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맛보기] 영호남의 새로운 선택, 차기 대선 회오리 바람으로

새누리당 텃밭 붕괴와 영남 민주화세력의 복원
호남, 국민의당 싹쓸이 의석 선물하며 대변화
영남 분열로 새누리당 기울어진 운동장 이득 소멸
호남 교체로 문재인 vs 안철수 단일화 난망
  • 등록 2016-05-05 오전 8:00:00

    수정 2016-05-05 오전 8:00:00

여야 지역주의 타파 4인방. 왼쪽부터 더민주 김부겸(대구 수성갑)·김영춘(부산 진갑) 새누리당 이정현(전남 순천)·정운천(전북 전주을) 당선자.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20대 총선을 둘러싼 평가는 다양합니다. 수많은 뉴스와 기사 속에 숨겨진 진실이 하나 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표심이 내년 차기 대선에서 엄청난 회오리 바람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선 과반이 붕괴된 새누리당은 122석이라는 참혹한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오만과 독선에 대한 민심의 준엄한 심판이라는 지적에 지금까지 사죄모드입니다. 그러나 비대위원장 구인난, 차기 전대를 둘러싼 갈등 문제로 여전히 시끄럽습니다. 123석으로 원내 제1당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은 표정관리를 해야 하는 의석수를 얻었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습니다. 텃밭 호남에서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전 대표의 정계은퇴 여부를 놓고 한동안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고 문재인·김종인 체제의 갈등설까지 불거졌습니다. 가장 분위기가 좋은 곳은 역시 국민의당입니다. 애초 20석 원내교섭단체 구성이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에도 38석을 얻었습니다. 여야 거대 양당구조에 염증을 느끼는 유권자층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캐스팅보트로서 국민의당의 정치적 무게감은 더욱 커졌습니다.

◇‘막대기 철옹성’ 영호남, 한국 현대정치사의 치욕

표면적인 평가를 뒤로 하고 20대 총선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지표는 무엇일까요? 300명의 당선자 중에서 여야 텃밭에서 승리한 이들을 살펴보면 답이 나옵니다. 이번 총선에서 가장 주목할 당선자들은 바로 김부겸(대구 수성갑), 김영춘(부산 진갑), 이정현(전남 순천), 정운천(전북 전주을)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영남 민주화세력의 복원과 호남의 새로운 선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남과 호남은 어찌 보면 한국정치사의 치욕입니다. 87년 대선에서 김영삼(YS)·김대중(DJ) 이른바 양김이 분열한 이후 ‘막대기를 꽂아도 당선된다’고 할 정도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 땅이었습니다. 역대 총선, 대선, 지방선거 결과가 이를 증명합니다. 특히 총선은 참담합니다. 영남은 무조건 새누리당의 몫, 호남은 무조건 더민주의 몫이라는 게 공식이었습니다. 물론 아주 가끔은 지역주의 타파를 내건 후보들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표적입니다. 매번 “이번에는 …” 하고 이변을 기대했지만 ‘혹시나는 역시나’ 였습니다. 그만큼 강고한 철옹성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현존 여야 정당은 나라의 반쪽을 포기하는 정치를 해왔습니다. 새누리당은 호남을 포기했습니다. 과거 여권의 유력 현역 의원이 ‘험지’ 호남에 출마한 경우가 있었나요. 더민주 역시 영남을 포기했습니다. 야권의 유력 현역 의원이 ‘불모지’ 영남에 출사표를 던진 경우가 있었나요. 모두가 아는 것처럼 거의 없었습니다. 도전해봤자 결과적으로 낙선이라는 게 역대 선거에서 증명됐기 때문입니다. 대선에서는 모든 지역의 한 표, 한 표가 소중하지만 특히 총선에서는 소선구제라는 특성상 49.99%를 얻어도 50.01%를 얻은 후보가 있다면 패배하고 맙니다.

◇‘모래알 하나로’ 더민주 김부겸·김영춘 與 이정현·정운천의 파괴력

혁명을 노래했던 시인 김남주의 시(詩) 중에 ‘모래알 하나로’라는 아주 짧은 시가 있습니다.

