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정책 다시보기]비례대표를 꾸짖는 정치인들의 속내

여의도 여야 정치권의 정쟁에 숨겨진 정책 이야기
  • 등록 2015-08-15 오전 12:00:00

    수정 2015-08-15 오전 12:00:00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제가 그동안 이 코너에서 해드렸던 세 가지 얘기를 다시 돌아봤습니다. 모두 ‘개혁’과 관련된 이야기더군요. 박근혜 대통령은 개혁을 입에 달고 살지요. 노동·공공·금융·교육 등 그 대상은 사회 전체를 아우릅니다.

개혁을 실행하는 주체는 예외인 걸까요. 저는 지난주 지역구 의원이 유발하는 각종 정치경제적 비효율을 ‘정치실패(political failure)’로 부르고 싶다고 했는데요. ‘시장실패(market failure)’는 정부가, ‘정부실패(government failure)’는 정치가 각각 개입합니다. 정치실패는 누가 바로 잡습니까. 국민이 선거로 심판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불행하게도 표(票)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안 가린다는 건 여야가 같지요. 개혁이든 대의(大義)든 표 앞에선 장사 없습니다. 저는 어떻게든 국회의원직을 유지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정치실패의 원인이라고 봅니다.

한 개혁파 의원의 토로 “말로만 국가…다 지역구만 챙긴다”

이번주에 말씀드릴 주제는 이것입니다. 그리스 재정위기를 보고도 나라곳간 사정에는 관심이 없는 지역구 정치인에 대해 지난주 이야기해드렸는데요. 그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까 합니다.

지난 한주 어느날 만났던 A 의원의 말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는 새누리당 내에서 합리적 개혁적이라는 평을 듣는 재선 의원입니다. A 의원이 하고 있다는 고민은 이랬습니다. “국회에서 국가적인 큰 어젠다(의제)가 사라졌어요. 말로는 국가를 거론하지만 결국은 다 지역구 챙기기에 급급합니다. 국가는 붕 뜨고 지역만 남은 느낌이에요.”

국회는 철저하게 표를 보고 움직이는 곳입니다. 그리스 재정위기나 중국 위안화 절하는 우리경제에 큰 함의를 주는 글로벌 이슈입니다. 그런데 이건 표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여야는 처음에만 반짝하다가 곧 침묵합니다. 급변하는 세계 동향은 정부관료와 민간기업의 영역이라고 여기는 걸까요. 저는 A 의원의 고민에 십분 공감합니다.

학자 출신 한 초선 B 의원은 이런 얘기도 합니다. “방금 지역구에 다녀왔는데 한 학교에서 민원요청을 해서 들어주고 왔어요. 대부분 이렇지요. 정치인 되기 전에는 이런 일이 주가 될 줄 몰랐습니다.”

경제통 이한구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할 당시 했던 말도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그는 “국내경제가 심각한데 그 인식은 충분히 안돼 있다”면서 “저라도 지역구 관리 부담에서 벗어나 국가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시간을 더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지요.

지역구 민원이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선거철이 다가올수록 그게 전부가 되는 게 문제입니다. 지역구 관리에만 ‘올인’하는 의원은 의외로 많습니다. “도의원·시의원이 할 일을 국회의원이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닙니다.

비례대표 줄이기 골몰하는 지역구 정치인…개혁의지 있나

최근 여의도 정가의 화제 중 하나가 ‘비례대표’입니다. 흔히 전국구라 불리는데요. 지역구 직접선거로 ‘선출’된 의원들이 아닙니다. 정당 득표에 비례해 사실상 ‘임명’된 겁니다. 각 직능별 정책 주특기를 부여받고 국회에 입성한 이들입니다.

지역구 의원은 비례대표를 알게 모르게 무시합니다. 선거를 치러보지 않았다는 겁니다. 초선이 아니라 ‘0.5선’이라는 말도 있고요. 그래서인지 지역구 의원들이 나서서 비례대표 수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서울에 지역구를 둔 어느 의원에게 ‘잘하는 비례대표를 꼽아달라’고 했더니 “제가 판단할 수는 없다”면서도 “그래도 지역구 당협위원장을 하면서 재선만 노리는 분들은 아니라는 얘기는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비례대표로 의원이 된 후 비어있는 지역구를 찾아 4년 내내 재선을 준비하는 분들은 국회에 들어오지 말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비례대표는 순기능이 더 많고 더 늘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례대표 출신 당협위원장은 공천 때 페널티를 주든지, 비례대표 중 10% 정도는 정책만으로 재선을 시켜주든지 등으로 보완하면 될 겁니다. 그래야 그나마 국가적인 의제가 공론화될 수 있습니다.

예를 한번 들어볼까요. 여권이 자평하는 최대성과인 공무원연금 개혁을 보지요. 지역구 의원들은 처음부터 무관심했습니다. 이 의제를 어렵게 끌고 간 인사가 당시 비례대표였던 김현숙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입니다. 막판 개혁 강도가 크게 떨어졌다는 비판을 받았는데요. 김 수석도 상당히 아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자기 몫으로 가져와야 할 표가 눈 앞에 선하다면 이럴 수 있을까요. ‘큰 그림’은 대통령이나 대권주자만 그리는 게 아닙니다.

지역구 의원의 본심은 따로 있는 것 같네요. 비례대표를 늘리면 지역구를 줄여야 한다는 겁니다. 지역구를 줄이는 것이야말로 ‘정치개혁’인데, 아예 논의 밖입니다. ‘제 살 깎기’는 절대 하지 않겠다는 걸로 밖에 안 보입니다. 아쉽습니다. 저는 공무원연금도, 노동시장도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역구 정치인들이 앞장서 “기득권을 양보해달라”고 한다면 공감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의견을 기다립니다. 여야 정치권의 정쟁 혹은 정책을 보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jungkim@edaily.co.kr로 보내주세요. 부족하지만 최대한 답변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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