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망’이 있는 경영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최고의 목표다. 하지만 이 꿈을 이루기는 현실적으로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녹록하지 않다. 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오너에게는 특히 그렇다. 실제 이 생에서 마지막 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회장’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는 오너들이 대부분인 게 현실이다. 그렇다 보니 기업의 총수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뜨게 되면 남은 가족들간 경영권을 둘러싸고 벌이는 법적 다툼은 이제 낯익은 풍경이 됐다.
이런 재계의 경영권 승계 문화에서 이 꿈을 현실로 실현하고 용퇴하는 기업인이 등장해 화제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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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트리온 임원의 정년이 65세이니 서 회장은 평소 직원들에게 했던 약속을 그대로 지킨 셈이다. 서 회장의 바통을 이어 기우성 셀트리온 부회장이 셀트리온 회장직을, 서 회장의 장남인 서진석 셀트리온 수석부사장이 셀트리온 이사회 의장직을 각각 물려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회사 안팎의 예상이다.
서 회장은 20년전 당시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아, 국내에서는 그야말로 불모지로 남아있던 ‘바이오시밀러’ 라는 산업에 출사표를 던졌다. 바이오시밀러는 특허가 만료된 생물 의약품을 복제한 의약품을 일컫는다.
올해 창립 19년이 된 셀트리온은 이제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대표주자를 뛰어넘어 글로벌 제약사로서의 위상을 갖추어 나가고 있다. 지난해 3분기까지 매출 1조3505억원, 영업이익 5473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아직 지난해 4분기 실적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매출 1조8600억원, 영업이익 7600억원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이같은 셀트리온의 실적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사상 최고의 매출이자 영업이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는게 업계의 평가다.
기업가치를 보면 셀트리온이 재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더욱 뚜렷하다. 셀트리온(068270)과 셀트리온헬스케어(091990), 셀트리온제약(068760)을 합한 시가총액은 80조원을 넘나든다.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에 이은 랭킹3위 규모다.
셀트리온을 반석위로 올려놓고 한창 나이에 회사를 떠나는 서 회장은 우리 사회에도 의미심장한 파장을 던지고 있다.
코로나19가 대유행하자 회사의 역량을 총집결해 치료제 개발에 나선 그의 기업가적 결단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서 회장은 지난해 2월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나서면서 사실상 셀트리온의 주요 연구인력 400여명을 이 프로젝트에 모두 투입했다. 물론 기존 진행하던 신약 개발 프로젝트 가운데 일부는 병행을 했지만 쉽지 않은 판단이었다.
이 결과 셀트리온은 코로나19 항체치료제에 대한 긴급사용승인을 개발을 시작한 지 10개월 만인 지난달 29일 식약처에 요청하는 성과를 거두면서 주변을 놀라게 했다. 셀트리온은 빠르면 이달 중에 식약처로부터 사용승인 허가를 받을 전망이다. 국내 기업이 개발한 최초의 코로나19 치료제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세계적으로는 코로나19 항체 치료제로는 3번째 허가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무엇보다 셀트리온이 총력을 기울여 개발한 코로나19 치료제가 코로나를 박멸하는 데 있어 큰 효과를 거두게 되면 서회장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대표적인 기업인으로 국민의 머릿속에 각인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예상이다.
재계 관계자는 “남들보다 앞서 바이오시밀러라는 새 산업을 키우고 용퇴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모습에서 진정한 기업가 정신을 느낄 수 있다”며 “특히 다시 65세 나이에 후배 경영진에게 셀트리온을 맡기고 혈액 검사 스타트업에 도전하겠다는 서 회장을 보면 재계 인사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를 보여주는 사표같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