 2001년 11월 24일 일반에게 개방되었지만, 청와대 관람코스에 들어 있기 때문에 하지만 따로 요청해야 갈 수 있었다. 아무 때나 가기는 힘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청와대 개방 이후에는 조금 더 접근이 편해졌다.
2022.05.16 I 강경록 기자
법무부 '탈검찰화' 후퇴…검사출신 장·차관에 거는 기대와 우려
  • 법무부 '탈검찰화' 후퇴…검사출신 장·차관에 거는 기대와 우려
  • [이데일리 하상렬 기자] 한동훈 검사장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데 이어 이노공 전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이 차관으로 임명되며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 탈(脫)검찰화’ 정책이 폐기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검찰 안팎에선 검차출신 장·차관을 두고 기대감과 함께 우려 섞인 시선을 보이고 있다.[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의사진행 발언을 듣고 있다.15일 법조계에 따르면 한 후보자는 이번주 초 법무부 장관으로 정식 임명될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3일 국회에 한 후보자 인사청문 보고서를 오는 16일까지 재송부해달라고 요청하면서다. 인사청문회법상 송부 마감일을 넘긴 경우 대통령은 재송부를 요청할 수 있다. 그 기간까지 국회가 송부하지 않더라도 대통령은 직권으로 장관을 임명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임명 반대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이르면 17일 임명 가능성이 점쳐진다.한 후보자가 정식 취임하게 되면 지난 13일 임명된 이 차관과 함께 법무·검찰 조직을 이끌어가게 된다.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 탈검찰화 정책으로 2016년 김현웅·이창재 장·차관 이후 모습을 감추었던 검사 출신 장·차관이 5년 반만에 다시 나타나는 셈이다.문재인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한 법무부 탈검찰화는 검사 출신 인사들이 법무부 주요 보직을 독차지하면서 친정인 검찰 사무를 관리·감독하지 못했다는 반성에서 출발했다. 문재인 정부 시기 법무부 장관은 학자나 판사 출신의 비(非)검찰 인사가 맡게 됐고, 차관 또한 김오수 전 검찰총장 이후로는 이용구, 강성국 등 판사 출신이 기용됐다. 법무부 요직 상당수도 개방형 인사를 통해 외부 인사를 대거 등용했다.그러나 법무부 탈검찰화는 2018년부터 4년 연속 정부 부처 업무 평가 최하 등급이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법무·검찰 시스템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외부 전문가들은 업무 비효율을 초래했고, 외부개방직은 진보 성향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소속 인사들이 중용돼 ‘인사 편중’ 문제를 낳았다는 지적이 따르며 탈검찰화 되돌리기는 예정된 수순이라는 평가가 나왔다.검찰 안팎에선 한 후보자와 이 차관에 대해 법무·검찰을 효율적으로 이끌어 나갈 적임자로 평가한다. 특히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국면 속 난관을 헤쳐나갈 ‘컨트롤 타워’로서 기대감을 드러내는 분위기다. 향후 법무부는 대검찰청과 발맞춰 권한쟁의심판 등 헌법쟁송을 준비하고, 개정된 형사소송법·검찰청법을 해석해 대통령령을 수정하는 업무를 진행할 방침이다.다만 ‘인사 편중’ 문제로 또 다른 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검찰 출신 인사들이 법무부 주요 보직에 대거 등용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른바 ‘윤석열 라인’ 검사들이 이를 독식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다. 이 차관 역시 1997년 초임검사 시절 윤 대통령과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함께 근무한 이력과 2018년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윤 대통령을 4차장검사로 보좌한 인연이 있다.법조계에선 법무부 내 인사뿐 아니라, 향후 검찰 인사에서의 공정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검찰 고위 간부 출신 변호사는 “내 편 챙기기 식이 아닌, 철저한 실력 위주의 인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인사 제청권을 가진 장관의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한 후보자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인사 공정성에 대해 앞으로 얼마나 고민하느냐가 중요한 요소”라고 분석했다.검찰 내부 비판도 있다. 김수현 창원지검 통영지청장은 지난달 14일 검찰 내부망에 올린 사직 인사를 통해 “혹시라도 지난 정권에서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명예회복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이유 불문 능력은 출중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으로 ‘윤핵관’ 검사로 불릴 수 있는 특정 세력에 편중된 인사를 해 격렬한 내부분열이 생기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이와 관련 한 후보자는 지난 7일 국회에 제출한 서면 답변서를 통해 “내외 가리지 않고 우수한 인재를 등용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2022.05.16 I 하상렬 기자
