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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석의 식사(食史] 면과 파스타, 끊긴 듯 이어진 '누들로드'
- 매일 우리가 먹고 있는 것은 그저 배를 채우려는 끼니가 아닙니다. 생존을 위해 치열히 살았던 인류의 식문화는 곧 우리의 역사가 되었고 삶의 방식으로 남았습니다. 이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한 접시의 음식 속에 녹아든 인문학은 또 하루를 지탱할 에너지와 지식을 줄 뿐 아니라, 우리의 식탁을 더욱 맛깔나고 풍요롭게 만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식사(食史) 한 끼를 지면의 식탁 위에 차려보려 합니다. 눈으로 맛보고 머리로 씹어보는, 어쩌면 포만감이 오래도록 남을 식사의 시간입니다. <편집자주>[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 소장] 국수. 그저 곡물을 반죽해 길게 뽑은 음식이다. ‘뭣이 중한디’. 국수의 발명은 인류에게 큰 사건이다.담양 국수거리 진우네 집국수 비빔국수곡물을 그대로 먹던 것에서 몇 단계 진화했다. 곡물을 빻아서 반죽해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낸 것이다. 머릿속으로 나중에 완성될 형태를 미리 상상하고 만들어야 한다.‘어! 이렇게 하면 가루가 되네?’그렇다. 알갱이 곡식을 제분하려면 맷돌을 만들고 다루는 기술도 필요했다. 이렇게 빚은 국수를 익히기 위해선 화구(火具)도 필요했고 혹여 삶기라도 하려면 물이 새지 않는 질그릇도 만들어 내야 했다.국수를 만들어 먹게 된 것은 그만큼 인류의 두뇌와 손기술이 첨예하게 발달했다는 방증이다.담양 국수거리 진우네 집국수◇동양은 면, 서양은 파스타 국수의 시작에 대해선 여러 설이 있다. 가장 오래된 국수의 유적은 중앙아시아(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 부근)에서 발견됐지만, 비슷한 시기에 북아프리카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도 국수를 만들어 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어쨌든 국수는 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애초 누들로드란 따로 없었다. 어디서 어디로 일방적으로 전래된 것이 아니라 방사형으로 퍼져 나갔다. 덕분에 동양의 면(麵)과 서양의 파스타가 얼추 비슷한 시기에 발달했다. 마르코폴로가 문익점처럼 중국에서 비법을 가져간 것이 아니란 얘기. 동방견문록보다 적어도 2000여 년 앞선 고대 로마의 문헌에도 국수가 언급된다.다만 근대까지 국수를 상식하는 지역은 주로 아시아에 편중되었고 유럽에는 이탈리아 파스타와 독일 남부 슈페츨레(Spatzle) 등 일부 지역에만 국한되어 있었을 뿐이다.우리나라에는 서역과 교류가 활발했던 삼국시대에 들어온 것으로 보이나 아쉽게도 국수에 대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최초로 국수가 등장한 문헌은 고려도경(1124년). 북송의 서긍이 고려에 사신으로 다녀오며 풍습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했는데 ‘고려의 음식 중엔 면(국수)이 으뜸’이라고 남겼다. 사신을 접대할 때 내왔을 정도로 국수는 귀한 음식이었다.국수는 얼핏 한자어 같지만 순우리말이다. 주로 국물에 말아 먹는 습면(濕麵) 방식이며 비벼 먹는 비빔면(골동면)은 훗날 등장한다.