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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뭘 좀 아는 사내였다. ‘소주’는 입보단 몸인 것을. 첫 모금에 식도를 거쳐 위장까지 줄줄 타고 흐르는 뜨끈한 기운 말이다. 그렇다고 설마, 소주 맛 좀 안다는 사내가 어쩌고저쩌고까지 하겠는가. 사실 입보단 글이었다. “반 잔 술 겨우 넘기자마자 훈기가 뼛속까지 퍼지니, 표범 가죽 보료 위에 앉아 금으로 만든 병풍에 기댄 기분이네” 했더랬다. 한 술 더 떠 “도연명이 이 술을 맛보면 깊이 고개를 숙일 터, 굴원이 맛을 보면 홀로 깨어 있으려 할지”라고까지.
고려의 마지막 대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이색(1328∼1396)이 쓴 시집 ‘목은시고’의 한 구절. 얼마나 현란한 표현인가. 세상에서 술맛을 가장 잘 아는 인물(도연명)도 모자라, 술 취하기를 거부했다는 인물(굴원)까지 감동시킬 거라니. 배경이 없지 않다. 고려 말 조선 초 격변기를 살았던 그가 술을 어찌 술로만 마셨을까 싶은 거다. 정도전과 대립하던 제자 정몽주가 끝내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하고 자신도 연좌로 유배를 맞은 그 시절을 견뎌야 했으니. 그의 소주 맛은 그 참담한 세월이 일깨웠을 거다.
미식가 한 분만 더 모시자. 이번엔 대단히 까탈스러운 양반. ‘식욕은 하늘에서 부여한 천성’이라고 여겼던 이다. ‘홍길동전’의 허균(1569∼1618) 말이다. 그가 순탄치 않은 관직생활 중 1611년 전라도 함열현(지금의 익산시 함라면)으로 귀향갔던 때. 대단한 불만이 딱 하나 있었으니 음식이었다. “쌀겨조차 부족하고 밥상 위의 반찬이라곤 썩어 문드러진 뱀장어나 비린 생선에 쇠비름과 미나리뿐”이라고 투덜댔단다. 결국 주린 배를 달래고자 책을 한 권 집필하는데, 이름 하여 ‘도문대작’(屠門大嚼). ‘푸줏간 앞에서 크게 입맛을 다시다’란 뜻이라니. 어쨌든 조선 최고의 그 ‘짧은 입’을 살살 녹였다는 음식을 ‘도문대작’에 공개했는데. 바로 ‘석이병’이다. 1603년 금강산 여행 중 맛보았다는 석이병의 주재료는 석이버섯. 깊고 높은 산 속 바위에 붙어산다는 귀한 그 식재료를 다져 귀리를 빻은 가루에 섞고 꿀물을 탄 뒤 조물조물해 시루에 쪄낸 떡이다.
허균의 식도락은 가문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대 최고 명가답게 청탁성 제철음식이 문지방이 닳도록 배달됐다는데. 자랑이 절로 나올 만하다. “선친이 살아계실 때는 사방에서 별미 음식을 예물로 보내는 이가 많아서 어린 시절 진귀한 음식을 두루 먹어 보았다.” 이런 얘기도 나온다. “자라서는 부잣집에 장가가서 땅과 바다에서 나는 온갖 음식을 다 맛보았다.” 얼마 뒤 허균은 유배지에서 풀려나 자유의 몸이 됐다. 하지만 다신 석이병을 맛볼 수 없게 됐으니. 광해군 10년(1618) 역모 혐의를 쓰고 서울 서소문 밖 저잣거리에서 능지처참을 당하고 만다. 그의 나이 49세였다.
영조가 최애한 음식은 ‘고추장’이었다. 75세에 “송이·생복·아치(어린 꿩)·고초장이면” 밥 한그릇 뚝딱을 외친 장면을 ‘승정원일기’가 전한다. 양념을 꼽은 다른 이로는 문인 이옥(1760∼1815)이 있다. 남들은 젓가락도 안 댄 그것에 고기를 찍어먹다가 반그릇이나 비웠다는 ‘겨자장’이다. 학자 홍석모(1781∼1857)는 단연 ‘냉면’. 메밀국수를 무김치나 배추김치에 말고 돼지고기를 넣은 음식이라고 친절하게 소개한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1741∼1793)는 중국인들이 ‘강의 돼지’라 불렀던 ‘하돈’(지금의 복어)을 인생의 맛으로 삼았나 보다. 대신 맹독에 대한 경고를 잊지 않았는데 시문집 ‘영처시고’에 실린 한시 ‘하돈탄’에는 “목구멍에 윤낸다고 기뻐하지 말라”는 시구가 선명할 정도.
맛을 논하는 데 신분을 가릴 수 있겠는가. 15인에는 사대부 여성 3인도 끼어있다. 한글요리책 ‘음식디미방’을 쓴, 정부인 안동 장씨라 불리던 장계향(1598~1680), 조선 유일의 여성 실학자로 생활경제백과사전인 ‘규합총서’를 쓴 빙허각 이씨(1759∼1824), 김진화(1793∼1850)의 부인으로만 알려졌으나 빽빽한 한글편지에 온갖 레시피를 남긴 여강 이씨. 이들의 소울푸드는 각각 ‘어만두’ ‘강정’ ‘갓’이었다.
가장 높게는 왕좌에서, 그 아래로 정치가·사상가·학자, 또 그들을 보좌한 여염집 부인까지, 본업 외에 ‘완전히 꽂힌’ 맛의 세계는 차라리 중독에 가까웠다. 실제 저자 자신도 다르지 않을 터. 역사·문화인류학을 두루 연구해온 그가 정작 깃발을 꽂은 지점도 음식이니까. 덕분에 책의 강점이 선명해졌다. 단순히 음식 소개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거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그들의 독특한 미각에 얽힌 사연·철학까지 들춰냈으니까.
△‘군자의 길’을 맛으로 그려낸 혁신가들
공자가 그랬다지 않나. “군자라면 먹고 마시는 일을 즐기지 말고 피해야 한다”고. 그러니 공자를 롤모델로 믿고 살아온 조선 지식인층에서 음식이야기가 나올 턱이 없다. 결국 여기 15인은 공자를 재해석한, ‘군자의 길’을 맛으로 그려낸 혁신가들이었을 거란 소리다.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리는 거야 당연하다지만 맛이라고 다를까. 미식가란 말이 그렇다. 조선시대 말로 ‘지미자’(知味者). ‘맛을 좀 아는 사람’이란 뜻이다. 미각기관이 섬세하고 주의력이 있어 맛있는 요리를 자각하면서 먹는 사람. 그런 이들에게 이유 없는 맛이란 있을 수가 없다.
먹고 마실 것, 또 그 이야기가 차고 넘치는 세상. 굳이 한 토막 더 보탤 필요가 있는가란 의심에는 촘촘히 덧댄 책의 행간이 대신한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이들을 위해 위장 대신 머리를 자극하는 방법을 쓴 거다. 뒷목을 서늘하게 내리치는 죽비 같다고 할까. 음식에도 격이 있고 법이 있다는 것을 서서히 일깨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