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北외교관..잠적 아니라 납치[그해 오늘]

1999년 2월19일 자취감춘 주태국 북한참사관 홍순경씨
본국 귀국 명령받고 신변 위협느껴 가족과 망명
은신처 들이닥친 北공작원에 납치됐다가 구사일생 탈출
  • 등록 2023-02-19 오전 12:03:00

    수정 2023-02-19 오전 12:03:00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1999년 2월19일. 주태국 북한대사관의 과학기술참사관 홍순경씨가 잠적했다. 함께 있던 부인과 막내아들을 포함해 일가가 자취를 감췄다. 이틀 전 북한 국가보위부에서 ‘2월19일 방콕 공항을 통해서 평양으로 귀국하라’는 통보를 받았지만, 당일 공항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홍씨 일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1999년 3월11일 태국 경찰에 조사를 받으러 이동하는 홍순경씨(가운데).(사진=자서전 만사일생)
홍씨는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엘리트 관료의 길을 걸어왔다. 외화벌이 일꾼으로 십여 년을 해외 근무할 정도로 당성을 인정받았다.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그의 상관이 1998년 8월 보위부에 끌려가 숙청당하면서부터였다. 자신을 주태국 북한대사관에 추천한 상관은 홍씨에게 은인과 같은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숙청됐으니 주변 인물도 숙청의 대상이었다.

좌불안석으로 나날을 보내던 홍씨가 보위부로부터 소환을 통보받은 시점은 1999년 2월17일. 북한 최대 기념일 김정일 생일 다음 날이어서 여가를 즐기고 차에 떨어진 날벼락이었다. 돌아가면 숙청될 것이 자명해 보였다. 결단을 내리기까지 남은 시간은 이틀뿐이었다. 부인과 상의 끝에 탈출을 결심했다. 평양에 있는 큰아들이 눈에 밟혔지만, 어차피 돌아가면 연좌제에 엮여서 가족 모두는 화를 면하기는 어려웠다. 태국에 함께 나와 있는 막내아들이라도 살리고자 단장의 고통을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자취를 감춘 홍씨 일가에게 돌아온 것은 ‘범죄인 낙인’이었다. 북한 대사관은 홍씨가 쌀수입 대금 8300만여 달러를 횡령하고 도망했다고 입장을 냈다. 그리고 태국 정부에 홍씨에 대한 수배와 범죄인 인도를 요청했다.

그러는 새 북한 보위부 요원이 3월9일 은신하고 있던 홍씨와 부인, 아들을 찾아내 납치했다. 차량 두 대에 나눠 태워 라오스 국경을 넘겨 북송하려는 공작이었다. 이 과정에서 함께 탄 홍씨 부부가 격렬하게 저항하면서 차량이 전복됐다. 이 틈을 타서 부부는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했다. 아들을 태운 차는 국경을 넘지 못하고 다시 북한 대사관으로 돌아갔다. 아들의 여권이 부부의 차에 있는 바람에 일어난 구사일생이었다.

태국 정부는 자국에서 일어난 납치 사건을 두고 크게 반발했다. 이 사건을 주권 침해로 규정하고 공식 사과와 대사관에 억류된 아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사건에 가담한 외교관의 면책특권을 박탈하고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북한은 태국의 강경 대응에 홍씨 아들을 석방했다.

홍씨 가족은 국제연합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태국 정부에 망명을 요청하고 행선지를 한국으로 결정했다. 애초 억류됐다가 풀려난 아들은 “부모를 설득해 북한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지만 가족 모두가 한국행을 결정했다. 아들이 북한행을 원한 배경은 평양에 남은 큰형이자 홍씨 부부의 큰아들 신변을 거론한 북측의 회유 탓이었다.

2000년 10월 홍씨 가족은 김포공항을 통해 한국 땅을 밟았다. 당시 홍씨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를 제외하고 최고위급 탈북인사였다. 이후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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