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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대 성과급 '그들만의 잔치' 아닌 기부로 연결하라"
- 우리 사회에 따뜻함을 전해온 예종석 한양대 명예교수가 대한민국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명사들과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그들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을 공유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깊이 있는 통찰과 영감을 제공하겠습니다. <편집자주>1990년대 '9시 뉴스' 앵커석에 앉아 외환위기 등 격동의 한국 사회를 전했던 이인용 사단법인 온율 공동이사장이 예종석의 파워인터뷰를 찾았다.(사진=김태형 기자)[대담=예종석 명예대기자(한양대 명예교수)·정리=이지현 기자] 반도체 업계의 ‘역대급 성과급’이 화제다. 단순히 반도체 업종의 특정 회사를 넘어 소위 ‘N%성과급’을 둘러싼 문제는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좋은 성과를 낸 임직원에게 걸맞은 보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숫자가 ‘억’ 단위로 치솟으면 회사 밖의 시선은 복잡해진다. 성과의 과실을 어디까지, 어떻게 나눌 것인가라는 질문도 따라붙는다.삼성전자 사장을 지낸 이인용 사단법인 온율 공동이사장은 이 문제에 대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퇴사자가 현재 회사 내부문제를 평가하는 것에 대해 매우 조심스러워 했지만 “지속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13년 무렵 삼성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당시 삼성은 큰 이익을 냈다. 임직원에게 많은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은 당연했다. 회사 내에서는 또 다른 고민이 나왔다. ‘많은 성과급을 지급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언론에서는 ’삼성 그들만의 잔치‘라고 쓰겠지’라는 것.이런 우려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왔다. 임직원이 성과급의 일부를 자발적으로 기부하면 회사가 같은 금액을 보태는 방식이었다. 참여율은 매우 높았다. 그렇게 모인 정성은 자립준비청년을 지원하는 ‘희망디딤돌’ 같은 사업으로 이어졌다.이 이사장은 사회공헌을 단순히 ‘돈을 많이 벌었으니 얼마를 떼어 기부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돈 버는 부서와 돈 쓰는 부서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봤다”며 “사회공헌에 담긴 가치를 모든 구성원이 내면화해야 한다. 사회공헌을 ‘가치 플랫폼’이라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기업의 성과를 구성원의 보상으로만 끝내지 않고 사회적 가치와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그가 삼성에서 사회공헌을 맡으며 오래 고민했던 질문이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이사장을 ‘삼성맨’으로 기억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기억은 단숨에 1990년대로 돌아간다. 1996년부터 MBC ‘뉴스데스크’를 봤던 사람이라면 익숙한 바로 그 목소리다. 그는 4년 동안 9시 뉴스 앵커석에 앉아 외환위기 등 격동의 한국 사회를 전했다.무거운 뉴스에서는 낮고 눌린 목소리로 큰 사건이 터진 날에는 긴박감을 실어 뉴스를 전했다. 당시 그의 얼굴과 목소리는 저녁 9시를 상징하는 익숙한 풍경 가운데 하나였다. 흥미로운 것은 정작 본인은 그 시절 자신의 목소리를 낯설게 느낀다는 점이다. 인터뷰 전날 우연히 1997년 11월 21일자 뉴스를 다시 봤다는 그는 웃으며 “제 목소리가 제 목소리 같지 않더라고요. 톤도 높고 말도 굉장히 빨랐다”고 했다.유명 앵커에게 정치권의 러브콜이 쏟아지던 시절이었다. 정치권에서 그에게도 러브콜은 보냈지만 그는 예상과 달리 정계가 아닌 재계로 방향을 정했다. 왜였을까.