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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심 스타 뜬다..."사랑합니다! 대한민국"
  • [윤PD의 연예시대①]애국심 스타 뜬다..."사랑합니다! 대한민국"
  • ▲ 추성훈, 김장훈, 이승엽(왼쪽부터)[이데일리 SPN 윤경철 객원기자] '아이 러브 대한민국'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연예인들이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국가대항전 성격이 강한 올림픽과 8월15일 광복절 그리고 독도문제가 맞물리면서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연예인들이 온,오프라인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것. 스타들의 애국심에 대해 일부에서는 마케팅 또는 홍보수단으로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이들은 진정성과 묵묵히 자신의 길만을 가는 무소의 뿔같은 모습으로 국민들의 많은 호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 올림픽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스포츠스타 못지 않는 사랑을 받는 스타는 가수 김장훈이다. 얼마 전 뉴욕타임즈에 독도광고를 개제해 화제를 모은 김장훈은 자신의 이미지를 기부 연예인에서 나라사랑 연예인으로 바꿔놓았다. 그는 최근 '민족사적 애국가'를 불러 화제가 되고 있기도 하다. 광복절을 맞아 독립군가로 만든 애국가를 온라인 음원 사이트에 무료배포해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것. 독립군 애국가는 국가보훈처에서 2005년 제작한 광복60년 독립군가 다시부르기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광복을 다시 새기고 독립군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보훈처의 요청으로 김장훈이 애국가를 불러 수록하게 됐다. 김장훈은 여기에 독도 논문 페스티벌까지 열겠다고 밝혀 눈길을 끌고 있다. 김장훈의 이런 모습에 대해 일부에서는 애국심 마케팅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그를 잘 아는 지인들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지독히 사랑하는 김장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몇 년 전부터 연예인들이 대부분 무관심했던 대한민국 알림이 반크(VANK : 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 등에 관심을 가져온 점이나 민족주의에 조예가 깊은 그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반박했다. 지난 17일 올림픽 중국전에서 끝내기 안타를 친 이승엽 역시 남다른 애국심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출중한 실력도 찬사를 이끌어낼만 하지만 조국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은 그를 우러러 보게까지 한다. 이승엽은 지난 2000년 이후 온갖 개인적인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각종 국제대회에 참가해 맹활약을 떨쳐왔다. 그런 그에게 사실 어느 누구도 올림픽 출전을 강요할 순 없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40인 로스터 올림픽 출전 불허가 내려지면서 올림픽 대표팀이 어려움을 겪자 고민 끝에 이승엽은 아무런 조건없이 올림픽호 승선을 결정했다. 그의 이번 결정은 엄청난 자기 희생의 결과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의 이승엽에게 사실 이번 올림픽 출전은 현실적으로 득보다 실이 많을수 있다. 고액 연봉 선수가 팀내에서 기여가 약하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국가가 부르자 아무런 조건없이 합류했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 이승엽의 이런 모습에 대해 OBS 구경백 해설의원은 "어린 시절부터 이승엽의 애국심은 남달랐다"면서 "국민이 자신에게 보내준 성원을 국가대표 활약을 통해 갚아야겠다는 사명감 등이 이번 결정을 내리는데 큰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올림픽 중계로 화제가 된 추성훈 또한 애국심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재일교포 4세인 추성훈은 일본으로 국적을 바꾸고도 올림픽에서 금메달의 꿈을 이루지 못했던 비운의 선수다. 모 방송사 유도해설의원으로 나섰던 추성훈은 얼마전 왕기춘 선수의 경기를 중계하기 전 "이번 올림픽에선 일본 선수들이 아닌 한국 선수들을 응원하겠다"고 강한 애국심을 보여 시청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일본에서 활약하지만 그는 도복에 새겨진 태극기를 두드리는 세레머니를 하는가 하면 "나에게 한국의 피가 흐르고 있다"며 변함없는 조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 사랑받고 있다.  애국심 강한 스타들에 열광하는 최근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중이 맹목적 애국심에 찬사를 보내기 보다는 그들의 나라를 생각하는 진정성과 과정에 찬사를 보내고 있는 것"이라며 "올림픽이 막바지로 치달을 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가속화 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OBS경인TV '윤피디의 더 인터뷰' '쇼영' 프로듀서(sanha@obs.co.kr) ▶ 관련기사 ◀☞[윤PD의 연예시대③]이배영, 남현희...베이징 '우생순' 스타에 방송계 관심☞[윤PD의 연예시대②]'월드스타' 비-김윤진-이영애, 그들만의 나라 사랑법☞[윤PD의 연예시대③]연예인이여~ 박태환에게 배워라!☞[윤PD의 연예시대②]박태환에 울고 웃는 가요계☞[윤PD의 연예시대①]'아이 러브 마린보이'...연예계 강타 박태환 신드롬
2008.08.18 I 윤경철 기자
(인터뷰)"소득격차 해소에 기여하고 싶다"
  • (인터뷰)"소득격차 해소에 기여하고 싶다"
  • [이데일리 양효석기자] "올해 IT 서포터즈는 단순 교육에 그치지 않고 소외계층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도 노력중입니다" KT(030200)의 IT 서포터즈 총책임을 맡고 있는 한동훈 기술지원본부장은 "작년 1기 봉사활동 때는 IT 소외계층을 중심으로 교육을 했지만, 올해부터는 봉사활동을 다각화를 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강국이지만 아직까지 국민 4명중 1명은 인터넷 소외계층인 것이 현실.  장애인, 중장년층, 노소년층 중 정상적인 환경에서 생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문제는 이러한 정보격차가 소득격차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본부장은 "정보격차를 줄여 소득격차도 줄여주는 것이 관건"이라며 "올해 2기부터는 소외계층이 컴퓨터 교육을 통해 취직 등 경제자립을 할 수 있도록 교육프로그램도 운영중"이라고 설명했다. 자격증 취득이나 취직에 필요한 컴퓨터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한 본부장은 또 "소외계층 뿐만 아니라 대학생들에게도 기업의 IT 실무지식을 전달하고 있다"면서 "폴리텍대학과 협조해 이론중심 교육에서 벗어난 통신시스템 실무를 강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400명 KT 인력을 빼내 봉사활동에 투입한다고 했을 때 내부에서 반대의견도 많았다고 회상하는 한 본부장. 그러나 그는 최근 IT 서포터즈를 통해 KT의 기업이미지도 올리고 사회에서 긍정적으로 봐주는 덕에 힘이 난다고 말한다. 한 본부장은 "기업은 비용을 최소한으로 줄이려 하는게 생리이지만, 과연 사회봉사활동을 비용측면 만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보면 IT 서포터즈는 IT 관련 고객의 꿈을 실현시키고 고객가치를 제고시켜, 기업가치를 높이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한 본부장 이어 IT 서포터즈를 운영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로 김정대씨를 꼽았다. 김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 미국으로까지 파견 나가게 된 촉망 받는 컴퓨터 설계 기사였다. 그러나 한국으로 3년 만에 돌아온 지 불과 한 달도 안 되 교통사고를 당해 뇌병변 1급 장애인 판정을 받았다. 소아마비 환자처럼 언어표현과 보행이 자유롭지 못하며 학습능력도 현저하게 떨어진 그에게 IT 서포터즈가 다시 컴퓨터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 사고 이후로 기초적인 컴퓨터 활용만 할 수 있던 그는 이후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웹마스터가 되겠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한 본부장은 "IT서포터즈의 나눔활동은 단순한 정보 전달뿐만 아니라 희망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르포)KT '서포터즈', 기업가치도 높이다☞KT, 5년간 IPTV 2조 투자..전국 97% 커버☞(단독)KT·KTF 합병주관사에 JP모간체이스
2008.08.18 I 양효석 기자
'2년만의 컴백' 김범수, "군 제대 후 오히려 회춘했다네요"
  • '2년만의 컴백' 김범수, "군 제대 후 오히려 회춘했다네요"
  • ▲ 6집으로 돌아온 가수 김범수[이데일리 SPN 박미애기자] ‘얼굴 없는 가수’ 김범수가 돌아왔다. 2006년 5집 발표 후 나라의 부름을 받고 군에 입대, 잠시 가요계를 떠나 있었던 그가 19일 6집 앨범을 들고 다시 팬들 곁을 찾는다. 새 앨범 발매를 몇일 앞두고 팬들과 다시 만날 생각에 가슴이 벅차다는 그를 만났다. 지난 3월 제대하고 5개월만이다. 아직은 군발이 티를 덜 벗은 모습에 군기가 덜 빠져 다소 뻣뻣하리라는 기자의 예상은 어김없이 빗나갔다. 김범수는 "군대에 갔다 왔더니 사람들이 오히려 회춘했다고 하더라"며 한층 여유있는 모습으로 말을 이었다.  ◇6집 '슬픔활용법', 진짜 내 것 같은 느낌군대에 있으면서 2년 넘게 묵혀온 음악에 대한 갈증이 이번 앨범으로 단번에 해소될 순 없을 터였다. 하지만 김범수는 이번 앨범에 자신이 직접 작사에 참여할 만큼 많은 공을 들였다. “그동안 활동하면서 제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얘기들을 이번 앨범에 담았어요. 지금까지는 프로듀서에 의해 수동적으로 움직여 왔었다면 이번에는 작사에도 참여하면서 프로듀서와 공동으로 작업을 많이 했죠. 제 입김을 불어넣고 제 손때를 묻혔기 때문에 애착이 안 갈 수 없는 앨범이에요.” 앨범에 대한 그의 애정은 표면적으로도 드러난다. 이번 앨범에는 총 15곡이 수록돼 있으며 타이틀곡 ‘슬픔활용법’은 지금껏 그가 해온 음악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의 타고난 보컬 실력에 ‘역시’라는 감탄사를 절로 자아낸다. 또한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쉬운 이별’, 컨트리풍의 ‘님아’, 가스펠 넘버 ‘은혜로’ 등 발라드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시도함으로써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히려고 노력한 점도 높이 살만하다. “걱정해주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저 역시 다양한 음악을 한다는 것이 자칫 제 색깔을 퇴색케 하는 건 아닐까 고민이 많았죠. 하지만 바로 앞의 상황만 보고 달릴 순 없잖아요. 인순이 선배님이나 이승철 선배님처럼 ‘롱런’하는 가수가 되고 싶거든요. 당장은 쉽지 않고 결과 또한 제 생각과 다를 수 있겠지만 멀리 내다보는 차원에서 조금씩 변화를 시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뿐만 아니라 그는 인터뷰를 통해 여자친구의 존재에 대해서도 깜짝 고백했다. 김범수는 ‘님아’라는 곡을 소개하며 10년간 자신의 곁을 한결 같은 마음으로 지켜준 여자친구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 곡이라고 수줍게 전했다. ◇'얼굴 없는 가수', 군대서 인지도 업~ 김범수는 군대에 있을 때 연예병사로 복무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공연을 다니며 군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데 동원되곤 했단다. 그는 군입대 전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한 탓에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군대에 있으면서 인지도가 상승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물론 여전히 저를 알아보시는 분들은 많지 않아요. 하지만 군대에 있으면서 공연 다니고 사진도 찍히고 그러면서 이전보단 얼굴이 많이 알려졌죠. 군 시절이 사실 힘들긴 했는데 사람을 얻었다는 흐뭇함도 있어요. 원래 소극적인 편이라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성격이 못 되거든요. 군대는 싫든 좋든 한 공간에서 같이 생활을 해야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되더라고요.” 탤런트 지성과의 인연도 그렇게 맺어졌다. 군대에서의 인연으로 김범수는 지성의 일본 팬미팅에 게스트로 초대받아 무대에 섰으며, 이번 6집 타이틀곡 뮤직비디오에선 지성이 주인공으로 나서 의리를 과시하기도 했다.  ◇제대 직후 성대 결절, '롱런' 목표 되새기는 전화위복의 시간 제대 후 첫 앨범, 그런만큼 부담감도 적지 않았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수차례 자신 스스로를 가다듬었지만 욕심을 버린다는 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데뷔곡 ‘하루’로 2001년 미국 빌보드 차트 ‘핫 싱글즈 세일즈’ 부문에서 51위를 차지한 바 있고 2004년에는 드라마 ‘천국의 계단’의 주제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보고싶다'라는 히트곡도 가지게 됐다. “멀리 내다보자 하며 마음을 추스렸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더라구요. 대중은 항상 부담스런 존재예요. 게다가 제대 직후 목 상태가 극도로 악화돼 병원에서 성대 결절 판정을 받은 후엔 한 동안 우울증 아닌 우울증까지 알아야 했어요.” 성대 결절, 가수들이 두려워하는 병 중 하나다. 특히 목소리 하나로 지금의 자리에까지 오른 김범수에게 있어선 그 순간 ‘여기서 끝인가’라는 공포마저 엄습해왔다. 김범수는 새 앨범을 빨리 내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에 더욱 힘들었던 시기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한 달 동안 아무 것도 안 했어요. 사람들도 만나지 않았죠. 병원에서 치료받고 회복하면서 다시 발성 연습을 하고 예전의 컨디션으로 끌어올리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하지만 제대 직후의 이 혹독했던 시련기가 오히려 롱런하는 가수가 되자라는 자신의 오랜 꿈을 되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그는 말했다. 시련의 순간을 '위기'라 생각치 않고, 자신 스스로를 단련시키는 전화위복의 시간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저는 발라드 가수라는 이미지가 컸던 것 같아요. 앞으로는 자타가 인정하는 보컬리스트로 대중을 선도하는 뮤지션이 되고 싶어요.” (사진=한대욱기자)▲ 가수 김범수▶ 관련기사 ◀☞김범수 "10년 사귄 여자친구 있다"
2008.08.18 I 박미애 기자
  • (전문)이명박 대통령 8.15 경축사
  • [이데일리 이진우기자] “위대한 국민, 새로운 꿈 ” □ 위대한 국민, 기적의 역사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재외동포와 국가유공자, 그리고 내외귀빈 여러분! 60년 전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선포되었습니다.5천년 한민족의 역사가 임시정부와 광복을 거쳐 대한민국으로 계승되는 순간이었습니다.그러나 한 때 이 자리에는 동족상잔으로 붉은 깃발이 올라가기도 했습니다.용맹한 우리 국군이 태극기를 다시 꽂았지만 수백만의 목숨이 스러지고 국토는 폐허가 되었습니다. 어느 참전 장군은 “이 나라는 백년이 지나도 복구되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하지만 우리는 일어섰습니다.경제규모는 그 때보다 750배나 커졌고 1인당 소득도 300배 넘게 늘어났습니다.우리의 발전은 경제에 그치지 않았습니다.4.19 혁명과 5.18 민주화운동, 6.10 항쟁을 거치며 인권과 민주주의는 굳건히 뿌리를 내렸습니다. 올림픽을 치르고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루며 유엔 사무총장까지 배출하였습니다.비록 시련과 굴절은 있었지만 우리는 줄곧 전진해 왔습니다.저는 오늘 분명히 말하고자 합니다. 대한민국 건국 60년은 ‘성공의 역사’였습니다.`발전의 역사` 였습니다.`기적의 역사` 였습니다. 위대한 국민 여러분!‘기적의 역사’는 국민 여러분이 모두 함께 써내려간 것입니다.그 주인공은 바로 국민 여러분입니다.조국의 광복을 위해 목숨을 던진 순국선열들이 계셨습니다.6.25전쟁에서 장렬히 산화한 수많은 무명용사들이 있었습니다. 이 분들이 없었다면, 자유 대한민국은 없었을 것입니다. 일자리를 찾아 이역만리에서 고생한 간호사와 광부가 있었습니다.동생의 학비를 대기 위해 밤새 재봉틀을 돌리던 우리의 누이가 있었습니다.열사의 땅에서 비지땀을 흘린 산업역군들이 있었습니다. 자식교육을 위해 손발이 닳고 허리가 휘어도 내색 않던 우리의 부모님이 있었습니다. 이 분들이 없었다면, 한강의 기적은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불의와 독재에 맞서 싸운 수많은 학생과 시민, 선거 때마다 한 표로 선거혁명을 이룬 유권자들,이 분들이 없었다면, 민주화의 길은 아직도 멀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위기 속에서 단합했고 시련을 겪을수록 더 강해졌습니다.금융위기에 장롱 속 금붙이를 선뜻 내놓은 서민들, 기름으로 뒤덮인 태안 바닷가에 내 일처럼 뛰어온 자원봉사자들. 여러분이 아니었으면 오늘은 없었을 것입니다.기적의 역사를 남들은 신화라고 하지만, 그것은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의 산물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위대한 국민 여러분!저는 국민 여러분이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나라의 회갑을 맞은 오늘, 우리 선조께 감사의 박수를 보냅시다.우리 모두에게 긍지와 자부심의 박수를 보냅시다.우리 후손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냅시다.저는 이 역사가 기록되고 새롭게 이어질 수 있도록 ‘현대사 박물관’을 짓겠습니다. 광화문 앞에서 숭례문까지 거리를 ‘국가의 얼굴’로 가꾸어 우리의 자긍심을 높이고 미래를 여는 새로운 원동력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자유를 향한 여정자랑스러운 국민 여러분,저는 건국 60년을 맞아 국가의 독립과 영토를 보전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발전시켜 국민의 복리를 증진하라는 헌법의 명령을 엄숙히 받아들이며 그 책무를 다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역사는 구경하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사람들의 것입니다.