아시안컵 포기한 중국, 내년까지 '제로코로나' 예고인가
  • 아시안컵 포기한 중국, 내년까지 '제로코로나' 예고인가
  • [베이징=이데일리 신정은 특파원] 중국이 코로나19 재확산 상황 속에서 내년 6월 개최 예정인 아시안컵 개최까지 포기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중국이 내년까지 ‘제로코로나’를 내년까지 고집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인지 주목된다. 사진=AFP아시아축구연맹(AFC)은 14일 중국의 2023년 아시안컵 대회 개최권 포기 결정을 밝히면서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중국이 개최권을 포기하게 된 예외적인 상황을 인정한다”고 전했다. 아시안컵은 내년 6월16일부터 7월16일까지 중국 10개 도시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이에 대해 중국 축구 전문 매체 주치우바오(足球報)는 “중국 10개 도시는 아시안컵 개최를 위해 노력했지만 AFC이 참가 선수뿐 아니라 스태프, 미디어, 축구팬, 스폰서 등에 대한 완전한 개방 조건을 제시했다”며 “이러한 가혹한 요구는 중국이 만족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15일 보도했다. 이 매체는 “중국은 2023년 아시안컵 개최국 지위를 잃었고, 2027년 아시안컵도 개최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보도 내용을 종합하면 중국은 당초 베이징동계올림픽처럼 대회장을 외부와 차단하는 ‘페쇄루프’ 방식으로 아시안컵을 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계 각국이 ‘위드코로나’를 향해 가면서 AFC 측이 대중에 개방할 것을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결국 중국이 개최권을 포기한 것으로 해석된다.최근 중국은 코로나19 사태가 다시 심각해 지면서 아시안게임(9월 항저우)과 유니버시아드 대회(6∼7월 청두)를 모두 연기하기로 했다. 그러나 내년 개최 예정인 아시안컵은 연기가 아닌 개최권 포기를 선택했다. 이미 많은 대회가 연기된 상황에서 아시안컵의 개최는 1년여 시간이 남은 만큼 불확실성을 가져가지 않겠다는 의미다. 중국은 이미 2004년 아시안컵을 개최하기도 했다. 중국 웨이보 등 SNS 내에선 이번 결정으로 중국의 ‘제로코로나’ 정책이 내년에도 유지되는 것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일부 네티즌은 “중국 정부가 적어도 내년 6월 전까지는 전면적으로 개방하지 않겠다는 걸 시사하는 것”, “중국 방역 정책이 바뀔 것이란 기대도 애초에 없었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반면 “내년 중국의 방역 정책이 바뀔 수 있지만 현재 상황에서 이를 결정할 수는 없었을 것”, “무리하게 개최했다가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늘어나는 것보단 낫다” 는 등 중국의 결정에 동의하는 목소리도 있다. 당초 외교가에선 시 주석의 3연임이 확정되는 오는 가을 제20차 당대회까지 중국이 ‘제로코로나’ 정책을 유지할 것이란 게 중론이었다. 일각에서는 3연임 이후에도 정권을 안정화하는 시간이 필요한 만큼 내년 3월 양회까지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있었다. 그러나 중국이 내년 아시안컵까지 내놓으면서 중국이 완벽한 백신과 치료제를 확보할 때까지 ‘제로코로나’를 고집할 수 있다는 전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중국은 자국산 백신 외 다른 국가 백신을 승인하지 않고 있으며 최근 오미크론 확산에 따라 전용 백신의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중국 관영 싱크탱크 중국국제경제교류센터(CCIEE)의 장옌성(張燕生) 수석연구원은 최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중국 전염병 관련 전문가들은 스페인독감처럼 3차 유행을 걱정하고 있다”며 “올해 안에 바이러스 독성이 줄어든다면 3차 유행이 없다는 의미이고, 자연스럽게 중국도 제로코로나 정책을 수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2022.05.15 I 신정은 기자
 청와대 옆길따라 ‘김신조 루트’를 오르다
  • [여행+] 청와대 옆길따라 ‘김신조 루트’를 오르다
