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복지 강화하자 자살률이 낮아졌다

  • 등록 2017-10-05 오전 7:00:00

    수정 2017-10-05 오후 5:54:06

△지난 5월 서울 은평구의 한 임대 아파트에서 이모(여·80)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최소 일주일 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독사’였다. [사진=연합뉴스]
[세종=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자살률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10년 넘게 이고 있는 한국에 위안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자살률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고의적 자해(자살)로 목숨을 잃은 사망자 수는 1만 3092명으로, 1년 전보다 421명 줄었다. 인구 10만 명당 사망자 수를 뜻하는 자살 사망률도 2015년 26.5명에서 작년 25.6명으로 약간 낮아졌다. 자살 사망자 수는 2011년 1만 5906명으로 정점을 찍고 줄어드는 추세다.

이는 노인 자살자가 감소하고 있어서다. 자살로 인한 국내 사망자 4명 중 1명은 65세 이상 고령층이다. 말년에 빈곤과 고독에 시달리다 삶을 포기하는 노인이 많다.

이 수가 줄고 있다. 65세 이상 자살 사망자는 2011년 4406명에서 지난해 3615명으로 감소했다. 자살 사망률 감소세는 더 극적이다. 2011년 인구 10만 명당 79.7명에서 작년 53.3명으로 크게 내려갔다.

전문가들은 노인 자살률이 낮아진 원인을 복지 확대에서 찾는다.

이지연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고령자가 자살하는 주된 이유는 경제적으로 어려운데 몸까지 안 좋고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라며 “보건복지부는 2008년 기초노령연금 도입 등 정부가 고령층 사회 안전망을 일부 강화한 것이 자살률 개선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경찰통계연보를 보면 2015년 자살로 인한 국내 변사자 1만 3436명 중 3089명은 경제생활 문제가 원인이었다. 9대 자살 원인 중 정신적 문제(4228명) 다음으로 많다.

노인 자살 사망자가 줄어든 시기는 정부가 고령층 복지를 강화한 때와 대체로 일치한다. 대표적으로 기초노령연금은 2008년 최초로 시행해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만 65세 이상 고령층에 월 최대 20만원을 지급하는 기초연금으로 확대 개편됐다.

자살률을 낮출 해법이 의외로 간단했던 것이다. 자살률과 마찬가지로 세계 최고인 노인 빈곤을 완화하고 누구나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하도록 정부 지원을 확대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부가 이런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해소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점이다.

일례로 문재인 정부는 기초연금 지급액을 2021년까지 30만원으로 매우 점진적으로 올리기로 했다.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를 받는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줬다 뺏는 폐단은 아예 손대지도 않기로 했다.

복지 확대 의사 자체가 빈곤해 보이기도 한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서울의 한 직장 어린이집을 방문한 자리에서 “정부가 돈을 써서 출산율이 올라간다면 아깝지 않겠지만, 과연 출산율이 올라갈까 하는 우려도 없지 않다”며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업과 문화가 다 같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재정 당국 수장이 극심한 저출산 문제를 사회와 문화 동반 책임으로 넘긴 것이다. 김동연 호(號) 기재부가 재정혁신국을 신설해 재정 개혁에 고삐를 죄는 것도 그의 말처럼 ‘정부가 저출산 등에 돈을 더 쓰기보다, 있는 돈을 잘 쓰겠다’는 의도에 가깝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런 말 할 처지가 못 된다.

우리나라 정부의 가족 관련 지출은 2014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1.115% 수준으로, OECD 회원국 평균(2013년 기준 2.139%)의 절반에 불과하다. 35개국 중 바닥에서 넷째다. 저출산 늪을 빠져나왔다는 프랑스는 이 비율이 2.914%(2013년 기준)에 달한다. 한국 정부가 국민의 저출산·양육 문제에 돈 쓰는 데 극히 소극적이었다는 얘기다. 김동연 부총리 전임인 최경환,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가 긴급 기자회견까지 열며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을 못 내놓겠다고 국민에게 으름장 놓은 것이 불과 한두 해 전 일이다.

한국에 복지 확대를 주문하는 것에는 진보·보수가 따로 없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난달 한국을 방문해 “사회 안전망을 강화해 노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재정 투자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권고했다. 국내 주류 경제학계를 대표하는 한 보수 인사는 “지금의 한국 경제를 일군 노년층 빈곤 문제를 정부가 버려두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자산이 많은 부자 노인에게 물리는 부동산 보유세를 강화해 여기서 생긴 재원으로 가난한 고령자 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자의 지인인 한 청년은 최근 부모 연락을 받을 때마다 서럽다고 토로했다. 연금조차 없다는 그의 부모가 보내는 메시지는 꼭 일곱 글자였다. “경비가 떨어졌다.” 30대 초반 직장인인 이 청년은 부모 생계를 위해 결혼을 포기했다고 했다.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 자살률도, 바닥을 기는 출산율도 그 해법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은 문화나 다른 무엇의 탓이기 전에 우선 돈 문제다.

명절에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를 주장할 용기가 없고, 지출 늘린 책임을 지기보다 돈줄 조이는 데만 능한 정치인과 정부 관료가, 이들이 숨길을 죄는 원인을 고민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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