이인용 사단법인 온율 공동이사장은 앵커에서 물러난 뒤 정계의 러브콜을 받을 때마다 집안의 오래된 가르침을 떠올렸다. “1986년 아버지가 공직에서 퇴임한 뒤 내가 있던 미국에 오셨을 때 집안 이야기를 처음 자세히 들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남긴 ‘너는 당을 하지 말아라’는 말을 내게도 전해주셨다.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이후 정치부 기자를 하면서도 권력과 너무 가까워지는 것을 늘 경계했고 정계 진출 제안을 받을 때도 자연스럽게 그 말을 떠올렸다.”(사진=김태형 기자)-정계 러브콜을 왜 거절했나.△사람마다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나. 나는 정치에 대해서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가족사의 영향도 컸던 것 같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너는 당을 하지 말아라’고 하셨다. 공산당에 관여하지 말라는 뜻과 함께 정당 정치에도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삼성행을 택한 이유는.△기자는 본질적으로 ‘워처’(Watcher), 즉 밖에서 지켜보고 평가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오래 할수록 ‘내가 전하는 게 정말 진실에 가까운가’ 하는 고민이 커졌다. 앵커 때 하루 스무 꼭지 안팎의 뉴스를 다루면서도 늘 몇 꼭지는 마음에 걸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남의 결정을 지켜보는 사람보다 직접 결정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플레이어’(Player)가 되고 싶었다. 마침 그때 삼성에서 제안이 왔다.-처음부터 홍보 업무가 마음에 들었나.△오히려 반대였다. 삼성에서 홍보를 맡기겠다고 했는데 나는 그 자리에 적합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내가 당시 생각했던 홍보는 기자들과 평상시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다가 회사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잘 좀 부탁합니다’라며 기사를 조금 덜 나쁘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려면 술도 잘 마시고 골프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술도 잘 못하고 골프도 못 쳤다. 그래서 왜 나 같은 사람한테 홍보를 맡기느냐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뜻밖의 말이 돌아왔다. 과거의 그런 방식의 홍보는 이제 달라져야 한다. 어떻게 달라져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걸 함께 고민해달라는 취지였다. 그 말이 삼성행을 결심하는 데 상당히 크게 작용했다.-삼성에서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은.△‘신뢰’였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으로 커지고 있는데 홍보팀 사람들이 무엇을 자부심으로 삼을 것인가를 생각했다. 부정적인 기사의 보도를 막고 줄이는 게 우리의 자부심일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직원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삼성을 향한 우리 사회의 신뢰를 높이는 것으로 우리의 자부심을 삼자고 했다. 그리고 한 가지 약속을 했다. 동료들에게 ‘적어도 내가 여러분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지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회사가 모든 것을 공개할 수는 없다. 영업비밀도 있고 말할 수 없는 일도 있다. 하지만 밖에 말을 하는 이상 거짓말은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이인용 사단법인 온율 공동이사장이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태형 기자)-그 약속이 시험받은 순간도 있었나.△2007년 기흥 반도체 공장 정전 때였다. 당시 이데일리에서 가장 먼저 화재 기사를 보도한 기억이 있다. 그전에는 큰일이 없었으니까 원칙을 말하기 쉬웠다. 그런데 정말 큰일이 터졌다. 기흥공장 내 6개 생산라인이 멈췄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반도체에서 전기는 생명줄이다. 