  • 청와대 개방과 함께 개방된 청와대 등산로에서 바라본 청와대와 경복궁, 그리고 광화문 거리의 모습[백악산(서울)=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청와대 개방과 함께 청와대 뒷산인 백악산 남측 사면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개방됐다. 청와대를 관람하고, 바로 백악산 탐방도 가능해졌다는 의미다. 이번 청와대 완전 개방으로 그동안 경호와 보안 문제로 잠겨 있던 청와대 대통문도 함께 열렸기 때문이다. 이 문이 열리면서 청와대에서 한양도성 성곽까지 이어지는 백악산 등산로가 전부 열리게 됐다.청와대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백악산을 오를 수 있다. 청와대 춘추관 옆길인 ‘동편코스’와 칠궁 쪽에서 오르는 ‘서편코스’가 그것이다. 걷는 내내 백악산의 정상과 부아암(일명 해태바위)을 올려다보며 걸을 수 있다.아스팔트 길인 동편코스와 서편코스는 경사가 매우 가파른 편이다. 몸이 다소 불편하거나, 노약자들에게는 오르기 벅찬 코스다. 그래도 지난 10일 개통 행사에 참석한 노년의 등반객들은 힘들어하면서도 천천히 걸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지난 10일 청와대 완전개방과 함께 청와대 등산로도 새로 길이 열렸다. 춘추관 쪽의 동편코스와 칠궁 쪽의 서편코스를 통해 백악산 정상까지 등반이 가능해졌다.두 코스 모두 20분 정도 오르면 백악정이다. 여기서 길은 청와대 전망대를 돌아 원점회귀할 수도 있고, 대통문을 통과해 백악산 정상까지 오를 수도 있다. 다만 일반인은 23일부터 이 길을 이용할 수 있다. 등산로는 새로 설치한 목재 덱으로 길을 깔았고, 군사시설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아 조용히 걷기에 좋다. 청와대전망대에서 보는 풍경도 장쾌하다. 청와대 담장 너머로 경복궁과 빌딩 숲, 그리고 서울타워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대통문을 나서면 백악산 남측 사면으로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백악산은 북한산 지맥의 한 봉우리로, 풍수지리에 따라 조선왕조가 도읍을 정할 때 그 중심이 되는 산이었다. 조선의 왕조는 북쪽의 백악산을 중심으로 경복궁을 짓고, 남쪽에 있는 남산을 감싸고 있는 곳에는 백성이 사는 터를 마련했다. 그리고 서쪽의 인왕산, 동쪽의 낙산 등 네 개의 산을 연결해 한양도성을 쌓고 동서남북으로 사대문을 세웠다.백악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청와대 등산로인 춘추관 옆 동편코스를 오르는 시민들하지만 근래 들어 백악산은 서울시민에게 ‘가깝고도 먼 산’이었다. 청와대 뒷산인 탓이다. 1968년 김신조 등 북한 무장공비들이 청와대 기습을 시도한 ‘1·21 사태’ 이후 군사상 보안을 이유로 일반인 출입을 금지했기 때문이다.지난 2007년 4월에서야 한양도성 성곽을 따라 창의문안내소에서 말바위안내소에 이르는 성곽길을 개방했다. 이후 2020년 11월에는 성곽 북측면 탐방로가 열렸고, 지난달 6일에는 남측면 탐방로도 개방됐다. 북악산을 두루 훑는 일이 54년 만에 비로소 가능해진 것이다.백악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청와대 등산로인 칠궁 쪽 서편코스에서 백악산을 찍고 있는 시민대통문을 나서면 만세동방바위(약수터)~청운대전망대~곡장(정상)까지 1시간 정도 오르면 닿을 수 있다. 그중 가장 전망이 뛰어난 곳은 백악산 정상인 곡장이다. 곡장은 일대 성곽이 굽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 곡장 전망대에 오르면 낙산(좌청룡), 남산(남주작), 인왕산(우백호), 북한산(북현무)이 에두른 서울의 모습을 오롯이 눈에 담을 수 있다. 이 산들의 능선을 따라 18.6㎞의 한양도성 성곽이 뻗어 있다.백악산 곡장 전망대에서 바라본 경복궁과 서울 시내
2022.05.13 I 강경록 기자
 한 사람 아닌 모두를 위한 '청와대'를 가다
  • [여행] 한 사람 아닌 모두를 위한 '청와대'를 가다
  • 지난 10일 완전 개방된 청와대를 찾은 시민들이 대정원을 통과해 본관으로 향하고 있다. 이날 관람객들은 청와대 경내의 건물과 문화재, 그리고 산책로를 돌아보는 등 국민 품으로 돌아온 청와대를 거닐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날 하루에만 무려 2만 5000명의 시민들이 청와대를 관람했다.[청와대(서울)=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서울시 종로구 청와대로 1번지. 대통령의 관저와 집무실이 있던 ‘청와대’의 주소지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최고 권력의 심장이자, 수뇌부였던 곳. 자연스레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장소이자 한편으로는 경외와 두려움이 공존하는 대상이었다. 이곳을 거쳐 간 역대 대통령의 드라마 같은 영욕의 세월만 봐도 그렇다. 그랬던 청와대가 지난 10일 역사적 소명을 다하고 국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하고,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 집무실을 서울 용산으로 이전하면서다. 