당시엔 지리적 기후적 여건 탓에 밀이 굉장히 귀한 재료라 주로 메밀을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잘 뭉쳐지지 않는 메밀에 소량의 밀가루나 녹두 전분을 첨가해 제면했을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그 때문에 밀가루로 만든 국수는 정말 귀한 음식 대접을 받았다.길쭉하니 국수는 모두 같아 보이지만 제면하는 방식은 지역마다 다르다. 비벼서 만드는 것이 가장 원초적이다. 1991년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 투르판 화염산에서 발견된 최초의 국수 유물은 딱 보기에도 짧고도 굵다. 거의 떡볶이 두께에 가까운 이 국수는 반죽을 양 손바닥으로 문질러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같은 지역에서 먹고 있는 국수 요리 라그만(lagman)과 닮았다.따지자면 납면(拉麵) 방식에 가깝다. 일일이 손으로 비벼서 만들다 아예 반죽을 늘여가며 뽑는 기술이 생겨나 요즘은 수타면(手打麵)이라 한다.국수가 세계를 휘휘 감고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먹는 국수 중 하나인 이탈리아의 파스타◇납면, 압출면, 절면 등 다양한 제면법 발전해 중국의 국수 제면법은 다양한 것이 있지만 납면이 기본이다. 진나라(5~6세기) 때 나온 농서 제민요술(濟民妖術)에 최초의 국수 제면법이 기록되어 있는데 손으로 눌러 얇게 만든 수인병(水引餠)이 바로 납면 방식임을 알 수 있다.오랜 경험과 학습 과정을 거쳐 밀가루를 기하급수로 늘여 만드는 현대식 수타면은 중국 국수의 상징이 됐다. 반죽에 알칼리수를 더하면 점도와 탄성이 증가하는 원리도 응용할 줄 알았다. 중국 면 요리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데에는 ‘수타’의 화려한 퍼포먼스가 한몫했다. 참고로 납면은 라면의 어원이 됐지만 실제 라면의 제면법은 납면과는 크게 다르다.우리나라의 국수 제면법은 압출면(押出麵)이다. 반죽을 눌러 작은 구멍으로 빼는 방식이다. 반죽이 좀처럼 뭉쳐지지 않는 메밀이 국수의 주재료였기 때문이다. 뜨거운 물로 한 ‘익반죽’을 분틀에 넣고 지렛대로 뽑아내는 방식을 주로 썼다. 냉면과 막국수가 바로 압출면이다.압출면, 또는 압면(押麵) 방식이라 불리는 이 제법은 상당히 강한 힘으로 눌러야 국수가 나오기에 장정이 분틀 손잡이에 거꾸로 매달려 안간힘을 쓰는 그림이 기록으로 남아있다.부산 내호냉면의 냉면지금의 칼국수 제면법인 절면(切麵)도 있었다. 반죽을 얇고 넓게 편 다음 칼이나 작두로 써는 방식이다. 1766년(영조 42년) 간행된 증보산림경제에는 메밀 반죽을 얇게 밀어서 실처럼 썬다고 적어뒀다. 똑같이 칼을 쓰지만 어깨에 반죽을 올리고 얇게 깎아내는 중국식 도삭면(刀削麵)과는 또 다른 방식이다.일본 역시 칼로 써는 절면을 쓴다. 워낙 남북의 위도 차이가 나고 기후가 서로 다른 까닭에 간토(관동)과 간사이(관서)의 국수 재료가 메밀(소바)과 밀(우동) 등으로 분명한 차이가 난다.밀가루 우동을 즐기는 간사이 지방 쪽에선 반죽을 버선발로 밟아 반죽해 점도를 높인 후 작두로 잘라 우동을 만든다. ‘사누키 우동’으로 유명한 가가와현의 제면 방식이다.간토 지방의 소바는 우리 냉면처럼 메밀로 만들지만 제면법은 역시 가늘게 써는 것이다.베트남의 쌀국수 포(pho) 역시 쌀가루를 반죽해 얇고 넓게 누른 다음 칼로 썰어내는 절면 방식이다. 밀이 나지 않는 기후라 쌀로 만들었을 뿐이다.한편 이탈리아 파스타의 제면법은 늘이고 뽑고 손으로 빚어 만드는 등 수도 없이 많다. 그중에서 가장 기본은 물로 반죽한 듀럼밀을 압출해서 뽑는 방식이다. 서양의 ‘국수 종주국’답게 굉장히 다양한 종류가 있다.