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적으론 강경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밝혔지만 쓸 수 있는 보복 카드는 제한적이다. 일본이 내놓은 수출규제 만큼 치명적인 품목이 없을 뿐더러, 일본이 추가 규제에 나설 경우 피해가 급속도로 커질 수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통한 조정이 사실상 유일한 해법으로 꼽힌다. 하지만 결과가 나올 때까지 빨라야 1년 6개월이 소요되는데다 반드시 승소한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외교적 해법이 최선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수출규제 장기전으로 확전 때 피해 본격화
일본의 제재가 지난 4일 발표한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절차 강화에만 그친다면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게 우리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 관계자는 7일 “허가를 한 번 받으면 3년 동안 아무 문제 없이 수입할 수 있던 포괄허가제가 개별 사안별로 기간이 다양해지는 것”이라며 “기업들은 다소 불편하겠지만, 보이지 않는 제재만 없다면 수출입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서류를 다시 작성해오라든지, 이유 없이 심사·승인 기간을 늘리는 등의 강짜만 부리지 않는다면 수출입 자체는 큰 지장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한·일은 50여년 동안 경제적으로 보완해가면서 성장해왔다. 일본이 경제제재를 보복카드를 쓰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일본의 속을 알 수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WTO 승소 쉽지 않아…“외교적 해법이 최선”
우리 정부는 우선 WTO에 제소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그러나 WTO 제소 시 분쟁 해결까지 길게는 수년이 걸린다. 이 기간동안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 분야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글로벌 공급망에도 피해가 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지만, 우리 정부 입장에선 이차적인 문제다.
이번 사안이 정치적인 이유에 따른 경제 보복이라는 건 명백한 사실이지만 WTO에서 이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일본이 ‘국제 평화 및 안전·안보 유지’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어서다. 일본이 북한을 앞세워 적국이나 테러세력에 전략물자가 흘러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하면 반박 논리를 펼치기가 쉽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결국 국제 여론전을 통해 일본의 부당함을 호소하거나, 미국 등과의 외교적 공조를 통해 일본을 압박하는 것 외엔 마땅한 대안이 없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일차적으로는 우리 기업들의 피해가 없도록 해야 하는데 WTO 제소는 실효성이 떨어진다. 무역보복으로 맞대응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일본에 같은 강도의 타격을 입히기도 힘들다. 일본이 제재 수위를 올리면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국과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원인에 따른 무고한 기업희생을 막는 게 최우선시돼야 한다. 확전을 최대한 방지하면서 일본 정부와 하나씩 맞춰가면서 외교적으로 합의점을 도출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