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자를 불구로"...강간범 혀 절단한 소녀가 들은 말[그해 오늘]

1964년 5월 6일, 18세 소녀 강간에 저항하다 강간범 혀 절단
중상해죄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강간범보다 더 높은 형량
檢 "왜 남자를 불구로, 책임 져라" 압박…法 "결혼해라" 2차 가해
56년 만인 2020년 재심 청구…잇단 기각, 대법원 판단만 남아
  • 등록 2023-05-06 오전 12:01:00

    수정 2023-05-06 오전 12:01:00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18세 소녀가 강간범에 저항하다 강간범의 혀를 깨물었으나 오히려 강간범보다 더 높은 형량을 받았다. 1964년 당시 검찰은 피해자에게 오히려 “왜 남자를 불구로 만들었냐?”며 압박했다.

‘56년 만의 미투’ 당사자인 최말자 씨가 지난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56년 만의 미투’ 사건 재심 개시 촉구 기자 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964년 5월 6일 오후 8시께. 경남 김해의 한 마을에서 최말자 씨(18·이하 당시 나이)가 자신을 바닥에 쓰러뜨리고 강제로 성폭행을 시도하던 노모 씨(21)의 혀를 깨물었다. 최 씨로서는 어쩔 수 없는 최후의 자기방어 수단이었다. 노 씨는 이 사고로 혀 약 1.5cm가 잘려 나가 봉합 수술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최 씨는 중상해죄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최 씨의 정당방위는 인정되지 않았다. 반면 강간 미수 직후 최 씨 아버지 집에 침입해 협박한 노 씨는 특수주거침입과 특수협박 혐의가 적용돼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성폭행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다.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오히려 더 무거운 형량을 받은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피해자는 검찰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모욕을 견뎌야 했다.

최 씨 증언에 따르면 당시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최 씨에게 “왜 남자를 불구로 만들었냐? 책임을 져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재판부도 “피고에게 호감이 있었던 게 아니냐”, “피고와 결혼해서 살 생각은 없는가”라고 되묻는 등 최 씨에게 심각한 2차 가해를 했다. 당시 언론도 이 사건을 두고 ‘키스 한 번에 벙어리’, ‘혀 자른 키스’ 등의 제목으로 남성이 마치 피해자인 것처럼 호도했다.

구속 수사를 받은 최 씨는 6개월 만에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정신적·신체적으로 피폐해져 “죽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한다. 죄인이라는 ‘주홍 글씨’를 달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견디며 산 인생이었다. 이 사건은 법원행정처가 지난 1995년 법원 100년사를 정리해 발간한 ‘법원사’에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영원히 가슴에 멍에를 지고 살아 가야 할 것 같던 최 씨에게 우리 사회의 미투(MeToo·성폭력 고발) 운동 열풍은 전기가 됐다. 지난 2018년 최 씨가 한국여성의전화에 재심 청구와 관련해 문의를 하면서, 피해자의 명예 회복을 위한 첫 발걸음이 시작됐다.

최 씨는 사건 후 56년 만인 지난 2020년 한국여성의전화 지원으로 자신의 정당방위를 인정해 달라며 부산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하지만 부산지법은 최 씨의 재심 청구를 기각했다. 부산고법 역시 최 씨의 재심 청구 기각에 대한 항고를 기각했다. 최 씨는 재항고를 했지만 대법원은 약 2년 간 이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자 최 씨와 그의 조력자들인 288개 여성단체는 지난 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정문 앞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개시 촉구 기자 회견’을 개최했다. 이들은 이날 최 씨를 필두로 매일 대법원 앞에서 1인 릴레이 시위를 진행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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