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태 아부지가 뜯은 6억, 또 무혐의 될까[헬프! 애니멀]

온라인 후원금 횡령 범죄, 모호한 법에 줄줄이 무혐의
기부금품법, 슈퍼챗 등 온라인 후원에 무방비
일원화된 후원금 관리체계와 가이드라인 마련해야
후원금 목적과 용도적시 등 신중한 후원 필요
  • 등록 2022-12-19 오전 8:00:00

    수정 2022-12-19 오전 8:00:00

[이데일리 김화빈 기자] 발단은 작은 우연이었다. 지난 2020년 12월 택배가 가득 싸인 화물칸에 강아지가 방치돼 있어 동물학대가 의심된다는 한 커뮤니티 게시글이 급속도로 퍼졌다. 논란은 곧 잦아들었다. 택배가사가 직접 ‘10살 노령 유기견인 경태의 분리불안이 심해 일할 때도 데리고 다니게 됐다’고 해명한 뒤 이를 뒷받침 하는 입주민들의 목격담도 여럿 게시되면서다. 그러나 미담은 인심을 팔아 모은 후원금을 횡령한 범죄로 끝났다. 온라인 후원금 횡령 문제가 매번 반복되는 배경에는 모호한 기부금품법 때문이라는 지적이 따른다.

CJ 대한통운으로부터 택배견으로 임명됐던 경태(사진=경태 아부지 SNS)
선의를 팔아 후원금 한탕 장사했다

미담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택배기사 A씨와 그의 여자친구 B씨는 ‘경태 아부지’ SNS 채널을 개설, 일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등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어 22만 팔로워를 갖게 됐다. 경태 아부지의 인기는 고용주인 CJ 대한통운 측이 경태와 태희(다른 입양견)를 각각 명예 택배기사로 임명하고, 이 소식을 여러 언론사가 보도할 정도였다.

그러자 이들은 반려견의 인기를 악용해 사리사욕을 채울 계획을 세운다. A씨 커플은 지난 3월 5일 경태와 태희의 심장병 투병 사실을 공개하며 “제가 죽어도 이런 건 생각 못 했는데 발등에 불 떨어지니 용기가 생긴다”며 이른바 ‘1000원 챌린지’를 시작, 10분 만에 1784만원을 모았다.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소액이라도 기부한다’며 적극 동참했다.

그러나 현행법이 이들의 발목을 잡았다.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1000만원 이상의 금액을 모집하려는 자는 모집 계획과 보관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밝힌 모집·사용계획서를 지방자치단체 등에 제출해야 한다. 이를 위반 시 3년 이하 징역,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택배기사 A씨와 동행했던 경태의 모습 (사진=SNS)
이에 A씨 커플은 모금된 금액 일체에 대한 환불 의사를 밝혔지만, 이행하지 않았다. 이후 이들은 돌연 계정을 삭제하고 잠적, 6개월 만인 지난 10월 28일 사기 및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경찰 조사 결과 A씨 커플은 1만 2808명에게 6억 1000만원을 받고, 대부분을 도박과 빚 상환에 쓴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일부 후원자들에게 SNS로 개별 접근한 뒤 신용대출 등을 통한 후원금 마련을 강권한 정황도 드러났다. 사건을 넘겨받은 서울동부지검은 횡령한 후원금 대부분이 B씨의 계좌로 넘어간 점 등을 고려해 A씨를 불구속, B씨를 구속 기소했다. 첫 재판은 오는 16일 오전 서울동부지법에서 열릴 예정이다.

슈퍼챗으로 후원하면 기부금이 아니라 증여?

안타까운 동물의 사연을 게시해 온라인 후원을 진행한 뒤 잠적하는 범죄가 잇따라 사법당국에 고발되고 있지만, 대개 ‘무혐의’ 처분을 받고 있다. 피해자 특정이 어렵고, 후원금의 성격이 모호하다는 이유에서다.

일례로 반려묘 유튜버 채널 ‘갑수목장’을 운영하는 C씨는 지난 2019년 5월부터 12월까지 펫샵서 데려온 고양이를 유기묘로 속인 뒤 유기동물의 입양·처우 개선을 명목으로 구독자들로부터 7개월간 1700만원을 받아 사기·기부금품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입건됐으나 지난 2월 무혐의 처분됐다.

경찰조사서 C씨가 펫샵서 동물을 구입하고도 자신이 구조·임시보호한 것처럼 콘텐츠를 조작한 사실은 인정됐지만, 조작된 콘텐츠로 후원금을 거둔 혐의(사기)는 입증되지 못했다.

경찰은 “구독자들이 (펫샵서 구매되지 않은) 나머지 유기 동물을 대상으로 후원금을 지급한 경우를 배제할 수 없다”면서 각각 후원 목적이 상이한 탓에 기부금품법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급속도로 성장한 개인 온라인 모금은 원칙적으론 기부금품법 적용대상이나 해석이 분분해 실제 법적용이 어렵다.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온라인 모금 가이드라인 마련은커녕 규모와 실태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지금으로선 후원금이 증여가 아닌 본래 목적대로 쓰이려면 기부과정서 후원금 목적과 사용처를 분명히 적시하고, 후원금 내역을 살피는 개인의 노력이 전부인 상황이다.

이 때문에 모금의 행정적 절차를 일원화하고 문제 시 엄단하는 대처가 필요하다. 영국은 독립 기구인 자선위원회를 통해 모금 단체의 등록·감사·사후 관리를 전담하고, 문제가 불거질 시 모금 운영에 개입할 수 있다. 미국은 모금에 관한 업무를 국세청이 총괄하고, 세금을 부과한다. 일본도 공익인정위원회를 두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 21대 국회선 온라인 기부통합관리시스템 도입 등 20여개 넘는 기부금품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실효적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는 “정부 등이 통일된 비영리회계기준과 모금가이드라인을 정리하고 공개하는 형식을 마련해야 한다”며 “여러 정부부처에 흩어져 있는 비영리단체 관리 체계를 일원화하고 통일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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