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게 죄입니까?"…미스서울 미국 납치 소동[그해 오늘]

1982년 美수사당국, 납치 신고 받고 '미스서울' 구출
"한국서 강제로 끌려왔다"며 함께 입국한 남성 신고
한국서 연인관계 드러나며 반전…남성 거짓말에 속아
'전과 6범' 男, 재미교포 재력가 행세하며 美로 데려가
  • 등록 2022-09-15 오전 12:03:00

    수정 2022-09-15 오전 12:03:00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1982년 9월. 국내 언론에 미스서울 출신의 이모(당시 27세)씨가 미국으로 납치됐다는 보도가 대대적으로 나왔다.

미국 경찰은 9월 11일(현지시간) 이씨 친구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한 호텔에서 이씨를 구출했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한국에서부터 흉기로 협박을 받아 돈을 빼앗겼고 지난 5일 미국행 비행기에 나를 강제로 태웠다”며 “미국 호텔에 감금돼 담뱃불로 지지는 등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1982년 9월 14일자 경향신문.
미국 경찰은 이씨 진술을 토대로 함께 호텔에 머물던 남성 한모(당시 27세)씨를 체포했다. 하지만 한씨는 혐의를 강력 부인했다. 그는 “함께 미국 이민을 꿈꿨기에 미국에 온 것이다. 미국에 온 후 이씨가 저에 대한 마음이 갑자기 바뀐 것뿐”이라며 “학대나 폭행을 가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미국 수사당국은 결국 두 사람의 구체적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한국 경찰에 수사 협조를 요청했다. 두 사람은 모두 위조여권을 이용해 미국에 입국한 상태였기에 납치·폭행 혐의 수사와 별도로 두 사람의 위조여권 관련 수사도 개시했다.

한국 경찰은 두 사람이 사용한 위조여권의 원주인들과 함께 지인들을 조사했다. 이를 토대로 경찰은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한국에서부터 결혼을 전제로 교제했다는 점을 발표하며 사건은 반전의 계기를 맞이한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9월 15일 미국 수사당국에 통보됐다. 우리 측의 수사자료는 미 수사·사법당국의 사건처리에 영향을 미쳤다.

명문대 출신 ‘미스서울’, 전과 6범 남성에 속아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981년 12월 우연한 택시 합승이 계기였다. 두 사람은 상대방의 외모에 이끌렸다. 한씨는 이씨에게 자신을 “미국 명문대를 다니다 결혼 상대를 위해 한국에 귀국했다”고 소개하며 재미교포 사업가 행세를 했다. 그는 “미국 시애틀에서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고, 집도 갖고 있다”는 말로 이씨의 환심을 샀다.

1982년 9월 14일자 조선일보.
하지만 한씨가 밝힌 신분은 모두 거짓이었다. 한씨는 부모에게 용돈을 받으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던 상황이었다. 그는 명문대 출신 재원이던 이씨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재미교포 사업가 행세를 한 것이다. 그는 과거 위조여권을 통해 수차례 미국에 다녀왔던 경험이 있어 미국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

더욱이 한씨는 고등학교 재학 시절 또래 여학생과의 사이에서 두 자녀를 낳았다가 방탕한 생활로 이혼을 당한 전력도 있었다. 자신의 방탕한 생활을 나무라는 부친을 폭행한 전력도 있었다. 존속상해를 포함해 강도상해, 밀항 등 전과 6범이었다.

이 같은 전력을 알지 못했던 이씨는 한씨 요구에 따라 1982년 7월부터 동거를 시작했다. 한씨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이씨에게 결혼을 재촉했다. 두 사람은 함께 이씨 부모에게 인사를 드렸다. 하지만 한씨가 미심쩍었던 이씨 부모는 한씨에 대해 뒷조사를 진행해 두 자녀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이씨를 다시 집으로 데리고 갔다.

여성 부모, 남성 뒷조사 후 결혼반대…결국 美 밀입국

한씨는 이후 본격적으로 이씨와 미국 밀입국을 하는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위조여권으로 다시 미국에 입국해 여러 차례 이씨에게 “곧 미국에서 초청장이 갈 것이다”, “빠르게 곧 미국으로 당신을 데리고 올 방법을 찾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그는 이미 미국 밀입국에 사용할 여권을 확보한 상태였다. 지금과 같이 여권의 중요성이 크게 인식되지 않던 시기였기에 한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에게 빌린 여권과, 돈을 주고 한 남성에게 구입한 여권을 브로커에게 맡겨 한씨와 자신의 사진을 넣어 변조했다. 한씨는 이후 이씨 가족들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이용해 이씨를 집에서 빼낸 후 서울에서 머물다 9월 초 위조여권을 이용해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982년 9월 14일자 경향신문.
행복할 것 같았던 두 사람의 미국 생활은 이씨가 미국 도착 후 한씨가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급격히 나빠졌다. 재미교포 사업가인 줄 알았던 한씨가 “여권을 태워버리고 잡역이라도 하자”고 제안하자 두 사람 사이의 다툼이 시작됐다.

그리고 이씨가 한국에 있던 내연남에게 전화를 하자 한씨가 폭력적으로 돌변하며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한씨는 이씨가 호텔 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했고, 이씨가 결국 9월 11일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구출을 요청한 것이었다.

미국 수사당국 조사에서 한씨는 위조여권 사용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납치 등의 혐의는 강력 부인했다. 미국 수사당국도 한국 수사기관의 조사 내용 등을 토대로 한씨의 납치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결국 그는 위조여권 사용 혐의 인정 대가로 한국으로 추방돼 10월 7일 한국에 들어왔다. 한씨는 입국 즉시 구속돼 여권법, 밀항단속법 위반 등의 혐의로 브로커 등 여권 위조 공범들과 함께 재판에 넘겨져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남성, 여권위조 및 감금 징역 6년…여성도 징역 1년

하지만 이씨는 한국행을 거부했다. 그는 “한국으로 입국 시 한씨 측으로부터 보복을 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 법원은 같은 해 12월 이씨에 대해서도 추방명령을 내렸고, 이씨도 결국 1983년 2월 강제송환됐다. 이씨 역시 귀국 즉시 체포돼 위조공문서 행사, 출입국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한씨 역시 추가 수사를 통해 미국 호텔에서 이씨를 감금한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1980년 초 보수적인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하듯, 당시 여론은 해당 사건을 “국제적 망신”이라고 보도했다. 여권을 위조하고 신분을 속였던 한씨 못지않게 이씨도 거센 사회적 비판을 받아야 했다. 한 신문은 “불륜과 교활, 난잡과 추태가 뒤얽힌 한 편의 성범죄 필름”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씨는 구속기소된 후에도 “납치가 맞다”며 억울함을 표했다. 그는 1심 재판에서 검찰이 자신에게 징역 5년을 구형하자 편지지 24장 분량의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이씨는 “남보다 조금 더 예쁘다는 것이 이렇게 죄가 됩니까”라며 “여자이기 때문에 억울하게 유린당하고 징역 5년이란 구형을 받아야 합니까”라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한씨도 추가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도합 징역 6년을 복역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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