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기주 기자] 2018년 7월 30대 직장인 A씨는 “마약 사건에 연루됐으니 검찰에 출두하라”는 검찰 수사관(사칭)의 전화를 한 통 받았다. 평범한 보이스피싱 범죄라고 생각했던 A씨는 당연히 사기 아니냐고 의심했다. 그러자 그 수사관은 대검찰청 홈페이지를 알려줄 테니 영장을 확인하라고 했다. 해당 사이트에 이름과 주민번호를 입력하니 실제 자신에게 발부된 영장이 있었고, 그의 말을 신뢰하기 시작한 A씨는 결국 돈을 보내고 말았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20대 사기범죄 피해는 4만7822명으로 2년 새 20.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사기범죄 피해자 증가율이 11.7%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20대의 증가세는 눈에 띈다. 30대 피해자(4만9632명)까지 합하면 주로 청년층으로 불리는 2030세대 사기 피해자는 총 9만7454명, 총 1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고등교육 이상을 받은 인구의 비중이 2012년 41.0%에서 2018년 49.0%로 크게 높아지고 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은 수치를 기록하는 등 고학력자가 많아지고 있지만 사기와 같은 지능범죄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것이다.
정교한 ‘그놈 목소리’…고학력 청년들도 꼼짝없이 당한다
잘 알려진 범죄이지만 그만큼 범행 수법이 비약적으로 ‘발달’하고 있어 학력이 높고 새로운 트렌드에 대한 상식이 비교적 풍부한 청년층도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아직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을 ‘김미영 팀장’으로 대변되는 어색한 말투의 중국 동포로 여기고 있다면 보이스피싱의 덫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2030세대가 가장 많이 당하는 수법인 ‘기관사칭형’의 경우 보이스피싱에 경계심을 갖고 있는 청년층이라 하더라도 그 벽을 여러 단계를 통해 무너뜨리고, 결국 돈을 송금하게 만들어낸다. 실제 지난해 기관사칭형 보이스피싱에 당한 30대 및 20대 이하 피해자의 수는 4117명으로, 전체의 61.6%에 달한다.
정인태 서울 동작경찰서 보이스피싱 TF팀장은 “요즘 보이스피싱 범죄를 보면 아무리 의심을 해도 믿을 수밖에 없도록 지능화하고 있다”며 “학력이 높은 청년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시키는 대로 가짜 검찰청 홈페이지나 금융감독원 관계자와 연결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범죄에 당한다”고 설명했다.
취업도 부동산도 잘 모르는 청년층, 사기범 타깃
이처럼 취업을 미끼로 인사비나 노조가입비, 교재비, 교육비 등을 내라고 요구하거나, 구직자 명의의 통장과 비밀번호 등을 받아 대포통장으로 사용하는 사례도 많다. 경찰이 지난해 9월부터 3개월 동안 특별단속을 통해 검거한 피의자만 86명, 피해자는 수백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대학생 혹은 사회초년생들을 대상으로 한 전세사기도 횡행하고 있다. 부동산 소유권이 없는데도 서류를 위조해 집주인 행세를 하고 보증금을 빼돌린다거나, 월세 계약을 맺어주기로 한 중개인 등이 중간에서 전세 계약을 맺은 뒤 보증금을 가로채 잠적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최근 진행된 특별단속 기간 중 약 100명에 달하는 관련 피의자가 검거됐다.
전문가들은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사기범죄가 발생하는 이유는 실질적 교육이 부족해서라고 진단한다. 특히, 사회에 본격으로 진입하기 전 사기에 당할 경우 정상적인 궤도에 오르기 어려운 만큼 이들 범죄자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요즘 학생들 사례를 보면 취업을 알선해 준다고 해서 가보면 학원비가 수백만원에 달하는 등 수법의 사기에 당하는 학생들도 많은데, 결국 경험이 부족하고 제대로 돈 교육도 이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며 “금융에 대한 교육은 늘어났지만 보이스피싱이나 부동산사기 등 실생활과 밀접한 교육은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사기 등 경제범죄가 끼치는 해악 등을 고려했을 때 이들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