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조원 삼성전자株 '매물폭탄' 나오나

[논란의 삼성생명법]②민주당, 보험업법 개정안 추진
삼성생명·화재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대량 처분해야
시장 처분 땐 대혼란..결국 삼성물산이 떠안을듯
  • 등록 2020-08-13 오전 5:56:00

    수정 2020-09-07 오후 3:38:53

[이데일리 김인경 장순원 기자] “매각 대상 삼성전자 주식만 23조원어치입니다. 코스피 시가총액 10위 수준의 기업 하나를 그냥 통째로 팔라는 압박과 다를 바 없습니다.”

재계와 금융권이 일명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내 최대인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와 직결돼 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삼성전자 주주, 또 삼성생명 보험계약자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입법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와 영향을 점검하지 않으면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삼성전자 지분 시장에 파는 건 비현실적”

더불어민주당의 박용진·이용우 의원이 발의한 보험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모두 삼성전자를 포함해 계열사 지분을 ‘시가’ 기준으로 총자산의 3%까지만 보유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들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만 약 34조원 규모다. 지난 3월 말 기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총자산이 각각 309조원, 86조원인 것을 고려하면 두 회사가 23조원 안팎의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지난 20대 국회 때에도 같은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된 적이 있었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다르다. 거대 여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국회 통과는 어렵지 않다.

금융당국도 힘을 보태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보유 지분 가치를 계산하는 방식이) 원가가 맞느냐, 시가가 맞느냐 한다면, 시가로 계산해 위험성을 파악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삼성생명법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이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주식시장에서 내다 팔 경우 엄청난 충격이 올 수 있다. 매각 유보 기간을 최대 7년으로 잡아도 한 해 3조~4조원 규모의 주식을 쏟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정도 물량을 받아 줄 국내 기관은 사실상 없다. 반도체를 생산하는 삼성전자 지분을 중국계 자본이나 해외 사모펀드에 넘기는 것도 현실성이 없다. 외국인투자촉진법을 통해 해외 자본의 반도체 등 국가 안보와 관련된 기업의 지분 매입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우리 주식시장에서 20조원 규모의 매물 폭탄은 한 번도 나온 적 없다”라며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시장에 내다 파는 건 현실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 인수 나설 듯

실제로 개정안이 통과되고 삼성전자 지분 매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결국 삼성 계열사가 지분 인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삼성그룹 지배구조는 ‘오너 일가 → 삼성물산 → 삼성생명 → 삼성전자’로 이어져 있다. 특히 이재용 부회장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이 0.7%에 불과하다. 이 부회장이 보유한 삼성물산(17.48%) 지분을 지렛대로 삼성전자 경영권을 확보하고 있다.

(그래픽=김정훈 기자)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5.01%)과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지분(8.51%)이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를 지배할 수 있는 연결고리다. 만약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대거 처분하면 이 고리가 끊어지게 된다. 삼성그룹이 함부로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주식이 아니다.

시장에서는 결국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사들이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일단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식 전량(지분 43.44%·23조원)을 사들이고, 실탄을 확보한 삼성물산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사들이는 ‘삼각거래’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험업법’ 규제를 피하고 지배구조를 지키기 위해서는 결국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지분은 삼성물산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지분 매각차익 22%는 법인세로 나가

하지만 문제는 남는다. 천문학적인 세금 부담을 져야 한다. 법인이 보유주식을 팔면 매각차익에 22%에 이르는 법인세를 포함해 각종 세금이 붙는다. 삼성생명의 경우, 삼성전자의 주식을 1980년 1주당 1072원에 사들였다. 현재 주가(5만9000원)를 고려하면 주당 58000원이 차익이다. 법인세만 약 4조~5조원을 내야 한다. 게다가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을 매각할 때도 법인세를 또 부담해야 한다. 삼성그룹으로서는 배보다 배꼽이 커질 수 있는 구조다.

일각에서는 삼성이 세금을 피하기 위해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과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맞교환(스와프)하는 방식이 검토될 것으로 예상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보험업법 개정안에 따르면 보험회사는 같은 계열사 주식 3%를 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팔고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을 받더라도 결국 ‘3% 규제’를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삼성이 보험업법 규제를 피하면서 지금처럼 이 부회장의 지배력을 유지하려면 거액의 세금을 내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배당을 받는 보험 계약자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매각 시점과 매각기간에 따라 배당재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이 법에 따라 삼성전자 매각 차익을 유배당 보험상품 계약자에게 배당해야 하는데, 역마진 손실과 주식매각 차익을 상쇄할 수 있다. 경제개혁연대 자료에 따르면 7년간 균등매각하는 경우 받을 수 있는 유배당 계약자의 배당금은 일괄매각할 때와 견줘 받을 수 있는 배당금의 절반에 불과하다. 매각 기간이 길수록 삼성생명에는 유리한, 반면 보험계약자에게는 불리한 구조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삼성의 계열사들이 모두 상장사이기 때문에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이 어떤 방법을 택하든 시장의 영향이 클 것”이라며 “후폭풍에 대해 걱정하는 목소리가 꽤 크다”고 말했다. 개정안을 검토했던 이용준 정무위 수석전문위원은 “보험회사가 대규모 지분을 매각하면 증시에 영향이 클 수 있다”면서 “소액 주주를 포함해 다수 이해관계자도 예측하지 못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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