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쌓인 '택배 상자탑'…택배 갈등 해결할 묘안도 있다

[직장인해우소] 택배기사에 문자·폭언…배송 중단 거론했다가 입장 선회
"고덕아파트 문앞 배송 재개"
택배 갈등 전국 400곳 넘어…"국토부 중재 나서야"
  • 등록 2021-04-17 오전 12:06:59

    수정 2021-04-17 오전 12:06:59

[이데일리 황효원 기자] 서울 강동구 고덕동에 이어 상일동 아파트에서도 택배차량 출입을 제한하기로 해 ‘택배 대란’이 재현될까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인터넷상에서 택배 기사 옹호론과 주민 옹호론이 대립 양상을 보이자 전문가들은 단지 입구에 택배 보관함 같은 물류함 설치를 제안했다.

14일 오후 서울 강동구 한 아파트 앞에 택배 물량 800여개가 적재돼 있다. 전국택배노조는 해당 아파트의 지상도로 출입제한 조치에 따라 이날부터 각 세대로의 개별배송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사진=공지유 기자)


문자폭탄 시달린 택배원…“손수레 이용해 문앞 배송 재개”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이 ‘택배 논란’을 빚은 서울 고덕동 아파트에서 16일 개별 배송을 재개했다.

이날 오후 1시 강동구 한 공터에서 택배노조는 기자회견을 열어 “택배노동자 조합원들이 일부 고객의 과도한 항의 문자와 전화로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며 “조합원을 보호하는 주동적 조치로 단지 앞 배송 일시 중단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전날 한 택배기사 A씨는 “주민들로부터 협박성 문자메시지와 전화를 받는데 많이 힘들었다”면서 “앞으로도 계속 마주쳐야 할 주민들인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택배 노조 행동에 동참하던 A씨는 결국 지난 14일부터 손수레를 이용해 문 앞 배달을 다시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택배노조는 이달 1일부터 시작된 A아파트의 지상 출입금지 조치에 맞서 14일부터 세대별 배송을 멈추고 아파트 단지 앞에 택배상자를 쌓아둔 뒤 입주민들이 찾아가도록 안내했다.

내부에서는 입주민과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택배 배송 전면 보이콧까지 거론했지만 배송 보이콧의 경우 택배기사 개인의 동의가 필요한 집단행동으로 파장도 크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내부 의견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덕동 5000가구 규모의 A아파트는 안전사고와 시설물 훼손 우려를 이유로 단지 내 지상 도로에서 차량이 오가는 것을 금지하고 지하 주차장을 통해 이동하도록 했다. 하지만 택배 차량은 지하 주차장 진입제한 높이(2.3m)보다 차체가 높아 진입할 수 없다.

아파트 측은 “‘차 없는 아파트’로 설계돼 차량 진입을 금지한다. 택배 차량이 지상으로 진입하면 사고우려도 있고 보도블럭도 훼손된다”며 “택배기사들이 입구에서부터 손수레로 걸어서 배송하거나 지하주차장에 들어갈 수 있는 저탑 차량으로 교체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파트 측은 1년 전부터 보도블럭 훼손, 안전 등의 이유로 택배사에 지상 진입 금지 방침을 알렸다며 계도 기간이 있었다는 입장을 보였다.

입주민들은 이러한 행위가 오히려 ‘역갑질’이라고 항변했다.

14일 기자회견장에서 일부 주민들은 “재작년 단지 내에서 탑차와 자전거가 실제로 충돌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입주민들은 택배노조의 협의 없는 일방적 주장 때문에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다른 입주민도 “하루 수백명의 어린이, 학생들이 오가는 우리 아파트만 유독 ‘갑질 아파트’의 오명을 뒤집어썼다. 택배 노조의 부추김 때문에 멀쩡히 잘 배송하던 기사들도 배송을 중단했다”고 했다.

15일 상일동의 B아파트도 5월1일부터 지상도로에 택배차량 출입을 제한하고 지하주차장을 통해 이동하도록 했다. 이곳 역시 고덕동에 위치한 아파트단지처럼 지하주차장 진입제한 높이가 2.3m이어서 일반 택배차량은 단지 출입이 어렵다.

다만 5월 한 달을 계도기간으로 정해 출입하는 택배 기사들에게 제한 방침을 안내하기로 했고, 4개 택배사에 이를 알리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또다시 재연된 ‘택배 대란’…“주무부처 중재하라”

이러한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9년 다산신도시에서 갈등이 일어나 당시 정부는 새로 짓는 지하주차장의 높이를 모두 2.7m 이상으로 해야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문제는 2019년 1월 정부가 지상공원형 아파트에 한해 택배기사들의 고탑차량이 드나들 수 있도록 지하주차장 입구 높이를 2.7m로 상향했지만 변경 이전 건축 승인을 받은 아파트들은 2.3m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또 택배노조는 탑차의 높이를 줄이는 데 택배노동자 개인의 비용 부담과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 문제를 지적했다.

14일 강민욱 전국택배노동조합 교육선전국장은 YTN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화물실의 높이가 약 180㎝에서 120㎝로 줄어드는데 고중량의 물건을 수백 번 오르내리면서 옮겨야 하는 택배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안좋아져 심각한 위험이 따른다”고 주장했다.

택배노조는 현재까지 지상출입이 금지된 아파트는 전국의 약 419군데로 택배기사 대다수는 이들 아파트에서 손수레로 배송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특히 택배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경우 개인 사비를 들여 탑을 개조하거나 지하주차장으로 다니면서 일하는 경우도 있다고 강조했다.

택배노조는 택배산업이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가 나서서 갈등 상황을 중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아파트와 배달기사 양측이 서로 양보해 사회적 합의를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례로 택배 갈등이 계속되자 세종, 울산, 인천 등의 아파트는 소형택배차량은 지하주차장을 이용하고 대형차량은 골프장 등에서 사용하는 전동카트에 물건을 옮겨 배달하고 있다. 전동카트 구매 등 모든 비용은 아파트가 부담했다.

울산 남구 옥동의 한 아파트는 지난 2월 주민투표를 통해 택배차량의 단지 내 지상진입 출입시간을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4시간으로 정했다. 차량 속도도 10km 이내로 제한하고 공회전 금지를 위해 시동을 끄게 했고, 동간 거리가 짧은 특성 상 각 동 현관문 입구로 이동하지 않고 가운데 통로에서 정차해 물건을 옮기게 했다.

또 다른 대안도 나왔다. 한 사회학과 교수는 시간대별로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을 허용하거나 별도의 하역 공간과 이동 경로를 모색해 곳곳에 무인택배함 설치를 제안하기도 했다.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울산 사례처럼 택배차량 지상진입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가는 게 낫다”며 “안전속도를 준수하고 차량에 후방카메라를 부착해 아이들이 오고가는 걸 확인할 수 있게 한다면 문제 없다”고 설명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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