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rd SRE]수년째 경고…조선·해운 결국 터졌다

기간산업 향한 시각 차별화…조선·해운 '한숨' 정유·화학은 '웃음'
  • 등록 2016-05-16 오전 7:36:54

    수정 2016-05-16 오전 7:36:54

[이데일리 김기훈 기자]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하향세로 접어든 기간산업을 향해 우려의 시선으로 일관하던 크레딧시장의 태도가 달라졌다. 구조조정의 소용돌이가 거세지면서 벼랑 끝에 선 조선과 해운업종을 바라보는 눈은 불안감에 가득 차 있지만 저(低)유가 시대의 최고 수혜 업종으로 떠오른 정유와 화학업종을 향한 눈은 업황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깃들어 있다. 기간산업을 차별화된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증권과 신용카드, 은행 등 그간 안전 업종으로 분류됐던 금융업종도 이제 시장 참여자들의 의구심 어린 눈빛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다. 한 번 눈 밖에 난 민자발전과 캐피털은 이번에도 천덕꾸러기 신세를 탈출하지 못했다.

크레딧시장은 이미 수년 전부터 SRE를 통해 조선과 해운업종 리스크를 경고한 바 있다.
문제업종 낙인 찍힌 조선·해운…업황악화 공동 1위 ‘불명예’

정부가 조선과 해운 철강 석유화학 등 침체 장기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산업구조개혁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힌 뒤 정치권도 이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지지부진하던 기업 구조조정이 급물살을 타는 가운데, 첫 순위로 조선과 해운업종이 선택됐다. 두 업종 모두 이미 오래전부터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부인에도 기업 간 인수·합병(M&A)과 사업 통폐합은 물론 최악의 경우 법정관리까지 거론된다.

본격적인 구조조정 움직임에 앞서 실시한 23회 이데일리 신용평가 전문가 설문(SRE: Survey of credit Rating by Edaily) 에서도 이들 업종에 대한 불안감은 고스란히 노출됐다. 이번 SRE에서 최근 6개월 내 업황이 나빠진 산업을 묻는 설문(복수응답 가능)에 크레딧시장에서 활동하는 응답자 141명 중 58명(41.1%)이 각각 조선과 해운을 지목했다. 공동 1위다. 조선·해운 업종은 그동안 SRE 업황 악화 설문의 단골손님이었다.

산업과 기업 리스크에 민감한 크레딧시장이 지속적으로 우려를 제기해온 것이다. 조선업종은 20회(2014년 하반기)와 21회(2015년 상반기) 연속으로 악화업종 2위에 오른 뒤 22회(2015년 하반기)에 1위로 지목됐다. 특히 22회 설문 당시에는 67.3%의 압도적인 득표로 업황 악화업종에 꼽히면서 시장의 우려를 그대로 반영했다.

해운업종도 이미 2014년 상반기 SRE에서 업황이 가장 악화된 업종으로 꼽힌 바 있다. 이후 조선·건설·화학업종의 리스크가 부각되면서 한때 순위권 상위에서 밀리기도 했지만 22회 때 4위로 재진입했고 이번에는 조선과 함께 공동 1위까지 올라왔다. 크레딧시장에서는 투자위험 업종으로 분류된 지 이미 오래됐고 구조조정의 필요성 역시 제기된 지 하루 이틀이 아니라는 얘기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042660)삼성중공업(010140)의 잇따른 수조원대 손실 고백으로 크레딧시장은 물론 국내 경제·산업 전반에 엄청난 쇼크를 안겼던 조선은 실적 악화의 주된 배경인 해양플랜트 부실과 더불어 해운 침체와 유가 하락, 중국 조선업의 비약적 성장 등 수주환경이 악화하면서 극심한 수주절벽에 시달리고 있다. 영국 조선·해운 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한국 조선업계가 지난 1분기 수주한 선박은 고작 8척에 불과했다. 수주잔량 역시 2004년 3월 이후 12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한 SRE 자문위원은 “현재대로라면 하반기 국내 조선사 수주잔 고는 임계치인 1.2년 수준까지 떨어진다”며 “이는 사실상 조업 중단 상태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조선 빅3가 인력 감축을 비롯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것도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조선업의 업황 부진과 경쟁력 저하 등을 고려해 합병을 포함한 3사 간 ‘빅딜론’까지 나오고 있다.

