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폐 유통'으로 불똥 튄 제과점 여주인 납치극[그해 오늘]

2009년 2월 28일, '서울 제과점 여주인 납치 사건' 범인 검거
2월 10일 여주인 납치해 7000만 원 요구...범인들, 경찰 준비한 위폐 들고 도주
여주인 무사히 풀려나...공개 수사 전환 끝에 18일 만에 범인 검거
만 원권 7000장 중 700여 장 사용....警, '수사 허점 시인'·'12억 원어치 위폐 모두 폐기'
  • 등록 2023-02-28 오전 12:03:00

    수정 2023-02-28 오전 12:03:00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2009년 2월 28일. 서울 양천경찰서는 ‘서울 제과점 여주인 납치 사건’의 용의자 정모 씨(당시 32세)를 검거했다고 밝혔다.
2009년 2월 28일 ‘서울 제과점 여주인 납치 사건’ 범인 정모 씨가 서울 양천경찰서로 호송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앞서 같은 해 2월 10일 오후 11시 30분께.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소재 한 제과점에 두 명의 괴한이 들이닥쳐 여주인 A씨(당시 39세)를 납치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납치범들은 A씨를 폭행하고 얼굴에 테이프를 붙여 미리 대기해 놓은 체어맨 승용차의 트렁크에 싣고 그에게서 현금과 신용카드 합쳐 200만 원을 빼앗았다. 이어 A씨의 휴대폰으로 A씨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현금 7000만 원을 요구했다. 남편은 전화를 끊은 즉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1만 원권 위조지폐 7000장을 위성항법장치(GPS)를 장착한 가방에 넣어 약속된 장소에 가져다 놨다. 그러나 약속된 시각 퀵서비스 배달원 분장을 한 범인이 오토바이를 탄 채 나타나 순식간에 가방을 낚아채 도망갔다.

또 20여 분 만에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는 데 성공한 범인들은 가방에서 돈만 꺼낸 뒤 가방은 버렸기에 GPS 위치 추적은 끊기고 말았다. 경찰의 작전 실패로 이젠 피해자의 신변이 위험한 상황이었다. 범인들이 위조지폐라는 사실에 분노해 피해자에게 무슨 짓을 할 지 모르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이었던 걸까. 경찰이 준비한 위폐는 의외로 정교했다. 위폐라는 사실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범인들은 A씨 남편의 문자를 받고 경기도 광명시의 한 도로에서 A씨를 풀어 주면서 그에게 차비 조로 위폐 7장을 건네주기까지 했다. 천만다행으로 A씨의 목숨을 구하면서 괴한들의 납치극은 무사히 마무리됐다.

하지만 문제는 엉뚱한 데로 흘러갔다. 바로 위폐 유통의 문제가 생긴 것이다. 경찰은 당시 범인이 돈 가방을 집자마자 곧장 체포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했기에 위폐가 시중에 풀렸을 때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경찰은 위폐 품질이 조악해 사용이 어려울 것으로 봤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위폐들은 정교했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 탐문을 통해 2월 13일 범인 중 한 명인 심모 씨를 체포했다. 하지만 남은 범인인 정 씨는 잡지 못하자 경찰은 2월 18일 포상금 500만 원을 걸고 공개 수사에 돌입했다. 이후 포상금은 1000만 원까지 올라갔다. 정 씨는 위폐를 서울 전역에서 사용하고 다녔다. 경찰의 예상과 달리 위폐는 진폐와 구별이 어려워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 투입하기 전까지 이를 깨닫지 못한 자영업자들도 있었다. 이로 인해 대형마트의 계산대 등지에는 위폐의 일련번호와 정보가 담긴 안내판이 세워지기도 했다.

결국 공개 수사는 성공해 경찰은 사건 발생 18일 만인 2월 28일,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의 한 쪽방에서 친구 명의로 케이블 TV와 인터넷을 연결하려던 정 씨를 체포했다. 경찰 조사에서 정 씨는 7000장의 위폐 중 700여 장을 사용하고 나머지는 모두 소각했다고 진술했다. 실제 쪽방에 딸린 앞마당에선 위폐 소각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경찰 조사 결과 정 씨 등의 추가 범행도 밝혀졌다.

이후 정 씨는 부녀자 등을 납치해 폭행하고 금품을 뜯어낸 혐의(인질 강도 등)로 구속 기소돼 징역 12년을, 공범 심 씨는 징역 10년을 선고 받았다. 정 씨의 도피를 도운 김모 씨에겐 징역 3년6월이 선고됐다. 이들은 이후 모두 만기 출소했다.

경찰은 이 사건으로 상당한 곤욕을 치렀다. 다름 아닌 자신들의 실수로 위폐가 시중에 퍼졌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경찰은 그동안의 위조지폐를 사용한 수사의 허점을 인정하고 기존에 만들어 뒀던 12억 원어치의 위조지폐를 모두 폐기 처분했다. 아울러 이 사건 이후에 유사 사건이 발생할 경우 진폐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정작 예산 부족 등의 문제로 대부분은 피해자 가족들이 돈을 직접 준비해 오는 등 관련 사건이 터질 때면 번번이 난관에 부딪히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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