한국 현대사의 상징이었던 ‘청와대’가 권력의 중심에서 국민의 곁으로 자리를 바꾸는 순간이었다.청와대 춘추관의 청와대 안내문◇청와대 관람 사전신청에 112만명이 몰린 이유청와대가 국민 품으로 돌아온 첫날. 무려 2만 5000명이 줄을 서서 청와대를 관람했다. 이번 청와대 개방에 사전 신청인원만 무려 112만명에 달할 정도로 우리 국민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아마도 최고 권력자의 삶과 미지의 공간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전까지 내부 구조는 물론이거니와 그 실체는 철저한 보안 대상이었다.비록 최고 권력자는 떠났지만, 그 집을 구경하려는 이들로 청와대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래서인지 이전에 청와대 앞을 지날 때면 느껴졌던 위압감은 거의 없었다. 같은 공간일지라도, 그 주인이 누구인지에 따라 그 가치와 무게감이 달라진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주인이 바뀌면서 누구나 편히 들어가 사진을 찍을 수 있고, 산책도 할 수 있게 됐다. 그래도 청와대를 지키는 이들에게선 여전히 경계의 눈빛은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안을 둘러보는 새 주인들의 눈빛에는 새집을 둘러보듯 호기심이 가득 차 있었다.청와대 영빈관은 대규모 회의가 열리거나 국빈이 방문했을 때 오찬이나 만찬 등 공식 행사가 열렸던 곳이다.청와대는 언제 이곳에 들어선 것일까. 잠깐 그 역사를 살펴보자. 이 자리는 원래 고려시대 왕가의 별궁이 있던 자리였다. 고려 숙종 때는 이곳에 처음 궁궐터를 조성했고, 조선시대에는 경복궁의 후원으로 사용했다. 그러다 고종은 이곳에 경무대라는 전각을 세우고 과거 시험장과 무예 연습장으로 사용했다.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관저가 세워졌다. 일제는 경무대를 허물고 이곳에 관저를 세웠다. 조선 총독은 이곳에서 머물며 조선의 왕궁을 내려다보았을 것이다. 수십 년간 이어진 치욕스러운 역사였던 셈이다. 광복 후인 1948년 8월. 당시 대한민국 단독 정부가 수립되면서, 다시 경무대(景武臺)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이후 1960년대에 ‘청기와 지붕 건물’이라는 뜻의 ‘청와대’로 개명됐다. 지난 100년간 외세의 침탈에 몸살을 앓았던 우리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겪어온 셈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1993년에 이르러서야 일제 총독관저가 철거되면서 우리의 아픈 상처도 막 아물어가고 있다는 것이다.청와대 본관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있는 관람객들청와대는 이후 수많은 국가원수의 일터이자, 쉼터로 기능해왔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19대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60여 년간 대한민국의 중심이었다. 대통령과 그 가족이 생활하는 ‘관저’와 대통령이 집무를 보거나 외빈을 접견하는 ‘본관’, 외국 대통령이나 수상을 맞이했던 ‘영빈관’, 다채로운 야외행사가 열렸던 ‘녹지원’, 대통령의 기자회견 장소이자 청와대 출입 기자의 사무실인 ‘춘추관’ 등 많은 시설이 이곳에 들어섰다. 이렇게 개방되고 보니 청와대는 생각보다 우리 곁에 가까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새삼 느낀다.청와대 녹지원의 탁 트인 공간에 눈에 띄는 것은 한 그루의 나무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국산 반송. 170년 이상의 세월 동안 청와대를 지키고 있는 고목이다.◇국민 품으로 완전히 돌아온 청와대를 거닐다 청와대 입구는 총 3곳이 있다. 정문과 양옆의 영빈문, 춘추문 등이다. 삼청동으로 간다면 춘추문을, 효자동에선 영빈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삼청동에서 정문으로 향한다면 색다른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왼쪽으로는 경복궁 돌담이, 오른쪽으로는 청와대 건물이 놓여 있다. 조선시대 궁의 운치와 대한민국 정부의 위엄이 공존한다. 이제는 누구의 제지도 없이 마치 마을 돌담길을 걷듯 편한 마음으로 거닐 수 있게 된 거리다.미지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세 곳의 출입문 중 춘추문으로 들어서면 춘추관이다. 국내외 언론사 기자들이 출입하는 청와대의 프레스센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역사를 기록하는 관서인 춘추관에서 이름을 따왔다. 엄정하게 역사를 기록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청와대 소정원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시민들춘추관 옆은 헬기장이다. 알록달록한 그늘 의자들이 예쁘게 놓여있는데, 누구든 편하게 들어가 쉴 수 있도록 했다. 헬기장을 지나자 탁 트인 녹지원이 관람객을 맞는다. 