자유는 결코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건국 60년 우리는, <자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유를 위협하는 모든 것들과 당당히 싸워왔습니다.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 빈곤과 싸웠습니다.정치적 자유를 얻기 위해 억압과 독재와 싸웠습니다. 사회적 자유를 얻기 위해 차별과 싸웠습니다.그리고 문화적 자유를 얻기 위해 편견과 싸웠습니다.자유는 우리가 숨 쉬는 공기와 같습니다. 자유를 향한 우리의 여정은 인류 보편의 가치를 구현하고 있기에 더욱 값진 것입니다.우리가 추구하는 자유의 가치는 이제 더 넓고 더 깊어져야 합니다.자유는 자율과 창의, 책임과 신뢰, 배려와 협력 속에서만 뿌리를 내릴 수 있습니다. 자유는 행복한 가족과 따뜻한 공동체 없이는 꽃 피울 수 없습니다.자유는 폭넓은 자아실현의 기회가 없이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건국 60년이 기본적 자유를 얻는 시간이었다면, 앞으로 60년은 성숙한 자유를 구현하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대한민국의 건국은 완성될 것입니다.□ 새로운 60년을 열며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제 새로운 60년이 열립니다.‘성숙한 자유’의 시대가 열립니다.우리 모두가 열망하는 선진화의 문이 활짝 열립니다.우리가 꿈꾸는 선진일류국가는 개인의 행복과 국가의 발전이 조화를 이루는 나라입니다.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성숙이 균형을 이루는 나라입니다.‘잘사는 국민’, ‘따뜻한 사회’, ‘강한 나라’입니다.인류의 모범이 되고 세계로부터 존경받는 나라입니다.선진일류국가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기본>부터 다시 돌아보아야 합니다.기본이 충실하지 않으면 사상누각일 뿐입니다. 압축 고도성장 과정에서 우리가 소홀히 한 것, 우리가 놓친 것들을 다지고 채워야 합니다.저는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안전>부터 확고히 하겠습니다. 우리 사회의 안전 수준은 선진국과 큰 격차를 보이고 있습니다.저는 식품안전만큼은 반드시 확보하겠습니다.국민들이 먹거리로 불안해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어린이와 부녀자가 폭행과 납치의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습니다.국민 개개인을 지키는 ‘인간 안보’는 ‘국가 안보’ 못지않게 중요합니다.일상생활과 산업·교통 등 사회전반에 걸쳐 대한민국을 안전 선진국으로 만들겠습니다.우리 사회의 <신뢰>도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놓아야 합니다.개인 간의 신뢰, 법질서의 준수, 정부의 투명성, 윤리경영과 노사관계, 이 모든 분야에서 한국은 현재 OECD 최저 수준입니다.신뢰가 없으면 갈등이 깊어지고 통합은 멀어집니다. 신뢰가 없으면 규제가 많아지고 거래비용이 높아집니다.그래서 신뢰는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이 귀한 사회자본, 정신자본입니다.<법치>도 확고히 하겠습니다.지키기 어려운 법령은 지킬 수 있도록 고치고, 합의된 법과 원칙은 반드시 지켜지도록 하겠습니다. 정부부터 투명성을 높여나가겠습니다.사회지도층부터 솔선수범하는 풍토를 만들겠습니다.법을 어기는 행위에 대해서는 저를 포함해 누구에게도 관용이란 있을 수 없음을 실천으로 보이겠습니다. 건국 60주년의 새로운 출발과 국민 통합을 위해 사면을 단행했습니다만, 이제 제 임기 동안 일어나는 비리와 부정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지 않을 것입니다. □ 새로운 60년의 비전: 저탄소 녹색성장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지금 우리 경제는 에너지 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양극화와 일자리 부족, 민생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이대로 주저앉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를 돌파하고 선진화의 문턱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더욱 창의적인 발상과 대담한 결단이 필요합니다.지금 우리는 문명의 변화를 보고 있습니다. 세계는 농업혁명, 산업혁명, 정보혁명을 거쳐 환경혁명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습니다.나무와 석탄과 석유의 시대를 지나 새로운 에너지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에게 이 같은 변화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입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저력을 발휘해 왔습니다.1차 석유파동은 해외건설 진출과 산업고도화의 계기로 삼았습니다.2차 석유파동은 안정 속의 성장과 대외개방의 촉매로 만들었습니다.최근의 고유가 사태도 우리 경제체질을 바꾸고 신성장동력을 창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대한민국 건국 60년을 맞는 오늘, 저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비전의 축으로 제시하고자 합니다.녹색성장은 온실가스와 환경오염을 줄이는 지속 가능한 성장입니다.녹색 기술과 청정 에너지로 신성장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는 신국가발전 패러다임 입니다.녹색기술은 정보통신기술, 생명공학기술, 나노기술, 문화산업기술을 아우르면서도 이를 뛰어 넘습니다.녹색기술은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일자리 없는 성장’의 문제를 치유할 것입니다.재생에너지 산업은 기존 산업에 비해 몇 배나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것입니다.정보화시대에는 부의 격차가 벌어졌지만 녹색성장시대에는 그 격차가 줄어들 것입니다.녹색성장은 한강의 기적에 이어 한반도의 기적을 만들 미래 전략입니다.우리가 처음 자동차를 만들 때 선진국과의 기술격차는 50년 이상이었습니다. 반도체는 20년 이상이었습니다.그러나 지금은 자동차 세계 5위, 반도체 세계 1위, 조선 1위 이렇게 기술국가로 성장했습니다. 우리가 먼저 결단하고 행동에 나선다면 녹색성장을 이끌고 새로운 문명을 주도할 수 있습니다.저는 이 녹색성장을 통해 다음 세대가 10년, 20년 먹고 살 거리를 만들어내겠습니다.□ 에너지 패러다임을 바꿀 총력투자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에너지 위기를 극복하고 녹색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우선 에너지 안보를 확고히 다지겠습니다.5% 남짓한 에너지 자주개발률을 임기 중에 18%, 2050년에는 50% 이상으로 끌어올려 에너지 독립국의 꿈을 실현하겠습니다. 자원의 보고인 북극해와 남극에 대한 탐사와 연구도 적극 추진하겠습니다.우리 민족이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진취적이고 창조적인 DNA를 가졌음을 안팎으로 알리겠습니다.신재생 에너지 사용비율을 현재의 2%에서 2030년에는 11% 이상, 2050년에는 20% 이상으로 높이도록 총력투자에 나서겠습니다. 녹색기술 연구개발 투자를 두 배 이상 확대하여, 2020년이면 3천조 원에 달할 녹색기술 시장의 선도국이 되겠습니다.새만금을 비롯해 국토 곳곳이 태양과 바람, 꽃과 바다 에너지가 만개하는 신천지가 될 것입니다.집집마다 신재생에너지를 쓸 수 있도록 ‘그린홈’ 백만호 프로젝트를 전개하겠습니다.LED와 무공해석탄과 같은 새로운 그린 에너지 기술도 개발하겠습니다.아울러 친환경 고효율 ‘그린 카’를 신성장 동력산업으로 중점 육성하겠습니다. 임기 중에 세계 4대 ‘그린 카’ 강국으로 도약시키겠습니다.기후변화종합대책도 9월 중에 마련하여, 올해를 저탄소사회로 가는 원년이 되도록 하겠습니다.돌이 없어서 석기시대가 끝난 것은 아닙니다. 석유시대도 석유가 없어서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설령 앞으로 유가가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과도한 석유의존시대와 결별해야 합니다.비록 탄소시대에는 뒤졌지만 다가올 수소시대에는 앞서 나가야 합니다. 그 길은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단절의 고통과 불편도 따를 것입니다.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를 앞당겼듯이 대담하고 신속하게 나아간다면, 반드시 녹색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삶의 질 선진화와 생활공감 정책사랑하는 국민 여러분!고령화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거대한 도전입니다. 1948년, 우리의 평균 수명은 50세에 미치지 못했습니다.그때는 생존이 문제였습니다.지금 우리의 평균기대수명은 80세에 달합니다.생애는 점점 더 길어지고 있습니다.이제 생존이 아니라 삶의 질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일과 교육과 여가를 통합할 수 있는 새로운 복지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고령 인구도 활발히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자리 모델을 설계해야 합니다. ‘개인의 행복’을 정책의 중심에 두는 국가 경영을 해 나가겠습니다.이를 위해 교육과 문화, 복지 분야의 혁신을 서둘러야 합니다.저는, 대한민국에 태어나 사는 것이 큰 행운이 되도록, 반드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정부는 고령화 사회에 근본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입니다. 이와 함께 민생과 직결되는 작지만 가치 있는 ‘생활공감정책’을 대폭 발굴하고 실행할 것입니다.소득이 적더라도 생활하는 데 불편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가난 때문에 공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겠습니다.이미 새 정부 들어 빈곤층 자녀에게는 대학 등록금을 대폭 지원하고 있습니다. 치매 중풍 환자는 국가가 책임져서 자식이 못하는 효도를 국가가 대신하도록 하겠습니다.‘장애인 정책발전 5개년계획’을 통해서 장애인이 불편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마음놓고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도록 보육만큼은 국가가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집 근처에서 편리하게 이용할 있는 문화시설과 체육시설이 촘촘히 들어서도록 할 것입니다.국민 생활의 불편을 가져오는 각종 규제는 신속히 풀겠습니다.모든 국민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 수 있는, 살맛나는 나라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착실히 전진할 것입니다.국민성공시대를 넘어서 국민행복시대를 열어나가겠습니다.존경하는 국민 여러분!한국인이 세계에서 존중받도록 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합니다.대한민국의 국가브랜드 가치는 우리 경제력의 30 퍼센트 대에 그치고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수십분의 1에 불과합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국가이지만 외국인들은 한국 하면, 노사분규와 거리시위를 먼저 떠올립니다. 우리가 선진국을 원한다면 우리의 이미지, 우리의 평판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합니다. 저는 조만간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브랜드위원회를 설치하겠습니다. 임기 중에 한국의 국가브랜드 가치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놓겠습니다. 이제 우리도 국제사회에서 친구를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공적개발원조(ODA)를 우리 위상에 맞게 늘리고 평화유지군 활동에도 적극 참여할 것입니다.우리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소중한 발전의 경험을 `글로벌 코리아 모델`로 승화시켜 세계와 공유해 나가겠습니다.십만명의 우리 젊은이들을 세계 곳곳에 보내 일하고 배우며 봉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7백만 재외동포와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도록 지원하겠습니다. 아울러 백만 외국인 시대를 맞아 전 세계의 인재들이 한국에서 일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출입국관리와 이주정책을 개선해 나가겠습니다.비록 땅은 좁지만 마음은 넓은 나라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세계로 뻗어가는 통일 한국의 꿈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새로운 60년을 여는 오늘,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꿈이 있습니다.남과 북 8천만 겨레가 하나 되어 세계로 뻗어나가는 꿈입니다.북한이 국제사회의 흐름에 동참하고 나아가 남과 북이 하나가 되면 우리는 유라시아-태평양 시대의 중심에 설 수 있습니다. 미국을 포함한 환태평양권은 세계 총생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세계 인구의 과반이 몰려있는 유라시아는 세계 총생산의 3분의 1, 세계 무역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유라시아-태평양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습니다. 남북한이 통일되면, 해양과 대륙이 연결되어 한반도는 닫힌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바닷길, 땅길, 그리고 하늘길로 유라시아와 태평양을 잇는 번영의 관문이 될 것입니다.부산에서 화물을 싣고 대륙횡단철도를 따라 중앙아시아, 서유럽까지 갈 수 있습니다. 해양시대와 대륙시대를 동시에 열면서 통일한국은 세계중심국가로 도약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그리고 북한 동포 여러분!저는 그 꿈을 8천만 겨레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다른 길이 있다 하더라도 북한을 우회하거나 뛰어넘고 싶지 않습니다.남과 북 모두가 함께 잘사는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평화가 정착되어야 합니다. 불신과 갈등의 원천이 되는 핵무기가 완전히 사라지고 그 자리를 상생과 공영의 기회로 채워 나가야 합니다.저는 얼마 전 부시 미국대통령과 만나서 “북한이 하루빨리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어 한국과 미국이 국제금융기구를 통해 대북지원에 적극 나설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유감스러운 금강산 피격사건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전면적 대화와 경제 협력에 나서기를 기대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이야말로 북한이 놓쳐서는 안 될, 변화의 호기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6자회담과 국제협력의 진전에 따라 실질적인 대북 경제협력 프로그램을 본격 추진하여 한반도 경제공동체를 실현해 나갈 것입니다.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입니다.혼자 꾸는 꿈은 꿈에 그칠 수 있지만 8천만 겨레가 같은 꿈을 꾸면 그것은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한민족이 하나가 되면 이토록 위대할 수 있음을 후손들에게 보여줍시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지금으로부터 63년 전 우리는 일제의 억압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였습니다.우리가 나라를 빼앗겼던 것은 무엇보다 우리가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합니다.이로써 우리의 영토를 부당하게 넘보는 일도 없어질 것입니다.일본도 역사를 직시해서 불행했던 과거를 현재의 일로 되살리는 우를 결코 범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위대한 국민, 새로운 꿈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우주 로켓은 처음 발사될 때 연료의 90%를 쓴다고 합니다.일단 중력의 한계를 돌파해서 하늘로 솟구치면 연료가 거의 들지 않습니다.선진국과 만년 중진국을 가르는 이치도 이와 같습니다.우리도 로켓처럼 3만 달러의 고비를 넘는다면 더 쉽게 4만 달러, 5만 달러 시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입니다.우리는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국민 여러분!좌절과 분열로는 우리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용기와 화합으로만 우리의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지금 세계는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안에서 소모적인 대립과 갈등으로 낭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이제 눈을 세계로 미래로 돌려야 합니다.선진일류국가를 위해 모두 힘을 합해야 합니다. 우리는 안전과 신뢰, 그리고 법치를 통해 선진국의 기초를 다질 것입니다.녹색성장으로 수소시대의 중심에 설 것입니다. 생활공감정책으로 행복한 삶을 추구할 것입니다.조금 전 여기에 섰던 아이들이 자신의 적성과 자질에 맞는 교육을 받고, 지구촌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자랑스러운 지구시민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힘을 합칩시다. 우리 아이들이 누리는 자유와 번영이 우리 세대보다 더욱 크고 의미 있도록 합시다.오늘 이 자리가 새로운 꿈이 시작되는 출발점이었음을 이 아이들이 60년 뒤 후손들에게 증언할 수 있도록 합시다.건국 60년, 기적의 역사가 새로운 꿈과 만납니다. 건국 60년, 기적의 역사는 새로운 60년에도 이어질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신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위대한 대한민국의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위대한 통일의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그리고 위대한 한민족의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우리 모두 함께 앞으로, 앞으로 나아갑시다. 감사합니다.