롱 파스타에는 스파게티, 가느다란 카펠리니, 눌린 타원 단면의 링귀네, 두껍고 넓은 페투치네, 칼국수처럼 납작한 탈리아텔레, 튜브 모양의 부카티니, 우동 가락같은 비골리 등이 있다.쇼트 파스타는 더 다양하다. 펜촉 모양 펜네, 짧은 튜브 마카로니, 난로 연통 리가토니, 나비넥타이 파르팔레, 소라 모양 콘킬리에, 스크루 모양 로티니와 푸실리, 마차 바퀴같은 루오타, 달팽이를 닮은 루마케, 사람 귀 모양 오레키에테 등 수도 없다. 하지만 쇼트 파스타는 우리로선 수제비 개념이다. 일반적인 ‘국수’의 개념으로 한정할 때는 롱 파스타에만 수긍이 간다.가이오국수 얼큰 부추국수◇‘밥보다 국수’, 면을 사랑한 한국국수는 우리에게 어떤 음식일까?“희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 시인 백석은 그의 시 ‘국수’에서 국수(그중에서도 냉면)를 ‘그 무슨 반가운 것’이라 칭송했다.또 ‘스님이 웃는다’는 뜻의 승소(僧笑)는 불교에서 국수를 뜻하는 말이다. 공양을 위해 국수를 준비하면 반가움에 저절로 웃음이 난다는 의미다. 이처럼 국수는 마니아층이 많은 음식이었다.요즘도 ‘밥보다 국수’라며 한국인 중에 유독 국수 좋아하는 이가 많다. ‘면(麵)성애자’란 말이 생겨날 정도다. 실제로도 그렇다. 쌀 소비는 꾸준히 감소해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약 58㎏(이하 2020년 기준)였다. 반대로 밀 소비량은 지속해서 늘어 약 31㎏을 차지해 제2의 주곡 자리까지 올랐다.물론 밀 소비량 중엔 국수뿐 아니라 빵과 떡의 수요도 있다(물론 국수 중에도 메밀과 고구마 전분 등으로 만들기도 한다). 아직 밥을 대신했다는 말엔 무리가 있지만 분명히 국수는 밥과는 다른 입맛의 매력을 품고 있다.밀은 귀했다. 권세가가 많았던 안동의 국수가 유명하듯 예전에는 양반가에서나 먹을 수 있던 귀한 음식이 밀국수였지만 지금은 저렴한 대중 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20세기 초 도입된 소면 공장과 한국전쟁 이후 미국산 원조 밀가루가 대량으로 풀린 것이 국수 대중화에 큰 공을 세웠다.보관도 조리도 편한 까닭에 단숨에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소면’은 식탁의 혁명이었다. 육수만 내면 언제든 간편히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소면(素麵)은 작을 소(小)를 쓰는 것이 아니라 이름처럼 그저 하얀색 국수란 뜻이다. 흰옷을 뜻하는 소복(素服)의 소 자를 쓴다.일제강점기 한반도 곳곳에 소면 공장이 생겨났다. 기계를 썼지만 제면 원리는 재래식 납면 방식이었다. 베틀처럼 생긴 제면기에서 막대로 반죽을 실처럼 가늘고 기다랗게 늘인다.가내 수공업 형식에서 제면 기계를 들여오며 국수 공장은 현대 식품산업의 기수가 됐다. 1933년 대구에서 풍국면이 나왔고 소표, 곰표 등 국수 브랜드가 쏟아졌다. 이 무렵 창업한 삼성도 1938년 대구 북성로에서 국수를 만들어 팔며 사업을 확장해 오늘에 이르렀다. 이름은 별표 국수였다.인스턴트 라면이 나오기 전까지 국수는 최고의 패스트푸드로 각광받았다. 밀가루가 흔해지면서 값싸고, 빨리해 먹을 수 있고, 든든한 메뉴가 국수였다.담양 국수거리◇혼분식 장려운동, 국수의 지위를 올려 “참기름도 치소”하근찬의 소설 ‘수난이대’(1957년)에서도 일제에 징용됐다가 팔 한쪽을 잃은 아버지가 한국전쟁에서 다리 하나를 잘린 채 돌아온 아들을 만나 국수를 사 먹이는 장면이 나온다.국수가 밥의 지위(주식)를 노리기 시작한 계기는 바로 혼분식 장려운동이다. 1969년 제3공화국 정부가 밥(쌀)을 절약하기 위해 실시한 혼분식 장려운동은 과거 특별하던 날에만 먹던 국수(소면)를 거의 모든 식당 메뉴에 들어가게 한 식단 변화의 전환점이 됐다.