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이웃 주먹질에 맞주먹질…정당방위?[사사건건]

층간소음 갈등으로 아랫집 자매와 윗집 부녀 간 번진 싸움
딸 맞는 모습에 부친이, 부친 맞는 모습에 딸이 싸움에 끼어
정당방위 가려보니 딸은 무죄인데 억울하게 기소유예 처분
헌재에서 기소유예 취소.."부친 구하려고 방어한 것"
  • 등록 2022-11-23 오전 8:49:26

    수정 2022-11-23 오전 8:49:26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아파트 아랫집에 사는 자매와 윗집에 사는 여자는 층간소음으로 갈등했다. 하루 이틀 일은 아니었다. 서로 욕설이 오가는 날이 잦았다. 2019년 12월 어느 겨울날, 윗집이 이삿짐을 들여오면서 사달이 났다. 아랫집 사람들이 윗집으로 쫓아올라 간 것이다. 이사하면서 발생한 소음 탓이었다.

뛰어노는 아이.(사진=이미지투데이)
‘문 열라’는 성화에 A(윗집 여자)가 문을 열고 나갔다. 아랫집 자매 중에 언니인 B의 손이 A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이사를 도와주러 온 A의 부친 C가 말릴 새도 없었다. 딸이 맞는 모습을 본 C가 싸움에 끼어들어 B의 멱살을 잡았다. 이번에는 B가 수세에 몰린 모습을 본 여동생 D가 C를 때렸다. C가 맞는 모습을 본 A가 D를 밀어냈다. 결국 네 사람은 폭행 혐의로 입건됐다.

두 집은 서로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상대방이 먼저 때렸기에 스스로 방어하고자 맞대응을 한 것이라고 했다. 형법 21조는 ‘현재의 부당한 침해로부터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法益)을 방위하고자 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벌하지 않는다’는 정당방위를 인정한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하되, 방어를 위한 최소한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각자의 주장대로라면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는 상황이었다. 수사를 마친 검찰은 네 사람을 모두 사법 처리하기로 했다. 다만 A는 혐의가 가벼워 기소유예를, 그리고 나머지 셋은 재판에 넘겼다. 재판에서 두 자매는 폭행 혐의에 대한 유죄가 인정돼 벌금형이 확정됐다.

C는 재판에서 무죄를 다퉜다. C는 윗집에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이삿날 딸을 도우러 갔다가 사건에 휘말렸다. 평소 아랫집과 층간소음으로 직접 갈등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굳이 C가 먼저 자매를 때릴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C가 B의 멱살을 잡아 밀쳤지만, 딸 A가 공격당한 데 대한 반응으로 보는 게 합리적으로 보였다. 정당방위는 자신뿐 아니라 제삼자의 피해에도 인정된다. 결국, 재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관건은 A였다. 딸 A가 아버지 C가 공격당하자 보인 반응이 정당방위에 해당할지가 문제였다. 앞서 C의 재판에서, 부녀가 먼저 자매를 때린 것은 아니라는 점이 인정된 상황이기도 했다. 그 기록을 바탕으로 폭행이 일어난 순서를 따져보면 제일 먼저 윗집 딸 A가 맞고, 아랫집 언니 B가 맞고, 윗집 아버지 C가 맞고, 아랫집 여동생 D가 맞은 것이다. A는 기소유예 처분을 취소하라고 헌법재판소에 청구했다.

사건을 심리한 헌재는 A의 기소유예 취소를 결정했다고 23일 밝혔다. 사건 당일 D의 행위는 B에 대한 정당방위가 아니라 C에 대한 공격으로 판단하고 A의 정당방위 요건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부친 C의 피해를 목격한 청구인 A는 아랫집 여동생 D의 폭행을 저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A는 D를 공격한 게 아니라 C가 부당한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도록 방어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D의 행위는 적극적인 폭력으로 상당성을 벗어나 정도가 심하지만 A의 행위는 정도가 경미하고 소극적이라 상당성이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A를 대리해 사건을 변호한 배보윤 변호사는 “청구인은 층간소음 갈등 과정에서 불의의 가해자로 몰려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는데 헌재에서 피해를 구제한 것”이라며 “특히 학생 신분이라서 기소유예 처분이 취소되지 않았더라면 장래 진로에도 차질을 빚었을 것이라서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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