6개 라인이 멈췄다는 것을 우리가 확인해주면 언론도 난리가 나고 시장도 크게 흔들릴 상황이었다. 담당 차장이 와서 물었다. 그가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었을 때 ‘진짜 진실의 순간이 왔구나’ 싶었다.-숨기고 싶은 생각도 들었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사람이라는 게 참 간사하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정전이 발생했습니다. 현재 복전 작업 중이며 복전작업을 마치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라고 설명하면 거짓말은 아니다. 그런데 기자들이 알고 싶은 건 하나도 없다. 기자들이 궁금한 것은 몇 개 라인이 멈췄는지, 피해는 얼마나 될지, 언제 정상화될지다. 그걸 빼고 얘기하면 ‘밥은 밥이다’라고 얘기하는 것과 똑같다.-결국 6개 라인 정지를 공개했다.△공식적으로 ‘기흥공장 내 6개 생산라인이 멈췄고 복전 작업 중이다’라고 설명할 것을 지시했다. 담당 차장은 ‘정말 그래도 되겠냐’고 되물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질문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정말 이 사실을 언론에 확인해줘도 되느냐와 이 정도의 큰 일을 전무 혼자 결정해도 되느냐는 뉘앙스였다. 하지만 지금 솔직히 말하지 않으면 나중에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고작 시간을 버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사실을 정확히 전달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중에 사실이 알려졌을 때 ‘삼성이 사고를 은폐 또는 축소했다. 시장이 판단하는 데 필요한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면 우리리가 평소 강조한 신뢰를 잃는 것이다. 기사가 커지고 반도체 시장이 불안해지고 고객들이 걱정할 것은 충분히 예상됐다. 그래도 사실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결과는 어땠나.△홍보 업무 관점에서 보면 대참사였다(하하). 나쁜 기사를 줄이기는커녕 우리가 사실을 확인해줘서 기사가 훨씬 커졌다. 주요 방송뉴스에 나오고 다음 날 신문 1면에도 나왔다. 당시 시장에서는 피해액이 7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우리는 현장에서 최대한 빨리 피해 규모를 계산했다. 실제로는 그렇게 크지 않다고 판단했고 회사는 보수적으로 예상 피해액을 500억원 가량이라고 설명했다. 최종 피해는 그보다도 적었다. 정상화한 뒤에는 언론에 현장까지 공개했다. 해외 언론도 불러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생산라인을 보여줬다. 그러자 기사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고 자체는 악재였지만 대응은 투명했다, 위기를 잘 다뤘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조직 내부도 달라졌나.△많이 달라졌다. 직원들이 ‘교과서와 현실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교과서대로 했고, 결과도 좋았다’고 했다. 나는 그걸 ‘성공의 학습’이라고 생각한다. 교과서대로 대응해도 된다는 것을 조직이 직접 경험한 거다. 그 뒤로는 커뮤니케이션팀에 ‘회사에서 야당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우리는 매일 언론과 사회를 만나니까 밖에서 삼성을 어떻게 보는지, 뭘 기대하는지, 뭘 걱정하는지를 가장 빨리 안다. 그러면 그걸 안으로 가져와야 한다. 때로는 듣기 싫은 소리도 해야 한다. 직원들에게는 ‘겸손하되 당당하라’라고 주문했다. 삼성에 대한 부러움도 있었지만 질시도 있었기 때문에 조금만 뻣뻣하게 보여도 회사 전체가 욕을 먹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비굴할 필요는 없었다. 태도는 겸손하게, 사실관계에서는 당당하게 하자는 뜻이었다. 나중에 회사를 떠날 때 직원들이 선물해 준 감사패에 그 말이 적혀 있었다. 거의 20년 전에 한 말인데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문구를 보면서 ‘아, 이 말이 그렇게 오래 남았구나’ 싶었다.-삼성전자의 대외협력과 사회공헌을 책임지는 CR 담당 사장도 했다. 