2008.08.16 I 이진우 기자
`건국 60년`..오줌에서 반도체 기적까지
  • `건국 60년`..오줌에서 반도체 기적까지
  • [이데일리 오상용기자] "오줌도 귀중한 외화자산이다." 수세식 변기 세대에게는 뭔 소리인가 싶다. &nbsp;하지만 불과 30년전만 해도 공중 화장실 벽마다 붙어있던 안내문이다. 유로키나제라는 중풍치료제가 있었다. 사람의 오줌에서 주요성분을 추출했는데, 당시 유로키나제 1Kg은 2000달러 넘게 거래되던 고가 약품이었다. &nbsp;딱히 수출할 게 없던 우리나라로선 오줌 한방울도 귀한 외화벌이 자산이었던 셈이다. 오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환갑을 맞는다. 지나온 60년의 발자취를 돌아보면 어느 하나 예사롭지 않은 변화가 없다. 사람도 강산도 살림살이도 나라경제도 몰라보게 변모했다. ◇내 시작은 미약했으나..첫 시작은 미약했으나 갈수록 창대해진 역사(役事)는 역시 수출이다. 14일 통계청이 내놓은 `통계로 본 대한민국 60년의 경제·사회상 변화`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수출이라는 걸 처음 시작한 1960년대 초만 해도 주요 품목은 자연광물이나 수산물이 전부였다. 오징어 활선어 돼지털을 비롯해 다람쥐와 갯지렁이도 외국으로 실려나갔다. 이후 70년대 가발과 스웨터의 전성기를 지나 80년대로 넘어오면 철강판과 선박이 주요 수출품목으로 등장한다. 88년 올림픽을 전후한 3저 호황(저달러 저금리 저유가)은 우리나라의 자동차와 전기전자제품을 세계에 알리는 기회였다.특히 80년 4억3400만달러에 그쳤던 반도체 수출은 지난해 390억4500만달러어치 수출되며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으로 자리잡았다. ◇부동산 대책 만큼 어려웠던 전화 대책 전화 한대가 아파트 한채 값과 맞먹던 시절이 있었다. 1955년 전화가입자는 3만9000명으로, 인구 1000명당 2대꼴이었다. 장·차관이나 국회의원 정도 아니면 꿈도 못꾸는 문명의 이기였다. 1962년부터 정부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통신사업 5개년 계획에 착수하면서 전화 수요는 급증했다.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화의 매매가 허용되자 전화 값은 천정부지로 뛰기 시작했다. 전화를 사고팔거나 전·월세를 놓아주는 `전화상`이 서울에만 600여 곳에서 성업을 이뤘다. 전화를 둘러싼 부조리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정부는 `전기통신법`을 개정, 전화 매매를 금지시키기에 이른다. 그러나 정치권과 언론은 공급이 턱없이 모자란 판에 매매를 금지시키면 실수요자의 피해가 커진다며 반발했고, 결국 1970년 9월 1일 이전에 가입한 전화는 매매할 수 있도록한 반면, 새로 가입하는 전화는 금지하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졌다. 그렇게 귀했던 유선전화는, 삐삐와 시티폰을 지나 본격적인 모바일 시대를 맞으면서 휴대전화에 맹주의 자리를 넘겨주고 있다. ◇"나, 미군에서 타자 쳐".."와~오빠 짱" 달라진 시대상 만큼 직업풍속도의 변화도 다채롭다.1945년 광복 직후 미 군정 시절에는 미군 부대에서 일하는 타이피스트가 최고의 인기를 누린 직업이었다. 또 고물상과 광산개발업자도 주목 받는 직업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교사는 제때 현금으로 보수를 받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직업이자 존경받는 직업인으로 선망 받았다. 1950년대는 전차운전사 전화교환원 라디오조립원 등이 유망 직종으로 떠올랐고, 60년대에는 은행원이 손꼽히는 신랑감, 우체국 경찰서의 전화교환수가 인기 신부감이었다. 70년대로 오면 해외 주재원으로 나갈 수 있는 종합상사맨이 선망의 대상이었고, 해외여행이 자유로운 항공승무원도 여성의 인기 직종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우리사회에는 예상치 못한 다양한 직업군이 탄생하고 있다. 오락실에서 게임으로 소일해 부모 속을 썩이던 소년이 `프로게이머`가 되고, 인터넷 학습사이트 교사인 `사이처` 등이 등장했다.
2008.08.14 I 오상용 기자
‘ 잔류 선언’ 호날두의 미래는?
  • [유럽축구 확대경]‘ 잔류 선언’ 호날두의 미래는?
  • [이데일리 SPN 송지훈 객원기자] 유럽을 대표하는 두 명문 클럽 레알 마드리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사이에서 펼쳐진 ‘호날두 전쟁’이 결국 원 소속팀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3.맨유)는 지난 7일 포르투갈 일간지 '푸블리코'와의 인터뷰를 통해 “현 상황에서는 맨유에 잔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선택임을 깨달았다”며 “최소 1년 이상 팀을 위해 뛸 것”이라고 공식 선언했다. 한때 레알 마드리드가 9000만유로(1400억원)에 달하는 파격적인 이적료를 제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적 협상이 급물살을 탈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기도 했지만 결국 역대 최고 이적료 신기록은 탄생하지 않았다.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이 “호날두의 거취와 관련한 논란은 이제 끝났다”며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는 사이 레알 마드리드측은 네덜란드 국가 대표 출신 미드필더 라파엘 반 데 바르트를 영입하는 등 전력보강을 위한 차선책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축구계에는 현대판 노예들이 많이 있다”는 제프 블라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의 발언과 맞물려 세계 축구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 호날두 이적 사태가 두 달 여 만에 ‘해프닝’으로 마감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소속팀 변경과 관련한 논란과 설전이 종료되었다고 해서 상황이 모두 잠잠해진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맨유 클럽하우스 안팎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적협상이 답보상태에 머물던 무렵 호날두가 잇따라 내놓은 수위 높은 발언들이 이제 스스로의 발목을 잡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당시 호날두는 “내 오랜 꿈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무대를 밟아보는 것이었다”, “결국엔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게 될 것으로 믿는다”, “그간 최선을 다해 뛰었으니 이제 맨유가 나를 놓아줘야 한다”는 등 강경 발언을 서슴지 않아 홈팬들의 분노를 샀다. 앞서 언급한 블라터 회장의 발언에 대해 “바로 내가 현대판 노예”라며 적극적으로 공감을 표시한 것 또한 구단 관계자들을 씁쓸하게 했다. 일부 현지 언론이 “주급 12만파운드(2억4000만원)를 받는 노예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라며 비난을 퍼부은 건 탐탁지 않은 현지 분위기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이적 논란의 불씨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 역시 불안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호날두는 레알 마드리드행 포기를 선언하면서도 “맨유에 최소 1년 이상 머물겠다”고만 밝혀 언제든 다시금 소속팀 변경을 추진할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 “장기 계약을 원한다”는 퍼거슨 감독의 발언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는 점 역시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실제 스페인 언론들은 여전히 “올 시즌이 끝나면 다시 호날두에 대한 레알 마드리드의 러브콜이 시작될 것”이라는 보도를 내놓고 있는데, 이 또한 ‘호날두의 마음은 이미 스페인으로 기울었다’는 판단에 뿌리를 두고 있다. 문제는 올 시즌 잔류를 선택하면서 호날두의 어깨가 그 어느 때보다도 무거워졌다는 사실이다. 지난 시즌 20대 초반의 포르투갈 청년이 맨유에서 이뤄낸 업적은 그야말로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명실상부’ 팀의 간판이자 구심점으로 거듭났을 뿐만 아니라 각종 대회를 통틀어 총 42골을 터뜨리며 리그 2연패와 유럽축구연맹(UEFA)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역량을 확인한 퍼거슨 감독 또한 과감하게 루니의 득점 비중을 줄이는 대신 호날두의 역할을 확대하는 전술 운용으로 화답했다. 이적 파문과는 상관없이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는 인물로 발돋움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2008-09시즌은 다를 수 있다. 특히나 홈 구장 올드 트래포드에서조차 애정 어린 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심리적인 압박이 적잖을 것으로 예상된다. 준수한 활약상을 이어간다면 비난의 강도를 조금씩이나마 낮춰갈 수 있겠지만 혹여 지난 시즌에 못 미치는 플레이에 그칠 경우, 또는 팀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엔 우선적으로 비난을 뒤집어 쓸 가능성이 높다. 현지 전문가들 또한 “슬럼프마저도 고의적인 태업으로 비쳐질 공산이 크다”며 “어린 데다 인내력이 강하지 않은 호날두에겐 결코 쉽지 않은 시즌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건 오프시즌 중 오른 발목 수술을 받아 시즌 초 몇 주간 필드에 나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팬들의 불편한 심기를 다소 누그러뜨리는 동시에 시선의 초점을 호날두 개인에서 클럽 전체로 확대시킬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된 셈이다. 너무 일찍 세계 최고수 반열에 올라섰기에, 그리고 지난 시즌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한 성과를 이끌었기에 지금 호날두가 겪는 시련은 더욱 깊고 뼈아프다. 어느덧 전 세계 팬들이 인정하는 ‘젊은 황제’로 우뚝 선 1985년생 축구영웅은 갑작스레 찾아온 시련을 어떤 방식으로 극복해나갈 수 있을까. 올 시즌 유럽 리그 개막에 즈음해 관심을 갖고 지켜 볼 화두가 아닐 수 없다./<베스트 일레븐>기자 ▶ 관련기사 ◀☞[유럽축구 확대경]반 데 바르트의 레알行, 그리고 뉴 오렌지 커넥션☞[유럽축구 확대경]김두현, 급하지 않게 호들갑 없이 가기를☞[유럽축구 확대경]유럽축구, 남미의 피를 수혈하다☞[유럽축구 확대경] 터키 축구를 주목하라☞[유럽축구 확대경] 짝수 해 거물들의 이동, 올해는?