탁 트인 공간에 눈에 띄는 것은 한 그루의 나무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국산 반송. 170년 이상의 세월 동안 청와대를 지키고 있는 고목이다. 이곳에서는 여러 기념일에 다양한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녹지원 뒤편의 상춘재는 청와대 경내에 지어진 최초의 한옥 건물이다. 1983년 내외빈 접객을 위해 지어졌다. 200년 이상 된 춘양목을 사용해 정성들여 지은 건물. 덕분에 외국 귀빈들에게 아름다운 우리 한옥을 소개할 수 있었다. 상춘제를 본 외국의 수많은 정상은 우리 한옥의 정갈한 기품에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청와대 경내 산책로에 있는 ‘침류각’본관으로 가는 길에는 구 본관 터를 만날 수 있다. 1993년 옛 총독관저가 철거된 후 터만 남아 있다. 구 본관 터를 지나면 이제 청와대의 상징 같은 건물, 푸른 기와의 본관을 마주하게 된다. 본관은 의외로 역사가 깊지 않다. 1991년에 완공된 건물이기 때문이다. 건물 외부는 전통적인 왕궁 건축기법을 토대로 설계했다. 팔작지붕의 처마 끝에 올려진 열한개의 잡상이 왕실의 건축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는 대통령의 집무실과 접견실이 있었다. 그 밖에도 국무회의가 열리는 세종실, 소규모 연회장으로 이용되는 인왕실, 외빈을 만나는 집현실 등이 자리하고 있다. 그동안 정치 외교에 있어서 대한민국 정부의 얼굴과도 같은 역할을 수행한 곳들이다.청와대 경내 산책로에 있는 문화재인 ‘오운정’영빈관은 2층으로 지어진 현대식 건물이다. 열여덟 개의 기둥들이 웅장한 위용을 자랑한다. 특히 전면에 배치된 네 개의 돌기둥은 바위 하나를 통째로 깎아내어 이음새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곳에서는 대규모 회의가 열리거나 국빈이 방문했을 때 오찬이나 만찬 등 공식 행사가 열렸던 곳이다. 마지막으로 본관 앞 대정원과 소정원, 그리고 침류각과 오운정, 미남불(경주 방형대좌 석불여래좌성)로 이어지는 경내 산책로도 청와대에서 봄나들이를 즐기기에 좋은 장소들이다.청와대 경내 산책로에 있는 문화재인 보물 제1977호인 미남불(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2022.05.13 I 강경록 기자
허구연 KBO 총재 "위기의 한국야구, 살아남으려면 달라져야"
  • [만났습니다]허구연 KBO 총재 "위기의 한국야구, 살아남으려면 달라져야"
  • 허구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이데일리와 단독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이데일리와 단독인터뷰를 갖는 허구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 사진=이영훈 기자[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한국 야구는 지금 가장 중요한 시기에 와 있다. 위기감을 느끼고 달라지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이대로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허구연(71)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는 스스로를 ‘9회말 1사 만루에 올라온 구원투수’라고 표현했다, 한국 야구의 위기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느껴졌다.허구연 총재는 중도 사퇴한 전임 정지택 총재의 후임으로 지난 3월 29일 KBO 총재라는 중책을 맡았다. 부임하자마자 허구연 총재는 ‘일하는 총재’로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허구연 총재는 한국 야구의 숙원인 인프라 문제 해결을 위해 전국 야구장을 돌면서 정계, 재계인사들과 끊임없이 만남을 가졌다. 아울러 자신이 가장 먼저 강조한 ‘팬 퍼스트(Fan First)’를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왔다.더불어 음주운전 문제로 논란을 일으켰던 강정호의 계약을 총재 직권으로 승인거부하는 등 일탈로 얼룩진 야구계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허구연 총재로부터 한국 야구의 위기와 변화, 미래에 대한 다양한 얘기를 들었다.―3월 29일 KBO 총재에 부임한 뒤 40여일이 지났다. 소감은?△시즌 개막을 앞두고 해설 준비를 하다가 갑작스럽게 총재직을 맡았다. 차분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취임한 게 아니라 정신이 없었다. 시즌 초반부터 사건 사고도 있었다. 야구가 어려움을 겪다보니 내게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KBO 총재 자리는 더 거시적인 부분을 고민해야 하는데 스트라이크존 등 세세한 문제까지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까웠다.―해설위원 시절에는 KBO와 총재에 대해 쓴소리도 많이 했다. 밖에서 봤던 KBO 총재직과 막상 직접 맡게 된 총재직은 어떻게 다른가.△지금은 야구의 패러다임이 많이 바뀌었다. 한국 야구는 시대 변화에 잘 따라가지 못했다. 가장 큰 책임은 KBO에 있다고 본다. 