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독일 출신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Jurgen Hinzpeter)가 2016년 1월25일 사망했다. 향년 78세. 우리에게는 영화 택시운전사 주인공으로 나온 외국인 기자의 실제 모델로 익히 알려졌다. 1980년 5월 항쟁이 일어난 광주의 실상을 카메라 영상으로 취재한 인물이다.
| 위르겐 힌츠페터(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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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츠페터는 1963년 독일 ARD 소속 방송국에 카메라맨으로 입사하면 언론인의 길을 시작했다. 1973년부터 1989년까지 일본 도쿄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한국을 함께 취재하기 시작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의 공안 사건을 취재하고 민주화 인사를 인터뷰하곤 했다.
그러다가 1980년 5월19일, 일본에 머물던 그는 한국에서 시민과 계엄군이 충돌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당일 짐을 싸서 서울로 떠났다. 한국의 취재원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자, 현지 사태가 심각하다는 점을 직감했다고 한다.
당시 외신 기자가 취재를 하려면 한국 정부에 신고를 해야 했다. 힌츠페터는 취재가 거부당할 것을 우려해 이를 생략하고 곧장 광주로 향했다. 이때 그를 태워 광주로 간 인물이 택시운전사 김사복씨다. 광주 길목 검문소에서 군인에게 저지당하자 샛길로 돌아가서 광주 진입에 성공했다. 시민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계엄군, 부상하고 사망한 광주 시민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서울로 돌아온 힌츠페터는 일본으로 돌아가 필름을 본국으로 부쳤다. 서울에서 출국 과정에서 필름을 압수당하지 않으려고 쿠키통과 신체에 숨기는 기지를 발휘했다. 독일 ARD 방송은 5월22일 이 필름을 보도함으로써 광주의 실상이 전세계에 알려졌다. 이를 기반으로 그해 9월 ‘기로에 선 한국’이란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기도 했다.
| 영화 택시운전사에 등장한 위르겐 힌츠페터역. 배우 토마스 크레취만이 역할을 맡았다.(사진=쇼박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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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항쟁 당시 군부는 언론을 철저하게 통제했다. 계엄군은 ‘광주가 폭도에 점령당했다’고 발표했고 이런 내용의 보도가 이어졌다. 그런데 힌츠페터가 담은 광주의 모습은 계엄군 발표와 국내 언론의 보도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시위대가 모인 광주 시내는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그의 취재가 없었더라면 군사정권의 폭정과 광주 시민의 피해가 세상에 알려지기 어려웠으리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
‘푸른 눈의 목격자’는 광주 취재 이후 감시에 시달렸다. 1986년 민주화 시위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사복 경찰에 폭행을 당했다. 목뼈와 척추가 부러지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본국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한국에서의 경험은 트라우마로 남아 말년까지 그를 괴롭혔다. 광주 망월동 묘지에는 힌츠페터를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