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청산 못한 과거에 대한 예의

  • 등록 2020-05-19 오전 1:11:00

    수정 2020-05-19 오전 1:11:00

[이데일리 이성기 기자] 디지털 환경에서 나고 자란 `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 젊은 세대)에겐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얘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1990년대 중반, 수능 2세대 새내기로 대학 캠퍼스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만 해도 신촌 일대 교정은 종종 자욱한 최루탄 연기로 매케해지곤 했다.

`학살자를 처벌하라` `학살자를 구속하라`는 구호가 거리를 메웠고, `체포 결사대`란 이름의 학생들은 서울 연희동 누군가의 자택 앞 저지선을 뚫지 못한 채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배우 진구와 한혜진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영화 `26년`이 모티브로 삼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의 주범 전두환씨 얘기다.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 유족이 18일 오전 광주광역시 동구 옛 전남도청 앞에서 열린 제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눈물을 훔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부에선 `또 전두환이냐`는 볼멘소리를 하겠지만, 40년이 지난 지금도 5·18 민주화운동은 청산하지 못한 과거의 아픔으로 남아 있다. 김영삼 정권 시절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으로 사법적 단죄에 나섰지만 반쪽 짜리에 그치고 말았다. 군 형법상 반란·내란죄와 뇌물수수 등으로 재판에 넘겨 1997년 4월 무기징역과 함께 추징금 2205억원의 선고가 최종 확정됐지만, 국민 대화합을 명분으로 내건 특별사면으로 그 해 12월 풀려났다. 구속된 지 고작 2년여 만이었다.

제대로 된 반성과 진상규명 없이 적당히 덮고 넘어간 탓에 우리 사회는 여전히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툭하면 5·18을 왜곡하고 부정하는 망언들이 심심치 않게 되풀이되고, 전씨는 여전히 추징금 1000여억원을 내지 않은 채 버티고 있다. 2003년 법원의 재산명시 명령에 `29만원`을 신고하며 “겨우 생활할 정도”라고 강변했던 그였다.

사자(死者)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최근 행보 역시 가관이다. 지난해 11월 골프장에서 맞닥뜨린 임한솔 전 정의당 부대표에게 “자네가 좀 납부해 주라”며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이는가 하면, 12·12 당일에는 군사반란에 가담한 측근들과 서울 강남 고급 중식당에서 수십 만원짜리 코스 요리를 즐기기도 했다. 알츠하이머와 고령 등 건강상 이유를 들어 법정에는 출석하지 않으면서 후안무치한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2년 여간 이어지고 있는 재판 기간 직접 광주를 찾은 것은 고작 두 차례. 그조차 취재진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법정에서 꾸벅꾸벅 조는 등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했다.

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처음으로 시민군 최후의 항쟁지였던 옛 전남도청 앞 민주광장에서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용서와 화해의 길`을 언급했다. 물론 국가폭력 가해자의 진심어린 고백과 사과를 전제로 했다. 여야 정치권도 입을 모아 5월 정신을 기렸다. 하지만 이날도 그의 측근은 계엄군 출동과 발포 명령의 배후 책임을 완강히 부인했다. 세월은 흘러 강산이 네 번 변할 정도로 시간이 흘렀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때론 정치적 이해관계로, 때로는 통합·화합이란 미명 아래 책임을 묻지 않고 타협한 결과다.

오는 30일이면 21대 국회가 문을 연다. 국가폭력의 진상을 명백히 밝히는 것은 물론 `역사왜곡처벌법` `전두환 추징법` 등 5·18 관련 법안 처리에 적극 나서야 한다. 생때같은 자식을 가슴에 묻고 속으로 울음을 삼켜야 했던 이들에게 건넬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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