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다음 생엔 우리 딸 해줘"…엄동 '정인이 묘소' 앞 눈물 행렬

양평군 하이패밀리 故 정인양 묘지에 추모객 이어져
"이제야 알아서 미안"…휴가 내고, 자녀 데리고 발길
"정인이가 과연 마지막일까…시스템 제대로 마련해야"
  • 등록 2021-01-06 오후 3:38:56

    수정 2021-01-06 오후 9:39:22

[양평=이데일리 공지유 기자] “정인아 미안해…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건강해야 해.”

양부모에게 입양됐다가 지속적인 학대를 받고 생후 16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13일 사망한 고(故) 정인(입양 전 이름)양이 안치된 묘소에 아이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묘지를 찾은 시민들은 정인이 사건을 보고 너무 안타깝다면서 양부모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이들은 또 다시는 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며 국회와 관련 기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6일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있는 고(故) 정인양 묘소에 추모객들이 두고 간 과자, 음료, 메시지가 놓여 있다. (사진=공지유 기자)
“꿈에도 정인이 나와…미안한 마음뿐” 자녀와 묘소 찾아 ‘눈물’

수은주가 영하 15도를 훌쩍 뛰어넘은 6일 오전,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 정인이가 안치된 이 곳에는 이른 시간에도 각지에서 온 방문객들로 붐볐다. 오전 11시쯤 묘소 앞에는 20여명의 시민들이 거리를 두고 서서 장지를 바라보며 묵념하고 있었다. 추모공원을 관리하는 송길원 목사는 “어제(5일)도 수백명이 묘지를 다녀갔다”며 “아이를 데려오는 부모들이 많은데 자기 자녀와 또래인 정인양의 죽음에 대해 분노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묘소에는 시민들이 놓고 간 수십여개의 꽃과 장난감, 동화책, 어린이용 간식들이 놓여져 있었다. 손글씨 메시지도 눈에 띄었다. 스케치북과 쪽지 등에는 ‘정인아 미안해’, ‘더 나은 세상에서 만나자’, ‘아동학대를 이 세상에서 반드시 몰아낼게’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시민들은 장지를 찾아 정인양의 사진을 바라보다가 가지고 온 선물을 두고 묵념했다. 눈시울을 붉히거나 오열을 참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정인양의 또래 자녀를 데리고 와 함께 추모하는 가족들도 있었다.

20개월 아들과 함께 묘소를 찾은 박선영(37)씨는 “정인이랑 같은 나이대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너무 마음이 안 좋고 계속 생각나서 왔다”며 “입양 전 정인이의 해맑게 웃는 사진, 사망하기 전날 어린이집 폐쇄회로(CC)TV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는다”고 말했다.

초등학교와 어린이집을 다니는 두 아들과 함께 묘소를 찾은 김상희(46)씨 가족은 정인양의 묘소에 10여분 이상 서 있다가 하얀 꽃 한 송이를 장지 위에 올려 놓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는 “정인이한테 너무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며 “남편이 원래 이런 걸 좋아하지 않는데 너무 화가 난다고 가자고 해서 회사 휴가를 내고 가족이 다같이 왔다”며 울먹였다.

김씨는 “(학대 정황이) 너무 잔인해서 아이들에게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는데 아이들도 ‘어떻게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을 한다”며 “‘집에서 애기가 어떻게 죽지?’라며 이해 못하고 상상도 못하더라”고 덧붙였다.

이틀 전 법원에 진정서를 제출했다는 이유나(35)씨는 추모 후 주저앉아 “이런 걸 잘 못 봐서 안 보려고 하는데도 마음이 자꾸 쓰여서 (왔다)”며 “아이가 둘 있는데 정인이에게 남긴 편지에 ‘셋째를 낳으면 꼭 정인이가 와줬으면 좋겠다’고 적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6일 오전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안장된 정인 양의 묘지에 한 아이가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인이 사건’ 또 나와선 안 돼…실질적 대책 마련해야”

시민들은 또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도 하남에 사는 정모(40)씨는 “아들이 정인이랑 동갑에 태어난 날짜도 열흘 차이인데 옹알이밖에 못 하는 수준”이라며 “의사 표현을 전혀 못하기 때문에 아동학대 의심이 들면 2차 신고 때 분리하는 게 아니라 1차 때부터 바로 분리시켜야 했다”고 주장했다.

최수진(43)씨는 “경찰, 입양기관, 국회 모두에 화가 난다”며 “‘정인이법’을 발의한다고 하지만 몇 년 전 법을 재탕하는 수준이 아니냐. 그런 부분에서 과연 정인이가 마지막 피해자일까 하는 마음이 들어 무력감이 든다”고 토로했다.

경기도 성남에서 온 이소영(55)씨도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 입양기관 모두가 서로 ‘네 탓이다’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게 화가 난다”며 “회피만 할 게 아니라 아이의 입장에서, 또다시 벌어질 수 있는 사고를 어떻게 막을 것인지 시스템을 장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오후 2시까지 100여명이 넘는 시민이 정인양의 묘소를 찾았다. 유명인들과 정치인들이 방문으로 추모객들이 점점 더 느는 추세다. 배우 이영애씨는 5일 자녀와 함께 묘소를 찾아 정인양을 추모했고 이날은 김미애 국민의힘 극회의원이 방문했다.

온라인에서도 정인이 사건과 관련된 추모 물결이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날 오후 2시 기준 인스타그램에는 ‘정인아 미안해’,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 관련 게시글이 10만개 이상 게시된 상태다.

정인양은 지난해 10월 13일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온몸에 멍이 든 상태로 병원에 실려 온 정인양은 당시 머리와 복부에 큰 상처가 있었으며, 이를 본 병원 관계자가 아동 학대를 의심해 경찰에 신고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정인양의 양모 장모씨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아동 학대 치사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양부 안모씨를 학대를 방임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 부부에 대한 첫 재판은 오는 13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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