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8년 9월 7일 ‘7차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목격자였던 버스기사 강모씨는 이춘재의 얼굴에 대해 “눈은 옆으로 째지고, 얼굴을 좀 길고 코가 크다”라고 증언했다. 강씨의 증언은 짧은 반삭 머리에 희끗희끗한 머리 색깔, 얼굴 곳곳에 퍼진 주름만 빼면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했다. 이춘재의 현재 모습은 그의 고교시절 사진을 그대로 오려 현실에 붙인 듯 했다.
범행 동기 모르겠다는 이춘재… 전문가 “말도 안 되는 소리”
파란색 수의를 입은 이춘재는 자신의 범행에 대해 논리정연하게 때로는 손짓을 이용하면서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러나 범행 동기에 대해선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며 다소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이날 재심청구인 윤모(53)씨의 법률대리인 박준영 변호사는 “언제부터 충동이 있었느냐”, “여성에 대한 성욕을 취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던게 아니냐”고 범행 동기를 묻자 이춘재는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춘재의 증언을 들은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이춘재의 범행 동기가 명확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성적인 욕구가 이춘재의 범행 동기지만, 본인이 얘기하기 싫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라며 “그 와중에 이미지 관리를 하고 싶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역시 “사이코패스는 선호하는 피해자 유형이 있고, 이춘재의 경우는 (대상이) 여성”이라며 “여성에 대한 성적 욕구가 범행 동기고, 모른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기 행위에 대한 변명이나 합리화하는 행동이다”라고 분석했다.
이는 법정에서 이춘재가 ‘8차 사건’ 범행 당시 “집안에 여성이 누워 있었는데 남자였으면 안 들어갔을 것”이라고 말한 것과 “여자의 얼굴이나 몸매를 보지 않고 오로지 손이 예쁜 것만 본다”고 말한 대목과 맞물리는 지점이다.
|
이춘재는 이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 등 모든 분이 겪는 고통에 사죄드린다”며 “모든 일에 대해 반성하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살도록 하겠다. 고개 숙여 죄송하다는 말씀드린다”고 말한 뒤 고개를 떨궜다.
전문가들은 이춘재가 사과했지만 진정성 있는 사과는 아니라고 덧붙였다. 공 교수는 “인지적인 사과일 뿐 정서적인 공감에서 일어나는 정서적 사과는 아니다”며 “남들이 잘못했다고 하니 사과한다고 말한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오 교수도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 공감을 하고 진심 어린 사과가 아닌 일종의 ‘립서비스’”라고 말했다.
사이코패스가 시간이 지나면 공감 능력이 발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이춘재는 부산교도소에서 2012년부터 자백하기 전까지 모범수로 수감생활을 했으며 동료 수감자들 사이에서 작업반장 역할까지 맡는 등 신망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오 교수는 “사이코패스가 교화를 통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공감 능력이 성장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공 교수 역시 “만약 가능하다면 굉장히 길고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며 가능성을 일축했다. 이어 “피해자들에 대한 냉담한 답변, 자신의 범행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묘사하는 것들을 비춰보면 이춘재의 경우는 공감능력이 확장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