지금 KBO는 프로야구 초창기에 비해 권한이 많이 축소되고 위축된 상태다. KBO가 적극적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려고 해도 힘이 없다. 프로야구가 발전해 나아가야 하는데 축소 지향적으로 가고 있다. 한국 야구는 지금 갈 길이 멀다. 인프라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야구 인기도 회복해야 하는 동시에 국제경쟁력도 되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KBO가 컨트롤타워가 돼야 한다.―시즌 초부터 달라진 스트라이크존으로 인해 논란이 뜨겁다.△스트라이크존 문제는 시즌 내내 얘기가 나올 것이다. 그래도 이미 시행된 만큼 올해는 문제점을 최소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심판위원장과 스트라이크존 상황을 계속 점검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매뉴얼을 만들도록 지시한 상태다. 사실 스트라이크존은 민감한 문제다. 어떤 제도를 만들려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테스트를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부분이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가 빠르면 내년부터 인공지능(AI)를 활용한 로봇심판을 도입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도 IT 강국인 만큼 미국이 시작하면 바로 로봇심판을 도입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민감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지금처럼 스트라이크존 논란이 계속된다면 한국 야구가 더 힘들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그동안 로봇 심판의 기술적인 오류가 지적되기도 했다. 지금 도입하더라도 문제가 없다고 확신하나.△처음에는 미국에서도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특히 공이 들어오고 스트라이크 볼을 판정해 심판에게 알려주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 시간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또한 예전에는 가끔 원바운드로 들어온 공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는 일도 있었다. 미국도 그런 부분을 검토해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뒤 도입할 것이다. 우리 역시 참고할 것은 참고하고 쫓아갈 것은 빨리 쫓아가야 한다.-야구 인프라 문제와 관련해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과 만났다. 어떤 얘기를 나눴나.△서울시장과 ‘서울 잠실 스포츠·마이스(MICE) 복합공간’ 조성 사업에 포함된 야구장 문제를 논의했다. 서울시의 원래 계획은 현재 축구 보조경기장 옆에 개방형 야구장을 짓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 야구장을 지으면 팬들이 지하철역에서 내려 15분이나 걸어야 한다. 그래서 이것을 지금 잠실야구장과 가까운 위치에 지어야 한다는 야구계 뜻을 전달했다. 또 야구장을 공사하는 동안 잠실 주경기장을 리모델링해 그곳에서 야구를 하고 야구장이 완공되면 다시 축구장으로 복원하자는 서울 연고 구단의 바람도 전했고 검토하겠다는 답을 들었다.―박형준 부산시장과도 만나 사직구장 재건축에 대해 논의했다.△부산시는 새 야구장을 개방형으로 지으려고 한다. 그런데 부산시의회에선 돔구장 건설을 주장하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은 부산에 돔구장이 생기면 운영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가동률이 떨어지면 적자를 볼 수밖에 없다. 재정적 부담을 감수할 게 아니라면 빠른 시일 내 개방형 구장을 짓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본다. 그런 의견을 전달했고 박 시장도 잘 이해해줬다.―SSG랜더스가 인천 청라국제도시에 돔구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이 문제에 대해 인천 지역 언론사와 몇 차례 인터뷰를 했고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정치인이나 지자체장들은 선거에 나올 때마다 ‘고용을 증대하겠다’, ‘기업을 유치하겠다’고 약속한다. 현재 돔구장은 서울과 부산도 돈이 없어 짓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 기업이 복합문화공간과 함께 돔구장을 짓겠다고 하면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하는 것 아닌가. 왜 이걸 반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이것은 잘못됐다고 강하게 얘기했다. 정치인이나 기업이 스포츠와 문화 콘텐츠의 가치를 잘 모른다는 점이 안타깝다. 야구장은 야구만 하는 공간이 아니다. 