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몽골에서날아 온 '귀한손님'을 대접하다

경남 고성 독수리 탐조 여행
몽골에서 고성까지 3000km 날아와
매년 600~700마리 독수리 찾아
  • 등록 2022-02-11 오전 12:00:03

    수정 2022-02-14 오전 8:36:46

찬바람이 불어오면 ‘하늘의 제왕’ 독수리 무리가 몽골에서 경상남도 고성을 찾아온다. 600~700 마리의 독수리가 활공하는 모습은 장관이다. 고성군은 독수리가 머무르는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날아라 고성독수리’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고성(경남)=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황량한 겨울 들판에 독수리가 무리지어 앉아 있다. 이내 하나둘 땅을 박차고 날아오른다. 3m에 이른다는 그 큰 몸집들이 거센 날갯짓을 하며 날아오르자, 멀리서 지켜보던 이들은 놀라 소리친다. 독수리의 비상이다. 황량했던 겨울 들판은 독수리 떼의 화려한 군무로, 순식간에 생명 가득한 대자연 풍경으로 거듭났다. 녀석들의 눈부신 공중 쇼를 만난 건 어쩌면 행운. 시리고 아리도록 짙푸른 겨울 하늘을 배경으로 빙빙 돈다. 자유로운 비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행위인지를 알려주려는 듯하다. 수백 마리의 독수리들이 높낮이를 달리하며 오가다 부딪힐 듯 만나고, 이중 삼중으로 다시 겹쳐지고 흩어진다. 우리나라 대표 겨울철새인 독수리 떼가 연출하는 군무다.



하늘의 제왕 ‘독수리’가 고성 땅을 찾는 이유

해마다 겨울이면 경남 고성의 하늘에선 이 같은 광경이 매일 연출된다. ‘하늘의 제왕’으로 불리는 독수리 무리가 멀고 먼 몽골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고성 땅을 찾아온 것이다. 고성에선 독수리가 비둘기 수준으로 날아다닌다. 시꺼먼 새들이 높이 하늘 위에서 원을 그리고 날아다니면 그냥 독수리라 보면 될 정도다.

지난달 31일 찾은 경남 고성의 ‘독수리식당’. 독수리들은 여기저기 떼지어 식당 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수백마리의 독수리 떼가 하늘 위를 활공하는 모습은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수십 개의 점이 움직이더니 점점 숫자가 늘어난다. 다른 한쪽에서도 검은 독수리 떼가 모습을 드러낸다. 얼마 후 조금씩 고도를 낮추던 독수리 떼는 하나둘 땅으로 내려선다. 거대한 날갯짓에 황량한 들판에 뿌연 먼지 회오리가 일어났다.

찬바람이 불어오면 ‘하늘의 제왕’ 독수리 무리가 몽골에서 경상남도 고성을 찾아온다. 600~700 마리의 독수리가 활공하는 모습은 장관이다. 고성군은 독수리가 머무르는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날아라 고성독수리’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독수리들이 고성으로 날아드는 데는 이유가 있다. 2001년부터 멀리서 찾아오는 독수리를 위해 먹이를 주고 있는 김덕성 씨가 있어서다. ‘독수리 아빠’로 불리는 김 씨는 현재 한국조류보호협회 고성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성읍내의 철성고등학교 교사 출신인 김 지회장은 겨울마다 독수리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했다. 다친 독수리를 구조해 치료해주고, 인식표(윙 태그)를 달아 매년 꾸준히 관리해오고 있기도 하다. 고성을 찾는 독수리는 매년 늘어 현재는 600~700마리 정도다. 고성이 국내 최대 독수리 월동지로 자리 잡은 데는 김 씨의 정성과 노력이 뒷받침됐던 것이다. 김 지회장은 “고성을 찾는 독수리는 2년생 미만이 대부분으로, 5년생 이상은 몽골에 남고, 2년생 이상은 철원이나 파주로, 그보다 어린 독수리들은 고성에서 겨울을 난다”고 설명했다.

경남 고성의 독수리식당에서는 하루 두번 ‘고성독수리’에게 돼지나 소의 부산물로 먹이를 주고 있다.


몽골에서 한반도까지 먹이를 찾아오다

독수리는 러시아 시베리아나 중국 몽골 등에서 살다가 그곳이 추워지는 겨울철이면 따뜻한 한반도로 내려와 3월이면 다시 돌아간다. 한반도는 세계에서 독수리가 가장 많이 모이는 도래지다. 한반도 땅에서 독수리 최고의 월동지는 경기도 파주의 적성면. 철책선을 경계로 인간의 위협도 없고, 죽은 동물의 사체도 많아 먹이가 풍부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들판이나 길에서 썩어가는 동물 사체를 찾기 힘들어졌다. 여기에 농약을 먹고 죽은 동물 사체를 독수리가 멋모르고 뜯어먹다 다시 중독돼 죽는 일도 늘어나면서 독수리의 생태 환경이 위협을 받았다.

