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마주쳤다고 살해하고 '분조장' 주장...반성문은 28장 썼다 [그해 오늘]

  • 등록 2024-04-25 오전 12:00:30

    수정 2024-04-25 오전 12:00:30

[이데일리 김혜선 기자] 2017년 4월 25일. 광주 고등법원은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이웃을 잔인하게 살해한 A씨에 징역 25년을 선고하고 20년간 전자발찌 부착을 명령했다. A씨는 재판에서 일명 ‘분노조절장애’로 알려진 충동장애가 있다며 심신 미약을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자료사진. (사진=게티이미지)
어릴 적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A씨는 중학생 시절부터 교우들에 폭력을 행사하거나 고등학생 시절 선생님을 폭행해 강제 전학을 당하는 등 폭력적인 성향을 보여 왔다.

성인이 된 A씨(당시 25세)의 분노가 폭발한 계기는 ‘눈이 마주쳤다’는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A씨는 지난 2016년 7월 22일 창문을 내다 보며 담배를 피우다 피해자 B씨(당시 24세)와 눈이 마주쳤다. A씨는 평소 B씨가 자신에게 반말을 하는 등 무시한다고 생각한 B씨는 주방에서 부엌칼을 들고 가방 속에 숨겼다.

곧장 B씨를 따라간 A씨는 그의 옆에 앉아 “야 오랜만이다”라고 말한 뒤 가방에서 흉기를 꺼내 B씨를 찔렀다. B씨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지만 A씨는 그를 따라가며 흉기를 휘둘렀고, 결국 B씨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이 과정에서 손을 다친 A씨는 태연하게 병원에 가 치료를 받으려다 경찰에 붙잡혔다.

A씨는 재판 과정에서 불우한 가정 환경을 호소하며 ‘심신 미약’을 주장했다. 1심에서는 “유족들에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사죄하지 않고 용서를 받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피해 회복을 위한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며 엄벌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그러면서도 1심 재판부는 검사가 요청한 전자발찌 부착 명령에 대해서는 “다시 살인 범죄를 범할 위험성이 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기각했다.

A씨는 이 같은 1심 판결에 불복하고 “징역 25년은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다. 검사 역시 형이 너무 가볍고 전자발찌 부착 명령이 기각된 것이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2심 재판 과정에서 A씨는 적극적으로 감형을 받기 위해 이틀에 한 번 꼴로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했다. 앞서 1심에서는 별다른 반성문을 내지 않았지만, 2심에서는 재판이 진행되는 6개월 간 무려 28장의 반성문을 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다시 살인 범죄를 범할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된다”며 기존 징역 25년을 유지하고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추가했다. 수십 장의 반성문에도 감형을 받지 못한 것이다.

재판부는 “자신의 충동을 억제하지 못해 범죄를 저지르는 현상은 정상인에게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일”이라며 “원칙적으로 충동조절장애와 같은 성격적 결함은 형의 감면사유인 심신장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봤다. 이어 “(충동 행동이) 정신병을 가진 사람과 동등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심하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오히려 재판부는 A씨의 ‘재범’ 위험이 높다고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출소 후 사회에 복귀해 살아가며 다양한 사람과 마주치는 과정에서 그와 같은 갈등이 다시 발생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며 “이 사건과 마찬가지로 피해의식에 휩싸여 충동적으로 범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시했다. A씨는 사이코패스 성격 특성 검사(PCL-R)에서 16점을 받아 ‘중간 수준’에 해당됐다. 재범 위험성은 종합적으로 ‘중간 이상’ 수준이었다.

또 “삶에 대한 열정으로 미래를 준비해가고 있던 젊은 피해자는 꿈도 펼쳐보지 못한 채 허무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됐다”며 “피고인에는 그 잘못에 상응하는 엄중한 형사책임을 묻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A씨는 2심 판결에도 불복해 대법원에 항고했지만 대법원은 지난 2017년 “원심 판결이 부당하다고 인정할 사유가 없다”며 기각해 이 같은 형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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