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시장 상인들 화재피해도 억울한데 연 수천만원 벌금 낼 판

청량리시장 화재 당시 시장 등 현장 찾아 "복구 지원하겠다" 약속
화재 후 재건축하려니 무허가 건물…재건축 시 연 수천만원 벌금
상인들 "복구 지원 해주겠다면서…장사도 못하고 있다" 분통
  • 등록 2018-04-26 오전 6:20:00

    수정 2018-04-26 오전 6:20:00

[이데일리 이슬기 최정훈 기자] “불났을 땐 장관이며 구청장이며 다 와서 복구해 주겠다더니 지금은 복구는 커녕 1년에 5000만원씩 벌금을 물어가며 장사해야 할 처지입니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전통시장에서 30년 넘게 고추장사를 해온 강신우(55)씨는 화재가 난 지 석달이 지났지만 여전히 가게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강씨가 장사를 하던 곳이 무허가 건물이었던 탓에 땅주인에게 허락을 받지 않으면 건물을 새로 올릴 수 없어서다.

불이 나 철거된 상가건물의 땅은 수십명이 공동명의로 소유하고 있다. 문제는 상속 등으로 손바뀜이 여러차례 일어난 탓에 현재 법적인 소유주가 누구인지 일일이 확인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결국 강씨는 울며 겨자먹기로 연 5000만 원에 달하는 구청의 벌금(이행강제금)을 감수하고 무허가로 건물을 다시 올리고 있다.

강씨는 “상인들은 관행적으로 건물주한테 월세 주고 장사했을 뿐 건물주 아닌 땅 주인이 따로 있다는 것은 전혀 몰랐다”며 “어디에서 뭐하고 사는 지도 모르는 땅주인 수십명의 동의를 얻는게 가능하겠냐. 장사는 해야하니 벌금을 각오하고 무허가로 건물을 다시 올리기로 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시장에서 화재로 소실된 건물 터에 새 건물이 올라오지 않아 공터로 남아있는 모습. 건물주들은 구청의 이행강제금을 부담할 여력이 없다고 건물을 새로 짓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사진=최정훈 기자)
화재 피해 상가 땅주인만 67명인 무허가 건물

청량리시장 화재는 지난 1월 12일 오후 11시 14분쯤 발생했다. 화재로 청량리시장 773번지의 총 18개 점포가 불탔다. 모두 무허가 건물에서 영업을 하던 점포였다. 화재 당시 시장을 찾은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박원순 서울시장, 유덕열 동대문구청장은 입을 모아 “빠른 피해 복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장관과 시장, 구청장의 말을 믿고 불탄 점포를 철거하고 복구작업을 상인들은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들었다. 자신이 월세를 내고 운영하던 가게가 입주해 있던 상가가 무허가 건물인데다 땅주인은 따로 있어 땅주인의 동의를 받아야 새로 건물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해당 지역은 구획이 나뉘어져 있지 않은 채로 67명이 땅을 공동소유하고 있는 데다, 수십 년에 걸쳐 상속 등을 거치면서 누가 진짜 땅 주인인지 알기 어려운 상황이다. 동대문구청은 건물을 새로 짓기 위해서는 땅주인 중 80%의 동의를 받아오라고 요구했다.

동대문구청의 한 관계자는 “상인들 입장에선 더 이상 장사를 못하게 돼 억울할 수 있지만 무허가 건물이기 때문에 구청이 더 도움을 줄 순 없다”며“정식 허가를 받고 건물을 올려야만 또 화재가 났을 경우 전기 배선 등 안전 문제에 대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할 수 있다”고 했다.

또다른 동대문구청 관계자도 “상인들의 고충은 알지만 구청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잘라 말했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시장에서 화재로 소실된 건물 터에 상인들이 무허가 건물을 올린 모습. 이 건물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은 향후 연 5000만 원에 달하는 이행강제금을 부담하게 된다.(사진=최정훈 기자)
동대문구청 “땅주인 67명중 80%에 동의 받아야 신축 허용”

관련법과 서울시 건축조례에 따르면 시는 1989년 1월 24일 이전에 지어져 무허가건축물 대장에 등재된 ‘특정무허가건축물’은 벌금 부과나 철거 대상에서 제외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존무허가 건축물 대장에 올라 있는 무허가 건축물은 2만8771동에 이른다. 정부는 건축물 대장 정비 전에 지어진 건물에 대해서는 허가를 받지 않았더라도 적법하게 지어진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지어진 지 40년 가까운 청량리시장 773번지 소재 건물들도 이 때문에 단속대상에서 제외돼 있었다. 이에 더해 땅 소유구조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 “자신의 땅에 무허가 건물이 들어서 있다”고 신고한 땅주인도 없었다. 이 때문에 10년 넘게 이 곳에서 장사를 해온 상인들도 무허가 건물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러나 화재 이후 땅주인 허가 없이 건물을 올릴 경우 무허가 건물로 새로 등재돼 철거대상이 되고 이를 철거하지 않으려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 현재 강씨와 일부 상인들이 함께 다시 짓기로 한 건물에 부과되는 벌금만 매년 5000만원에 달할 전망이다. 강씨와 상인들을 구청이 벌금을 부과하면 이를 나눠 납부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과일 장사를 하는 이석규(47)씨는 “강씨 쪽은 벌금 5000만원을 나눠서 부담하기로 했지만 우리 쪽은 벌금이 매년 6500만원을 넘는다”며 “과일 장사를 하면서 매년 그 큰 액수를 감당하기는 어려워 장사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상인들은 시장과 장관 등이 연이어 화재 현장을 찾아 복구를 약속하고도 나몰라라 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과일 장사를 하는 이혁(52)씨는 “높으신 분들이 적극적으로 복구 지원을 해주겠다는 말을 믿고 건물을 철거하는데 동의했다”면서 “정작 철거하고 난 후 구청에서 새 건물을 지을 수 없다고 하니 황당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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