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다 죽어"···역마진 우려에도 8.5% 퇴직연금 내놨다

다올증권 확정급여 1년 상품 금리 8.50% 제시
자제령에도 금융사 "머니무브 우려로 금리↑"
'제2의 흥국생명 안돼'···키움證 8% 상품 '판매 중단'
당국 1차 판단 "일단 괜찮다"···머니무브 가능성 '일축'
  • 등록 2022-12-08 오전 5:00:00

    수정 2022-12-09 오전 8:10:00

[이데일리 유은실 기자] 퇴직연금 유치를 위한 금융회사들의 ‘금리 경쟁전’이 뜨겁다. 다올증권이 금융당국의 ‘금리인상 자제령’에도 8.5% 퇴직연금 상품 출시를 예고했다. 당장 유동성 확보가 시급한 금융사들은 연말 퇴직연금 물량을 뺏기지 않기 위해 점점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하고 있다. 매월 높아지는 금리에 만기 갱신이 몰려 있는 금융사들은 고금리 경쟁과 자산이동(머니무브), 그리고 역마진 우려가 아직 종식되지 않았다며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 “인상 안 하면 자산이동 뻔해···생존의 문제”


7일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은행·보험·증권 등 대부분의 금융사들은 이달 들어 확정급여형(DB형) 퇴직연금 금리 상단을 끌어올렸다. 일반적으로 DB형 퇴직연금 상품은 12월 중 만기가 도래하는 비중이 70% 이상인 만큼, 이 시기에 자금이동이 활발하게 나타나고 금리 경쟁도 치열하다.

다올증권은 12월 퇴직연금 금리로 8.5%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로써 퇴직연금 상품의 금리 상단으로 8%대를 뚫었다. 키움증권 역시 퇴직연금 상품의 금리를 전월 대비 0.9%포인트(p) 오른 7.40%로 상향 조정했다. SK증권도 7.40%의 고금리를 제시했다. 증권사 중 대형사인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은 11월 5.25%에서 12월 6.15%로 금리를 높였다. 전월 가장 높은 금리를 제공했던 BNK투자증권의 퇴직연금 상품은 7.15%로, 금리 수준을 유지했다.

은행과 보험사들의 DB형 퇴직연금 금리 상단도 훅 뛰었다. 4% 후반대 금리를 제공했던 농협은행·KB손해보험의 퇴직연금 금리는 5%대로 올라섰고, DB손해보험도 전월 대비 0.25%포인트 높은 5.36% 금리를 제시했다.

12월 퇴직연금 금리 수준이 최종적으로 공개되자, 금융사들은 머니무브에 대한 경계감이 크게 증폭됐다고 입을 모았다. 금융사들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퇴직연금 계약을 놓치면, 수억원대의 뭉칫돈을 한번에 토해내야 할 수도 있다.

실제 퇴직연금 대규모 이동은 시간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올해 3분기 기준 은행의 DB형 적립금 규모는 68조8626억원으로, 전년 동기(62조7535억원) 대비 6조1082억원 늘었다. 같은 기간 생명보험(50조6587억원)과 손해보험(11조4567억원)은 1년 만에 각각 6조1043억원, 9373억원 증가했다. 올 3분기 전체 증권사의 DB형 적립금 규모는 36조135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조3081억원 늘었다. 하지만 아직 집계가 안된 4분기에는 이동흐름이 달라질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DB형 퇴직연금에 가입한 기업은 안정적인 은행을 선호하는데다 예적금 금리가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레고랜드·흥국생명 사태로 촉발된 유동성 문제가 언제 다시 꿈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금리 경쟁이 붙어 퇴직연금 자산이 또 대규모로 이동하면, 또 다른 유동성 위기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게 금융관계자들의 중론이다.

보통 퇴직연금을 보유한 회사들은 퇴직연금 자산을 채권 등에 넣어두는데, 사업자가 바뀌면 기존 사업자는 보유한 퇴직연금 자산이 포함된 채권을 매각한 뒤 현금화해 새 사업자에게 넘겨줘야 한다. 대규모 자금 이탈이 지속되면 최악의 경우 단기간에 수십조원 규모의 채권 매도 물량이 시장에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여기에 역마진 리스크도 여전하다. 당장 고객을 잡기 위해 금리만 경쟁적으로 올리다 보면, 나중에 약정한 금리를 보장하지 못해 금리 차만큼 책임을 져야 하는 역마진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또 약속한 이자율을 맞추려고 무리하게 위험자산 등에 투자하다보면 건전성에도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금리 상황과 건전성까지 고려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현재 금융사들이 5~7%대의 고금리 원금보장형 상품을 제시하고 있어서 역마진 우려가 크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회사 건전성에 악영향을 주고 퇴직시장 전체가 레드오션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키움증권 당국에 물량계획 전달···“15%만”

연말 금융권 머니무브 우려와 부실화 폭탄 우려가 지속 제기되자, 금융사 중엔 자체적으로 ‘고금리 퇴직연금 상품 판매 중단’이라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 든 곳도 있다. 키움증권이 ‘제2의 흥국생명’이 될수 없다며 8%대 퇴직연금 판매를 시작한 지 하루만에 상품 중단을 선언했다.

키움증권은 지난 2일을 기점으로 8.25%의 금리를 제공하기로 했던 이율 보증형 퇴직연금 상품의 판매를 중단했다. 앞서 키움증권은 12월 퇴직연금 금리를 전월 대비 1.75%포인트(p) 높은 8.25%로 상향 조정했지만, 이를 철회하고 고금리 상품을 더이상 팔지 않기로 한 것이다.

키움증권 관계자는 “고금리 퇴직연금 상품 판매를 자체적으로 철회하기로 했다”며 “판매 기간이 워낙 짧아 총 판매 금액도 그렇게 많지 않았고, 현재 회사 측에서 판매됐던 물량 중 대부분을 회수한 상태”라고 말했다.

앞서 금융당국은 금리 경쟁이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지 않도록 과당 금리 경쟁에 대한 경고를 금융사들에게 보냈다. 이에 상품 판매 이전부터 퇴직연금 물량을 조절하겠다는 의견을 금융당국 쪽에 전달한 키움증권은 8% 퇴직연금은 아예 판매를 중단하고, 7%의 퇴직연금만 판매하는 쪽으로 다시 가닥을 잡았다. 물량은 올해 키움증권의 퇴직연금 만기 규모(2조원)에 더해 15%까지만 받는다는 방침이다.

이달 8%대의 금리를 제시하며 시장을 놀라게 한 다올증권도 일단은 소량의 퇴직연금 물량만 취급한다는 방침이다. 다올증권 측은 이달 퇴직연금을 첫 출시하는 만큼 높은 금리를 제시했지만, 시장에 영향력을 끼칠 정도의 대규모 물량은 취급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상품은 이달 중순 이후 출시할 예정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앞서 행정지도를 했기 때문에, 상품 금리를 중간에 바꾸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며 “키움증권도 8%대 금리가 높다는 것을 인지한 뒤로 굉장히 부담스러워했던 것으로 알고 있어, 8.25% 퇴직연금은 자체적으로 판매를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8%대 상품이 나오긴 했으나, 당초 금융권에서 우려를 표했던 ‘금리 과당경쟁’까지 번진 수준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며 “퇴직연금 금리가 오르긴 했으나 증가폭은 예년 수준이라, 대규모 자산이동에 대한 우려는 어느 정도 사라졌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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