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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법무부는 “최근 ‘지존파’ 연쇄납치 살인사건, 온보현 사건 등 대형 강력사건이 잇따라 발생함에 따라 정부의 단호한 법집행 의지를 통해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모든 범죄자들에게 법의 엄정함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기 위해 전격적으로 사형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법무부의 말처럼 1994년 대한민국은 강력범죄로 인한 불안감이 한껏 높았다. 특히 지존파는 무려 8명이나 되는 범인들이 살인조직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세계 범죄사에서도 유래를 찾기 어려운 사례였다. 사형은 잇단 강력범죄에 대한 단호한 응징 차원에서 이뤄졌다.
당시 재판 현장을 취재했던 중앙일보 기자는 박현룡 앞에 ‘인간쓰레기’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박현룡은 검사의 사형 구형에도 “재판장님, 저는 절대로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죽더라도 진실은 밝혀지겠지요”라고 혐의를 부인했다.
오태환은 주범 3명 가운데 가장 나중에 세상을 떠났다. 주범 이성준은 경찰이 쏜 총에 맞고 도주하다가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윤용필은 오태환에 앞선 1992년 12월 29일 사형이 집행됐다.
최오림은 구타에 못 이겨 집을 나간 부인을 찾기 위해 처가에 침입해 등산용 도끼로 부인과 장인, 장모, 친딸을 살해했다. 전기철과 문승도는 각각 아이를 유괴해 호수에 빠뜨려 살해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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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민정부는 이후에도 1995년 11월 2일 19명, 1997년 12월 30일 23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이후 김대중 정부 들어서는 더이상 사형이 집행되지 않았고 오늘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한국은 사실상 사형제 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한편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1949년 살인범에 대한 첫 사형집행을 시작으로 1997년까지 모두 920명에 대해 사형집행이 이뤄졌다. 현재 한국에 생존해 있는 사형수는 모두 59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