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설계 뿌리' 정영학만 유독 왜…플리바게닝 남용 논란

정영학 회계사, '대장동 4인방' 중 유일하게 참고인 신분 유지
녹취 제공 등 檢 수사 협조…檢 수사선상서 사실상 배제
2015년 대장동 수사 때도 공범 핵심 증거 제공하며 '불기소'
"플리바게닝 과하게 적용"…"美처럼 법원 감독 하에 제한적 행사해야"
  • 등록 2021-10-26 오후 5:00:37

    수정 2021-10-26 오후 9:36:44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개발 특혜·로비 의혹의 주범 중 한 명으로 대장동 설계의 ‘뿌리’로 지목되는 정영학 회계사가 전담수사팀 구성 한 달이 다 되도록 유독 소위 ‘대장동 4인방’ 중 혼자 ‘참고인’ 신분을 유지하면서 그의 신병 처리 방향에 관심이 모아진다. 나머지 3인방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신병 확보에 나서고 있는 검찰이 정 회계사에게만 관대한 대우를 해 주는 배경으로 플리바게닝(감형 협상)이 거론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플리바게닝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조치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29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화천대유자산관리 사무실에서 압수수색을 마친 검찰 관계자들이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정 회계사는 지난 2015년 수원지검에서 대장동 개발 관련 로비 수사를 진행했을 당시에도 검찰 수사에 협조하며 처벌을 피했다. 수원지검 특수부는 당시 공영개발로 추진되던 대장동 개발 사업을 민간 개발로 바꾸기 위해 로비를 벌인 혐의 등으로 남욱 변호사를 포함한 관련자 9명을 기소했다. 하지만 사업의 키맨으로 꼽혔던 정 회계사만 홀로 형사 처벌 대상에서 제외됐다. 당시 수원지검은 수사 과정에서 예금보험공사로부터 정 회계사의 수억 원대 배임 정황을 전달받았음에도 불기소 처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정 회계사가 남 변호사 등에 불리한 내용을 알리는 방식 등으로 검찰 수사에 협조함으로써 기소를 피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현재 대장동 의혹 수사에서도 정 회계사는 검찰로부터 다른 핵심 인물들과는 확연히 다른 대우를 받으면서, 6년 전과 마찬가지로 공범들의 범죄 혐의를 누설하는 조건으로 면죄부를 받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정 회계사는 지난달 27일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하며 양심선언서와 함께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의 정·관계 로비 정황이 담긴 녹취 파일을 검찰에 제출했다.

정 회계사는 이번 의혹의 핵심인 배임 혐의의 공범으로 입건됐지만 이후 검찰에서 나머지 3명과는 확실히 다른 대우를 받고 있다. 신분부터가 나머지 3명이 피의자인 데 반해 참고인 신분이다. 정 회계사는 검찰 소환 조사 과정에서 수차례 포토라인에 섰던 다른 피의자들과 달리 매번 비공개 조사를 받았다. 또 유 전 본부장을 기소한 이후 김 씨와 남 변호사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청구하기 위해 막바지 수사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검찰이 정 회계사에 대해선 특별히 신병 확보를 검토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계사는 대장동 개발이 민간 주도로 추진되던 지난 2009년부터 남 변호사와 함께 주변 토지를 매입하고 소유주들을 설득하는 등 이 사업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이후에도 민관 합동으로 개발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사업 설계에 깊숙이 개입하며 천화동인 5호를 소유하고 개발 이익으로 644억 원의 배당금도 챙겼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정 회계사가 본인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질 수 밖에 없는 녹취 파일을 이용해 수사선상에서 사실상 빠지면서 대장동 실체 파악이 더 어려워지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제기한다.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을 지낸 한 변호사는 “김오수 검찰총장이 국정감사에서 정 회계사에 대해 ‘피의자성 참고인’이라고 했지만 정 회계사는 사실상 수사에서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이 플리바게닝을 통해 구속영장 청구를 안 하거나 구형을 조금 낮춰줄 수는 있는데 기소 자체를 안 하는 것은 기소권 남용”이라고 일갈했다.

검찰이 아직 수사권을 갖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아직 플리바게닝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가고 검사는 기소권만 갖는 경우엔 미국처럼 법원의 감독 하에 어느 정도 플리바게닝을 인정하는 게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면서도 “(그러나) 검사가 범죄 사실을 인지하면 수사를 해야 할 의무가 있고 혐의가 있다면 아무리 플리바게닝을 통한 기소편의주의를 적용해도 기소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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