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는 2015년 구파발 군경합동검문소에서 자신이 관리하던 의경에게 권총을 발사해 죽게 한 범인이다. 베테랑 경찰이었던 박씨는 왜 의경에게 권총을 쐈을까? 그리고 왜 법원은 살인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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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문소의 경찰 책임자 중 한 명이었던 박씨는 여러 차례 권총으로 의경들을 위협했다. 그는 별다른 이유 없이 의경들에게 일렬로 서도록 한 후 권총을 겨눴다. 검문소에서 함께 근무하는 군사경찰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권총을 꺼내기도 했다.
경찰서와 떨어진 외딴섬인 검문소에서 근무 시엔 경찰관이 자신 혼자였기에 박씨를 제재할 사람은 없었다. 박씨는 경찰관에게만 비상용으로 지급된 권총을 이용해 ‘장난’을 빙자해 수차례 의경들을 위협한 것이다. 그러던 중 2015년 8월 25일 결국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는 의경 중 1명이 탈영해 검문소에 의경이 3명만 근무하던 상태였다.
“위험하다” 의경들 만류에도 안전장치까지 풀어
당일 저녁 식사시간 직전인 오후 4시55분께 의경 3명이 생활관에서 간식을 먹고 있는 것을 보자, 박씨는 욕설과 함께 “나 빼고 맛있는 거 먹냐? 다 없애겠다”며 또다시 일렬로 서라고 소리쳤다. 그는 곧바로 경찰 조끼에서 권총을 꺼내 의경들을 향해 겨눴다. 놀란 의경들이 몸을 피하며 “살려주세요. 위험합니다”라고 소리쳤으나 박씨는 총구를 내리지 않고 오히려 안전장치를 풀었다.
A씨가 총을 맞고 쓰러졌지만 박씨는 그 자리에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는 당황해 울면서 피해자 이름을 부르며 “안돼”, “이건 꿈이야”라고 말을 했다. 또 권총의 탄창을 열었다가 총알이 바닥에 떨어지자 “빈 탄창이었어야 하는데”라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고는 총알을 다시 권총에 넣었다.
그 사이 다른 의경들이 쓰러진 A씨에게 달려가 심폐소생술을 하고 경찰과 119에 신고했다. 의경들이 피해자에 대한 긴급조치를 취하고 소방관들과 다른 경찰관들이 현장에 도착한 상황에서도 박씨는 아무런 조치에 나서지 않고 현장에 그대로 머물렀다. A씨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결국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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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과실치사”→검찰 “살인”→법원 “중과실치사”
경찰은 “살해 의도가 확인되지 않는다”며 살인이 아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은 보강수사를 통해 “의경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서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던 박씨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 인정된다”며 살인과 특수협박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유족도 “27년 경력의 경찰이 공포탄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박씨는 피해자가 쓰러지자 탄피를 빼냈다 다시 끼워 넣는 등 증거인멸도 시도했다”며 살인 혐의를 인정해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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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도 박씨 주장을 받아들여 살인이 아닌 중과실치사만 인정했다. 1심은 “살해 고의를 인정하기 위해선 박씨가 권총 첫 격발 시 실탄이 발사된다는 점을 알았어야 하는데 이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결론 냈다. 또 검찰이 범행 동기로 주장한 것과 달리 박씨가 의경들과 친밀한 관계였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1심은 중과실치사와 특수협박 혐의 등을 유죄로 인정하며 “총기를 이용해 의경들의 생명이나 신체에 큰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행위를 거듭하다 결국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던 무고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며 징역 6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살인 혐의가 인정돼야 한다며 상소했지만 2심과 대법원 모두 “살인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1심 판단을 유지했다.
유족은 별도로 박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일실수입과 위자료 등을 합쳐 박씨가 유족에게 약 4억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박씨가 항소하지 않아 배상액은 그대로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