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을 주도해 결성했다. 노동 계급의 정체 세력화를 위한 목적이었다. 그 결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돼 징역 2년6월에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1992년 출소하고 정계에 진출했다. 인민노련이 주축이 된 진보정당추진위원회 활동을 시작했다.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하면서 초대 부대표를 맡았다. 2004년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에 당선하면서 제도권 정치인의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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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노선은 한결 같았지만 나아가는 길은 외줄을 탔다. 민노당과 노선 갈등으로 2008년 탈당했다. 그해 심상정과 함께 진보신당을 창당했다. 다시 민노당과 결합하고 2011년 창당한 통합진보당에 합류했다.
진보정의당 대표 시절 언급한 `6411번 버스`는 정치인 노회찬을 상징한다. 버스는 서울 구로구 구로동을 출발해 강남구 개포동까지 운행한다. 대표 수락 연설을 하며 이 버스를 언급해 노동자 처우를 환기하고 당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현장을 모르면 나올 수 없는 화법이었다. 노동 운동가 출신 정치인의 땀 어린 언어에 지지가 뒤따랐다.
그를 대중 정치인 반열에 올린 사건은 훗날 화가 됐다. 삼성X파일을 공개한 행위가 `통신비밀 보호법 위반`의 덫으로 돌아왔다. 당시 당사자 실명을 공개한 게 문제였다.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의 의원직 상실형이 확정돼 2013년 2월 의원직을 상실했다. 피선거권을 회복하고 2016년 총선에서 창원 성산구에서 당선하고 다시 정계에 복귀했다. 정의당은 그를 원내대표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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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23일 유명을 달리했다. 그해 5월 드루킹 특검이 시작하면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의혹이 불거진 데 따른 극단적 선택이었다.