해운업의 상황은 조선보다 더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다. 현대상선(011200)에 이어 한진해운(117930)까지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하면서 두 회사 모두 회생과 퇴출의 갈림길에 섰다. 현대상선은 이미 지난달 회사채 원리금 상환에 실패하면서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를 맞고 신용등급이 최하단계로 추락했다. 앞서 해외 선주들과의 용선료 인하 협상과 사채권자 출자전환 등 채무재조정을 전제로 조건부 자율협약을 맺은 현대상선은 특히 용선료 인하 협상에 실패할 경우 법정관리가 불가피하다는 게 크레딧시장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처지가 비슷한 한진해운 역시 금융당국과 채권단의 강경한 태도로 인해 용선료 협상에 사활을 걸고 있다. 조선업보다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지는 해운업 특성상 국적선사를 1개로 줄이는 방안도 진지하게 논의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구조조정에 대한 시장 동력이 부재한 현 시점에서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며 “다만 향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실기업에 대한 정책금융 지원은 줄이고 사모투자펀드(PEF) 자산운용 규제 등은 풀어 방향성을 시장 자율적으로 이끄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민자발전·캐피털 부정적 시각 여전…금융업 둘러싼 우려 확산

얼마 전부터 업황 악화 업종으로 급부상한 민자발전과 캐피털업종은 이번에도 시장의 부정적 시각을 돌려놓는 데 실패했다. 민자발전은 업황 악화 업종 설문에서 34.0%(48명)의 표를 얻어 조선과 해운의 뒤를 이었다. 직전 SRE보다 순위는 한 계단 내려섰지만 오히려 득표율은 더 높아졌다.

특히 크레딧애널리스트들이 조선과 해운보다도 민자발전에 더 많은 표(28명·43.1%)를 던진 것이 주목된다. 발전설비 증가와 전기수요 둔화에 따른 전력수급 안정화로 실적 악화에 시달리는 민자발전사들은 정부가 전기수요 관리 정책을 꾸준히 펼치면서 올해도 실적 개선이 쉽지 않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지난해 말 정부가 전력시장제도 개선 계획을 발표하면서 민자발전사들의 요구사항인 용량요금제 개편을 포함한 것이다. 제도 개선에 따른 효과는 내년부터 반영될 것으로 관측된다.

BNK캐피탈의 렌털채권 부실화 여파로 22회 SRE에서 업황 악화 업종 3위에 올랐던 캐피털의 경우 득표율은 32.7%에서 18.4%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4위로 높은 순위를 유지했다. 캡티브(전속시장) 캐피털사 위주의 시장 재편과 카드사의 자동차금융시장 진출 등으로 경쟁이 심화되면서 중소캐피털사를 중심으로 우려가 지속된 탓이다. SRE 자문위원은 “끊임없이 제기되는 현대캐피탈 매각설도 캐피털업종에 대한 불안감을 키웠다”고 전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BNK캐피탈의 채권 발행이 흥행에 성공하는 등 캐피털업종을 향한 기류 변화가 조금씩 감지되는 모습이다.

신용카드와 증권, 은행 등 금융업종도 업황 악화 업종으로 새롭게 부각됐다. 신용카드와 증권이 각각 8.5%(12명)의 표를 얻어 공동 6위에 올랐고 은행은 7.1%(10명)로 바로 다음에 자리했다. 특히 신용카드는 향후 1년 내 업황 개선 업종 설문에서 단 1명으로부터 선택받는 데 그치며 미래가 가장 어두운 업종으로 꼽혔다. SRE 자문단은 “업계 선두권인 삼성카드(029780)와 현대카드의 매각설이 잇달아 터지면서 카드업종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진단했다. 증권의 경우 작년 하반기부터 우발채무와 파생결합증권 발행 증가가 증권업 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신용평가사들의 지적이 계속되면서 불안심리가 확산되는 국면에 있다.