2008.08.12 I 송지훈 기자
노민상 감독 "태환이는 내 인생이고 꿈"
  • 노민상 감독 "태환이는 내 인생이고 꿈"
  • [조선일보 제공] "태환이는 내 인생이고 꿈입니다. 목숨을 걸었습니다." 노민상(52·사진) 수영 대표팀 감독은 '선수 박태환'을 올림픽 챔피언으로 만든 스승이자 은인이다. 정작 본인의 인생은 '잡초' 같았다. 오산중·고등학교에서 수영을 했을 뿐, 대표 선수같은 경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난 때문에 선수로서의 꿈은 싹을 틔워 보지도 못했다. 강원도에서 군 복무를 뒤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에서 코치를 시작했다.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서점에서 외국 전문서적을 한 권씩 사 모으고, 없는 책은 외국에 다녀오는 지인들에게 부탁해 구했다. 모르는 단어는 사전을 찾아가며 해석을 했다. 책장에 꽂히는 책이 늘어날수록 노하우가 쌓였다. 클럽 코치로 일하면서 지도자로 인정을 받아가기 시작하던 1992년, 큰 사고가 다시 한 번 그의 꿈을 꺾을 뻔했다. 운전을 하다 다른 차에 운전석 쪽을 들이받히는 사고를 당했다. 갈비뼈와 쇄골, 양쪽 발등 골절로 사지를 거의 움직이지 못한 채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재활에만 몇 년이 걸렸다. 수영장 물 속에서 걷기 연습부터 다시 시작했다. 사고 후유증으로 노 감독은 지금까지 운전을 하지 않는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박태환이 행여 운전하다 다칠까봐 노심초사하는 데는 이런 사연이 있다. 나이 마흔 즈음에 박태환을 만났다. 일곱 살 꼬마는 이미 기초를 배운 상태였다. "물에 들어가 보라고 했더니 수영을 곧잘 하더라고요. 가르치면 괜찮겠다 싶었죠." 제자의 가능성을 본 노 감독은 눈 앞의 성적에 연연하기보다는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시키며 지구력을 키우게 했다. 노 감독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 유망주에 불과했던 박태환을 대표팀에 보내면서 자신의 꿈에 한 발 다가섰다. 하지만 박태환이 부정출발로 실격했다는 소식을 들은 날 밤, 박태환의 아버지와 밤늦게까지 소주잔을 기울여야 했다. 노 감독은 2006년 여름 대표팀 사령탑이 됐고, 박태환을 데리고 나간 첫 대회였던 팬 퍼시픽 챔피언십(캐나다 빅토리아)에서 금메달 두 개와 은메달 하나를 일궜다. 그해 12월 아시안게임에서 박태환이 금메달 세 개 등 메달 7개를 따며 대회 최우수선수로 뽑히자 노 감독은 베이징 올림픽까지 영광의 순간을 구상했다. 그런데 박태환이 작년 초 태릉선수촌을 떠나 후원사가 꾸린 전담팀으로 떠나면서 다시 한 번 좌절을 맛봤다. 우여곡절 끝에 2월에 박태환이 돌아온 뒤엔 서로 약속을 하나씩 했다. 박태환은 최대한 빨리 예전의 몸을 만들겠다고 다짐했고, 노 감독은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평소 즐기던 술을 끊겠다고 했다. 노 감독은 10일 박태환이 금메달을 따자 눈물을 흘렸다. 박태환의 훈련일지를 속에 넣어 뒀던 종이엔 '심장의 더운 피 식을 때까지'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박태환 금메달의 공신 중엔 대표팀 우원기(34) 코치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994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자유형 200m에서 한국신기록으로 동메달을 땄던 엘리트 선수 출신. 2004아테네 올림픽을 맞아 대표팀 코칭스태프로 발탁됐다. 자유형 선수들을 전담하던 우 코치는 노 감독이 '재야(在野)'였던 때부터 서로의 지도철학을 공유했고, 지금까지 호흡을 맞추고 있다. 박태환의 뒤엔 한국체육과학 연구원의 송홍선 박사도 있다. 노 감독과 밤을 새워 가며 맞춤형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생리학에 바탕을 두고 주기적으로 훈련 전후의 젖산 측정을 해 성취도를 분석했고, 영법과 잠영 영상을 찍어 동작 분석을 하는 등 기술적인 부분에도 이바지했다.▶ 관련기사 ◀☞박태환 "큰 응원 보내준 국민들께 감사 지금 그냥 한국 가면 안될까요☞'중국만의' 올림픽...각국 정상들 일반석 앉아 땀 뻘뻘☞'마린보이' 박태환의 어제와 오늘☞미(美) 농구, 31점차로 중국 완파☞여(女)양궁 '지존' 20년… 담력 키우려 옷 속에 뱀 넣는 훈련까지
'마린보이' 박태환의 어제와 오늘
  • '마린보이' 박태환의 어제와 오늘
  • ▲ 금메달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무거워진 어깨였지만, 물속에서 박태환은 누구보다도 자유로웠다. 올림픽 수영 자유형 400m 결승에서 박태환이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고 있다.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조선일보 제공] "선생님…. 제가 은메달, 동메달 따도 대단한 건데…. 금메달 아니면 좀 그렇겠죠?" 경기 전날인 9일 밤. 박태환(19·단국대)은 스승 노민상 감독을 찾아 어렵게 입을 열었다. 노 감독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당부했지만, 박태환은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제 19세 소년이 견뎌내기에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은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4년 전 그때를 떠올리게 했다. 15세로 대표팀 최연소 태극마크를 달았던 까까머리 소년. 하지만 2004 아테네올림픽 400m 예선에서 부정 출발로 실격을 당하며 '부정 출발 소년'이란 단어가 꼬리표처럼 붙었다. 그 뒤 박태환은 한 달간 방에 틀어박혀 세상과 자신을 단절시켰다.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한 소년은 부활했다. 2005년 동아시아게임 자유형 400m 한국 신기록(3분48초71)으로 우승한 뒤 각종 대회에서 아시아 신기록을 작성하며 승승장구했다. 지난해 3월엔 세계선수권 자유형 400m에서 3분44초30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5살 때 기관지염 때문에 천식에 좋다는 수영을 시작한 연약한 꼬마가 한국의 수영 역사를 새로 쓴 것이다. 하지만 화려한 빛은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2006 도하 아시안게임 3관왕에 오른 뒤인 지난해 1월 촌외 훈련을 결정하면서 7세 때부터 그를 가르쳤던 노민상 감독과 헤어졌다. 박석기 전 국가대표 감독 등과 '전담팀'을 꾸렸지만 우여곡절 끝에 11개월 만에 결별해야 했다. 호주 전지 훈련을 코치도 없이 홀로 다녀왔다.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유명 댄스 그룹 '원더걸스'의 리더 선예와의 열애설도 튀어나왔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만난 뒤 압구정동 광림교회를 같이 다니며 친하게 지냈던 게 입방아에 오른 것이다. 결국 지난 2월 태릉선수촌에 다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고, 노민상 감독과 재결합했다. 5개월여의 짧은 시간 동안 흐트러졌던 그의 체력과 정신력은 다시 자리 잡아가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생긴 자생력도 그를 담금질했다. 아버지 박인호씨의 사업 실패로 집안이 갑자기 기우는 바람에 어린 시절부터 물질적인 고통을 겪었고,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어머니 유성미씨가 유방암 수술을 받으며 투병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49.587㎡(15평) 전셋집에 살면서, 버스비를 아끼려 중학교 때 몇 ㎞를 걸어 다닌 적도 있다. 누나가 몇 백 원씩 용돈을 준 것을 꼬박꼬박 모아 어머니 약을 사드리던 아이다. 그는 자주 "성공하겠다. 돈 많이 벌면 부모님 집부터 사드리겠다"고 되뇌었다고 한다. 박태환 가족은 얼마 전 잠실에 이사했다. 마음 속의 약속을 지켜낸 것이다. 낯을 가린다고는 하지만 속정이 깊다. '전담팀'에서 홀로 훈련하면서 대표팀 친구들과 멀어져 외로움과 그리움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홀로 호주 전지 훈련을 떠나기 직전인 지난해 12월엔 태릉선수촌에 빵을 들고 찾아와 노민상 감독과 친구들과 오랜만에 수다를 떨었다. 한국의 역사를 바꾼 대단한 '소년'. 그래도 평소엔 19세 모습 그대로다. 캐릭터 인형(피규어)을 수집해 만지작거리며 심리적인 안정을 얻거나, 인기 그룹 '빅뱅'에 빠져있고, 밥보다는 스파게티를 즐긴다. 고기를 특히 좋아해 스테이크도 즐겨 먹는데, 10일 아침엔 노민상 감독이 마련한 곰국을 먹고 힘을 냈다. 지난해 가을 면허를 따자마자 베라크루즈를 구입해 드라이브를 즐기고, 한 달에 한 번은 단골 미용실에 들러 염색과 파마를 즐기는 발랄한 신세대다. 3년전부터 그를 담당한 압구정동 '쉬작' 미용실의 박정률 원장은 "곱슬머리인 데다 수영장 물 때문에 머릿결이 상해 트리트먼트를 자주 받는다"고 말했다. 동료들은 그를 '독종'이라 부른다. 자신과의 끊임없는 투쟁이 '대박' 금메달을 일궜다. 그는 '대박(大朴)'이었다.▶ 관련기사 ◀☞박태환 "큰 응원 보내준 국민들께 감사 지금 그냥 한국 가면 안될까요☞'중국만의' 올림픽...각국 정상들 일반석 앉아 땀 뻘뻘☞노민상 감독 "태환이는 내 인생이고 꿈"☞미(美) 농구, 31점차로 중국 완파☞여(女)양궁 '지존' 20년… 담력 키우려 옷 속에 뱀 넣는 훈련까지
  • 정보공개서 등록업체, 366개 브랜드 발표 (서울 185개) (1)
  • [이데일리 EFN 강동완기자] 브랜드명 검색은 'Ctrl + F' 를 통해 찾을수 있다.&nbsp;연번상호브랜드등록번호접수일등록일담당기관1(주)아시아스타넷웍스피아노스타200801000012008060520080726본부2프레임시스템(주)투엔디200801000022008060520080726본부3(주)고려이스쿨고려e스쿨200801000032008061220080726본부4(주)고려이스쿨고려e네트200801000042008061220080726본부5(주)이어도아이엔비e-어도참치200801000052008061920080726본부6(주)무무잉글리쉬 무무200801000062008061920080726본부7(주)오피스넥스officenex200801000072008062020080726본부8(주)미당프랜차이즈맛밥200801000082008062020080726본부9(주)미당프랜차이즈와우 돈가스1900200801000092008062020080726본부10이레F&C객잔차이나200801000102008062420080726본부11(주) 부자마을피부천사200801000112008062420080726본부12(주)미래지앤에스버담삼겹살200801000122008062420080726본부13(주)미래지앤에스럼보트200801000132008062420080726본부14(주)이디야이디야커피200801000142008062420080726본부15주식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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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6 I 강동완 기자
승천하는 용… 중(中) '제국의 부활 노래'
  • 승천하는 용… 중(中) '제국의 부활 노래'
  • [조선일보 제공] 어둠이 내려 깔린 2008년 8월 8일 오후 8시8분 몇 초 전. 9만 관중이 꽉 들어찬 베이징(北京)올림픽 메인 스타디움 냐오차오(鳥巢·새둥지)에는 산시(山西)지방의 힘찬 북소리가 사람들의 가슴을 때린다. 관중들이 일제히 카운트 다운을 시작한다. 북을 치는 2008명의 중국 젊은이들의 특수 복장은 거대한 아라비아 숫자 '3, 2, 1'과 함께 한자 '三, 二, 一'을 만들어낸다. 마침내 전광판 시계의 숫자판이 '20:08'로 바뀌자 냐오차오 사방에서 엄청난 굉음과 함께 노란색 불꽃이 밤하늘로 솟아오른다. 같은 시각 천안문(天安門)광장을 비롯한 베이징 시내 곳곳에서 굉음과 함께 불꽃이 터진다. 푸른 색으로 빛나던 냐오차오 바로 서쪽의 수영경기장 수이리팡(水立方)의 벽면에는 중국어로 '하나의 꿈, 하나의 세상(同一個世界, 同一個夢想)'이 붉은 색으로 새겨진다. 냐오차오 상공의 밤하늘에 터지는 불꽃은 오색의 올림픽 마크를 그리는가 하더니, 중국인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전설 속의 새인 봉황(鳳凰)도 그려내고, 아홉 마리의 용도 그려낸다. 봉황은 새 둥지 모양의 냐오차오로 돌아오고, 아홉 마리의 용은 하늘로 날아오른다. 하늘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을 보여준다. 돌연 하늘에 손오공의 얼굴이 그려지자 메인 스타디움 냐오차오 지상에는 중국 산수화가 펼쳐지고, 곧이어 산수화는 중국의 4대 발명품인 종이 화약 나침반 인쇄술을 형상화한다. 개막식 공연은 춘·하·추·동(春·夏·秋·冬) 사계절의 이름으로 나뉘어 4막으로 이어진다. 흰색 옷을 입은 허난(河南) 소림사(少林寺) 무술승도 나오고, 진(秦)나라 갑옷을 입은 병마용 복장의 병사도 나오고, 푸른 색 옷을 입은 한(漢)나라 선비도 나온다. 배경 음악으로는 당(唐)대의 전통음악을 비롯한 역대 중국 왕조의 예악(禮樂)과 고전 명곡들이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격하게 흐른다. 중국 정부가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BOCOG)와 함께 지난 7년간 준비해온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은 그렇게 시작된다. BOCOG는 지난달 30일에 이어 2일밤 두 번째로 실제로 7만의 관중을 동원한 개막식 리허설을 했다. 소개한 개막식 리허설 광경은 중국 사람들이 '차이파이(彩排)'라고 부르는 리허설에 참여했던 베이징 시민들에게 물어 모자이크로 재구성한 것이다. 개막식 식전 공연 광경을 전해준 베이징 시민들은 "봉황은 중국인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길상(吉祥)이며, 우리는 우리가 용의 후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개막식 총연출을 맡은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은 우리에게 중국인으로서 커다란 긍지를 느끼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개막식 리허설을 두 차례나 했지만 아직도 가장 중요한 개막식 비밀은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관련기사 ◀☞'친황다오 입성' 박성화호 "첫 판 카메룬전에 올인"☞'마린보이' 박태환 "세계 기록에 맞춰 준비해왔다"☞[나도 올림피안] 근대5종 윤초롱☞스포츠는 돈!… 올림픽은 그 결정판☞[베이징 올림픽 D-7] '10-10 달성을 향해'...태극전사 본진 베이징 입성
권오중 “키스신 더 있으면 집에서 큰일 납니다”
  • 권오중 “키스신 더 있으면 집에서 큰일 납니다”