모래알 하나로 -김남주-

티끌모아 태산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첫술에 배부르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없어라 많지 않아라

모래알 하나로 적의 성벽에

입히는 작은 상처 그런 작은 일에

자기의 모든 것을 던지는 사람은.

더민주의 김부겸(대구 수성갑)·김영춘(부산 진갑) 당선자, 새누리당의 이정현(전남 순천)·정운찬(전북 전주을) 당선자는 모래알 하나로 적의 성벽에 자기의 모든 것을 내던진 사람들입니다. 총선 이후 언론에서 지역주의 타파 4인방으로 부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새누리당 출신 정치인들이 호남에서, 더민주 출신 정치인들이 영남에서 정치활동이나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흔히 말해서 독립운동보다 더 어렵다고 합니다.

여하튼 이들의 당선은 ‘두드리면 열린다’는 점을 증명했습니다. 영호남 유권자들은 이번 총선에서 과거와 같은 고질적인 지역주의 투표 성향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야가 포기하지 않고 유능한 인재를 내세워 상대방의 텃밭을 공략하면 유권자들은 언제든지 화답할 준비가 돼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유권자가 지역주의 투표를 한 게 아니라 정치권이 “설마 되겠어?”라는 심정으로 미리 자포자기했기 때문에 지역주의가 더 심화돼왔다는 것입니다.

◇與 기울어진 운동장 효과 소멸…野 후보단일화 난망

20대 총선에서 영호남은 새로운 선택을 했습니다.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듯이 유권자의 이러한 표심은 차기 대선에서 예측할 수 없는 선거구도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우선 영남을 보겠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으로 새누리당의 심장부인 대구에서 전체 12석 중 더민주 1석, 무소속 3석이 나왔습니다. 야권 성향의 무소속 홍의락 당선자까지 포함하면 야당이 사실상 2석을 얻었습니다. 부산은 더 놀랍습니다. 전체 18석 중 무려 5석이 더민주 차지였습니다. 울산에서도 6석 중 3석을 무소속이 차지했습니다. 새누리당이 19대 총선에서 대구 12석 전석을, 울산 6석 전석을, 부산 18석 중 16석을 휩쓸었다는 점과 비교해보면 지역주의 붕괴 현상은 보다 분명해집니다.

비례대표 정당투표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누리당은 부산(41.22%), 울산(36.69%), 경남(44.00%)에서 과반 득표에 실패했습니다. 이 지역에서 더민주와 국민의당의 정당득표율을 합산하면 새누리당을 추월합니다. 특히 ‘호남 자민련’으로 조롱받았던 국민의당이 영남에서 20% 안팎의 정당득표율을 얻었다는 점을 매우 놀라운 현상입니다.

호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새누리당은 불모지에서 무려 2석을 얻었습니다. 19대 총선에서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결과입니다. 더민주의 전신인 민주통합당이 19대 총선에서 호남을 휩쓸었지만 20대 총선에서는 고작 3석으로 궤멸 수준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습니다. 호남은 창당 두달여에 불과한 국민의당에 전체 28석 중 25석을 안겨줬습니다.

영남의 새로운 선택은 새누리당을 위기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수도권에서 17대 총선 당시 탄핵 때보다 더 참담한 성적표를 얻은데 이어 텃밭마저 붕괴모드로 접어들면서 차기 대선의 전망이 매우 불투명해졌습니다. 특히 영남의 붕괴는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새누리당에 유리한 정치적 환경의 소멸을 뜻합니다.

호남의 새로운 선택 역시 차기 대선에서 야권을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이번 총선 결과를 볼 때 차기 대선에서 ‘문재인 vs 안철수’ 두 유력주자의 후보 단일화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두 사람 모두 독자노선을 고수해도 차기 대선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12년 대선 본선에서 패배한 후 오히려 권력의지가 더 강력해졌다는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가 차기 지지율 조사에서 늘 1위를 달려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차기 대선에서 후보직을 양보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합니다.

이는 2012년 대선 당시 후보직을 양보했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야권분열 구도 속에서도 총선에서 대성공을 거둔 점, 호남이라는 확고한 지역기반의 확보, 비례대표 정당투표 전국 2위가 보여주는 정치적 확장성을 고려할 때 그가 차기 대선에서 ‘철수’를 선언하는 일은 단언컨대 없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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