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언 시달려 극단적 선택한 캐디…法 “직장 내 괴롭힘, 회사도 배상”

상사, 외모 비하 섞인 모욕적 발언 지속
피해자, 온라인 게시판에도 글 올렸지만
회사는 20분 만에 게시물 내리고 강퇴 조치
“근로기준법 적용 못 받아도 직장 내 괴롭힘 인정”
  • 등록 2023-02-19 오후 5:05:12

    수정 2023-02-19 오후 5:05:12

[이데일리 이재은 기자] 상사의 지속적인 폭언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골프 경기보조원(캐디) 사망 사건에 대해 법원이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하고 회사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사진=이미지투데이)
19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민사1부(전기흥 판사)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캐디 A씨 유족이 가해자 B씨와 건국대 법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017년 경기 파주의 건국대 골프장에 캐디로 입사한 A씨는 1년간 근무하다 퇴사한 뒤 2019년 7월 재입사 이듬해 9월까지 근무했다. 상사 B씨는 평소 A씨가 경기 진행이 느리다는 이유로 ‘네가 코스 다 말아먹었다. 느리다. 뚱뚱하다고 못 뛰는 거 아니잖아’ 등 외모 비하가 포함된 모욕적 발언을 했다.

A씨는 사망 보름 전인 2020년 8월 말 골프장 직원 온라인 게시판에 ‘캡틴님께’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 게시물에는 “제발요. 사람들 다 감정 있고요. 출근해서 제발 사람들 괴롭히지 마세요” 등의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관리자는 게시물 작성 20여분 만에 글을 삭제했고 A씨를 게시판에서 강제로 내보냈다.

이후 A씨는 친언니에게 “회사에서 사람 취급 못 받고 있어서 멘탈 다 나가서. 나중에 다 얘기해줄게. 걱정 마 언니”라는 마지막 문자를 남겼고 일주일 뒤 한 모텔에서 극단적 선택을 해 숨졌다.

A씨 유족은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고, 고용노동부는 2021년 B씨의 일부 행위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 있다고 결론 내렸다. 이는 특수고용직노동자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받은 첫 사례였다. 다만 노동부는 근로기준법상 캐디는 근로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근로복지공단 또한 A씨가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서’를 작성했다는 이유로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고 유족급여와 장의비 청구를 기각했다.

직장 내 갑질 피해를 입은 근로자의 경우 근로기준법에 따라 노동부에 신고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이는 회사와 근로계약을 맺은 근로자에만 해당한다. A씨와 같은 특수고용직노동자는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근로기준법상 보호를 받기 어렵다.

위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사진=뉴시스)
그러나 재판부는 “B씨는 캐디들의 총괄, 관리하는 지위상 우위를 이용해 A씨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고 근무 환경을 악화했다”며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근로계약을 체결한 노동자가 아닌 특수고용노동자에게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건국대 법인에 대해 “A씨가 동료 캐디들에게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며 극단적 선택을 하기 한 달 전 B씨에게 항의하는 인터넷 게시글을 남겼지만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며 “심지어 A씨가 남긴 인터넷 게시글을 삭제하고 인터넷 카페에서 A씨를 탈퇴시켰다”고 밝혔다. 이어 “B씨의 사무감독에 상당한 주의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B씨의 불법 행위에 사용자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윤지영 직장갑질119 변호사는 “그동안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인 근로자 여부만을 기준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판단했다”며 “이번 판결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않더라도 직장 내 괴롭힘이 성립할 수 있음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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