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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한껏 들떴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다. 불과 6개월 전이었는데 말이다. 자칫 10여년 전 그 지독한 트라우마를 다시 겪는 건 아닌지, 섣부른 우려도 나오는 모양이다. 삼복더위에 한국미술시장에서 불어온 싸늘한 바람 탓이다.
발단은 경매시장이다. 올해 상반기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의 총 거래액은 약 826억원(825억 7760만원). 지난해 상반기의 약 1030억원보다 204억원(19.8%)이 줄어든 성적표를 내놓은 것이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아트프라이스가 최근 발표한 ‘2019년 상반기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결산’을 보자면 상반기 총 거래액 826억원은 그간 상반기 통계만 놓고 볼 때 3년 전보다도 뒤쳐진 결과다. 2015년 627억원, 2016년 964억원, 2017년 989억원, 2018년 1030억원으로 꾸준한 상승세를 보여왔던 터.
국내 경매시장 양대산맥인 서울옥션·케이옥션을 비롯해 아트데이옥션·아이옥션·에이옥션 등 8곳의 1∼6월 온·오프라인 거래액을 집계한 통계는 총 거래액 하락만 가리키지 않았다. 출품작(1만 2820점→1만 2458점), 낙찰작(8815점→8199점), 낙찰률(68.76%→65.81%)까지 지난해에 비해 모두 떨어진 지표를 내놨다.
지난 몇 년간 국내 미술시장은 꾸준하게 오름세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 말 연달아 터진 각종 지표는 분위기를 고조시키기에 충분했다. 우선 2017년 기준 2018년 국내 미술시장 전체규모가 그랬다. 4942억 3600만원. 이는 전년(3964억 6900만원)에 비해 977억 6700만원(24.7%)이 늘어난 수치였고, 2007년 6000억원대를 찍고 바로 고꾸라진 이래 기록한 최고치였다. 경매시장 역시 순항이었다. 20년 전 국내 경매시장을 형성한 이후 처음으로 지난해 2000억원 시대를 열면서 2194억원의 실적까지 뽑아냈으니까. 2014년 전년 대비 35%가 성장한 971억원에 이어 2015년 1880억원으로 뻗쳐오른 뒤, 2016년 1720억원, 2017년 1890억원, 지난해 2149억원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더랬다.
△19.8% 빠진 상반기 시장…고미술은 선전
올해 상반기 낙찰총액 1위를 기록한 작가는 김환기(1913∼1974)다. 시장 부침과 상관없이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하며 여전히 ‘블루칩 작가’로 강세를 보이는 김환기는 68점을 출품해 48점을 팔아, 총 낙찰액 약 145억원 낙찰률 70.6%의 성적을 써냈다. 상위 10위권 내에 3점, 20위권 내에는 7점을 올리며 상반기 총 거래액 826억원 중 14.5%의 비중을 보였다. 다만 이 역시 지난해에 비해선 크게 부진한 결과. 지난해 상반기 김환기의 작품은 낙찰총액 214억원 낙찰률 87.5%를 기록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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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김환기의 대작 한 점이 그해 경매시장의 규모를 좌지우지하는 경향을 고려한다고 해도 상반기 침체는 뚜렷해 보인다. 지난해에는 붉은 전면점화 ‘3-Ⅱ-72 #220’(1972)이 있었다. 지난해 5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약 85억원(6200만홍콩달러)에 팔리며 ‘국내 미술품경매 최고가’를 다시 썼다. 대신 올해는 ‘무제’(1971)가 있었다. ‘3-Ⅱ-72 #220’과 비슷한 시기 비슷한 색상으로 그린 작품은 한 해 뒤인 올해 5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약 72억원(4700만홍콩달러)에 팔리며 ‘국내 미술품경매 최고가’ 2위에 안착했다. ‘김환기 대작 낙찰 변수’는 지난해와 올해가 거의 동일했다는 뜻이다.
상반기 경매시장의 위축을 바라보는 평가는 이제까지와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옥션·케이옥션 두 경매사의 압도적인 비중(상반기 서울옥션 53.95%, 케이옥션 36.17%), 김환기·이우환·천경자·박수근 등 몇몇 단골작가에 기댄 양태 등 양극화·불균형의 고질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그럼에도 한 가지 고무적인 성과는 있다. 고미술의 선전이다. 조선시대 달항아리 ‘백자대호’가 지난달 26일 서울옥션 ‘제152회 미술품 경매’에서 31억원에 팔리며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에서 거래한 도자기 중 최고가를 경신한 거다. 높이 45.5㎝의 이 백자대호는 2000년 3550만원에 첫 거래를 튼 이후 ‘달항아리 30억원 시대’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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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145억원 김환기…반구상화로 분위기 반전 기대
관건은 올해 하반기다. 분위기 반전을 타진할 그 첫 시장을 케이옥션이 연다. 오는 17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본사에서 ‘7월 경매’를 여는 케이옥션은 184점 110억어치의 미술품을 내놓고 승부수를 띄운다.
이번 경매 최고가 작품은 김환기의 ‘항아리와 날으는 새’(1958). 추정가 11억∼17억원을 걸고 응찰자를 기다린다.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이’ 다시 김환기로 반전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는 점. 그나마 색다른 기대치라면 그간의 전면점화가 아닌, 1950년대 김환기를 대표하는 핵심이미지로 꾸린 반구상화란 점이다. 게다가 같은 해 그린 유사한 푸른톤의 ‘항아리’(1958)가 지난달 서울옥션에서 9억원에 팔렸던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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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김환기의 항아리는 박수근의 여인들이 받쳐준다. 1950년대로 추정하는 작품 ‘시장’이 추정가 3억 5000만∼6억원에 나선다. 작가 특유의 거친 화강암 마티에르가 선명한 배경에 좌판을 벌인 두 여인의 옆모습을 잡아낸 그림이다. 박수근은 올해 상반기 경매시장에서 김환기를 제치고 호당가격 1위(약 2억 4786만원. 김환기는 4073만원)를 기록했다. 22점을 내 21점을 팔아내며 낙찰률 95.45%로 이 부문 1위에 등극하기도 했다. 다만 낙찰총액은 29억 6966만원으로, 2위 이우환(58억 94856만원)에 이어 3위 자리에 머물렀다.
이번 경매 고미술부문에 눈에 띄는 작품은 고산자 김정호의 목판지도인 ‘대동여지도 전도’(1864)다. 1861년 제작한 초간본인 ‘신유본’ 이후 수정작업을 거쳐 발행한 ‘갑자본’이다. 22권첩을 병풍처럼 펴고 접게 한 것이 특징. 현존하는 대동여지도 30여점 중 갑자본은 6점 정도만 남아있다는데, 이번 출품작은 판각상태가 좋아 초기판본으로 볼 만한 사료적 가치까지 지녔다는 평가다. 추정가는 5억 5000만∼7억원.
이외에도 ‘백자투각장생문필통’(19세기·8000만∼1억 5000만원), ‘청자상감국화문통형잔’(13세기·800만∼2000만원) 등의 도자기, 우암 송시열(1607∼1689)의 ‘겸익’(300만∼1000만원), 해공 신익희(1894∼1956)의 ‘격언’(250만∼800만원) 등의 글씨가 나선다. 이들이 꾸준히 이어지는 고미술의 상승세를 다질 수 있을지 관심을 끄는 건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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