야구를 하지 않을 때도 많은 시민들이 즐기는 장소가 될 수 있다.―KBO 총재에 취임하면서 선수들의 반성을 강조했다. 수년간 반복되는 선수들의 일탈 문제에 대한 생각은?△우리나라 야구계는 큰 착각을 하고 있다. 거품을 걷어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야구를 굉장히 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은 미국, 일본에 뒤지고 있다. 현재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심각함을 깨달아야 한다. 선수들의 일탈이 계속 이어지는 것은 굉장히 안타깝다. 그렇다고 당장 인위적으로 해결하기도 힘들다. 다 큰 선수들에게 교육을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결국 프로와 아마가 함께 손을 잡고 어린 선수 때부터 책임과 의무에 대한 지도가 이뤄져야 한다. 팬들이 야구장에 야구만 보기 위해 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선수들이 느껴야한다. 팬의 가치를 알고 바꾸려는 노력을 스스로 해야 한다.―그래도 코로나19 방역조치가 대부분 풀리면서 야구장을 떠났던 팬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 같다. 현장에서 희망적인 부분을 발견했는가.△조금은 회복된 것 같지만 아직 완전하지는 않다. 지금이 가장 중요하다. 현재 평균 관중은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해 30% 가량 줄었다. 기업을 운영하는데 매출이 30% 줄었다면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우리 야구계가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 KBO부터 바뀌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야구팬들이 돌아올지, 다시 등을 돌릴지 결정된다. 일단 2019년 수준만이라도 팬들의 관심이 회복되면 성공이라고 보지만 그게 가능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더이상 팬들에게 상처를 주고 실망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다행히 선수들도 팬퍼스트 정신을 이해하고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느낀다.허구연 한국야구위원회 총재는…△1951년 진주 출생 △경남중·고 졸업△고려대 법학과 졸업 △고려대 대학원 법학과 졸업△한일은행 야구단(~1976)△청보핀토스 감독(1985~86)△토론토 블루제이스 마이너리그팀 코치(1990~91)△KBO 야구발전위원장(2009~2017)△MBC 야구해설위원(1992~2021)
2022.05.13 I 이석무 기자
"국민대표 74명 정문 통해 입장"…74년 만 청와대 개방
  • "국민대표 74명 정문 통해 입장"…74년 만 청와대 개방
  •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국민 대표가 봄의 약속을 상징하는 매화꽃다발을 들고 앞장서자 74명이 정문을 통해 입장했다. 뒤이어 사전에 관람 신청을 한 예약자들이 한껏 들뜬 표정으로 청와대 문을 밟았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74년 만에 활짝 열린 청와대 국민개방 현장이다.문화재청은 10일 청와대 국민개방을 기념해 사전 공연과 축시 낭독, 대북 타고(打鼓) 퍼포먼스, 춘추문 개문 등의 특별행사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들은 청와대를 국민 모두가 누리는 열린 공간으로 재구성하고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는 개방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기획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에 맞춰 국민과의 약속인 청와대 국민개방이 성공적으로 이뤄졌음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윤석열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등산로 개방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이 청와대 경내를 통과해 등산로로 향하고 있다(사진=김태형 기자).오전 6시 30분에는 그간 보안과 경호 등을 이유로 청와대에서 통하는 길이 막혀 있던 북악산 등산로 완전 개방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청와대 춘추문 앞에서 인근 지역주민과 문화재 해설사, 자원봉사자들로부터 소회를 들어본 뒤 사전 공연을 관람했다. 북악산은 1968년 일명 ‘김신조 사건’으로 인해 그동안 입산이 금지됐다가 2006년 이후 일부 구간이 개방됐으나 여전히 청와대와 북악산은 서로 막혀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54년 만에 새 길이 열리는 이번 북악산 등산로 개방은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새롭게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오전 11시부터는 청와대 정문 개문 기념행사가 열렸다. 