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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부장판사는 지난 1994년 서울지법 북부지원 판사로 처음 법복을 입은 뒤 전주·인천·서울지법·서울고법 등에서 근무했다. 또 서울회생법원 초대 수석부장판사도 역임한 파산·회생 전문가다.
정 부장판사는 무엇보다 재판에 독특한 실험을 시도한 법관으로 유명하다. 인천지법 근무 당시 형사 재판에서 볼 수 있는 ‘국민참여재판’을 ‘배심 조정 제도’라는 이름으로 민사재판에 처음 도입했다. 형사 영역에선 지난 2019년 서울고법 부장판사 부임 이후 단죄가 아닌 범죄의 재발 방지와 치료가 목적인 ‘치료적 사법’에 초점을 맞췄다.
삼성 준감위 역시 정 판사의 실험 중 하나다. 정 판사는 지난 2019년 10월 25일 열린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 첫 변론 기일에서 재판 말미 이 부회장을 향해 이건희 선대 회장 등을 언급하며 경영인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삼성 내부의 실효적인 준법 감시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 판사의 준감위 주문은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일단 특검에서 재판이 불공정하게 흘러갈 것을 염려했다. 특검은 “정 판사가 편향적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며 정 판사에 대한 기피 신청까지 냈으나 기각됐다. 친정부 성향 시민단체들은 재판부를 향해 ‘친재벌’이라는 강도 높은 비난을 가했다.
“준감위 실효성 부족” 돌변…양쪽 눈치 다 보다 모두의 비판 직면
그러다 지난 18일 열린 선고 공판에서 정 판사는 앞선 여섯 번의 기일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는 “진정성과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새로운 준법 감시 제도가 실효성 기준을 충족하기 어려워 양형 조건으로 참작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끝내 86억 원 규모의 뇌물·횡령 혐의가 인정돼 법정 구속됐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준감위를 주문해 놓고 실효성이 없다고 하는 건 수사팀과 정치권에서 봐주기 재판이라고 공격이 들어오니 스스로 철회한 셈이다”며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기 때문에 차라리 통상적으로 변론 절차를 진행해 실형을 내렸다면 빨리 사건이 마무리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과적으로 정 판사는 실형을 선고했음에도 판결 직후 진보와 보수 양 진영에서 동시에 비판받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참여연대는 판결 직후 논평에서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 등을 감안하면 매우 부당한 판결”이라며 “재판부의 판단은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소극적으로 응한 것이라는 잘못된 사실 관계에 기초했다”고 비판했다. 반면 보수 성향의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재판부가 준감위를 설취하면 구속하지 않을 것처럼 훈계하더니 법정 구속했다”며 “법치주의가 사망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결국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을 내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