수요일과 토요일 무미일(無米日)을 두고 절미운동(節米運動)을 벌였다. 이때 국수와 수제비가 활약했다. 설렁탕, 곰탕에도 국수를 말아 냈다. 추어탕에도 국수가 들어갔다. 이런 흔적은 지금도 이어져 90여년 전통의 용금옥(1932년 개업)에서 추탕에 말아 먹는 국수사리를 따로 내주고 있다.이후 국수는 증식(增食) 수단의 역할을 벗어던졌지만 이미 ‘후루룩’의 매력에 빠져버린 국민의 입맛은 여전히 국수를 찾게 됐다.더 이상 잔칫날이나 먹는 귀한 음식은 아니지만 행사에서 국수의 위상은 여전히 유효하다.선남선녀가 만나 가약을 맺을 때면 마땅히 잔치를 열고 국수를 나눈다. 길게 사랑하고, 오래 살란 뜻이다. 환갑이나 고희연에는 기다란 모양새처럼 오랫동안 무병장수하라는 의미로 국수를 먹는다.유라시아 대륙 한가운데서 시작해 전 세계를 두루 감싸고 있는 국숫발의 매력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그 가락처럼 기나긴 세월 동안 인류의 입맛을 사로잡은 한 그릇의 국수. 입술을 동그랗게 모아 ‘쪼록’ 빨아들이면, 비로소 춤을 추는 국숫발이 노란 봄날의 아지랑이를 살짝 닮은 듯하다.혼분식 장려운동의 잔재가 여전하다. 용금옥 추탕에 들어가는 국수사리.◇ 국수 맛집▶얼큰 부추국수 = 가이오국수. 커다란 그릇에 부추무침과 김가루를 수북이 얹어 준다. 잘 헤쳐야 비로소 국수가 보인다. 겉절이 부추와 국수를 한 번에 오물오물 씹으면 아삭함과 부드러움이 교차하는 식감의 대비가 좋다. 이름과는 달리 국물은 그리 맵지 않다. 식으면 맛이 덜하다고 뜨거운 국물을 계속 채워준다. 열무김치와 배추김치도 맛이 잘 들었다. 서울 은평구 연서로 132.▶진우네 집국수 = 담양에는 국수거리가 있다. 관방제림 옆으로 천변 국숫집들이 늘어섰다. 초입에 있는 이 집은 시원한 전라남도 특유의 진하고 시원한 멸칫국물이 특징이다. 얼추 우동 가락의 절반 정도 되는 굵은 면을 쓴다. 한입 집어도 입안 가득 포만감이 느껴진다. 고명으론 고춧가루와 대파만 얹었는데도 뭔가 모자람이 없다. 2알에 1000원 받는 계란도 필수 메뉴라 한 알은 까먹고 나머지는 국수에 넣으면 든든하다. 담양군 담양읍 객사3길 32.▶봉골레 파스타 = 라칸티나. 1967년 개업한 국내 최고(最古)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다양한 ‘양국수’(파스타)를 판다. 봄 조개라니 봉골레가 좋다. ‘스파게티 콘레 봉골레’는 백합을 넣고 국물 흥건하게 끓여낸 독특한 스타일이다. 올리브 오일과 화이트 와인을 넣고 끓여낸 국물에 시원한 감칠맛이 들었다. 알덴테로 삶아낸 면발과도 퍽 어울린다. 서울 중구 을지로 19. 부산 내호냉면의 냉면
- [단독]장수 모범 가게라더니…백년가게, 10곳 중 1곳 '불량' 적발
- [이데일리 김호준 기자] 오랜 기간 명맥을 유지하며 경쟁력을 인정받은 소상공인 점포에 대해 정부가 선정하는 ‘백년가게’ 10곳 중 1곳은 식품위생법 위반 등으로 행정처분을 받은 이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27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권명호 국민의힘 의원이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제출받은 ‘백년가게 전수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0월까지 선정된 백년가게 636곳 점포 중 61곳이 최근 3년(2017~2020년)간 식품위생법 등 법·규정 위반으로 행정처분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과징금과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업체도 각각 7곳과 6곳으로 드러났다.