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1991년 1월29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놀이터에서 이형호 군이 사라졌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이군은 그날 저녁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췄다. 그날 밤 이군을 데리고 있다는 남성이 이군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유괴였다.
| 범인 몽타주.(사진=경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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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군의 몸값으로 현금 7000만원을 요구한 범인은 의심이 많았다. 김포공항에 돈을 실은 차량을 주차해두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는데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와서는 “차에 사람이 타 있으면 어떡하느냐”고 따졌다. 트렁크에 형사가 타고 있었지만, 차에는 사람이 타 있지 않았다. 다음에는 서울 충무로 태극당 앞으로 돈을 가지고 나오라고 하고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온 범인은 현장에 경찰관이 있어서 안 나갔다고 했다. 다 넘겨짚은 것으로 보였다.
한번은 집으로 전화를 걸어 형사인 척하면서 “옆에 형사 좀 바꿔달라”고 하기도 했다. 경찰에 신고했는지 떠보려고 한 것이었다. 경찰관이 이군의 집에 있었지만 가족의 기지로 위기를 넘겼다.
그러자 범인은 계좌로 돈을 보내라고 요구했다. 돈을 찾으러 은행에 나타났지만 의심이 많은 범인은 그대로 도망했다. CCTV가 없어서 범인 모습과 행적을 파악하지 못했다. 사실 범인을 잡을 기회는 이전에도 있었다. 앞서 양화대교 모처에 돈을 두라고 해서 가짜 돈다발을 가져다 두었고 실제로 범인은 그 돈을 가져갔다. 경찰이 잠복하고 있었지만, 실수로 범인을 놓쳤다. 가짜 돈을 가져간 범인은 전화를 걸어서 “형호를 되찾길 바라지 않는 걸로 알겠다”고 하고서는 연락을 끊었다. 그게 마지막 연락이었다. 그날까지 44차례 전화를 걸어서 가족을 괴롭혔다.
그해 3월13일 형호군의 시신이 한강공원 잠실지구에서 발견됐다. 부검 결과 유괴된 당일 살해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범인은 형호군이 무사한 듯이 가족을 속여서 몸값을 받아내려고 한 것이다. 이후 사건은 공개수사로 전환됐다. 협박 전화 녹음이 방송과 유선으로 공개됐다. 녹음테이프가 팔려나갈 만큼 전 국민의 관심을 받았다.
경찰은 형호군의 친척을 용의자로 지목했다. 여러 정황 증거와 성문 분석 결과가 그의 범행을 지목하고 있었다. 그러나 범인으로 특정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는 없었다. 수사는 오리무중이었고 결국 이 사건은 지금까지 미제로 남았다. 2006년 1월 공소시효도 지나버렸다.
SBS의 간판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는 첫화(1992년 3월31일 방영)에서 이 사건을 다뤘다. 이 방송의 피디를 맡았던 박진표 감독은 이 사건을 영화 ‘그놈 목소리’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