  • ▲ SBS 월화드라마 '식객'에서 봉주 역으로 출연 중인 권오중(사진=김용운 기자)[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 "키스신 후유증을 겪고 있습니다" SBS 월화드라마 ‘식객’에서 운암정의 수석요리사로 출연 중인 권오중이 극중 윤주희(김소연 분)과의 키스신 후일담을 들려줬다. 지난 1일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하이원리조트내 위치한 운암정의 ‘식객’ 촬영장에서 만난 권오중은 4일 ‘식객’ 15회에 방영될 키스신에 대해 “데뷔 15년여 만에 처음 해보는 키스신이었다”며 “아내가 키스신을 촬영하게 되면 미리 알려 달라 했는데 그렇지 못해 한동안 집안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권오중은 지난 1998년 6살 연상의 아내와 결혼해 현재 초등학교에 재학 중인 아들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권오중은 최근 이데일리SPN과의 인터뷰에서 “아내와 아들과 떨어져 있는 것이 싫어 해외촬영이나 지방촬영이 긴 작품은 사양했다”고 밝힐 만큼 가정을 우선시 하는 연기자다. 권오중은 “아들 녀석이 어디서 봤는지 ‘아빠 앞으로는 뽀뽀하지 마’라고 말할 정도가 됐다”며 “앞으로 키스신이 더 있으면 집에서 큰일 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소연과의 키스신에 대한 느낌을 묻자 권오중은 “나이가 들어 그런 건지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며 “이번에도 다른 드라마에서처럼 키스신을 피해가려고 애를 썼지만 감독님이 극의 리얼리티를 위해 강요(?)하셔서 불가피하게 했다”고 덧붙였다. 권오중은 앞으로 남은 드라마의 전개에 전개에 대해 “봉주가 운암정의 후계자가 되겠지만 또 어떤 계기로 성찬과 함께 봉찬식품을 만들어 야채행상을 할 수도 있다”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 관련기사 ◀☞[SPN 현장출동]'식객'의 꿈이 영근 실제 '운암정'을 가다☞'식객' 원기준, "민우가 악역? 성찬과 봉주가 비현실적 인물"☞김소연 “운암정 후계자...주희가 될 수도 있죠?”☞김래원 "'식객', 한우 이어 김치 우수성 알린다"☞남상미, "'진수'처럼 실제 나도 성숙해져가는 느낌"
2008.08.04 I 김용운 기자
'식객' 원기준, "민우가 악역? 성찬과 봉주가 비현실적 인물"
  • '식객' 원기준, "민우가 악역? 성찬과 봉주가 비현실적 인물"
  • ▲ SBS 월화드라마 '식객'에서 공민우 역으로 출연 중인 원기준(사진=김용운 기자)[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민우가 악역이라구요? 성찬과 봉주가 더 비현실적 인물이죠." SBS 월화드라마 ‘식객’에서 운암정의 3대 수석요리사 공민우로 출연 중인 원기준이 악역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지난 1일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하이원리조트 내 위치한 운암정의 ‘식객’ 촬영장에서 만난 원기준은 “사실 성찬(김래원 분)이나 봉주(권오중 분)같은 사람들보다 성공하려는 욕망으로 매사 열심인 공민우 같은 사람이 더 보편적인 인물이다”고 강조했다. 원기준이 맡은 공민우는 천재적인 요리감각을 타고난 성찬과 오숙수의 아들인 봉주 사이에서 오로지 자신의 노력과 실력만으로 국내 최고의 한식당인 ‘운암정’의 수석요리사로 자리 잡은 입지전적적인 인물. 하지만 운암정의 후계자가 되겠다는 야심 때문에 성찬을 곤경에 빠트리고 호시탐탐 봉주의 자리마저 노리는 캐릭터다. 원기준은 “공민우는 오로지 운암정의 후계자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온갖 난관을 뚫고 버티고 있는 인물”이라며 “비열한 모습도 많지만 어떻게 보면 다른 주인공들에 비해 현실에서 접하기 가장 쉬운 인물 아니냐?”고 되물었다. 원기준은 “‘식객’ 후반부 극의 반전에 민우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며 “운암정의 후계자가 봉주라고 단정 지을 수만은 없다”고 여운을 남겼다. 1994년 SBS 공채 4기 탤런트로 데뷔한 원기준은 2006년 MBC ‘주몽’에서 영포왕자 역을 맡아 귀여운 악역(?)으로 시청자들에게 큰 관심을 받은 바 있다. ▶ 관련기사 ◀☞김소연 “운암정 후계자...주희가 될 수도 있죠?”☞권오중 “키스신 더 있으면 집에서 큰일 납니다”☞[SPN 현장출동]'식객'의 꿈이 영근 실제 '운암정'을 가다☞김래원 "'식객', 한우 이어 김치 우수성 알린다"☞남상미, "'진수'처럼 실제 나도 성숙해져가는 느낌"
2008.08.04 I 김용운 기자
MC몽, 내가 돈을 버는 이유..."어머니 웃는 게 가장 기뻐"
  • MC몽, 내가 돈을 버는 이유..."어머니 웃는 게 가장 기뻐"
  • ▲ MC몽[이데일리 SPN 김은구기자] MC몽은 무대, 예능프로그램에서 언제나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런 MC몽도 늘 행복할 것만 같지만 MC몽은 어려웠던 시기를 극복하고 현재의 자리에 섰다. 신인시절은 누구나 힘들다지만 MC몽의 어려움은 그 이전부터였다. “고교생이었던 1996년부터 집안에서 가장 역할을 해야 했어요. 교복도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사야 했으니까요.” 사실 MC몽은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할아버지는 서울 청담동에 호텔을 갖고 있었고 아버지의 사업도 번창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업이 무너지면서 가세는 순식간에 기울었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는 말도 MC몽에게는 예외였다. 살고 있던 집도 넘어가고 MC몽은 이혼한 어머니, 형과 함께 반지하의 집에서 생활해야 했다. “10만원이든 20만원이든 벌어다만 드리면 어머니가 너무 좋아하셨어요. 그게 제가 돈을 버는 이유였죠. 연예인이 돼서도 마찬가지고요.” 1998년 연예계에 데뷔를 하고나서는 큰 돈을 만질 줄 알았지만 5년간은 월 100만원도 못벌었다고 했다. 꿈을 좇고 있었지만 어려움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랄까? MC몽은 인기를 얻으면서 과거의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MC몽은 “솔로 1, 2집을 발매한 뒤 아버지의 사업 부채를 다 갚을 수 있었어요. 그 이후에 어머니 명의로 집을 사드렸죠”라고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MC몽은 자신을 위해서는 별로 돈을 쓰지 않는다. 그동안 CF도 20개가 넘게 계약을 했지만 개런티는 모두 어머니에게 갖다드렸다. 그런 면에서 보면 MC몽은 분명 누구 못지 않은 효자다. 어머니는 그 돈으로 주위의 어려운 가정을 돕는다. 결손가정 아이들이 생활을 하고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MC몽은 그런 어머니에 대해 한마디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 “좋은 일도 다 아들 잘되라고 하시는 거죠. 사실 지금의 저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있는 거잖아요. 성원해주시는 팬들이요. 그 덕분에 나이에 비해 물질적으로 얻은 게 많은 것도 사실이고요. 제가 번 돈도 그런 팬들, 특히 어려운 팬들을 위해 사용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저는 가정을 지킬 정도의 돈만 있으면 돼요.” (사진=김정욱 기자)▶ 관련기사 ◀☞MC몽, 어려운 후배 위해 4천만원 쾌척☞MC몽 "이제야 '1박2일' 정식 멤버 된 듯"☞MC몽, "무대 서면 병도 낫는 어쩔 수 없는 '딴따라!'"☞[포토]MC몽, '즐거워 미치겠어~'☞'스페이스 침스' MC몽, "녹음 10분하면 목소리 쉬어 고생"
2008.08.01 I 김은구 기자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년대를 풍미한 외식업계의 풍운아
  •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년대를 풍미한 외식업계의 풍운아
  • [이데일리 EFN 이덕철 객원기자] 먼지가 적당히 쌓인 옅은 밤색 007가방을 서재 창고에서 꺼낸다. 꽤 오래된 듯하다. 20여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가방이다. 그리고는 한참을 생각에 잠긴 듯 응시한다. 이내 찰칵찰칵 비밀번호를 돌린다.&nbsp;번호를 잊어버렸는지 아니면 잘못 돌렸는지 다시 시도한다. 덜커덩 소리를 내며 드디어 가방이 속을 드러낸다. 리비아 현지에서 국내로 송금한 돈의 기록표들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만감이 교차한다. 손의 움직임은 분주해지고 이것저것 뒤진다. 그리고는 이내 감회에 젖은 듯 말이 없다. 눈가의 고요에 잠시 물기가 얹힌다. 사업실패로 쫓기 듯 열사의 나라 아프리카 리비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때가 언제였던가. 당시의 아픈 기억이 스멀스멀 떠오른다. 007가방 하나 달랑 들고 20대 중반에 무작정 떠나왔던 리비아. 돼지갈비와 함흥냉면으로 한때 외식업계의 살아있는 신화로까지 불린 (주)이학면옥 윤희원 대표(51)의 성장통의 한 페이지다. &nbsp;그리고 이 가방에는 오늘의 성공키워드를 제공한, 두차례에 걸친 리비아 3년의 흔적과 사연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가끔씩 그는 스스로 나태해졌다 싶을 때마다 가방을 꺼내보곤 한다. &nbsp;그는 지금 조용한 신도시인 인덕원 부근의 대지 1421.49㎡(430평) 저택에서 거주하고 있다. 10년 전 똥창(?)이 맞는 친구와 공기 좋고 경치 좋은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가맹점이 아닌 직영점으로 16개의 대형매장을 운영하며 외식업계의 기린아로 떠오를 때 이곳에 들어왔다. ◇ 전성기 시절 직원만 550여명 10년 전의 전성기 시절, 점포 전체 매출액이 200억원대를 넘나들 정도였다. 이학면옥 본점과 본사가 있는 인천 연수구의 대지 2281㎡(690평)에 연건평 3305.8㎡(1800평)인 3층 건물도 그의 소유다. 현재 그는 사업의 내실화를 위해 점포들을 정리하고 남은 직영점 6개를 운영하고 있다. 무서운 기세로 점포확장에 나섰던 전성기 시절에는 직원만 550여명이었다. 30대 후반에 일찌감치 외식사업으로 대성공을 거둔 그다. ◇ 16살때 심야 완행열차타고 서울행 감행 “괜찮을까” “괜찮을 꺼야” “혹시 잘못되는 것은 아닐까” “ 그렇지 않을 꺼야” “언제쯤 도착하지” “조금 있으면 도착하지 않을까” “서울은 무서운 사람들도 많다는데” “태연하게 자세를 잡아야 돼, 겁먹은 표정을 하지말고” 15~16세 쯤 되어 보이는 까까머리 두 소년의 표정에 불안한 그림자들이 가득하다. 겁을 잔뜩 먹은 얼굴이기도 하다. 두 소년은 연신 통로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쳐다보며 말을 주고받는다. 전남 나주에서 용산역으로 가는 완행열차에 몸을 실은 두 소년의 머리속에는 고향이 멀어질수록 부모 형제들의 얼굴이 더욱 또렷해져 가고 있었다. 1973년 6월 29일 16살 중학생이던 윤희원 대표는 친구와 가출해 야간완행열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nbsp;8남매의 5째인 그는 잎담배 농사를 짓는 부모님 돈 10만원을 슬쩍 해 서울행을 감행한 것이다. 집안은 6611.6㎡(2000평)이 넘는 잎담배 농사를 지어 그리 곤궁한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워낙 많은 형제자매들과 많은 농사일로 어린나이의 그는 힘에 부쳤고 늘 배가 고팠다. 늘 쌀밥을 배불리 먹는 게 꿈이었다. 그는 학창시절에도 ‘짱’노릇을 주로 해 왔다. ◇ 사회에서 받은 첫 월급 3000원 받고 감회 이런 기질은 훗날 그가 외식사업에 뛰어들면서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대범하게 처신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일까. 어린 나이에 생면부지의 도시인 서울로 가출을 감행하는 용기를 발휘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한 12시간 쯤 달려왔을까.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용산역이었다. 두 소년은 고향에서 사전정보로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직업소개소 안으로 냉큼 들어선다. 그리고 그날 용산역 인근에 있는 평양냉면집에 취직한다. 사회를 알기에는 어린 나이에 사회인으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nbsp;그가 사회에서 받은 첫 월급 액수는 3000원이었다. “먹는 장사로 반드시 성공해서 돌아가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식당에 취직해서 쌀밥을 배불리 먹고 싶었다. 평양냉면집에 취직해서 받은 첫 월급 3000원은 나에게 상당한 의미가 있었다.” 지하철 4호선 인덕원역에서 하차해 마을버스로 약 10분쯤 가 ‘주공 4단지’에 내리니 윤 대표가 마을버스역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아침식사를 자기 집에서 하자고 해 그의 집으로 가는 길이다. 만난 지 이번이 두 번째인데 자기 집에서 식사를 하자니 좀 당황스러웠다. 저녁도 아니고 아침을 같이하자니 보통 친하지 않으면 청하기 어려운 일이 아닌가. 그랬다. 그는 사람냄새 폴폴 나는, 꾸미지 않은 소박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nbsp;외식업계에서 크게 성공한, 작은 거인답지 않게 수수하고 온정적이다. 그의 키는 162센티미터로 작다. 외식업계의 ‘오뚜기’, ‘등소평’이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nbsp;투박하나 정겨움이 물씬 묻어나는 얼굴에 격의 없는 미소를 ‘씩’하고 띠우면 부처상이 따로 없다. 주변에 사람이 많이 몰리는 이유도 그가 나대지 않고 겸손하며 주위 의견에 경청을 잘하기 때문이다. 그의 눈빛이 그의 시골틱한(?) 외모에 견줘 형형한 이유는 사물에 대한 깊은 관조의 힘이 녹아있어서다. 이해와 배려는 그의 사람사는 방식이다. 그의 오늘을 만든 강철 같은 의지와 배포 그리고 일벌레 습성이 후덕한 인상과 버무려지면서 그만의 독특한 이미지로 살아난다.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라고 주변에서 말한다. 그의 집을 방문하게 된 필자에게 리비아에서의 3년을 이야기 하면서 감정이 살아났는지 그 당시 가지고 갔던 007가방을 찾아가지고 왔다. ◇ 정겨운 모습에서 형형한 눈빛이 주는 관조의 미학 그를 리비아로 가게 만든 사연은 무엇일까. 16살에 서울 생활에 들어간 그는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단박에 주인의 눈에 든다. 아침 6시에 기상해 하루에 70~100 군데를 배달하고 나서도 저녁에는 틈틈이 요리를 배웠다. &nbsp;힘은 들었지만 일 벌레 습성이 그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주인이 아예 혀를 내두를 정도로 요령을 피우지 않았다. 저녁에 문을 닫으면 혼자 식당 안을 깨끗이 청소도 했다. 훗날을 대비해 요리법도 어깨너머로 계속 익혔다. 이런 그를 보고 주인이 인심 쓰듯 한마디 던졌다. “지금까지 우리 식당에 일하러 온 많은 사람들 중에 너같이 일 잘하는 놈은 처음 본다. 나이도 어린데 정말 부지런하고 열심이다.” 그러나 1년쯤 되어갈 무렵 그는 가슴에 상처를 받고 자리를 옮긴다. 매장에서 분실한 돈 4만원의 범인으로 몰린 것. 물론 나중에 아니라는 게 밝혀졌지만 그는 더 이상 근무할 의욕을 잃었다. 자리를 옮겼다. 종로에 있는 한식집 ‘한일옥’에서도 그의 진가는 여실히 드러났다. 심지어 주방장이 다른 곳으로 이직을 하자 어린 나이에 주방장을 겸하게까지 된다. 한마디로 그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다. 일찌감치 될성싶은 나무로 주변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도 그는 주인으로부터 한마디를 듣게 된다. “이 다음에 나이가 들면 진짜 잘 살 것이다.” 그는 이 한마디를 가슴에 묻었다. 그리고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 결심한다. 의지력은 그의 오늘을 만든 동력이다. 어린 나이에 일찍 배운 담배를 18살 때 끊고 지금까지 금연을 한것이라 든지, 2전3기 끝에 오픈한 이학면옥 1호점부터 5~6년 동안을 1000원짜리 한 장 허투루 써 본적이 거의 없다라든지 서초 2호점을 오픈하고 나서 6개월 만에 3억원을 까먹고도 의연하게 대처한 것 등은 오늘날 그의 성공이 얼마나 자신을 갈고 닦으면서 이뤄진 것인가를 잘 대변해 준다. ◇ 세 번째 직장 ‘감미옥’에서 7년 보낸후 첫 가게 18살이 되던 해, 그는 세 번째로 자리를 옮긴다. 