백년가게는 중기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업력 30년 이상 점포를 대상으로 제품·서비스의 차별성이나 영업 지속가능성 등을 평가해 선정한다. 서울 ‘태극당’, 대전 ‘성심당’, 원주 ‘진미양념통닭’, 군산 ‘이성당’, 부산 ‘내호냉면’, 통영 ‘거구장갈비’ 등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린 점포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지난 2018년 6월부터 선정을 시작해 지난 8월 기준 총 1022곳이 선정됐다.정부는 백년가게로 선정된 점포에 인증서와 현판을 포함해 온라인 판로개척과 홍보, 전문 컨설팅 등을 제공한다. 중기부와 소진공은 올해 지원 예산으로 약 60억원을 편성했다. 최근에는 이마트, 프레시지 등 대형 유통업체에서도 백년가게 식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온·오프라인 판로 개척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자료=중기부, 권명호 의원실)그러나 지난해 중기부 산하기관 국정감사에서 백년가게로 선정된 일부 점포들이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행정처분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백년가게 음식점 400곳 중 63곳(16%)이 식품위생법을 위반한 전력이 있다고 지적했다. ‘업소 내 도박’과 ‘도박 방조’로 각각 과징금과 영업정지 행정처분을 받은 곳도 있었다.이에 중기부와 소진공은 지난해 11월 백년가게로 선정된 636곳 점포를 대상으로 식품위생 관련 행정처분을 포함해 산업재해, 임금체불, 불공정행위 등 이력이 있는지 전수조사를 벌였다. 중기부는 전수조사를 통해 식품위생법 등 법규를 위반한 업체 61곳을 식별하고, 과징금 이상 행정처분을 받은 업체 13곳에는 ‘경고’ 조치했다.문제는 이처럼 다수 백년가게가 기본적인 규정조차 지키지 못하고 과징금이나 과태료, 영업정지, 시정명령 등 이력이 있음에도 중기부는 경고 조치 외에 별다른 처분을 내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당시 중기부와 소진공은 법 위반 사안이 무거운 경우 백년가게 지정 취소까지 검토한다는 입장이었지만, 관련 규정 미비로 지정 취소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소진공 관계자는 “현재 부적격 업체는 백년가게 신규 선정을 제외하고 있으며, 식품위생법 관련 위반 사항이 적발되면 선정을 취소하도록 제도를 개선했다”며 “백년가게 관리 감독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권명호 의원은 “최소한의 식품위생 관련 기준조차 지키지 못한 업체에 제재를 하거나 자격을 박탈할 수 있는 어떠한 근거도 없는 부실한 관리 감독으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이용자에게 돌아갔다”며 “소상공인 경쟁력 강화라는 본연의 목적에 맞는 정책 개발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 군산 ‘이성당’, 서울 ‘진주회관’ 등 80곳 백년가게로 선정
