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10시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선 남북 고위급 회담이 열렸다. 전체적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평이다. 자신을 조선중앙통신 소속이라고 밝힌 흰 머리 가득한 북한 기자는 “회담 좀 많이 취재해 봤는데, 오늘 분위기는 특히 좋다”고 말했다.
실제로 남북 대표단은 덕담을 주고 받는가 하면 격언과 속담, 개인적 일화 등에 빗대어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강력하게 내비쳤다. 뿐만 아니다. 양측 연락관들과 실무진 및 취재진까지 회담이 시작되기 전 담소를 나누며 시종일관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지만 점심 식사는 따로 했다. 서로의 모습이 보일 정도의 거리지만 남북 분단의 현실을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는 양측 대표단 옷에 달린 뱃지에서도 확인된다. 북측 대표단은 모두 정장 차림에 김일성·김정일 뱃지를 달고 있었지만, 우리 측 대표단은 태극기와 평창 뱃지를 착용했다.
회담 개시 약 15분 전 평화에 집에 도착한 대표단은 북한 대표단을 기다렸다. 40여분이 지난 오전 9시30분께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이끄는 북측 대표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북측 취재진 6명도 동행했다. 조 장관과 천해성 통일부 차관 등 남측 대표단 5명은 평화의 집 1층 로비에서 북측 대표단을 맞이했다. 양측 대표단은 만나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새해 인사 등 간단한 인사말을 주고받았다.
10시가 되자 조 장관과 리 위원장은 나란히 회담장으로 발을 옮겼다. 두 사람은 웃으며 악수를 나눈 뒤 자리에 앉았다. 편한 자세로 의자에 깊숙이 기대앉은 리 위원장은 팔걸이에 팔까지 걸치는 등 편안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나머지 북측 대표단은 무표정으로 일관했지만 북한 기자단은 “회담이 잘될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회담 준비는 남측 대표단이 조금 더 많이 한 듯한 인상을 풍겼다. 회담 시작 전 꺼내 놓은 자료의 양이 우리 측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리 위원장은 2000년 6월생이라는 조카 얘기를 꺼내며 2000년 6월 15일을 상기시켰다. 남북이 첫 정상회담을 열고 6·15 남북 공동 선언을 채택했던 시절을 우회적으로 빗댄 것이다. 조 장관도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마음으로, 서두르지 않고 의지와 끈기를 갖고 회담을 끌어갔으면 좋겠다”며 오랜 기간 단절됐던 남북관계를 복원하자는 의지를 내비쳤다.
11시 5분, 65분 만에 전체회의가 종료됐고 11시 30분부터는 양측 수석대표에 대표 일부가 참여한 형태로 회담이 지속됐다. 오전 회담이 끝난 뒤엔 북측 대표단은 다시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측 지역의 통일각에서, 우리 측은 판문점 남쪽에서 각각 점심식사를 가졌다. 오후에 다시 만난 대표단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오후엔 맹경일 통일전선부 부부장이 북측 지원단에 합류했으며, 수석대표를 제외한 남북의 나머지 대표 4명이 각각 참석하는 별도의 접촉도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