종로 4가에 있는 설렁탕 전문 음식점 ‘감미옥’이 그 곳이다. 작은 가게의 주방장 월급 수준인 2만5000원을 받았다. 3년 만에 월급이 8배로 뛰었다. 자신의 상품성을 키워놓은 것이다. 직원 30여명 중에서도 조리, 관리, 직원간 화합 등을 두루 잘하는 몇 안되는 직원으로 꼽혔다. 당연히 일 잘한다는 칭찬에 이어 “월급을 줘도 돈 안 아깝다”는 말까지 덤으로 들었다. 그는 어린 나이부터 ‘세상은 자기하기 나름’이라는 철학을 몸에 새기고 있었던 듯하다. 지금도 그는 주변 외식인들에게 “장사가 되고 안 되고 하는 것, 또 직원들이 자주 나가는 것 등은 모두 업주한테 책임이 있다”고 설파한다. 감미옥에서의 근무는 군대를 갔다 와서도 계속돼 모두 7년간 머물게 된다. 윤 대표는 이 시기 스스로 식당을 운영해 보고픈 유혹에 빠진다. 그는 군대 제대 후 1년 6개월간 500만원짜리 적금을 붓는다. 월급 25만원 중 24만6000원을 다 적금에 부었다. 한번 마음먹으면 해내는 의지력이 아닌가. 드디어 1981년, 서울로 뺑소니치듯 가출한 지 10년이 다 될 무렵인 25살의 나이에 가게를 오픈한다. 종로4가 서울극장 뒤편 생선구이 골목에 500만원을 투자해 생선구이 가게 ‘청송집’을 33.06㎡(10평) 규모로 문을 열었다. &nbsp;그러나 직원으로 일하는 것과 직접 경영을 하는 것은 달랐다. 경영에 대한 경험부족은 관리부재로 이어졌고 외지에서의 외로움을 고향친구들과의 잦은 만남으로 달래다가 결국 식당일에 소홀해졌다. 매일 술 마시고 노는 게 일일 정도였다. ◇ 친구와 술 그리고 경험부족으로 8개월만에 손들어 결국 8개월 만에 가게를 넘기고 손을 털었다. 리비아행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그는 재기의 사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리비아로 향한다. 해외건설현장의 주방장으로 취직해 2년 동안 근무했다. 여기서 저축한 사업자금 3000만원으로 29살에 82.65㎡(25평) 규모의 두 번째 음식점을 방배동 부근에서 개업했다. 일명 기사식당이다. 그러나 ’86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개최로 택시 2부제가 시행되면서 손님들이 감소하기 시작하고 종전과 마찬가지로 친구와 술에 의지하면서 서서히 내리막길을 달리기 시작, 결국 가게를 팔게 된다. 1년을 두문불출했다. 어떻게 마련한 자금으로 창업한 가게인데 너무 허무하게 무너졌다는 자괴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책과 자학으로 스스로를 고문했다. 결국 가게를 넘겨주고 남은 돈도 1년이 지나자 다 떨어졌다. 그는 지인에게 150만원의 빚을 내 다시 리비아로 향한다. 장사의 실패와는 달리 인간적인 신뢰감은 지인들에게 여전히 잃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에 대한 원망으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들었다. 그러나 윤 대표는 두 번째 리비아 행에서는 자신을 완전히 180도 바꾸기로 결심한다. 지나친 온정주의나 술에 대한 집착 그리고 노름 같은 것들을 완전히 그의 몸에서 떼어내기로 한 것이다. 2년 계획으로 간 리비아 2차행은 회사 내부 사정으로 1988년 한 해만 보내고 1989년 초에 귀국했다. 그가 손에 쥔 사업자금은 이리저리 떼어내고 남은 500만원 가량이었다. 1989년 2월 세 번째 가게를 방배동에 오픈했다. 물론 부족한 자금은 지인들에게서 융통했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가 70만원이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곧 신뢰로 통했다. 어려울 때마다 주변에서 그를 도와주는데 주저하지 않는 이유다. ◇ 두 번의 리비아행 자신을 송두리째 바꾸고 돌아와 그가 보여준 진실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서울 방배동에 실평수 115.7㎡(35평)의 ‘이학숯불갈비’를 오픈했다. 오늘날 이학면옥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이었다. 대박이었다. 돼지갈비 1인분이 2500원이었다. 하루 잘 팔면 30만원정도 쯤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뚜껑이 열리자 매출 40~50만원은 손쉽게 올렸다. 시간이 흘러가자 70~80만원을 넘어 최고 140만원까지 매출이 올랐다. 1년만에 8000만원의 수입이 들어왔다. 더 큰 가게가 필요했다. 때마침 운영하고 있는 가게터 옆에 신축건물이 들어섰다. &nbsp;1년만에 규모가 두배 정도인 218.18㎡(66평) 가게로 1990년 3월에 옮긴다.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가 210만원으로 지출비용은 종전의 3배였다. 하지만 영업은 계속 승승장구했다. 1993년 서초 2호점을 오픈할 때까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로 바삐 움직였다. 장사에 자신이 붙었다. 826.45㎡(250평) 규모로 서초동에 2호점을 과감히 오픈했다. 그의 인간성과 능력을 믿은 친구 5명이 신용대출해 준 자금으로 개업했다. 그러나 여기서 그는 참담한 패배를 맛본다. ◇ 이학면옥 1호점의 대박 … 서초 2호점서 3억 빚 져 입지선정의 잘못으로 6개월 만에 문을 닫게 된 것이다. 인테리어 비용 등 3억원의 빚도 떠 안았다. 이제 좀 일어서나 했는데 암초를 만난 것이었다. 세 번째 위기였다. 그러나 그는 태연했다. 아니 태연한 척했다. 복구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통 큰 배포는 이렇듯 위기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이학면옥 서초 2호점의 실패로 무려 3억원의 빚을 떠 안게 되자 집사람이 나보다 더 불안해했다. 심지어 나보고 그 큰 금액을 날렸는데 몸무게가 1킬로그램도 안 빠진다고 놀랄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어찌할 도리가 없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다만 이를 복구할 대안을 찾으려고 무진 노력했다.” 기회를 엿보고 있던 그는 1994년, 50년만에 찾아 온 최고의 무더위에 관심을 갖는다. 그는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했다. 무슨 음식이 무더위를 날려줄 것인가. 윤 대표는 냉면으로 시선을 돌린다. 1994년 5월 시흥대로변에 이학면옥 시흥 3호점, 그리고 7월에 목동 1호점이자 전체 4호점을 잇따라 오픈했다. 선풍적인 인기였다. 그의 안목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매장 앞면을 통유리로 깨끗하게 단장해 오픈한 점포에서는 한 그릇 4000원의 냉면이 22개 테이블에서 1000만원어치가 넘게 팔려나갔다. 줄을 길게 서서 기다리는 것이 예사였다. 기다리는 사람의 줄이 너무 길다보니 손님이 매장에 들어와서 먹고 나가는 시간 10분도 채 되지 않는 형국이 발생하곤 했다. 3억원의 빚은 1년 안에 다 해결했다. 그리고 그는 여기서 여세를 몰아 직영점체제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한다. 1995년도 부평 계산 5호점, 수지 6호점, 중동 7호점, 인천 만수 8호점, 1996년도 목동 2호점/ 9호점, 중동 2호점/10호점, 송파 11호점, &nbsp;1997년도 인천 연수 12호점, 일산 13호점, 인천 부평 13호점, 요인 신갈 14호점, 1999년도 군포 산본15호점, 목동 3호점/16호점, 발산 17호점, 간석 18호점 등을 잇따라 오픈하면서 외식업계의 풍운아로 급부상한다. ◇ 대형직영점 18호점까지 90년대 잇따라 오픈 그리고 2002년 말 인천 연수동에 2281㎡(690평) 대지, 연건평 5950.44㎡(1800평)에 이르는 3층짜리 대형 건물을 구입해 이학 두부사랑, 이학수산, 이학면옥 등 3개의 이학식당들을 오픈시켰다. 대신 그는 점포정예화를 위해 6개 점포만 남기고 정리하는 결정을 단행한다. 그의 점포들은 큰 대로변에 주로 입지해 있다. 공격적 마케팅으로 당시로서는 선구자격이었다. IMF가 오기 이전인 1997년 전후가 최대 부흥기였다. 그의 나이 40세에 불과했다. 이 당시 전 매장 연매출액이 거의 200억원대에 이르렀다. 국내 토종브랜드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또한 종업원 수도 한 때 550여명에 달해 동종 경쟁업소들을 압도했다. 당시 외식업계로서는 가공할 숫자였기 때문이다. 그의 영엉방식은 줄건 다 주고 받을 건 받는 식이다. 고급식재에 후한 인심을 얹히고 가격은 제값을 받는 식이다. 저렴한 식재에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하는 방식을 거부한다. 그러나 잘 나가던 이학면옥도 최대의 시련기에 봉착하게 된다. 바로 광우병 파동이다. 매출이 곤두박질치다 못해 여태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적자 상태까지 가기에 이른 것이다. 돼지갈비로의 전환과 마케팅강화로 어렵게 광우병터널을 빠져나왔다. ◇ 직원교육에의 열의와 관심 그의 오늘을 만들어준 비결중 하나는 교육에의 관심이다. 한참 사세가 뻗어 나가던 1997년도를 전후해 매년 우수사원 7~10명을 선발하여 외국에 보내 선진 음식문화를 배우도록 했다. 직원들의 서비스 개선과 음식문화에 대한 개념 등을 일깨워 주기위해서다. 지방의 음식축제, 김치축제 같은 곳에도 직원들을 수시로 파견해 다양한 음식조리법을 손님들에게 선보이도록 했다. 또 유명식당이나 세미나 등에도 직원들을 보내 공부와 함께 의식을 깨우치도록 하는데도 무척 신경 써 왔다. 그가 교육비를 아끼지 않는 이유는 이렇다. “교육비를 들여 직원들의 자질을 높이게 되면 본인들도 좋고 또 교육을 받은 입장에서 회사에 감사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일하게 돼 일거양득이다. 교육비에 대해 아깝게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투자한 것에 비해 효과가 더 크다.” 그는 외식사업을 통해서 얻은 이익을 사회의 어려운 이들에게 돌려주는 데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연수구의 미화원, 양로원의 노인들, 소년 소녀 가장들을 초청해 음식을 대접하고 있으며 그가 직·간접적으로 어려운 이들을 위해 사회단체에 기부하는 경우도 여러번이나 된다. ◇ 호텔사업이 최종 목표 ‘60살 안으로 해결되겠지’ 희망 올해로 그가 외식업에 들어온 지 35년이 된다. 외식업을 무엇보다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그다. 장사를 해서 좋고 배고픈 사람에게 좋은 음식을 주어서 보람 있고 돈을 지불하면서도 인사하고 가는 그런 직업이 따로 없다는 것. &nbsp;그의 앞으로의 꿈은 호텔을 짓는 것이다. 어릴적 꿈인 음식점은 후회가 없을 정도로 해보았고 이제 호텔을 가지는 두번째 꿈이 남아있다. 6611.6㎡(2000평) 대지위에 20층 규모가 목표다. 그 시기는 60세쯤이 되지 않을까 싶다. [ 도움말 : 월간 외식경영 ]
2008.07.24 I 객원 기자
이효리가 말하는 이효리...'연예인으로 10년, 서른살 평범한 여자'
  • 이효리가 말하는 이효리...'연예인으로 10년, 서른살 평범한 여자'
  • ▲ 가수 이효리[이데일리 SPN 양승준기자] 이효리처럼 방송에서 극과 극의 매력을 보여주는 가수가 또 있을까?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일명 ‘몸빼바지’를 입고 ‘쌩얼’을 한 채 몸개그를 사리지 않지만&nbsp;무대에만 서면 카리스마 넘치는 얼음공주로 돌변한다. 장소에 따라 몸의 색이 변하는 카멜레온.... 이효리는 연예인의 숙명이기도 한&nbsp;변신의 미덕을&nbsp;너무도 충실히 펼쳐보이며 지난 10년을 대중과 함께 호흡했다.&nbsp;◇'잇츠 효리시'는 자기고백적 앨범...아버지, '이발소 집 딸' 노래에 '눈물' 23일 오후 서울 논현동 어느 한 카페에서의 인터뷰, 사석에서 만난 이효리는 더 없이 담백하고 솔직한 옆집 여인의 모습으로&nbsp;기자 앞에 섰다. 무대에서의 카리스마를 지우고, 예능프로그램에서 보인 약간의 오버스러움도 내려놓았다. 그리고 이효리는 지난 14일 발매한 새 앨범 ‘잇츠 효리시’에 녹아낸 지난 10여 년간의 연예인 생활과 이제는 30대가 된 평범한 여자 이효리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털어놓았다. “데뷔 10년, 상당기간은 스타로도 살아왔지만 방송에서 보여지는 쿨하고 당당한 모습 뒤에 있는 평범한 여자 이효리의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연예계 10년의 생활동안 언론의 독을 품은 기사와 주위의 차가운 시선 때문에 흘린 눈물과 성장통을 고스란히 담은 앨범이죠.” 새 앨범 제목이 ‘잇츠 효리시(It’s Hyorish)’인 이유를 묻자 이효리가 건넨 말이다. 새 앨범에는 이효리가 작사한 노래가 여러 곡 있다. 그 중 ‘이발소 집 딸’은 이효리가 스타가 되기 전 자신의 평범했던 유년 시절에 대한 이야기고, ‘돈 크라이(Don’t Cry)’에는 주위의 가시돋힌 말에 생채기를 입었던 힘든 연예계 생활에 대한 자조 섞인 고백이 담겨있다. “이 앨범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살아온 과정과 현재의 나 그리고 내면의 목소리를 솔직하게 털어놨다는 면에서 제일 저 다운 앨범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앨범을 받아 본 아버지는 ‘이발소 집 딸’이란 노래를 보더니 눈물을 보이기도 하시더라구요. 제가 어렸을 때는 솔직히 친구들이 우리집에 와서 머리 자르고&nbsp;가는 게&nbsp;좀 창피했는데 이젠 제가 커서&nbsp;그런 과거까지도 사랑하게 됐어요. 아버지께서도 그걸&nbsp;느끼셨던 것 같아요” ▲ 가수 이효리◇'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30대에도 여전히 스타일리시한 스타로 남고파그렇다고 이효리가 새 앨범을 통해 과거 한탄과 고백만 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잇츠 효리시’의 앨범 제목은 사실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새 앨범 제목은 이효리의 연약한 속내를 털어 놓은 인생의 일기장 같은 의미도 있지만 한편, 가수 이효리로서 자신감을 표현하는 의미도 동시에 담고 있다. ‘누구 할 수가 있었다면 그건 내가 아닌 걸. 다시 나를 보니 어떤지 크게 소릴 질러봐’라는 가사의 ‘천하무적 이효리’는 새로운 무대에 대한 이효리의 자신감을 오롯이 드러내고 있다. “앨범 제목은 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하지만 가수로서의 자심감을 표현한 제목이기도 해요. 다른 가수가 표현할 수 없는 나만의 음악을 선보인다라는 콘셉트의 제목을 찾다가 고안해 낸 제목이죠. 또 이제 이효리는 한물 갔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30대가 됐어도 여전히 스타일리시하게 무대를 연출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렇게 새 앨범에 대한 자심감에 차 있는 이효리에게 컴백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을까? 지난 2003년 발매한 1집이 ‘텐 미닛(Ten Minute)’으로 소위 대박이 나긴 했지만 2006년 발매한 2집은 타이틀곡 ‘겟차(Get Ya)’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두 썸씽(Do Something)’과 표절시비 논란에 휩싸이며 음악 팬들의 외면을 받았다. “3집을 준비하면서 전 앨범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2집 실패 후&nbsp;크게 좌절했을 거라 생각하는데 이번 앨범 준비하면서 오히려 저 자신에 대한 부담이 더 컸죠. 