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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사건 발생 사흘 만에 붙잡혔다. 주 판사의 집에서 기숙하던 열여덟 살 가정부 조모양의 범행이었다. 조양은 1973년 2월부터 이 집에서 가정일을 돕기 시작했다. 조양은 일이 서툴렀고, 부부의 자녀를 함부로 대하는 바람에 평소 손씨와 갈등을 빚었다. 이런 이유에서 손씨는 다른 가정부를 찾아보고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날도 비슷한 이유에서 조양이 손씨로부터 꾸지람을 들었다. 조양은 홧김에 손씨를 폭행하고 살해했다. 평소 지병이 있어 병약하던 손씨는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다.
목격자로서 경찰 조사를 받은 조양은 얼마 못 가서 용의자로, 그러고는 다시 피의자로 전환됐다. 손씨의 사인은 타살이었는데, 조양은 자살이거나 병사일 것이라고 우긴 게 석연찮았다. 손씨네 집에서 평소 라면을 한 상자씩 많이 구매하지 않은 점도 수상한 점이었다. 슈퍼 종업원의 증언도 결정적이었다. 손씨네 집 담을 넘어 문을 열기 싫었는데, 조양이 하도 부추겨서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라고 했다. 이 점을 수상히 여긴 경찰이 추궁하자 조양은 자백한 것이다. 평소 손씨와 빚어온 갈등이 범행 동기로 조사됐다.
주 판사는 판결을 선고하는 법정에 방청객으로 입장해 조양을 지켜봤다. 1심 판결이 나온 이튿날 주 판사는 자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채 발견됐다. 마흔네 살 한창의 나이였다. 유서에는 자녀에 대한 미안함과 사법부에 대한 송구함이 담겼다. 주 판사는 사건 이후 ‘부인이 없는 세상을 살아가기 어렵다’는 얘기를 주변에 했는데, 유서에도 이런 내용을 남겼다.
판결은 항소심과 대법원을 거쳐 무기징역으로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