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유현욱 기자] 지난 주말 백여 쪽이 넘는 쿠팡INC(구 LLC) 증권신고서를 찬찬히 읽어내려가던 임정욱 티비티 공동대표는 화려한 이사진 면면을 보다가 한 남성의 사진 앞에 멈춰 섰다. “누구더라. 분명히 닮은 사람을 아는데….”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주인공은 바로 매튜 크리스텐슨(
사진)이다.
그는 쿠팡의 극초기 단계 투자사 중 하나인 벤처캐피털(VC) 로즈파크어드바이저스를 공동창업한 인물로 소개돼 있다. 자신과 자신이 세운 VC가 각각 쿠팡 지분 5.1%씩(클래스 A와 클래스 B 주식을 모두 고려한 상장 후 지분율 기준)을 보유하고 있다. 둘을 더하면 김범석 쿠팡 의장이 보유한 클래스 B 주식을 전부 클래스 A로 전환할 경우 지분율인 10.2%와 같다. 창업주와 같은 마음으로 쿠팡을 ‘떡잎’ 단계부터 알아보고서 끝까지 믿고 지지해줬다는 얘기다.
이내 답이 떠오른 듯 임 대표는 말했다. “역시 그러면 그렇지. ‘혁신기업의 딜레마’로 유명한 고(故)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교수의 아들이구나.” 이 같은 사실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자, 크리스텐슨 부자를 잘 아는 ‘페친’(페이스북 친구)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붕어빵이다” “부전자전이다” “대대로 대한민국과 좋은 인연, 감사하다” “김 대표와 하버드대에서 동문수학했다더라”
|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미국 하버드 경영대학원 석좌교수가 2007년 6월 멕시코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 참석해 강연하고 있다. (사진=블룸버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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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명 구창선’ 아버님이 누구니
지난해 1월 숙환으로 작고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전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파괴적 혁신’ 이론으로 잘 알려진 ‘혁신가들의 구루(스승)’다. ‘파괴적 혁신’은 기업이 단순한 제품이나 서비스로 시장 밑바닥을 공략해 결국 기존 시장을 파괴하고 새로운 시장의 지배자가 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아마존을 창업한 제프 베이조스, 애플을 창업한 고 스티브 잡스에게도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남다른 한국 사랑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1970년대 한국에서 모르몬교 선교사로 2년 동안 활동하기도 했다. 이때 지은 ‘구창선’이라는 한국 이름도 있다. 생전에 국내 언론 인터뷰와 기고에도 적극적이었다. 하버드대 경영학 석사(MBA)를 중퇴한 김범석 쿠팡 의장도 크리스텐슨 교수로부터 사사 받았다.
사외이사에 前연준 이사도
쿠팡INC 이사회는 총 12명으로 사내이사 6명, 기타 비상무이사 4명, 사외이사 2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사외이사는 케빈 워시 전(前)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이사, 해리 유 소프트웨어 회사인 GTY 테크놀로지 홀딩스 부회장 등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주요 경영진이 외국인 일색이라며 국적 논란에 휩싸인 쿠팡이지만, 들여다보면 지한파(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문화·역사 등의 각 분야에 걸쳐 많은 지식과 경험을 보유한 외국인)가 적지 않을 것이다. 크리스텐슨 부자 사례가 대표적”이라고 했다.
한편 쿠팡은 이르면 오는 11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될 것으로 보인다. 공모가는 10일 확정될 예정이다. 쿠팡이 희망하는 공모가 중 최상단인 30달러를 기준으로 하면 쿠팡의 전체 시가총액(17억671만4142주×30달러)은 510억달러(약 56조9466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