이제 어느덧 데뷔 10년 차 중견가수가 돼 디지털 싱글 형식으로 쉽게 앨범을 낼 수도 없었구요. 가수로서의 활동을 충실히 하고 있구나라는 점을 음악 팬들에게 각인시키는 게 부담이라면 부담이었죠” 이효리는 이런 부담을 털고 타이틀곡 ‘유 고 걸(U-Go-Girl)’과 ‘천하무적 이효리’를 들고 화려하게 컴백했다. 이효리는 최근 지상파 방송 3사를 통해 섹시함과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와 큐트한 무대를 동시에 선보이며 음악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또 모든 무대를 라이브로 소화하며 지난 앨범 활동에 꼬리표처럼 따라 붙었던 ‘가창력 논란’도 불식시켰다. “이전에는 노래를 부르면 숨소리가 많이 들린다든지 호흡 조절이 안된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등산을 하며 노래 부르는 연습을 많이 했는데 폐활량은 물론 노래 부를 때 호흡이 많이 길어진 것 같더라구요. 역시 노래는 연습만이 살 길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꼈죠” ▲ 가수 이효리◇'패밀리가 떴다' 이효리, '국민 요정'에서 '국민 예능인'으로새 앨범의 좋은 반응과 함께 요즘 가수 이효리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SBS ‘일요일이 좋다’의 ‘패밀리가 떴다’ 코너다. 이효리는 이 방송을 통해 케이블채널 Mnet에서 방송됐던 리얼리티 프로그램 ‘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에서는 보여주지 않은 또 다른 ‘악동’ 이효리의 모습을 보이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nbsp;‘패밀리가 떴다’의 한 PD는 이효리가 ‘국민요정’에서 ‘국민 예능인’으로 거듭나고 있을 정도로 몸을 사리지 않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패밀리가 떴다’를 통해 이효리가 좀 더 팬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는 있었겠지만 신비주의를 버림으로써 가수 이효리에게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는 일. 이효리는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남자 친구 처음 사귈 때는 화장도 하도 꾸미고 그러지만 오랫동안 사귀고 나면 정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다 보여주잖아요. 방송도 마찬가지죠. 제가 신인도 아니고 이제 팬 여러분들과 제가 미운정 고운정 들어가며 사귄지가 벌써 10년인데 저에 대한 환상도 없을 거라 생각해요. 또 예능프로그램에서 편한 모습 보여주고 무대에서는 색다른 모습 보여주니 팬 여러분들이 더 좋아하시는 것 같기도 하구요” 이효리는 ‘패밀리가 떴다’ 방송은 꼭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라고 설명했다. 혼자 살다보니 외로움을 많이 타는 편인데 유재석과 대성 등 오빠, 동생들과의 촬영이 꼭 엠티를 가는 기분이라는 것의 그녀의 말이다. 이효리는&nbsp;또한 방송에서 보여주는 엽기 표정과 몸개그에 대한 네티즌들의 캡처 압박도 없다고 털어놨다. “캡처의 압박요? 전혀 없어요. 그 동안 연예계 생활하면서 접한 엽기 캡처가 어디 한 둘인가요?(웃음) 이제 그런 것에 두려울 연차도 지났고 또 그것을 두려워해 몸을 사리는 것도 저다운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새 앨범 10만장 넘기면 단독 공연 하고파"...드렁큰 타이거와 작업도 욕심 20대 초반에 데뷔 해 이제 나이 서른이 된 가수 이효리. 그렇다면 앞으로 이효리의 계획과 꿈은 무엇일까? “제가 라이브가 많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또 파워풀한 가창력을&nbsp;지닌 가수라고도 할 수 없죠.&nbsp;그래서 앞으로 앨범을 낼 때도 보컬 중심으로 갈 수는 없겠지만 제 무대에서의 비주얼에 대한 팬들의 기대가 있는 만큼 보여줄 건 보여주 돼 음악적으로도 좀 더 농익은 모습을 선보이고 싶어요. 또 이번 앨범이 10만장 이상 팔리면 처음으로 단독 공연도 열 생각이구요.” 또 앞으로 기회가 되면 드렁큰 타이거와 함께 힙합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이효리. 음악적 도전에 망설임 없이 당당한&nbsp;그녀가 앞으로는 또 어떤 모습으로 팬들을 놀래킬지,&nbsp;가수 이효리의&nbsp;성장을 기대해본다.▶ 관련기사 ◀☞이효리, "경쟁? 엄정화는 친언니 같은 선배...서인영의 성장은 기대돼"☞이효리, 새 앨범 '스타일-뮤비 표절 논란'에 대한 생각은?☞이효리는 제2의 박명수?...."유재석은 내 평생의 개그 파트너"☞이효리가 밝힌 '김건모-휘성-메이비'와의 앨범 작업 후일담☞이효리, "연기 욕심 여전...'미녀는 괴로워' 같은 영화 출연하고파"
2008.07.24 I 양승준 기자
'캐스팅 논란' 강성연 성현아, '온 에어' 속 스타잔혹사 현실로
  • '캐스팅 논란' 강성연 성현아, '온 에어' 속 스타잔혹사 현실로
  • ▲ 드라마 '타짜'에서 정마담 역을 두고 캐스팅 논란에 휩싸인&nbsp;강성연과 성현아[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드라마 '온 에어'는 끝났지만 현실 속의 '온 에어'는 계속 진행 중이다. 지난 5월 종영한 SBS 수목드라마 '온 에어'는 드라마 제작을 둘러싼 방송가의 여러 가지 암투를 사실적으로 그려내 화제를 모았다. 특히 '온 에어'는 드라마의 주인공 캐스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nbsp;매니지먼트사와 제작사 간 물밑거래 등도 가감 없이 담아내&nbsp;'이 시대 드라마&nbsp;제작 현장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예를 들면, '온 에어'에서 SW엔터테인먼트의 사장 진상우(이형철 분)가 자사의 신인인 체리(한예원 분)를 '티켓 투 더 문'에 집어넣는 과정에서 드라마 제작진과 방송사에 여러 가지 압력을 행사하는 모습 등이 그랬다. 이런 드라마 속 모습이 공교롭게 9월 SBS에서 방영 예정인 드라마 '타짜'에서도 비슷한 모습으로 되풀이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nbsp;'타짜'를 제작하고 있는 올리브나인 측은 21일 "정마담의 비중과 역할이 달라지면서 캐스팅에 혼선을 빚었다"며 "정마담 역할로 강성연이 최종 결정됐다"고 발표했다. 이와 같은 발표의 배경에는 정마담 역을 놓고 벌어진 강성연과 성현아, 두 배우 간의 중복 캐스팅&nbsp;시도가 문제가 됐다. &nbsp;드라마 ‘타짜’의 준비단계에서 주인공 고니 역의 장혁을 비롯해 여자주인공 광숙 역의 한예슬까지 캐스팅이 확정되자&nbsp;이후 세간의 관심은 ‘정마담’ 역을 맡게 될 배우에게 쏠렸다.&nbsp;비록 영화 ‘타짜’만큼의 비중은 아니지만 ‘타짜’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 중에 하나인 정마담 역에 자천타천으로 거론되는 배우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성현아가 정마담으로 출연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최근 강성연이 정마담 역에 캐스팅 됐다는 이야기가 제작사를 통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nbsp;결국 강성연이 정마담 역에 최종 낙점됐다. 강성연은 ‘타짜’의 제작사인 올리브나인 소속이다. 성현아는 21일 자신의 블로그에 '답답한 마음에'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배우의 꿈을 키우며 오직 좋은 배우로서만 살고 싶어 애써왔던 내 노력들이 정말 한 순간에 다 저버리고 싶을 정도로 아프고 슬프고 허탈하다"며 "이번 드라마 건도 정상적으로 들어온 캐스팅에 좋은 감독님을 만나 뵙고 즐거운 청사진을 이야기하며 대본을 받고 나왔다"고 ‘타짜’ 캐스팅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성현아는 "그런데 어느 날부터 차일피일 미뤄지더니 급기야 제가 아닌 다른 배우를 쓴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며 결국에는 “아무런 납득할 만한 이유도 내세우지 않은 채 제작사라는 이유만으로 자사 배우를 쓰겠다는 말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성현아의 글이 ‘타짜 정마담 캐스팅 논란’으로 비화되자 당사자 중 한 명인 강성연도 22일 보도자료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강성연은 “제가 일부러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 그 역할을 뺏고자 했을 리 만무하며 캐스팅 혼선이 빚어낸 안타까운 일”이라고 이번 논란을 정리한 뒤 “애초부터 이 역할은 제게 주어졌던 역할이었으며 배역의 축소와 스토리 라인의 변화에 따른 결정의 기간이 길어져서 생긴 일이고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도 어렵다”고 못 박았다. 논란의 여지를 제공한 올리브나인 측은 “현재로서는 혼선이 있었다는 말 밖에 드릴 말씀이 없다”며 “배우들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며 좋은 드라마로 보답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연예계의 한 관계자는 강성연과 성현아의 캐스팅 논란에 대해 “캐스팅 문제는 배우 개인의 영향력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한다”며 “캐스팅 당사자가 이처럼 공개적으로 캐스팅 문제를 거론한 적은 거의 드물어 큰 주목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제작사 입장에서는 자사 제작 드라마에 소속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할 수도 있겠지만&nbsp;중요한 것은 이러한 캐스팅 논란 자체가 배우와 제작사 모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며&nbsp;"이번 논란은 국내 드라마 제작현장의 고질병을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 아니었나 싶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강성연 "'타짜' 정마담 역 절대 뺏은 것 아니다"☞한예슬, 드라마 '타짜' 여주인공 낙점...2년만에 안방극장 복귀☞장혁-김민준, 드라마 '타짜' 투톱 캐스팅☞김갑수, 드라마 '타짜' 아귀 역 캐스팅☞김혜수, '열한번째 엄마'서 '타짜' 정마담 이미지 180도 변신
2008.07.22 I 김용운 기자
전진, 비 제치고 '좋은 아빠 될 것 같은 한류스타' 1위
  • [차이나 Now!]전진, 비 제치고 '좋은 아빠 될 것 같은 한류스타' 1위
  • ▲ 전진[이데일리 SPN 정유미 통신원] 만능엔터테이너로 맹활약하고 있는 인기그룹 신화의 멤버 전진이 중국에서 ‘가장 좋은 아빠가 될 것 같은 한국 남자스타’ 1위로 뽑혔다. 중국 포털사이트 ‘소후닷컴’이 최근 총 54만4597명의 네티즌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전진은 모두 14만6565표(24.22%)를 얻어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가장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버지상을 대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진은 그동안 신화 멤버 중에서도 카리스마 있고 터프한 남자로 손꼽혀 왔다. 그러나 중국에서 가수뿐 아니라 드라마 주인공, 패션모델, 뮤직비디오 주인공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중국팬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고 있다. 지난 2월 중국 안방극장에서 신년특집으로 방송된 한·중 합작드라마 ‘당신은 나의 꿈’에서는 꿈속의 연인을 찾아 중국으로 가는 남자 주인공 역할을 맡아 ‘로맨틱 가이’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기도 했다. 한 네티즌은 “인터넷에서 본 한국 오락프로그램에서 전진이 아버지와 굉장히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봤다”며 “나중에 자신의 아들과도 친구처럼 잘 지낼 것 같다”고 전진을 뽑은 이유를 밝혔다. 2위는 ‘월드스타’ 비가 차지했다. 천진한 미소가 매력포인트인 비는 모두 14만2203표(23.5%)를 얻어 전진에 이어 미래에 좋은 아버지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스타로 뽑혔다. 비를 지지한 이유에 대해서는 “아이들이 아무리 귀찮게 해도 웃어줄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았다. 드라마 ‘황진이’를 통해 중국에도 잘 알려진 장근석은 12만9961표(21.47%)를 얻어 3위에 올랐다. 중국 네티즌들은 “장근석은 나중에 아빠가 돼도 지금과 같은 어리고 순수한 모습으로 아이들과 잘 놀아줄 것 같다”고 지지 이유를 밝혔다. 이어 갑작스러운 결혼 소식으로 중국팬들을 놀라게 한 권상우가 6만4027표(10.58%)로 4위를 차지했으며, 드라마 ‘인어 아가씨’에서 부드러운 남성상을 보여준 김성민이 2만1428표(3.54%)를 얻어 5위에 올랐다. 한편 이번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전진에 이어 신혜성(6위), 앤디(8위), 에릭(9위), 이민우(12)가 모두 상위권에 들며 중국에서 신화 멤버들의 높은 인기를 증명했다. ▶ 관련기사 ◀☞전진 가족사 공개 '황금어장', 올해 최저 시청률 '굴욕'☞전진 "여자연예인 7명이 대시, 그중 3명과 사귀었다" 깜짝 고백☞전진, '와(Wa)' 뮤비 19禁 판정…공중파 방송 불가☞전진 日 첫 단독 콘서트, 1회 공연 5분만에 매진☞[포토]신화 전진, '이 총 진짜 권총같네~'
2008.07.20 I 정유미 기자
  • 베컴 "지단이 내겐 최고의 선수"
  • [노컷뉴스 제공] "지네딘 지단과 뛰던 3년은 꿈 같았다"'프리킥의 마술사' 데이비드 베컴(33 · LA 갤럭시)이 최고로 꼽는 축구 선수는 누구일까. 바로 지난 2006 독일월드컵을 마지막으로 축구화를 벗은 지네딘 지단(36 · 프랑스)이 주인공이었다.베컴은 14일(이하 한국시간) 스페인의 '마르카'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지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던 지단을 최고의 선수로 꼽았다.베컴은 "베컴과 함께 3년간 훈련했던 것은 꿈 같았다"라며 "나에게 있어 그는 최고의 선수다"라고 밝혔다.알제리 태생의 프랑스 국가대표 출신 미드필더 지단은 1991년부터 레블뢰 군단에 합류, 팀이 1998 프랑스월드컵, 유로 200 우승을 차지하는데 일익을 담당했으며 유벤투스와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로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도 3차례(1996~1997, 1997~1998,2001~2002) 차지했다.지난 2006 독일월드컵을 자신의 마지막 무대로 삼았던 지단은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에서 수비수 마테라치와의 '박치기 사건'으로 불명예스런 퇴장을 당해 프랑스 대표팀은 준우승에 그치고, 자신은 은퇴전을 영예롭게 끝내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한편 베컴은 현 스페인 최고의 선수는 유로 2008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친 사비(바르셀로나)를 꼽았으며 골키퍼 카시아스도 올해의 선수상을 받을만한 빼어난 선수라고 말했다.