- [이데일리 박민 기자]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으로 알려진 전북 군산의 ‘이성당’, 콩국수로 유명한 서울 중구 ‘진주회관’, 만화가 허영만의 식객에 소개된 부산의 ‘내호냉면’ 등 전국의 80개 점포가 백년가게로 선정됐다.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는 우수 소상공인 80개사를 ‘백년가게’로 추가 선정했다고 9일 밝혔다. 이로써 지난 2018년 6월부터 선정해온 전국의 백년가게가 모두 485개로 늘었다.백년가게는 30년 이상(국민 추천 시 2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해온 소상공인 점포 중 중기부가 △경영자의 혁신의지 △제품·서비스의 차별화 △영업의 지속가능성 등을 종합 평가해 선정한다. 백년가게로 선정되면 100년 이상 생존·성장할 수 있도록 전문가 컨설팅, O2O(Online to Offline) 플랫폼 홍보 등을 제공한다.이번에 선정된 80곳 백년가게의 업종은 음식점업 44곳, 도소매업 14곳, 서비스업 11곳, 제조업 10곳, 숙박업 1곳 등이다. 군산의 ‘이성당’, 서울의 ‘진주회관’ 등 음식점업이 43개로 가장 많았다. 이 외에도 떡 방앗간, 자동차 공업사, 제면소, 호스텔 등이 선정되면서 생활 속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업종의 ‘백년가게’가 발굴됐다. 특히 지난 2월 처음 도입된 국민이 직접 추전하는 업체 30곳이 추가로 선정돼 국민추천제 백년가게는 총 49곳으로 늘었다.중기부는 이번 백년가게 선정과 함께 경품 이벤트를 이달 14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3주간 진행한다. ‘백년가게’를 찾은 손님이 방문 사진을 백년가게 홈페이지에 올리면 추첨을 통해 당첨자에게 컴퓨터, 온누리 상품권 등 푸짐한 경품을 지급할 예정이다.중기부 관계자는 “그동안 소상공인들이 켜켜이 쌓아온 시간은 그 자체로 훌륭한 역사와 전통”이라며 “백년가게 브랜드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백년가게가 다른 소상공인들의 성공모델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세 그릇 합쳐 274세…원조 중 원조
- [이데일리 황수연 기자] 요즘 ‘원조’ 맛집은 두 집 걸러 한 집꼴이다. 여기도 저기도 손님 몰이에 원조를 내거는 탓이다. 낯선 피서지에서 진짜 원조를 발라내기란 더 어렵다. 까딱하면 맛도 없는데 터무니없는 값과 서비스로 바가지 쓰기 십상이다. 농림수산식품부가 최근 반가운 책 하나를 냈다. 전국 50년 이상 대물림한 원조 한식당 100곳을 소개했다. 전통과 원조를 내건 전국의 한식당들 속에서 검증된 진짜 원조집을 찾을 기회다.◇한여름 보양식, 냉면과 삼계탕에도 ‘명품’이 있다뼛속까지 찬기를 들여줄 ‘냉면’의 조상격은 저 멀리 부산에 있다. 해운대를 찾았다가 부담 없이 시원한 한 끼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우암동 ‘내호냉면’이 제격이다. 무려 100세에 달하는 최고(最古) 집. 1919년 북한 흥남에서 ‘동춘면옥’이란 이름으로 태어나 피난 나선 창업주를 따라 부산까지 내려왔다.철저하게 정통 북한식 냉면을 고집하는 터라 실향민들이 주로 찾는다. 100% 국내산 고구마 전분을 이용해 뽑는다는 쫄깃한 면발, 한우암소의 사골과 아롱사태 고기를 넣어 진하게 우려낸 육수의 깊은 맛으로 하루 평균 500그릇이 뚝딱 팔린다. 함흥냉면이 대표이지만 부산의 별미 밀면도 간판 메뉴다.함흥식 냉면보다는 시원하고 깊은 육수와 메밀 면발의 구수한 평양식 냉면을 맛보고 싶다면 서울 서소문동의 ‘강서 면옥’을 추천한다. 