사회공헌의 원칙은.△두 가지였다. 하나는 사회공헌을 단순히 돈 쓰는 일로 보지 말자는 것이었다. 회사 전체가 그 가치를 함께 가져야 한다고 봤다. 그래서 ‘가치의 플랫폼’이라고 했다. 또 하나는 혼자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사회문제는 기업 하나가 풀 수 없다. 비정부기구(NGO)나 국제기구와 손잡아야 더 큰 임팩트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이 위원장은 사회공헌 사업 가운데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을 한 장의 사진처럼 떠올렸다. “중학생 때 드림클래스에서 공부했던 아이가 대학에 간 뒤 다시 선생님으로 돌아왔다. 후배들 앞에서 ‘나도 5년 전에는 너희처럼 여기 앉아 있었어’라고 하는데, 내가 백 번 설명하는 것보다 그 한마디가 훨씬 힘이 있었다. ‘저 선배도 여기서 시작했구나’ 하는 걸 아이들이 직접 보는 거다. 나중에는 드림클래스 출신 가운데 삼성전자 공채로 입사한 학생도 나왔다. 그게 나한테는 정말 보람 있는 일이었다.”(사진=김태형 기자)-왜 사회공헌 사업에 집중해야 한다고 봤나.△당시 삼성은 정말 많은 사회공헌사업을 하고 있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은 많았다. 문화예술계, 장애인, 이주민, 취약계층도 어렵다. 그러다 보니 모든 곳에 조금씩 지원하고 있었다. 총액은 굉장히 큰데 1년, 2년, 3년 지나고 나면 무엇을 했는지 흔적이 별로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비유를 했다. 사막에 나무가 많이 있는데 모두 목이 말라 있다. 큰 물통을 들고 가서 이 나무에도 조금, 저 나무에도 조금씩 물을 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어디에 물을 줬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주제를 정하고 집중하자’고 했다.-그런데 왜 교육이었나.△양극화를 들여다보니 결국 교육격차가 문제였다. 특히 중학교 1,2학년 시절 영어·수학을 포기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래서 대학생이 방과 후에 중학생을 가르치는 드림클래스를 만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중학생 때 드림클래스에서 공부한 아이가 대학생이 된 뒤 다시 선생님으로 돌아온 장면이다. 후배들에게 ‘나도 5년 전엔 너희처럼 여기 앉아 있었다’고 말하는 모습을 봤는데 내가 백 번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큰 힘이 있었다. 나중에는 삼성전자에 입사한 학생도 나왔다.-기업의 사회공헌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하는지.△훨씬 전문화해야 한다. ‘우리가 이익을 이만큼 냈으니 몇 퍼센트는 좋은 데 쓰세요’와 같은 주먹구구식은 안된다. ‘사회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기업에는 돈만 있는 게 아니다. 기술도 있고 인재도 있고 조직도 있고 글로벌 네트워크도 있다. 정부 예산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문제가 많다. 기업이 NGO나 국제기구와 손잡고 자신들이 가진 기술과 실행력을 활용한다면 굉장히 큰 임팩트를 만들 수 있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K사회공헌’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지금은 왜 ‘가치성장’인가.△조직이 커지면 처음 가졌던 문화와 가치가 희석될 수 있다. 율촌도 수백 명의 변호사가 일하는 대형 로펌이 됐다. 그러면 ‘우리가 처음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계속 가져갈 것인가’라는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가치성장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런데 가치라는 것은 말로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여러 사람이 한 팀을 이뤄 사건을 수행하면서 ‘아, 협업하니까 정말 좋구나’를 경험해야 한다. 가치는 실제 일하는 현장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온율은 어떤 일을 하나.△쉽게 말하면 ‘돕는 사람을 돕는 곳’이다. 