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가려면 같이 가야”… 락앤락 매각한 김준일 회장의 ‘고별사’

사모펀드 어피너티에 락앤락 매각… 매각대금 6000억원
이메일 통해 직원들에게 '눈물의 고별사' 전달
건강악화에 글로벌 성장 차원서 새로운 변화 필요했던 듯
  • 등록 2017-08-27 오전 6:00:00

    수정 2017-08-27 오후 6:54:35

[이데일리 김정유 기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여럿이 같이 가자.”

지난 40여년간 락앤락(115390)을 국내 대표 밀폐용기 제조 중견기업으로 키운 김준일(65) 회장이 회사를 홍콩계 사모펀드(PEF)에 매각한 후 임직원에게 전달한 ‘눈물의 고별사’다.

김 회장은 지난 25일 자신과 오너일가의 경영권을 포함한 지분 63.56% 전량을 6293억원에 사모펀드 운용사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로 매각했다. 2014년부터 심혈관계 질환으로 건강이 꾸준히 악화된 상황인데다 본인 혼자 힘으로 회사를 더 이상 성장시키기 어렵다는 김 회장의 판단이다. 김 회장은 락앤락이 이제 창업주 위주의 색깔을 벗고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새로운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준일 락앤락 회장. (사진=락앤락)
◇김준일 회장, 회사 매각 후 직원들에 이메일 “락앤락은 내 전부”


2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김 회장은 락앤락 보유 지분 전량을 어피너티에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한 직후 사내 임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돌렸다. 계약 공시가 나가기 직전까지 대다수 락앤락 직원들은 회사 매각 내용을 알지 못했던 만큼 사내 동요가 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회장은 이날 이메일로 갑작스러운 회사 매각 배경과 이에 대한 창업주로서의 변(辯)을 담담하게 전달했다.

김 회장은 이메일을 통해 “이번 (회사 매각) 소식을 언론으로 접한 락앤락 가족 여러분은 많이 당황하고 놀랐을 것”이라면서 “내게 가장 소중한 가족 같은 여러분께 먼저 직접 알리지 못해 매우 미안하다”고 직원들에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이어 “나 역시 1978년부터 지금까지 39년을 같이 한 락앤락의 역사는 내 삶 자체였고 내 인생 전부였다”며 “이런 결단을 내리기까지는 창업주로서 욕심과 애정을 모두 내려놓는 고통스럽고 힘든 과정이 있었다”고 전달했다.

김 회장은 과거 락앤락을 창업해 연매출 4000억원대의 중견기업으로 키워내기까지 겪어왔던 과거를 회상했다. 불과 27살의 청년이 맨손으로 회사를 창업해 열정과 의지로 밀폐용기분야 대표기업으로 성장시켰던 것은 분명 국내 중소기업계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국내 시장은 물론 베트남, 중국, 미국 등으로 락앤락을 진출시켜 국내 밀폐용기의 가능성을 글로벌 시장에까지 전파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같은 김 회장의 신화는 어피너티에 회사를 매각하기로 결정하면서 마무리를 짓게 됐다. 그는 왜 자신의 분신이었던 락앤락을 눈물을 머금고 매각하기로 했을까. 김 회장은 2013년 중국시장에서 락앤락 제품의 환경호르몬 검출 파문 이후 악화된 건강을 첫 번째 이유로 들었다.

그는 “당시 중국 법인에 갑작스런 위기 사태가 터지면서 불철주야 사태 수습을 위해 일생 최대의 에너지를 쏟아야만 했고 창업보다 더 힘든 과정을 겪게 됐다”며 “간신히 중국시장은 다시 소생시켰지만 나는 2015년 12월 심혈관 이상으로 상당히 위험한 시술을 했다. 향후 또 우발적으로 건강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걱정에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고 고백했다.

◇건강 악화에 회사 성장 돌파구 찾았던 듯… “조직적 플레이 필요한 시점”


건강 악화를 이유로 들었지만 김 회장은 회사의 체질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왔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더 이상 ‘김준일의 락앤락’으로 가서는 회사 성장에 제한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전문적인 투자기관에게 회사를 맡기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는 것.

2세 가업승계도 생각할 수 있는 카드이지만 김 회장의 경우에는 맞지 않다. 현재 락앤락에는 김 회장의 3명의 아들 중 2명이 근무하고 있지만 장남이 불과 30살 안팎일 정도로 어려 경영승계를 할 상황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김 회장는 이전부터 자신의 아들들에게 단 한 푼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언급해왔다. 이번 어피너티로의 회사 매각도 이같은 김 회장의 경영철학이 일정 부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은 “우리 회사는 일명 자수성가형 창업자의 경영 하에 있는 회사”라며 “당분간은 오너 경영으로 생존할 수 있지만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고 락앤락이 글로벌 종합생활기업으로 더욱 도약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창업자의 색깔을 배재한 새로운 모습으로 완전히 탈바꿈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뜻을 밝혔다. 이어 “회사에 대한 더 큰 꿈과 비전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경영시스템과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결국 먼저 인수를 제안한 어피너티에 보유지분 전량을 매각해 새로운 경영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어피너티는 현재 8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운용하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사모투자펀드 운용사다. 2004년 출범 이후 국내 시장에서 단 한 번의 투자 손실도 없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어피너티는 기존 경영진 및 직원들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중시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어 최대주주가 변경되는 락앤락도 당장의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적으로 김 회장이 직접 어피너티로부터 현 직원들의 고용유지도 보장받았다.

김 회장은 아프리카의 속담을 인용하며 과거와 현재보다 미래에 집중하자는 창업주의 바람을 나타냈다.

그는 “아프리카에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여럿이 같이 가라’는 속담이 있다”며 “지금까지 창업자로서 내 특성과 개성으로 빠르게 달려왔지만 지금부터는 창업자의 색깔보다는 회사를 글로벌 기준에 적합하게 시스템화해 한 사람의 스타 플레이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적인 플레이를 하는 회사로 변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회장은 “비록 나는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지만 어피너티가 락앤락을 한 단계 도약시키기 위해 무리없이 연착륙될 수 있도록 여러분 곁에서 주요 주주로서 경영을 도울 것”이라며 “더 나은 회사의 미래를 위한 나의 고심 끝의 결정을 부디 잘 이해해 주길 바라고 락앤락이 최고의 글로벌 종합생활기업으로 도약하는 새로운 40년을 다시 힘차게 도전하자”고 당부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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