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실형' 선고 정준영 판사, 좌우 진영 모두에 비판 받는 사연은?

독특한 '사법 실험'으로 주목…삼성 준감위도 직접 주문
특검, '편파적 재판' 우려…시민단체도 '친재벌' 비판
정작 선고선 "진정성 인정해도 실효성에 의문" 판단
"'봐주기 재판' 비판 여론에 스스로 입장 철회한 셈"
  • 등록 2021-01-19 오후 4:26:26

    수정 2021-01-19 오후 4:26:26

[이데일리 이성웅 기자] 재판부의 요구대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를 설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으면서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에게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이 부회장에게 직접 준감위 설치를 주문하면서 ‘재벌 친화적’이라는 비판까지 받아온 정 부장판사인 만큼 이 부회장 실형 판단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정준영 판사, 재판에 독특한 실험 시도…준감위도 직접 요구

정 부장판사는 지난 1994년 서울지법 북부지원 판사로 처음 법복을 입은 뒤 전주·인천·서울지법·서울고법 등에서 근무했다. 또 서울회생법원 초대 수석부장판사도 역임한 파산·회생 전문가다.

정 부장판사는 무엇보다 재판에 독특한 실험을 시도한 법관으로 유명하다. 인천지법 근무 당시 형사 재판에서 볼 수 있는 ‘국민참여재판’을 ‘배심 조정 제도’라는 이름으로 민사재판에 처음 도입했다. 형사 영역에선 지난 2019년 서울고법 부장판사 부임 이후 단죄가 아닌 범죄의 재발 방지와 치료가 목적인 ‘치료적 사법’에 초점을 맞췄다.

삼성 준감위 역시 정 판사의 실험 중 하나다. 정 판사는 지난 2019년 10월 25일 열린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 첫 변론 기일에서 재판 말미 이 부회장을 향해 이건희 선대 회장 등을 언급하며 경영인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삼성 내부의 실효적인 준법 감시 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부회장은 정 판사의 말을 실행에 옮겼다. 삼성은 이듬해 1월 준감위 설치 계획을 밝혔고 2월 첫 회의를 열어 공식 활동에 들어갔다. 재판부는 또 준감위의 실효적 운영을 강조하며 3인으로 구성된 제 3자 전문 심리위원단의 평가도 주문했다. 전문 심리단 평가는 이후 열린 변론 기일에서도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뇌물 공여 혐의가 쟁점인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정 판사는 준감위 활동을 양형에 반영할 수 있다는 뜻까지 내비쳤다.

정 판사의 준감위 주문은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일단 특검에서 재판이 불공정하게 흘러갈 것을 염려했다. 특검은 “정 판사가 편향적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며 정 판사에 대한 기피 신청까지 냈으나 기각됐다. 친정부 성향 시민단체들은 재판부를 향해 ‘친재벌’이라는 강도 높은 비난을 가했다.

“준감위 실효성 부족” 돌변…양쪽 눈치 다 보다 모두의 비판 직면

그러다 지난 18일 열린 선고 공판에서 정 판사는 앞선 여섯 번의 기일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는 “진정성과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새로운 준법 감시 제도가 실효성 기준을 충족하기 어려워 양형 조건으로 참작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끝내 86억 원 규모의 뇌물·횡령 혐의가 인정돼 법정 구속됐다.

이처럼 재판부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면서 법조계에선 외부 비판 여론을 지나치게 의식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함께 청와대에서 이 사건 뇌물 수수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에 대한 거부 반응이 감지되면서 판결에 알게 모르게 일정 부분 영향을 준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한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준감위를 주문해 놓고 실효성이 없다고 하는 건 수사팀과 정치권에서 봐주기 재판이라고 공격이 들어오니 스스로 철회한 셈이다”며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기 때문에 차라리 통상적으로 변론 절차를 진행해 실형을 내렸다면 빨리 사건이 마무리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과적으로 정 판사는 실형을 선고했음에도 판결 직후 진보와 보수 양 진영에서 동시에 비판받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참여연대는 판결 직후 논평에서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 등을 감안하면 매우 부당한 판결”이라며 “재판부의 판단은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소극적으로 응한 것이라는 잘못된 사실 관계에 기초했다”고 비판했다. 반면 보수 성향의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재판부가 준감위를 설취하면 구속하지 않을 것처럼 훈계하더니 법정 구속했다”며 “법치주의가 사망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결국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을 내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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