사회적·경제적 약자를 돕는 NGO들이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법률 문제에 많이 부딪힌다. 법이 너무 오래돼 현실과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소송이 필요한데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럴 때 법률적으로 돕는다. 공익소송도 하고, 법이나 제도가 현실과 맞지 않으면 전문가들과 함께 논의해 입법 개선을 추진하기도 한다. 온율에는 공익 전담 변호사들도 있다. 경제적인 보상만 생각한다면 대형 로펌에서 일할 수 있는 좋은 인재들이 공익 분야를 선택해 자기 전문영역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런걸 보면 굉장히 고맙다.-지금 가장 보람 있는 일은.△내가 아직 몰랐던 우리 사회의 그늘을 발견하는 일이다. 언론계에서 20년 넘게 일했고 기업에서 사회공헌 업무도 했는데 지금 공익활동을 하면서도 ‘내가 이런 것도 몰랐구나’ 하는 일이 굉장히 많다. 예를 들어 엄마나 아빠가 교도소에 들어갔는데 이모도, 고모도, 할머니도 없으면 그 아이는 어떻게 될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인데 나는 그런 문제를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걸 보면서 많이 반성한다. 우리가 아직 밝게 비춰보지 못한 곳이 정말 많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곳을 하나라도 더 발견하고 힘닿는 데까지 돕는 것. 요즘에는 그런 일이 내게 또 하나의 보람이다.이인용 이사장과 예종석 대기자가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태형 기자)■이인용 이사장은…△1957년 경북 안동 △중앙고 △서울대 동양사학과 △2002~2003년 미국 하버드대 니만 펠로우(Nieman Fellow) △MBC 보도국 기자·뉴스데스크 앵커·보도국 부국장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장(사장)·삼성전자 CR 담당 사장·고문·사회공헌총괄 △현 법무법인 율촌 고문 겸 가치성장위원장 △현 사단법인 온율 공동이사장
- "노래하면 안 늙어요"…시니어 합창단의 무한도전
- [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자, 악보는 오른손으로 받치고 왼손으로 넘기는 거예요. 프로답게요.”20일 서울 관악구 한 연습실에서 브라비시모콰이어 합창단이 연습에 임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20일 오전 서울 관악구의 한 노래 연습실. 본격적인 합창 연습을 앞두고 김형우 지휘자와 브라비시모콰이어 합창단원들의 대화에서 화기애애함이 묻어났다. 왁자지껄한 분위기도 잠시, 지휘자의 말에 따라 악보를 넘기는 단원들은 곧바로 웃음기를 지우고 진지한 표정을 보였다. 반주가 시작되고 지휘자가 신호를 보내자 단원들이 서서히 고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시니어 합창단의 ‘무한도전’이곳은 60~70대 여성으로 구성된 시니어 합창단 ‘브라비시모콰이어’의 연습 현장이다. 이날 연습에선 발성부터 표정까지 세세히 챙기는 지휘자와, 매주 함께 노래를 불러온 단원들 사이 신뢰를 엿볼 수 있었다. 이들의 호흡에서 시니어 합창단이 5년간 쌓아온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브라비시모콰이어 합창단이 오는 10월 2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홀에서 창단 5주년 기념 음악회를 연다.합창단은 가수 김호중의 팬모임에서 출발했다. 가수와 노래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에서 자연스럽게 합창으로 이어졌다. 지휘자 김형우는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였던 2022년 합창단을 처음 만났다. 김 지휘자는 “처음엔 합창단이 아니라, 노래방 같았다”며 웃었다. 이어 “발성부터 다시 가르쳤다. 중간에 포기한 분들도 있지만, 재미없어도 꿋꿋이 남은 분들과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단원은 20여 명에서 40명 수준으로 늘었고, 실력도 성장했다. 그래도 아마추어 합창단이 KBS홀에서 단독 공연을 여는 건 큰 도전이다. 