시원한 동치미 국물을 적당히 끓인 육수와 순 메밀 면발로 벌써 60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청와대 냉면’이라고도 불린다는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에 이르기까지 20여 년간 냉면 육수를 청와대에 납품한 까닭이다. 냉면 육수를 우려냈던 현 80세 고령의 할아버지 김진형 씨가 감기에 걸리면 청와대에서 감기약까지 챙겨 보낼 정도였다 하니, 안 먹어도 그 맛은 짐작할 만하다.냉면에 더해 무더운 여름철, 원기를 되찾아줄 설렁탕에도 전설 같은 집이 있다. ‘이문 설농탕’은 올해로 100년하고도 8년이나 더 됐다. 무려 4대째 맛 내림으로 서울시 음식점 허가 제1호다. 그만큼 단골들도 위인급이다. 마라톤 귀재 손기정부터 김두한, 초대 부통령 이시영 등이 대표적.이 집에선 자연에서 방목한 한우를 주로 쓴다. 하루 반나절 이상을 끓여 국물을 우려내는데, 그 맛이 담백하고 깔끔하니 그야말로 일품이다. 설렁탕 맛은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을 한다면 큰 오산이다. 표준어인 설렁탕 말고 ‘설농탕(雪濃湯)’이란 이름을 그대로 쓰는 데도 흰 눈처럼 뽀얀 국물에 대한 자부심이 담겨 있다 한다. 하지만 주인인 전성근(67)씨의 비법 소개는 ‘쿨’하다. “좋은 재료와 오래 끓이는 정성, 그 이상의 비법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한 단계 더 고급화된 고단백 고철분 보양식, 영양탕의 원조는 60년을 꿋꿋이 버텨온 대전의 ‘평양옥’이 진리다. 직접 운영하는 농장에서 그날그날 고기를 공급받아 신선도는 가히 최상이고 먹는 느낌도 부드럽고 쫄깃하다. 몇 가지 약재가 들어가 하루 24시간 이상을 우려내는 육수 때문에 일 년 내내 가마솥 불이 꺼지지 않는다고 한다.◇입 짧은 아이들이 좋아할 떡갈비, 불고기“한일관 불고기나 한번 배가 터지게 묵고 죽으면 내사 마 소원이 없겄다.” 조정래 대하소설 ‘한강’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한일관’ 불고기는 여기뿐 아니라 문헌, 논문에서도 종종 등장한다. 일본강점기인 1939년 문을 열어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한데, 이 집에서 처음엔 쇠고기 장국밥과 너비아니를 팔다, 단시간에 조리할 수 있는 불고기로 대체한 것을 시초로 대중적인 불고기가 탄생했다고 한다.50년 전통 조리법으로 특허까지 받은 떡갈비는 전남 ‘덕인관’에서 맛볼 수 있다. 덕인관 만의 핵심 비결은 갈비뼈에 붙은 갈빗살에 무려 60번 정도의 잔 칼집을 내주는 것. 양념장이 잘 배고 먹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다. 3차례의 양념 숙성과정을 거친 떡갈비는 특허로 출원되기도 했다니 떡갈비의 보증수표라 할 수 있다.1955년 이후 지금껏 연탄으로 돼지갈비를 구워와 매월 1000여 장의 연탄은 기본으로 쓴다는 ‘남들 갈비’. 연탄불에 은근히 익혀 기름을 뺀 돼지고기의 맛이 그렇게 연해 소갈비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되던 날 마지막까지 먹었다는 양념갈비 집으로 칠순을 넘긴 나이의 충남 예산 ‘소복식당’은 청와대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100인분 정도를 준비했다고 한다. 양념갈비뿐 아니라 곁들여 나오는 김치, 어리굴젓 등에 예로부터 내려오는 손맛이 그대로 담겨 있다. 11월부터 4월까지 나오는 서해 토종 굴회는 계절메뉴로 꼽힌다. 황수연 기자 ppangshu@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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