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청년, '일제 심장' 총독부에 폭탄을 내던지다[그해 오늘]

독립운동가 김익상 의사, 총독부 경내 폭탄 투척
현장서 탈출한 후 또다시 거사 치르다 20년 옥고
  • 등록 2022-09-12 오전 12:03:06

    수정 2022-09-12 오전 12:03:06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1921년 9월 12일. 조선총독부 경내에서 폭탄이 폭발했다. 일제의 한반도 억압이 시작된 지 11년 만에 처음으로 일제의 심장부인 조선총부 경내의 폭탄 투척이었다. 이 폭탄 투척은 일제 강점기 36년 동안의 유일한 폭탄 투척이기도 하다.

독립운동가 김익상 의사.
폭탄을 투척한 인물은 독립운동가 김익상이다. 당시 만으로 25세에 불과했던 김익상은 조선총독으로 새로 부임한 사이코 마코토(齋藤實) 암살을 목표로 거사를 단행했다.

김익상은 거사 당일 아침 전등을 고치러 온 수리공으로 변장해 조선총독부 청사로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총독의 집무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 가지고 온 폭탄 2개 중 한 개를 집무실로 파악한 한 사무실에 투척했다.

하지만 해당 사무실은 총독 집무실이 아닌 총독의 비서실이었다. 그리고 던진 폭탄마저 불발탄이었다. 그는 인근의 다른 사무실에 다른 폭탄 한 개를 투척했다. 이번엔 불발탄이 아니었지만 사무실엔 아무도 있지 않았다. 결국 거사는 실패했다.

김익상은 다행히 일본 헌병에 잡히지 않았다. 폭발 소리를 듣고 뛰어올라온 일본 헌병들을 앞에서 그는 수리공 행세를 하며 유유히 조선총독부 청사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임시정부가 위치한 중국으로 돌아가 훗날을 도모했다.

숭실학교 졸업 후 평범한 교사와 담배 회사 직원으로 근무했던 김익상은 애초 독립운동과는 거리가 있던 인물이었다. 그는 담배 회사 직원으로 근무할 당시 중국 지점으로 터전을 옮긴 후 중국 상하이에서 김원봉이 조직한 항일 무장 투쟁독립운동 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하며 독립운동에 첫 발을 내딛게 됐다.

사이코 마코토 총독 암살 계획 역시 김원봉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일본인으로 위장해 국내로 잠입한 뒤 거사를 시도했다. 비록 거사에 실패했지만 일제는 김익상의 신원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중국에서 훗날을 도모하던 김익상은 1922년 3월 또 다른 암살 지령을 받게 된다. 훗날 일제의 총리가 되는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 당시 일제 육군 대장의 3월 28일 상하이 도착에 맞춰 오성륜·이종암과 함께 그를 처단하라는 명령이었다.

하지만 결국 거사는 실패했고 김익상은 오성륜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오성륜과 달리 탈옥에 실패한 김익상은 일본으로 이감돼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다.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던 그는 최종적으로 징역 20년형을 선고받았다.

김익상의 그 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20년 넘는 옥고를 치른 후 1943년 만기출소해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얼마 후 일본 경찰에 연행된 후 종적이 묘연해지며 암살됐을 것이란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그는 독립 이후인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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