김 지휘자가 처음 공연을 제안했을 때 단원들은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김 지휘자는 “처음엔 단원들이 ‘우리가 할 수 있을까’라며 두려워했지만, 지금은 아마추어 마인드를 말끔히 벗어냈다”면서 “단원들 사이에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강조했다. 단원들의 취향도 반영해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김 지휘자는 “단원들이 원해 김호중의 곡을 넣었다”면서도 “공연의 균형을 고려해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골든’, 가곡 ‘별’, ‘오 솔레미오’ 등 관객들이 듣기 편한 곡들을 추가했다”고 설명했다. 11일 서울 관악구 한 연습실에서 브라비시모콰이어 합창단이 연습에 임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임종 전까지 노래할 것”·“삶의 목표 생겨 기뻐”이날 연습에서 단원들은 곡마다 분위기에 맞는 표정과 에너지를 보여줬다. 김 지휘자는 ‘우정의 노래’를 부를 땐 경쾌한 곡 분위기에 맞춰 유쾌하게 리드했다. ‘댄싱 퀸’에서는 표정을 밝게 짓자는 지휘자의 주문이 나왔고, ‘행복을 주는 사람’에 이르러서는 감성이 풍부한 단원들의 몰입감이 느껴졌다. 단원들에게 합창은 취미 이상의 의미다. 단원 박성희(73)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잘 차려입고 올 곳이 있다는 게 너무 좋다”며 “나이가 들면 목표가 사라지는데, 합창과 공연이라는 새로운 삶의 목표가 생겨 기쁘다”며 환하게 웃었다.박희(73)씨는 “노래하면 안 늙는다는 말처럼 단원들끼리 ‘이 모습 그대로 늙지 말자’고 이야기한다”면서 “노래를 잘하기 위해 운동을 하면서 더 건강해지고 활력이 생겼다. 임종 전까지 노래하고 싶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김창윤(74)씨도 “함께 연습하는 기쁨이 일주일을 채운다”며 “공연을 보러 오는 가족들의 응원과 기대를 받는 것도 큰 행복이다”고 미소지었다.20일 서울 관악구 한 연습실에서 김형우 지휘자가 브라비시모콰이어 합창단의 연습을 지도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김 지휘자는 “사회적 활동을 통해 어르신들에게서 긍정적 변화가 보인다”면서 “자신감 있게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면 마음가짐이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이번 공연에는 구로구 지역아동센터 아동들로 구성된 ‘구구단소년소녀합창단’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 10대부터 80대까지 전 세대가 한 무대에 서는 셈이다. 이번 음악회는 나눔의 의미도 있다. 공연 수익금의 일부를 지역사회에 기부할 예정이다. 김 지휘자는 “60~70대 단원들이 품은 삶의 궤적과 목소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자 희망”이라며 “가곡과 대중가요, 그리고 관객이 다 함께 부르는 싱어롱 무대를 통해 전 세대를 아우르는 뜨거운 위로와 기쁨을 선사하고, 수익금 기부를 통해 나눔의 가치도 실천하겠다”고 강조했다.20일 서울 관악구 한 연습실에서 브라비시모콰이어 합창단이 연습에 임하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 태몽도 닭인 사나이의 혜안…황올한 K치킨, 57개국 날다
-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이제는 14억 인구의 인도다.” 제너시스BBQ가 미국·중남미에 이어 인도까지 발을 넓히며 글로벌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인도 벵갈루루에 1·2호점을 동시에 열면서다. 이를 시작으로 내년까지 약 30개 점포를 확보한다는 구상이다. 1995년 서울의 작은 치킨 프랜차이즈로 시작한 BBQ의 영토는 이제 세계 57개국, 800여개 매장으로 넓어졌다. 그 중심에는 “맥도날드를 뛰어넘는 세계적 프랜차이즈를 만들겠다”고 외쳐온 윤홍근(71) 제너시스BBQ그룹 회장이 있다.윤홍근 제너시스BBQ 회장이 카자흐스탄 MF 관계자들과 함께 BBQ 메가 알마아타(MEGA ALMA ATA)점을 찾은 현지인들에게 BBQ 치킨 메뉴를 설명하고 있다23일 업계에 따르면 윤 회장은 요즘 몸이 열개라도 모자란다. 올들어 벌써 수차례나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사회공헌 활동과 글로벌 사업을 직접 챙기며 질적인 도약을 겨냥한 큰 그림을 그리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닭으로 성공한 윤 회장은 닭과 유별난 인연을 갖고 있다. 