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대통령 되든…재정 확대 통한 성장은 부작용 초래"

[만났습니다]이창용 IMF 아태국장②
'장기 불황' 일본 재정적자 원인 고령화
'非기축통화' 한국, 부채 급증시 큰 위험
증세·연금개혁 등 결단 피할 수 없을것
정부, 기업 하는 환경 조성에 주력해야
  • 등록 2022-02-03 오전 5:00:01

    수정 2022-02-03 오전 7:11:51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향후 4~5년은 고령화 관련 지출이 급증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신성장 산업에 재정을 통해 지원할 수 있어요. 그런데 10년이 지나면 복지 지출마저 감당하기 어려울 겁니다. 한국은 고령화에 따른 일본식(式) 저성장 구조에 진입했어요. 무차별 재정 확대로 가면 일본처럼 되는 겁니다.”

이데일리는 한국호(號) 리더십을 결정하는 대선 국면에서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혜안을 얻으려 이창용(61)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국장과 지난달 27일(현지시간) 화상으로 특별인터뷰를 했다. 한국인으로는 국제금융기구 최고위직에 오른 그는 해외에서 더 인정받는 석학이다. 그는 “어느 대통령이든 재정을 통해 4~5% 넘게 성장하겠다고 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며 “정부가 성장을 주도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강조했다.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국장(왼쪽)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본지 김정남 특파원과 화상 특별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정남 특파원)


-코로나19 이후 재정 확대 논쟁이 뜨겁다.


△한국은 향후 10~20년을 볼 때 일본과 같은 저성장 구조에 진입할 위험에 이미 와 있다. 이민정책을 바꿔 노동력을 유입하지 않는 한 3~4% 넘는 성장률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10년 뒤에는 (구조적으로) 2%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재정을 동원할 게 아니라 구조조정에 힘써야 할 때다.

-고령화는 재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한국은 그동안 사회인프라 투자, 신성장산업 육성 같은 산업정책에 재정을 많이 투입했다. 그런데 고령화 시대에는 이런 재정 여력이 사라진다.많은 이들이 일본은 1990년 이후 버블 붕괴로 경기 회복을 위해 굳이 필요 없는 다리, 도로 등을 건설하며 재정이 악화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재정적자의 주요 요인은 연금, 의료 등 복지 지출의 확대 때문이었다. 고령화가 시작되면 복지 지출을 줄일 수 없어 산업정책에 쓸 돈이 없어진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이때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해서 발생했다.

-정부가 성장을 주도하기 어렵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정부는 연금, 의료 관련 지출을 우선할 수밖에 없으니, 경제 성장은 민간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역할은 달라져야 한다.

-그렇다면 증세를 하거나 사회보장 기여금을 늘려야 하나.

△(반드시 필요한 과제이지만) 정치적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일본을 봐도 그렇다. 정치적인 저항 때문에 못하다가 국가부채 비율이 200%를 넘은 2010년 이후에야 부가가치세(VAT) 증가와 연금 개혁에 합의했다. 한국은 정치적인 부담이 크지 않게 추후 10년간 여러 세목을 패키지로 조금씩 올리는 방식을 여야가 합의하는 게 최선일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기축통화를 보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과 달리 국가부채 비율이 급증하면 큰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세수 증대에 대한 결단을 조만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코로나19 같은 예기치 못한 지출도 생길 수 있는데.

△그렇기에 때문에 중장기 재정 관리가 더 필요하다. 국가부채 비율과 상관없이 큰 경제위기가 찾아오면 불가피하게 단기 재정 지출을 늘려야 할 때가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사태가 좋은 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길어질 때 자영업자들의 폐업을 방치할 수는 없다. 그냥 두면 나중에 복지 예산으로 더 많은 돈이 투입돼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선별적으로 써야 한다. 한국 정부는 코로나19 피해 지원을 위해 추경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줬는데, 이를 자영업자들에게 선별적으로 지원해야 했다. 그로 인해 국가부채 비율이 단기적으로 늘면 시간을 두고 증세 등을 통해 조정해 나가야 한다.

-부채 급증 위험이 산적하다.

△한국은 현재 복지 제도를 그대로 유지해도 고령화 지출로 국가부채 비율이 2030년 75%, 2040년 100%로 늘어나게 된다. 위기에 대응한 불가피한 지출을 고려할 때 더 빠를 수도 있다. 선별적 지출, 증세, 연금 개혁 등을 통해 중장기 재정 관리를 해야 한다.

-정부가 성장 정책은 무엇이어야 하나.


△과거 한국 경제의 구조가 간단할 때는 똑똑한 관료들이 해외의 사례를 보고 ‘이런 신산업을 해보자’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정부가 그런 능력이 있는지 불분명하다.

-그렇다면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하나.

△복지 지출 비중이 커지면 산업정책에 쓸 돈이 줄어든다. 또 산업구조가 복잡해져 정부가 민간 기업보다 신성장산업에 대해 잘 안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정부가 할 수 있는 게 있다. 제도를 바꿔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한 번 신용불량자가 되면 평생 낙인 찍힌다. 실패한 사람이 또 도전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 공무원만 하려 할 것이다. 금융기관도 마찬가지다. 은행 전체는 이익이 나는데, (대출을 해준) 몇몇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담당자는 징계를 받는다. 교육제도 역시 바뀌어야 한다. 현재 기득권 간 이해 조정이 어려워 문과, 이과, 학과별 대학 정원이라는 칸막이가 고착돼 있다. 미래 시장 수요와 동떨어진 대학 교육이 방치되고 있다.

-여전히 기업에 고용을 주문하고 있다.

△고용은 정부가 만드는 게 아니라 민간에 의해 만들어져야 한다. 기업이 필요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게 아니다. 산업정책을 포기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과거에는 정부가 기업에 어떤 산에 올라 어느 나무에서 이 열매를 따면 돈을 보조하겠다는 식이었다. 지금 선진국들은 도로를 닦아 산까지만 데려다 준다. 그 나머지는 민간이 할 일이다. 기업을 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한국 밖으로 보면 경제 안보가 중요해졌다.


△그렇다. (과거와 달리) 경제와 외교가 뒤섞여 버렸다. 특히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은 당분간 더 격화할 것이다. 한국은 이에 대한 입장 표명을 강요받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따른 (기업들의) 사업 위험도 커졌다. 차기 정부 입장에서 미중 갈등과 관련한 외교와 경제 문제를 어떻게 다룰 지가 힘든 과제가 될 것이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국제기구에 있다 보니) 구체적인 답변은 어렵다. 그러나 미중 갈등, 북핵 문제 등은 국제정치의 큰 그림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한국이 나서서 설득한다고 원하는 방향으로 물꼬를 바꾸기는 어렵다. 위험 자체를 인정하고 이를 관리하는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냉·온탕 외교정책을 반복하면 한국의 신뢰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외교만큼은 여야 합의 하에 일관되게 추진했으면 한다.

이창용 IMF 국장은

△1960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로체스터대 경제학과 조교수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 기획조정단장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이코노미스트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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