이에 여러 보호단체에서는 독수리를 위해 고기를 뿌려주는 활동이 이어졌다. 굶어 죽는 독수리가 없도록 인간이 도와준 것이다. 독수리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장소를 일명 ‘독수리식당’(Vulture Restaurant)이라고 부른다.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곳이 바로 김 지회장이 운영하는 경남 고성의 독수리식당이다.

‘독수리 아빠’로 불리는 한국조류보호협회 김덕성 고성지회장이 먹이를 주고 있다


이 식당의 영업시간은 오전 10시와 오후 4시로 하루에 두번 문을 연다. 주요 메뉴는 돼지와 소의 부산물. 오전 영업시간이 다가오자 김 지회장과 직원들이 식육점에서 얻어온 고기 부산물을 들판 여기저기에 배치해둔다.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찾아온 첫 손님은 독수리가 아닌 할미새. 그 옆으로 왜가리도 합세한다. 이들이 고기 한점을 맛보는 사이, 냉큼 자리를 차지하는 녀석은 큰부리까마귀다. 까마귀 떼가 먹이를 먹고 있어도, 독수리들은 멀리서 지켜볼 뿐 급하게 다가가지 않는다. 김 지회장은 “독수리들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먹이 옆에 바로 앉지 않고, 고기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점에 내려앉아 조금씩 먹이 쪽으로 이동한다”면서 “까마귀가 먹이를 먹는 모습을 보고,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그때부터 독수리가 먹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까마귀도 독수리에 먹이를 쉽게 내주지 않는다. 독수리와 까마귀의 먹이 싸움이 시작된다. 까마귀들은 독수리의 깃털을 잡아당기고, 쪼아대며 독수리를 방해한다. 그래도 독수리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위엄이 느껴진다. 하늘의 제왕이라는 수식어가 단순히 몸집 때문에 붙은 건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주는 듯하다.

독수리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장소를 ‘독수리식당’(Vulture Restaurant)이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경남 고성군 기월리가 대표적인 독수리식당으로 꼽힌다. 이곳에서는 독수리먹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체험프로그램까지 같이 운영하고 있다.


하늘의 제왕 ‘독수리’를 만나는 시간

겨울마다 찾아오는 독수리의 모습을 보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고성군은 독수리가 머무르는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날아라 고성독수리’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거대한 날개, 단단한 부리와 커다란 발톱 등 책에서만 보던 야생의 독수리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 독수리에게 직접 먹이를 줄 수 있고, 독수리 모형을 만들며 흥미로운 독수리 이야기도 들을 수 있는 시간이다. 독수리의 멋진 활공을 감상하고, 코앞에서 먹이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는 탐조대를 운영한다. 동물 다큐멘터리나 동물원에서만 보던 독수리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다.

찬바람이 불어오면 ‘하늘의 제왕’ 독수리 무리가 몽골에서 경상남도 고성을 찾아온다. 수백 마리의 독수리가 활공하는 모습은 장관이다.


탐조대 활동 중 가장 특별한 시간은 독수리에게 먹이를 주는 시간이다. 돼지고기를 흩어놓으면 채 10분도 되지 않아 독수리들이 모여든다. 하늘을 빙빙 돌다 사뿐히 내려앉는 모습이 활주로에 착륙하는 비행기를 닮았다. 날개를 펼친 채 발로 몇 번 통통 뛰어서 멈춘다. 쫙 펼치면 3m가 넘는 거대한 날개를 직접 확인하는 순간이다.

날개를 접고 먹이를 먹는 모습은 어린 새처럼 귀엽다. 고성에서 월동하는 독수리는 사냥하지 않는다. 죽은 동물의 사체를 청소해주는 고마운 청소동물이다. 먹잇감이 줄어듦에 따라 그 수가 감소하고 있어서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독수리 모형을 만들고, 알록달록 직접 색칠한 독수리 열쇠고리도 만들어본다. 50cm가 넘는 독수리의 날개 모형을 달고 하늘을 나는 것을 흉내내보는 시간은 어른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독수리 날개가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다. 체험관에는 고성 독수리에 대한 이야기가 사진과 함께 자세히 전시돼 있다. 우리가 보호해야 할 생물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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