조선대 무역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1984년 미원(현 대상)그룹에 공채로 입사한 후 해외곡물수입부, 기획부, 총무부, 영업부 등을 거치며 현장을 두루 경험했다. 1994년 미원이 인수한 닭고기 유통·가공업체 마니커 영업부장을 맡으면서 닭을 활용한 사업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당시 닭고기 수요는 점점 한계점에 이르고 있었고, 돌파구가 절실했다. 마니커의 신규사업으로 소형 치킨전문점을 구상했지만 회사의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윤 회장은 ‘치킨을 파는 게 아니라, 브랜드와 경영노하우를 판다’는 구상 하나로, 안정적인 대기업에 사표를 던지고 치킨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의 나이 마흔이었다. 주변에서는 수많은 만류와 우려가 쏟아졌다. 당시 치킨 시장은 동네 호프집 중심의 주먹구구식 장사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회장의 눈에는 남들이 보지 못한 ‘틈새’가 명확히 보였다. “여성과 어린아이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위생적이고 건강한 치킨을 만든다면, 치킨 역시 고부가가치 브랜드 산업이 될 수 있다.” 이 단순하지만 강력한 확신으로 그는 1995년 9월 BBQ를 세웠다. 전셋집을 월세로 바꾸고 저축과 은행 대출로 1억원을 조달한 뒤, 부족한 4억원은 10여 명의 지인과 선·후배들에게 2000만~5000만원씩 투자를 받았다. 자금 조달 과정은 윤 회장의 신뢰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의리와 신뢰 하나로 지금까지 마니커로부터 닭을 공급받으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사업을 본격화하면서 윤 회장의 도전정신과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BBQ는 과감한 투자와 철저한 시스템을 기반으로 판을 흔들었다. 매장 운영의 표준화와 가맹점 확대를 통해 어느 매장에서 먹더라도 일정한 맛을 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공을 들였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위기를 기회로 만들기도 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3년 12월 발생한 ‘조류 독감’은 최악의 시기로 꼽힌다. 하지만 외환위기로 명예퇴직을 한 많은 직장인을 대상으로 공격적인 가맹점 마케팅을 펼친 결과 창립 1년 만에 100호점, 2년 만에 500호점, 4년 만에 1000호점을 돌파하며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2005년에는 올리브오일을 치킨 조리에 접목한 황금올리브치킨을 선보이며 주목 받았고, 치킨대학을 중심으로 교육과 품질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제품과 운영 전반에서 혁신을 이어왔다.국내 1위에 안주하지 않은 그의 시선은 곧바로 세계를 향했다. 2003년 중국을 시작으로, 2006년에는 세계 최대 외식 시장인 미국에 발을 디뎠다. 해외 진출 초기부터 윤 회장이 강조한 것은 ‘한국식 치킨의 현지화’였다. 한국에서 성공한 방식을 그대로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 소비자의 입맛과 문화, 상권 특성을 반영하면서도 BBQ만의 맛과 브랜드 정체성은 유지하는 전략을 택했다.2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뚝심 있게 해외 시장에 공들인 결과, BBQ는 현재 전 세계 57개국에서 800여 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글로벌 프랜차이즈로 우뚝 섰다. 해외 매출도 전체의 약 30% 수준까지 확대됐다. 경쟁사인 bhc와 교촌의 해외 매출 비중이 각각 1~3%대에 머무는 것과 비교하면 BBQ는 해외 시장을 이미 별도의 성장축으로 만들어냈다는 평가다.“나의 태몽은 ‘춤추는 닭’이었다. ‘닭은 내 운명’이다.” 그가 농담처럼 던지는 이 말 속에는 그의 진심이 담겨 있다. 