‘저유가 수혜’ 정유·화학, 업황 개선 기대 나란히 1·2위

조선·해운과 더불어 정부의 구조조정 대상 업종으로 지목되면서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던 정유·화학업종을 향한 크레딧시장의 시선이 눈에 띄게 따뜻해졌다. 최근 실적 호조를 통해 저(低)유가 장기화의 최대 수혜 업종이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다.

앞으로 1년 내 업황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되는 업종을 묻는 설문에 응답자 141명 중 절반에 육박하는 67명(47.5%)이 정유에 표를 던졌다. 지난 22회 당시 득표율 20.8%보다 훨씬 많은 표를 받은 것으로 순위 또한 4위에서 1위로 상승했다. 화학의 상승세는 더 돋보인다. 응답자 중 41.8%에 해당하는 59명이 화학의 업황 개선 가능성을 기대했다. 직전 SRE에서 고작 11.3%의 표를 얻는 데 그쳤던 것을 감안하면 괄목할만한 결과다. 3위인 전기전자(22명·15.6%)와의 표 차이를 보면 두 업종에 대한 시장 참여자들의 몰표가 더 두드러진다.

한 SRE 자문위원은 “지난 분기까지만 해도 내수 소비재 외에는 투자할 곳이 없다고 할 정도로 정유나 화학 같은 경기 순환재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적었으나 상황이 완전 판이해졌다”고 평가했다.

크레딧시장의 태도가 이처럼 달라진 것은 ‘서프라이즈’ 수준의 실적 개선 흐름에 기인한 바가 크다. SK이노베이션(096770)과 GS칼텍스 S-OIL(010950)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의 지난해 합산기준 영업이익은 4조8000억원으로 4년 내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1분기에도 이런 실적 호조세는 계속돼 SK이노베이션과 S-OIL의 경우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 증가율이 100%를 훌쩍 넘었다.

정유사들의 이익 급증은 휘발유·나프타 등을 중심으로 한 정제마진 확대가 주효했다. 저유가 장기화에 따른 제품가격 하락으로 수요가 증가하면서 정제마진 확대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유가 하락으로 글로벌 자동차 구매 수요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휘발유 수요 역시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고 나프타도 유가 하락에 따른 제품가격 하락으로 원가경쟁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전망을 반영해 NICE신용평가는 최근 정유사들의 신용등급을 일제히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

화학업체들의 실적도 상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국내 최대 석유화학업체인 LG화학(051910)의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동기 대비 26% 늘어난 4577억원으로 집계됐다. 또 다른 화학회사인 롯데케미칼(011170)과 한화토탈 역시 3000억~5000억원대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유가 하락과 더불어 경쟁자인 중국과 중동 화학업체들이 저유가로 인한 수익성 악화로 계획한 설비 증설을 취소하거나 연기하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제품 가격이 상승한 것이 실적 개선의 주된 배경이다.

화학업체들의 실적은 한동안 개선 기조를 보일 것이라는 게 크레딧시장의 판단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제한적인 공급 부담으로 전반적인 수급구조가 양호하다”며 “올해도 석유화학업체들의 실적은 좋을 것”이라고 봤다. 다만 일시적인 수급 개선 요인들의 영향이 감소하면서 작년보다 이익 규모는 축소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일각에선 지금의 실적 호조 분위기에 너무 취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중국 성장 둔화와 셰일가스·석탄 기반 설비 증설 등 중장기적으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이유에서다.

철강업에 대한 긍정적 시각이 형성된 점도 관심을 둘만하다. 업황 개선 업종 설문에서 철강은 14.9%(21명)의 표를 받아 당당히 4위에 올랐다. 22회 당시 3.8%의 득표율로 최하위권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업황이 당장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의 철강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점차 상황이 호전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SRE 자문위원은 “중국 정부가 과거 말뿐이었던 철강업 구조조정을 실제로 강하게 진행하고 있다”며 “후행적인 성격이 강한 크레딧시장이 뜻밖에 이런 기대감을 빨리 받아들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23회 SRE(Survey of credit Rating by Edaily)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문의: stoc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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