(edaily인터뷰)구자열 부회장의 '절제된 꿈'
  • (edaily인터뷰)구자열 부회장의 '절제된 꿈'
  • [이데일리 박호식 김상욱기자] 지난 5월 준공식을 가진 안양 LS(006260) 본사는 지금 꿈을 꾸고 있다. '우직한 전선회사'의 이미지를 벗고 다양한 변화가 모색되고 있다. LS그룹은 7월1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그룹 컨트롤 타워인 지주사 ㈜LS가 출범했고, 전선부문&nbsp;LS전선과 기계부문&nbsp;LS엠트론이 분할돼 자회사가 됐다. 다른 한편에서는 LS전선이 북미 최대 전선업체 인수에 한창이다. 7월말 인수가 완료되면 LS전선은 전선업계 세계 7위에서 3위로 도약한다. LS전선의 군포공장과 안양공장은 다른 공장으로 이전한 뒤 '멀지 않은 때'에 매각되거나 새롭게 개발된다. 관계사인 LS네트웍스는 LS그룹에 인수된 뒤 법정관리기업이란 꼬리표를 떼고 증권사에&nbsp;투자하는 등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우직한 전선기업'의 변화, 그 중심에 구자열 부회장(사진)이 있다. 그는 지금 구자홍 회장을 보좌하며 LS의 꿈을 하나씩 현실화하고 있다. 그러나 구자열 부회장의 행보는 매우 절제돼 있다. LS그룹의 성장 계획에 대한 얘기를 들어봤다.◇"무리해서 키울 생각없다""개인적으로 대우조선에 관심이 많다. 특수선사업 등을 감안하면 현대중공업보다 경쟁력이 있다는 게 내 판단이다. 그러나 국내업체들 몸값이 너무 많이 올랐다. 3조~4조원일때는 몰라도 무리해서 나설 생각은 없다."그룹의 성장에 대한 구 부회장의 열망은 크다. 그러나 욕심으로 화를 자초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우선, 주력인 전선사업부터 키워나가기로 했다. 그래서 북미 최대 전선업체인 수페리어 엑시스를 인수키로 했다. "2년전부터 해외 전선관련 업체들 대부분 살펴봤다. 적절한 시점에 인수가 이뤄지고 있다. 수페리어 엑시스는 우리와 제품에서 겹치는게 없다. 인수가 마무리되면 초고압부문에 투자할것이다. 300억~400억원 정도면 된다. 수페리어도 지금의 가치보다는 많이 올라갈거다. 그동안 우리는 유럽시장에 진출이 어려웠는데 수페리어 인수를 계기로 유럽시장에 진출하게 된다."구 부회장은 수페리어 엑시스 인수에 대한 기대감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러나 수페리어 엑시스 인수를 추진하면서 유동성 부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근 경기악화 등과 맞물려 증시에서 주가도 많이 떨어졌다. 구 부회장은 "유동성에 문제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또한 "수페리어 에식스 인수가격(공개매수가격) 주당 45달러에 그 답이 들어 있다"고 밝혔다.그는 "인수가격 주당 45달러는 우리가 유동성 문제를 모두 점검해서 책정한 마지노선"이라며 "이미 인수검토 과정에서 고려가 됐으며, 45달러를 초과하면 인수를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갖고 추진했다"고 설명했다.이어 "이달말까지 공개매수를 통해 지분 100%를 매입할 예정"이라며 "현재 미국 증시 등을 감안할 때 주당 45달러 이상으로 중간에 끼어들 곳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LS전선이 지분 100%를 주당 45달러에 매입하면 총 8억8800만달러가 소요된다. LS전선이 3억4600만달러를 차입해 투자하고, 수페리어 에식스 인수를 위해 미국에 설립한 지주회사가 LS전선의 지급보증을 받아 4억달러를 추가 차입한다. 또 국민연금이 1억7300만달러를 투자한다. 구 부회장은 "향후 차입자금 상환은 군포와 안양공장 매각 또는 개발자금, 상장 계열사인 JS전선 지분 일부 매각 등으로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그는 "군포공장은 이미 전주공장으로 설비 이전이 끝나 군포시에 군포부지 개발을 위한 주민제안(지구단위개발계획)을 제출한 상태"라고 밝혔다.또 "안양 공장의 경우에도 지금 동해에 짓고 있는 해저케이블 공장이 돌아가면 선박용 케이블공장 등을 같이 지어서 이전할 예정"이라며 "안양공장도 이전이 끝나면 군포공장처럼 부지매각이나 개발을 추진할 것이며, 안양과 군포공장 매각 또는 개발을 통해 6000억~8000억원의 자금확보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이와 함께 "자금조달 상황에 따라선 LS전선이 78.71%를 보유하고 있는 JS전선 지분도 일부 매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구 부회장은 "LS전선이 직접 조달할 수 있는 자금과 함께 부채비율이 11%에 불과한 지주회사 (주)LS가 있고, 자금여력이 풍부한 관계사(구자열 부회장이 대주주)인 E1이나 LS네트웍스도 뒤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이달 초 LS전선이 분할돼 출범한 (주)LS의 경우 분할된 사업회사인 LS전선과 LS엠트론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어 향후 재상장할때 지분 일부를 매각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구 부회장은 "아직 구체적인 일정은 잡힌 것이 없지만 향후 2~3년내 재상장할 것"이라며 "재상장을 할때 지주회사가 일부 지분을 매각해 신사업이나 인수합병 자금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구 부회장은 차입자금 상환뿐 아니라 이자부담을 우려하는 시각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그는 "연 이자가 LS전선과 인수하는 수페리어 에식스의 현금창출 능력이면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며 "지난해 수페리어 에식스의 순이익이 6370만달러인데, 이 정도만해도 연 차입이자를 갚고도 남는다"고 설명했다.그는 "LS전선은 내부적으로 올해 사상최대 영업이익인 1500억원을 달성해보자는 목표를 갖고 있는데, 충분히 달성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LS전선은 상반기에 연간 영업이익 목표치의 절반을 훌쩍 초과했다.◇"금융업 진출? 아직 아니다"대한통운이나 대우조선 등 국내 대형 M&A 만큼이나 금융에 대한 구 부회장의 관심도 크다. 구 부회장은 구자홍 LS회장, 구자용 E1사장 등과 함께 자산운용사 전환을 추진중인 델타투자자문의 대주주다. 또 그가 대주주이자 회장을 맡고 있는 LS네트웍스가 이트레이드증권 인수에 참여하고 있다. 여기에 구 부회장이 옛 LG투자증권(현 우리투자증권)에서 임원을 역임한 증권맨 출신이란 점에서 "구 부회장이 금융사업에 욕심을 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구 부회장은 LG증권 시절 각별한 사이였던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의 인연으로 이트레이드증권 설립에 깊숙하게 개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금융에 대한 구 회장의 행보 또한 신중하다.구 부회장은 "델타투자자문은 과거 증권사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이 해보겠다며 도와달라고 해서 투자했다가 지분을 인수하게 된 것이며, 이트레이드증권은 LS네트웍스의 수익 극대화 차원에서 자금을 투자하는 것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그는 특히 이트레이드증권 투자와 관련 "LS네트웍스는 브랜드 사업과 LS용산타워 등의 임대사업을 기반으로 매년 약 300억~400억원의 영업이익을 유지하고 있다"며 "또 현재 2000억원의 유보자금이 있는데, 자본금이 4000억원임을 감안하면 회사의 수익력을 증대시켜야 한다는 판단에 투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또한 "해외브랜드 도입 등 브랜드사업 강화와 함께 투자처 발굴을 병행하는 와중에 증권사의 성장성에 대한 기대감으로 재무적 투자를 한 것일 뿐"이라며 "LS네트웍스가 금융지주회사를 목표로 한다거나 LS그룹이 증권업을 한다는 것은 과장된 소문"이라고 덧붙였다. &nbsp;이와 관련 LS네트웍스가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하는 이트레이드증권 인수는 이달중 본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며, 이때 인수 컨소시엄도 구체화될 예정이다.구 부회장은 그러나 금융업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을 묻는 질문에는 "향후 몇년동안 금융업은 큰 변화를 겪을 것"이라며 "좀 지켜봐야겠다"고 대답해 여운을 남겼다.구 부회장은 "그동안 변화를 위해 많은 고민을 해왔지만 그룹의 비전을 만드는 것은 참 어렵다"며 "지주회사에 전략기획팀이 만들어졌으며, 여기에서 향후 성장을 위한 신사업 등 많은 연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LS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지주회사는 구자홍 회장이, 구자열 부회장은 사업자회사인 LS전선, LS엠트론 대표이사와 LS네트웍스 회장 등을 맡고 있다. 구 부회장은 지난 11일 수페리어 엑시스 공개매수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미국으로 달려갔다. ◇약력▲1979.2&nbsp;&nbsp;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1978.08&nbsp;&nbsp;LG상사 피혁기획부 입사▲1980.03 ~ 1989.12&nbsp; LG상사 뉴욕지사/국제금융부장▲1990.01 ~ 1992.03&nbsp; LG상사 동남아지역본부장, 이사▲1992.04 ~ 1995.03&nbsp; LG상사 일본지역본부장, 이사▲1995.04 ~ 1996.12&nbsp; LG투자증권 국제부문 총괄임원, 상무▲1997.01 ~ 1999.12&nbsp; LG투자증권 영업부문 총괄임원, 전무▲1999.12 ~ 2001.09&nbsp; LG투자증권 영업총괄 부사장▲2001.10 ~ 2002.02&nbsp; LS전선(舊LG전선) 재경부문 부사장▲2002.03 ~ 2002.12 &nbsp;LS전선 대표이사 부사장▲2003.01 ~ 2003.12&nbsp; LS전선 대표이사 사장▲2004.01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LS전선 대표이사 부회장&nbsp;&nbsp;▶ 관련기사 ◀☞(종목돋보기)한달만에 40% 급락한 '지주사 LS'☞(특징주)지주사 바뀐 LS 반등 `내릴만큼 내렸나`☞LS전선, 카타르 전력선 잔여 계약 체결
2008.07.14 I 박호식 기자
  • 첨단 수영복 '레이저 레이서' 어떻게 보나?
  • [조선일보 제공] &nbsp;▲ 운동장비의 진화 무제한 방치는 곤란 레이저 레이서(제4대 상어수영복)는 더 빨리 헤엄치고 싶은 꿈을 실현시키는 데 도움을 줬지만, 동시에 '인류가 과연 외부의 힘을 빌려 성적을 향상시키는 데 제한이 필요 없는가'라는 또 다른 문제를 제기했다. 수백만 파운드의 연구 비용이 들었지만, 수영복마다 최대 사용기한은 불과 한 시간도 채 안 된다. 수영 선수들이 100분의 몇 초를 단축하기 위해 이렇게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사치가 아닐까? 비싼 장비를 둘러싼 논란은 수영에만 있는 게 아니다. 육상 운동화는 종종 수십만 달러가 넘고, 사이클 선수가 타는 사이클도 아마 수만 유로가 넘을 것이다. 이런 장비를 연구·개발하는 기업이나 기관은 우주 과학과 연관된 고급 기술을 이용하기도 하고, 비싸고 희귀한 광물 자원이나 인조 합성재료를 사용한다. 덕분에 인류는 기록 경신을 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인류사회 발전과 생산력 증강을 촉진시키는 데는 별다른 효과가 없다. 운동 선수들은 성적 향상을 위해 장비에 기대를 걸고, 심지어는 신앙으로 여기고 있어 일부 체육계 인사들이 "장비는 '과학기술 흥분제'와 같다"고 규탄한다. 원래 올림픽 정신은 인류를 격려해 스스로 도전하게 만드는 것이지, 과학 기술 수준을 높이는 게 아니다. 운동장비의 진보에는 반드시 하나의 제한이 있어야 한다. 대가를 아끼지 않고, 수단을 가리지 않고 연구하는 것은 그 존재의미에 위배된다. [츠신 중국청년보 기자] ▲ 국내 선수 중 박태환만 '레이저 레이서' 입어 수영은 사람이 한다. 수영복이 하는 게 아니다. 스피도사의 레이저 레이서도 신소재·신공법으로 만들어진 신제품일 뿐이다. 아무리 수영복이 진화하더라도 선수의 진보가 더디면 소용이 없다. '첨단 수영복'의 개념조차 희미했던 1989년에 재닛 에번스(미국)가 세웠던 여자 자유형 800m 세계기록(8분16초22)은 19년 가까이 꿈쩍하지 않고 있다. 레이저 레이서가 대부분의 선수에게 마법을 발휘한다고 속단하기는 이르다. 경쟁사 제품보다 얼마나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기록 단축 효과가 있는지 검증하려면 충분한 데이터와 분석이 필요하다. 레이저 레이서를 선호하는 선수도 수영복 형태에 따른 기호가 제각각이다. 한국 대표선수 중 유일하게 스피도와 후원 계약을 맺고 있는 박태환은 허리에서 발목까지 내려오는 레이저 레이서로 올림픽 메달에 도전한다. 상반신까지 덮는 제품은 몸에 잘 맞지 않고 가슴 쪽으로 물이 들어가기도 한다며 포기했다. 반면 마이클 펠프스(미국)는 종목별로 다른 레이저 레이서를 소화한다. 박태환을 뺀 나머지 한국 대표 선수들은 아레나를 입는다. 대한수영연맹은 연간 5억원 상당의 물품과 현금을 지원하는 오랜 스폰서와의 신의를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선수들에게 선택의 기회는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 국가대표가 아닌 선수들이 국내 대회에 레이저 레이서를 입고 나와 한국기록을 바꾸기 시작한다면 연맹으로서도 변화를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 성진혁 기자] ▲ '승리지상주의'에 물들고 있지 않나 고민을! 올림픽을 포함한 스포츠 발전은 용품발전의 역사와 떨어져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이제는 현실을 직시해야 할 때가 왔다. 수영계에 혁명을 일으키고 있는 스피도사의 레이저 레이서(LR)가 그 단서가 될 것이다. 스피도사의 경영 자세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기업의 노력은 경탄할 만하다. 단 스포츠의 근원을 생각한다면 이처럼 용품에 의해 기록이 향상되는 것에는 의문이 든다.6월 29일 수영 강국인 미국에서 올림픽대표선발전이 시작됐다. 올해 2월 레이저 레이서가 나온 이후 선발전 이전까지 수립된 개인종목 세계기록 19개 가운데 18개가 레이저 레이서에 의한 것이다. 95% 가깝게 똑같은 수영복을 입었다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것이다. &nbsp;게다가 미국대표선발전에서도 레이저 레이서를 입은 선수들의 신기록이 나오고 있다.개인적으로 레이저 레이서에 익숙하지 않은 것은 비주얼 문제도 있다. 남자 선수가 전신수영복을 입으면 단련된 육체미를 볼 수 없게 된다. 마치 사이보그 간의 레이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류가 스포츠를 사랑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일상생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인간과 인간, 육체와 육체의 충돌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에게는 지나치다고 생각되는 용품개발은 '승리지상주의'에 물들고 있는 올림픽, 스포츠의 문제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쓰쓰미 고이치로(堤浩一郞) 일본 마이니치신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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