윤 회장은 최근 국내 기업 CEO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BBQ의 31년은 위기 때마다 새로운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스스로 만들어 온 도전의 시간이었다”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세계 시장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장기 목표는 더욱 공격적이다. 윤 회장은 2030년까지 전 세계 BBQ 매장을 5만개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국내 치킨 시장이 고물가와 소비 위축으로 정체기에 접어든 상황에서 성장의 무대를 해외로 옮기겠다는 의미다. 얼마나 많은 국가에서 브랜드를 구축하고 현지 매장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지가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다. 윤 회장이 지금도 해외 현장을 직접 챙기는 이유다.2023년 8월, 글로벌 현장경영을 위해 파나마에 방문중인 제너시스BBQ 그룹 윤홍근 회장이 현지 오픈 매장을 둘러보고 있다.
- 박수영 "3년 전 호남 가뭄 물 계획, 반도체 용수로 둔갑"
-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서남권 반도체 산단 조성의 핵심 변수로 용수 확보 문제가 제기되는 가운데,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일일 65만 톤 용수 세부 공급 방안이 지난 2022~2023년 당시 호남권의 극심한 가뭄 당시 정부가 세운 ‘가뭄대책의 일환’이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부산 남구)은 2023년 10월 기후에너지환경부(당시 환경부)가 발간한 ‘영산강·섬진강유역 가뭄백서(2022~2023)(이하 가뭄백서)’를 분석해 7일 이같이 밝혔다. 앞서 지난 30일 기후부는 △동복댐 30만톤(여유량 5만톤 및 댐 증고 25만톤), △주암댐 5만톤(과다 배분 미사용량) △장흥댐 10만톤(여유량) △보성강댐 10만톤(발전용수의 공업용수 전환) △나주댐 10만톤(농업용수 대체공급 절약분)으로 총 일일 65만 톤 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 2023년 정부가 발간한 가뭄백서에 따르면, ‘동복댐·주암댐’의 경우 ‘여유’분 자체가 부족한 ‘고갈’수준이다. 광주의 핵심 식수원인 동복댐은 지난 2023년 3월 당시 제한급수 위기에 봉착했고, 영산강 하천수를 용연정수장으로 보내는 긴급공사로 저수위 도달 시점을 가까스로 미뤘다. 또한 2023년 4월 동복댐은 14년 만의 최저 저수율 19.1%(예년 57.8%)를 기록했다.주암댐은 지난 2022년 8월, 준공 이후 최초로 가뭄 ‘심각’ 단계에 진입해 251일간 지속됐고, 2023년 4월에는 역대 최저 저수율 20.3%를 기록한 것으로 확인됐다. 백서에서는 주암댐이 2015년 이후 5년간 가뭄 ‘주의’ 단계에 진입하는 등 “점점 더 가뭄에 취약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장흥댐 역시 지난 2023년 4월 유효저수율이 24.7%까지 떨어졌고, 나주댐은 2022년 당시 33.1% 최저 저수율을 기록했다. 보성강댐은 실제로 지난 2022년 7월부터 2023년 5월까지 발전을 멈추고 총 3070만톤을 주암댐에 긴급 지원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장흥댐의 여유량 10만톤은 이미 지난 2023년 ‘영산강ㆍ섬진강 유역 중장기 가뭄대책’상 영산강유역 6개 시군(광주ㆍ목포ㆍ나주ㆍ화순ㆍ함평ㆍ영광 등)의 주민 물공급을 위한 기본대책으로 수립됐던 수량이다. 지난 30일 발표된 장흥댐 여유량은 이미 3년전 ‘가뭄 대책’에 따라 배정된 물량과 중복이라는 지적이다.이재명 정부가 밝힌 주암댐 여유량 역시 반도체가 아닌, 여수ㆍ광양산단 용수 공급을 위해 취수시설 및 도수관로 설치가 진행 중이다. 장흥댐을 통해 확보한 주암댐의 여유량은 지난해 3월 총사업비 2128억원 규모의 여수 지역 공업용수도(광양4단계)사업‘이 정부의 예비타당성 심의를 통과하면서 여수ㆍ광양 산단 용수계획으로 사실상 확정된 것이다.박수영 의원은 “불과 3년 전엔 ’비상 가뭄대책‘이었던 똑같은 물이 이번 ’호남 반도체 용수공급계획‘에 포함된 것”이라면서 “정부는 가뭄 시 광주ㆍ전남 주민들의 식수ㆍ생활용수 비상재원을 끌어다 반도체 용수로 쓰겠다는 끼워맞추기식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또한 “이번 호남 반도체 용수공급 방안 65만톤은 그야말로 졸속 발표에 불과하다”면서 “수백조 원이 투입될 국가의 명운이 걸린 사업 기초 계획이, ’주먹구구‘도 되지 않는 수준’에 대한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