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에 순찰 돌고 있었는데 딱 끊긴 거죠. 뒤에서 친 것 같아요. 일어나보니 병원이더라고요” 당시 피해 경찰의 말이다.
2001년 10월 15일, 막 자정을 넘긴 시각, 대전 송촌동 주택가에 주차된 5톤 트럭 아래에서 한 남자의 신음이 들려왔다. 머리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던 이는 인근 파출소 소속의 경찰 A씨로 도보 순찰 도중 뺑소니를 당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이 사건이 단순한 뺑소니 사고가 아님을 직감하게 된 건 그가 차고 있던 공포탄 1발과 실탄 4발이 든 38구경 총이 사라졌음이 확인된 순간부터였다. 게다가 몇 시간 뒤 대전 톨게이트 인근에서 발견된 뺑소니 차량이 사건 발생 3시간 전 도난 신고가 된 차량임이 밝혀지며 사건은 미궁 속에 빠져들었다.
사라진 권총의 행방을 쫓던 경찰이 그 흔적을 발견한 것은 두 달 뒤,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였다. 2001년 12월 21일 대전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국민은행 지하주차장에서 현금수송차가 습격당하는 은행 강도 사건이 벌어졌다. 검은색 그랜저 XG를 타고 온 범인들은 은행 직원들로부터 3억 원이 든 돈 가방을 빼앗고 당시 현금출납을 담당하던 김 과장을 향해 두 발의 총탄을 쏜 뒤 도주했다.
은행 직원을 살해하고 달아난 범인, 그는 은행에서 200여 미터 떨어진 건물의 지하주차장에서 세워둔 하얀색 승용차로 바꿔 탄 뒤, 유유히 사라졌고 그렇게 사건은 또 한 번 미궁 속으로 빠지는 듯했다.
그런데 사건 2개월 만에 경찰은 첩보 하나를 입수한다. 술자리에서 자신의 지인이 대전 은행 강도를 저지른 범인이라고 떠드는 20대 남자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계속해서 그를 주시하던 경찰은 결국 그와 함께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친구들까지 총 세 명의 용의자를 체포한다.
수사는 순조로웠다. 용의자 중 한 명으로부터 범행에 이용된 검은색 그랜저XG를 훔쳤다는 자백을 받아냈고, 더불어 그와 함께 은행을 털었다는 또 다른 1명의 용의자에게도 범행 과정을 자백 받게 되면서 기소는 무리 없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2002년 8월 29일, 대전지방법원에서 있었던 영장실질심사에서 모든 상황이 뒤집어졌다.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영장기각. 판결 직후 용의자들이 풀려나면서 해당 사건은 18년간 해결되지 못한 미제로 남게 되었다. 그날, 법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용의자들은 무고한 인물인 걸까?
제작진은 여전히 당시 용의자들이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당시 사건담당 형사를 만났다. 그는 범행 모의 과정부터, 역할 분담까지, 용의자들이 범인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부분들을 진술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제작진은 용의자들이 전혀 다른 주장을 펼쳤다고 밝혔다. 자신들이 자백 한 이유는 경찰의 강압에 의한 것이며 그들이 불러준 대로 진술했을 뿐이라고 했다. 이들은 경찰의 구타과정에서 본 모포와 곤봉, 당시 형사가 신고 있던 운동화의 메이커와 색까지 기억해내며 상세하게 당시의 기억을 짚어갔다.
팽팽히 갈리는 주장 속에 진실의 추가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못할 무렵 제 3의 인물이 나타났다. 2005년 그가 국민신문고에 올린 글에는 대전 은행 권총강도 사건 범인을 지목하는 내용이 올라와 있었는데, 17년 만에 다시 진실공방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