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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22일 밤 이 전 대통령의 서울 논현동 자택 주변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구속을 이미 예견한 이 전 대통령 측은 담담히 법원의 시간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오후 11시 7분께 서울중앙지법은 “범죄의 많은 부분에 대해 소명이 있고, 피의자의 지위, 범죄의 중대성 및 이 사건 수사 과정에 나타난 정황에 비춰 볼 때 증거 인멸의 염려가 있으므로 피의자에 대한 구속의 사유성과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며 이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법원은 이 전 대통령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포기함에 따라 검찰과 변호인이 제출한 서류만을 검토해 그의 구속을 결정했다.
이에 서울중앙지검 검사와 수사관들을 태운 차량 3대는 22일 오후 11시 55분 이 전 대통령 자택 앞에 도착했다. 부장 검사들은 영장 집행을 위해 경호팀 안내에 따라 그의 자택 안으로 들어갔다. 직후 이 전 대통령을 방문한 이 전대통령 측근 20여 명이 대문 밖으로 나와 일렬로 도열했다. 23일 오전 0시 정각 이 전 대통령이 차고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외투의 정장 차림을 한 그는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근처에 있던 측근 몇 명과 악수한 뒤 대기 중이던 K9 차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들 시형 씨 등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그를 배웅했다.
그의 구속영장 집행 시각을 두고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애초 검찰이 이 전 대통령의 신병을 확보한 시각이 23일 0시 2분으로 알려지면서였다. 그러자 검찰은 23일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집행 시각은 22일 오후 11시 57분”이라고 못박았다. 구속 기간은 시각과 관계없이 영장을 집행하는 날이 1일 차로 계산되기 때문에 집행 시각이 자정을 넘기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이 전 대통령의 경우 자정을 3분 남기고 영장이 집행됨으로써 구속 기간 산정에서 하루를 번 셈이었다.
“국민 눈높이에 비춰 보면 미흡한 부분 없지 않았다”...1925년 3월 23일은 이승만 탄핵일
이어 “지난 10개월 동안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었다. 가족들은 인륜이 파괴되는 아픔을 겪고 있고 휴일도 없이 일만 했던 사람들이 나로 인해 고통받는 것을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가 없다”라며 “내가 구속됨으로써 나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가족의 고통이 좀 덜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술회했다. 그러면서 “바라건대 언젠가 나의 참모습을 되찾고 할 말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라고 덧붙였다.
“내 심정이 이것이다. 차분하게 대응하자”며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읽은 그는 가족들을 한 명씩 끌어안았고, 아들 시형 씨가 오열하자 “왜 이렇게 약하냐. 강해야 한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대통령이 구치소로 출발한 이후 그의 측근들은 근처 설렁탕 집에서 새벽 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괴로워한 것으로 전해졌다. 2018년 3월 23일의 일이었다. 공교롭게도 93년 전(1925년) 이날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의정원이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탄핵을 가결한 날이기도 했다.
대법원은 2020년 10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대통령의 상고심에서 징역 17년과 벌금 130억 원, 추징금 57억8000여 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후 이 전 대통령은 지병 치료를 이유로 형 집행 정지신청과 입원을 반복하다 지난해 12월 28일 0시 구속 4년 9개월 만에 윤석열 대통령의 특별 사면으로 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