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서대웅 기자] “이 문이 8000만원짜리입니다.”
지난 21일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090430) 사옥 지하 1층. 이 회사 협력사인 대경이앤에스 신유정 과장은 ‘비밀의 문’을 가리켰다. 손잡이도 없는 하얀 문은 노출 콘크리트로 시공된 실내 벽면의 장식물에 가까웠다. 외부 지상 조형물의 지하 기계실로 연결되는 문이다.
|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사옥 지하 1층에 설치된 문. 이 문을 열고 나가면 외부 지상 조형물의 지하 기계실이 나온다.(사진=서대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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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까지만 해도 대경이앤에스 직원들이 조형물 기계실을 점검하려면 지하 3층에서 11미터 짜리 고정 사다리를 타고 올라와야 했다. 발을 헛디디면 추락으로 큰 사고가 날 수 있는 높이다. 아모레퍼시픽 안전보건센터의 서호준 차장은 “최초 작업 중지권이 이곳에서 행사됐다”며 “현장에 와보니 정말 안 되겠다 싶었다”고 했다. 서 차장은 콘크리트 벽을 뚫어 출입문을 만드는 방안을 회사에 제안했다. 문이 있는 위치가 지하 진입로(램프) 천정이라 설계가 복잡했다. 용산구 인허가도 받아야 했다. 그렇게 회사는 협력사 직원들의 안전한 작업을 위해 8000만원을 들여 지난해 3월 ‘비밀의 문’을 만들었다.
| 아모레퍼시픽 시설관리 협력사인 대경이앤에스 신유정 과장이 조형물 기계실을 소개하고 있다. 뒤에 보이는 하얀 문이 건물 내부와 연결되는 통로다.(사진=서대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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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고용노동부의 ‘안전보건 상생협력 활동 우수기업’으로 선정됐다. 상생협력사업은 중소 협력업체가 안전보건 체계를 확립할 수 있도록 100인 이상 모기업(건설업 제외)과 정부가 돕는 사업이다. 원·하청 간 안전보건 수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안전보건 활동 비용을 원청과 정부가 매칭 지원한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11개 협력사와 상생협력을 체결, 안전보건 활동을 펼쳤다.
상생협력을 맺은 것은 사업이 시작된 지난해였으나 아모레퍼시픽은 2019년 4월 안전총괄책임자(CSO)를 대표이사(CEO) 직속으로 편제하며 전사적 차원의 안전보건 활동에 매진했다. 대표이사는 반기마다 ‘안전보건 리더십 투어’를 통해 현장에 직접 나간다. 사옥 22층 공조시설의 작업로 설치는 이 활동에서 비롯됐다. 2022년 이동순 당시 대표이사는 현장에서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 협력사 직원의 안전 보행을 위해 작업로를 만들었다.
| 아모레퍼시픽 지하주차장에서 차량주의를 알리는 레이저 빔.(사진=서대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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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보건 활동에 반드시 큰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8월 250만원을 들여 지하 주차장 내 5곳에 사고를 예방하는 레이저 빔을 설치했다. 자동차 진입 파악이 쉽지 않은 사각지대에 자동차가 다가오면 바닥에 ‘차량주의’가 뜨도록 했다. 이 아이디어를 낸 서호준 차장은 “지하주차장이라 자동차가 빠른 속도로 이동하진 않겠지만 직원들이 조금이라도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면 안전보건 투자를 통해 위험성을 제거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하 7층 대형 보일러 옆엔 각종 청소 보호구 외에도 긴급 눈 세안기를 설치했다. 보일러 청소시 특수 화학물이 눈에 들어갈 경우를 대비해서다. 또 무거운 작업용 소금 포대를 손쉽게 들어올릴 수 있도록 작은 리프트를 비치했다. 이날 동행한 고용부 관계자는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리는 일은 근골격계 부담이 가 향후 근골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며 “회사의 이런 작은 배려가 협력사 직원들에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 아모레퍼시픽 지하 7층 기계실에서 협력사 대경이앤에스 신유정 과장이 중량물 리프트를 조작하고 있다.(사진=서대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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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은 올해 협력사 16곳과 상생협약을 맺었다. 특히 협력 관계가 아닌 지역 중소기업 1곳과도 협약을 체결했다. 정부는 올해 상생협약을 맺으면 ESG기준원을 통해 2025년 ESG 평가에 반영키로 했다. 특히 지역 중소기업에 대한 안전보건 활동비의 70%를 정부가 지원한다. 그 결과 올해는 지난해(17곳)보다 4.2배 많은 72곳의 지역 중소기업이 사업에 참여한다.
상생협력 사업은 성과를 내고 있다. 사업에 참여한 협력업체의 산재사고 사망자 수는 2021년 9명, 2022년 6명에서 지난해(1~11월) 3명으로 줄었다. 근로자 1만명당 산재 사망자 수를 뜻하는 사고사망만인율도 같은 기간 0.29명, 0.18명, 0.09명으로 감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