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는 ‘청년수당’
경기도의 청년기본소득은 이재명 경기지사가 2015년 성남시장 시절 시작한 ‘청년배당’사업이 시초다. 3년 이상 성남시에 거주한 만 24세 청년에게 50만원씩의 지역화폐를 지급했다. 당시 복지부는 “목적이 불분명하고 고용노동부의 취업성공패키지와 유사하며 재원조달 방안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부동의’를 통보했다. 하지만 성남시는 이를 강행했고 당시 복지부와 경기도가 함께 소송까지 진행했지만 정권이 바뀐 후 소는 취하됐다.
이 지사는 이 사업을 경기도 전역을 확대했다. 3년 이상 도내 거주한 만 24세 청년에게 누구나 1년에 100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으로 지난해 10월 복지부에 사전협의를 요청했고 복지부는 ‘협의성립’ 결정을 내려 시행에 동의했다. 내용은 같은데 4년전과 정 반대의 입장을 낸 것이다.
복지부의 입장을 들어봤다. 경기도가 협의과정에서 청년배당을 청년기본소득으로 사업명을 변경했고, 정책실험 성격이라고 해 협의를 했다는 것이다. 경기도는 정책실험에 대한 모니터링·평가 계획도 추가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자체가 정책실험으로 시범사업을 하겠다는데 중앙정부가 막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시범사업 결과를 가지고 사업 지속여부를 평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청년수당·구직지원금 지급 기준 제각각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6년 만 19~29세 미취업청년 중 3000명을 선발해 매달 50만원 현금급여를 최대 6개월간 지급하기로 했다. 당시 복지부는 “서울시의 청년수당 사업이 복지혜택의 지역 불평등을 초래하므로 사업 집행을 중단하도록 했다”면서 직권 취소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복지부는 청년수당에 동의했다. 이에 대해서도 복지부는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합의 과정에서 졸업기간이나 소득기준 등 추가 요건이 보완돼 동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로 전국 14개 지자체에서 비슷한 제도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리고 정부차원의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이 생겨나자 이들 지자체들은 중복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졸업 후 2년 미만’을 ‘졸업후 2년이 지난’이라는 조건으로 부랴부랴 바꾸고 있다.
노인수당 청년수당 전철 밟을까
이번에는 노인수당이다. 서울 중구는 지난 2월부터 관내 만 65세 이상 기초생활수급자와 기초연금 대상자 1만1000여명에게 ‘어르신 공로수당’ 월 10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복지부는 협의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시행을 결정했다며 반대의견을 냈고 재협의에 들어갔다. 하지만 중구는 이미 2월과 3월에 지급했고 곧 4월 지급도 앞두고 있다. 복지부가 노인수당을 반대하는 이유는 바로 유사성 때문이다. 현재 25만원인 기초연금 지급액을 2021년까지 30만원으로 높이는 계획을 추진 중인 것을 감안하면 중구에서 공로수당을 신설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다. 통상 이 협의기간이 60일인 점을 감안하면 이달 중으로는 재협의에 대한 추가적인 입장이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 관계자는 “재협의 기간 중 협의가 안되고 종료되면 기초연금 국고보조금 270억원 중 10%인 27억원을 삭감할 예정”이라며 “재협의로 사업 유사성을 배제할 수 있을 경우에는 삭감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앞서 경기도의 청년기본소득이 정책실험이라는 명분을 얻었다면 노인수당 역시 알맹이는 그대로 두고 포장만 다르게 할 경우 복지부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그렇지 않을 경우 형평성 문제도 생길 수 있다.
중구는 복지부와 소송까지 갔던 성남시와 서울시 사례 등을 언급하며 전례에 맞춰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이미 지급을 시작한 수당을 중단하거나 뒤집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른 지자체에서는 이를 의식하듯 벌써부터 노인들을 위한 현금성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경북 영주시와 전북 임실군은 노인 목욕비 지원사업을, 전북 완주군은 노인 이미용권 및 목욕권 지원사업, 부산 동구는 어르신 품위유지 수당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제대로 된 기준을 세우지 않는다면 통칭 ‘노인수당’이 지자체별로 제각각 지급되는 청년수당의 전철를 밟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현금 복지는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것이 맞다고 입을 모은다. 이향수 건국대 행정복지학부 교수는 “중앙부처에서 일정 수준 한도를 정해놓고 그 안에서 지급하는 식의 가이드라인을 정해주는 게 바람직하다”면서도 “그러나 중앙부처 예산이 아닌 지자체 자체 예산으로 하는 사업에 대해 중앙 정부 차원에서의 가이드라인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할 지 알 수 없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