개문 행사는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드린다는 ‘우리의 약속’을 주제로 한 축하공연을 시작으로 ‘희망의 울림’을 상징하는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이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74년 만에 국민 품으로 돌아온 청와대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지역주민과 학생, 소외계층 등 국민대표 74명이 정문을 통해 모두 함께 입장했다.개방 첫날에는 선발된 2만6000여 명이 청와대를 둘러볼 예정이다. 청와대 국민개방을 위해 지난 4월 27일 오전 10시부터 관람신청을 접수한 결과 3일 만에 112만 명이 넘는 등 국민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은 바 있다. 앞으로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6차례에 걸쳐 회차별 6500명씩 매일 3만9000명이 청와대를 관람하게 된다. 청와대 개방이 지닌 가치를 국민에게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오는 5월 22일까지 다채로운 행사도 펼쳐진다.윤석열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등산로 개방 행사에서 식전 행사가 열리고 있다(사진=김태형 기자).
2022.05.10 I 이윤정 기자
청와대, 74년 만에 국민 품으로…북악산 등산로 등 개방
  • 청와대, 74년 만에 국민 품으로…북악산 등산로 등 개방
  • [이데일리 권오석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식날인 10일 청와대 국민개방을 기념하는 특별행사들이 열릴 예정이다. 이로써 청와대는 정부 수립 74년 만에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게 됐으며, 과거의 역사를 품은 상징적 장소이면서 동시에 국민의 쉼터로 되살아날 예정이다.청와대 전면 개방을 하루 앞둔 지난 9일 오후 청와대 경비대가 경비근무를 서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대통령실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행사들은 청와대를 국민 모두가 누리는 열린 공간으로 재구성하고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는 개방의 시작을 알리기 위해 기획된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 출범에 맞춰 국민과의 약속인 청와대 국민개방이 성공적으로 이뤄졌음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밝혔다.먼저 오전 6시 30분에는 그동안 보안과 경호 등을 이유로 청와대에서 통하는 길이 막혀 있던 북악산 등산로 완전 개방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린다.청와대 춘추문 앞에서 펼쳐지는 개방행사는 인근 지역주민, 문화재 해설사, 자원봉사자들로부터 소회를 듣고 사전 공연, 축시 낭독, 대북 타고(打鼓) 퍼포먼스, 춘추문 개문의 순으로 이뤄진다.북악산은 1968년 일명 ‘김신조 사건’으로 인해 그동안 입산이 금지됐다가 2006년 이후 일부 구간이 개방됐다. 그러나 여전히 청와대와 북악산은 서로 막혀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54년 만에 새 길이 열리는 이번 북악산 등산로 완전 개방은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을 새롭게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는 설명이다.이후 오전 11시부터는 청와대 정문 개문 기념행사가 열린다. 개문 행사는 청와대를 국민에게 돌려드린다는 `우리의 약속`을 주제로 한 축하공연을 시작으로, `희망의 울림`을 상징하는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이어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74년 만에 국민 품으로 돌아온 청와대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지역주민과 학생, 소외계층 등 국민대표 74명이 정문을 통해 모두 함께 입장한다.국민대표는 봄의 약속을 상징하는 매화꽃다발을 들고 입장하며, 국민대표의 뒤를 이어 관람신청 사전 예약자들이 입장하면서 청와대 개방이 시작된다.한편 청와대 국민개방을 위해 지난달 27일 오전 10시부터 관람신청을 접수한 결과, 3일 만에 112만명이 넘는 등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향후, 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6차례에 걸쳐, 회차별 6500명씩 매일 3만 9000명이 청와대를 관람하게 된다. 오는 22일까지 다채로운 행사 프로그램이 공개될 예정이다.
2022.05.10 I 권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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